대학 들어감과 동시에 보육원에 학습지도를 나가는 동아리에 가입을 했습니다.
학기중에는 일주일에 한 번, 방학 중에는 일주일에 두 번,
보육원의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학습지도를 하는 것이 주된 활동이긴 했지만,
서울 시내 기관들이 모여서 체육대회를 한다거나 기타 행사나 모임 등을 가질 경우에는
외부로 지원을 나가기도 했습니다.
한 번은 체육대회를 지원하러 나간 적이 있었는데, 점심시간이 되자 도시락을 나눠줬습니다.
벌써 십여 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정말 아이들이 허겁지겁 먹더군요.
도시락 하나를 다 먹고, 하나 더 달라고 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고,
음료수를 더 달라는 아이들도 부지기수, 특히나 후라이드 치킨은 얼마나 인기 메뉴였는지
넉넉히 준비했다고 하는데도 거의 동이 날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어느 선배언니가 그러대요.
우리가 얼마만큼의 편견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하고 있었는지, 새삼 깨달았다구요.
누군가 이야기했던 모양입니다.
아이들이 평소에 저런 음식을 얼마나 먹어보고 싶었으면, 저렇게 앞다투어 먹겠느냐고.
..................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거든요.
저희가 활동나가는 보육원의 급식 메뉴는 저희도 대강 알고 있습니다.
저녁시간이 겹치거나 하는 때는 먹고 가라며 자리를 내주기도 하시고,
몇 년 동안 아이와 만나고 드나들다 보면, 아이에게서 듣거나 느끼는 것도 적지 않아 지니까요.
물론 아주 넉넉하지야 않았겠지만, 손꼽힐만큼 재정지원을 많이 받는 곳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평소에 먹어보지 못한 불쌍한 애들이어서 그 도시락에 열광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주로 초등학교 4-6학년생이던 그 아이들은 그저 체육대회를 하다보니 시장하고 배가 고파져서,
게다가 십여 년 전 후라이드 치킨이 자주 먹을 수 있는 메뉴는 아니었기 때문에 더더욱 맛있게 잘 먹었을 뿐.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평소에 못먹고 굷주려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불쌍하다며 안쓰런 마음을 가졌었지요.
부끄럽지만 저도 그랬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요즘 비슷한 편견을 만나게 됩니다.
비교적 어린 나이일 때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게 된 저희 아이에 대해서요.
시어머님께서 1년 반 가까이 키워주셨지만, 사정상 그 이후로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 아이입니다.
이제 만 21개월이 지났구요.
1. 아이가 정말 잘 먹습니다.
자기 몫으로 덜어준 밥 한그릇은 뚝딱, 좋아하는 생선 반찬이 있으면 두 그릇도 먹구요.
배가 똥똥해지도록 먹고나서도 맛있는 간식이 나오면 좋아서 뛰어오는 아이입니다.
태어나서 여지껏 먹는걸로 속썩여 본 날을 목감기가 심하던 며칠만을 꼽을 정도로
저 스스로도 복 받았다 생각할만큼 잘 먹는 고마운 아이입니다.
-> 이런 경우에 어떤 분들은 애정결핍이 아니냐고 합니다. ^^;
생후 24개월, 혹은 36개월까지는 개인탁아로 아낌없는 사랑을 받아야 하는 아기가
너무 이른 나이부터 어린이집에 내돌려져서, 사랑받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먹는걸로 푸는건 아니냐구요.
시부모님께서 아낌없는 사랑을 쏟아 키우실 때에도 아이는 여전히 잘먹었다고 말씀드려봐도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아이가 속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걱정하십니다.
검사하면 다 나온다고 하십니다.
2. 아이가 낯을 별로 안가립니다.
활발합니다. 낯을 별로 안가리고 사람을 좋아합니다.
백일 지나면 가린다고 하더니 그렇지도 않았고, 8개월-돌 무렵에 심하게 가린다고 하더니
그 때도 백화점이나 동네 놀러나가면 사람보고 좋아하고 다가가고 싶어했습니다.
그 성격은 지금도 여전해서 경비실 지나가면서는 꼭 경비아저씨한테 인사드리고 싶어하고,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사람이 있으면 보고 웃고, 인사하고 싶어합니다.
-> 이런 경우에 어떤 분들은, 아이가 애정에 목말라하는거 아니냐고 하십니다.
너무 어린 나이부터 어린이집으로 내돌려져서 주위 사람들 눈치를 보고,
사람들한테 사랑받고 싶어서 안달하는 거 아니냐고 하십니다.
사랑받고 자란 보통 아이라면 낯가림이 심해서 함부로 다른 사람한테 다가가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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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시는 말씀이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이가 잘 먹는건 타고난 것일 수도 있겠지요. 전업인 친정엄마가 키워주신 저도 그랬었으니까요.
친척집 놀러가서도 '어쩜 저리 잘먹니', 와 '한그릇 더줄까?' 라는 얘기만 들어봤지,
'밥 좀 먹어봐라' 하는 소리는 못들어봤습니다. 상 차릴 때는 언제나 신나서 자리에 앉아있었어요.
평소에 못먹어서 그랬던 것도 아니에요.
그냥 항상 밥이 맛있었고, 먹는게 좋았습니다. 지금도 그렇구요.
사람 좋아하는 것도 그렇죠. 타고난 성격일 수도 있어요.
저 같은 사람은 회사 내에서 딱 저희팀만 알고 지내는 완전 소심이지만,
저희 남편처럼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사람들 하고도 안면 트고 지내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고, 모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저로서는 이해가 안가지만, 엘리베이터에서 같은 얼굴을 두 번 마주치면 목례를 하고,
세 번 마주치면 통성명을 하고, 네 번째부터는 자연스럽게 인사하고 지내는 사이가 된다네요.
물론 그 분들께서 하시는 걱정이 모두 맞는 것일수도 있어요.
저도 항상 그 부분을 염두에 두고 아이를 잘 관찰해야 된다는 것도 압니다.
말씀하시는 분께서 나쁜 의도를 갖고 계신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요.
오히려 걱정스러운 마음에, 저희 아이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 충고해주시는 것도 알고요.
하지만 가끔은, 어렸을 때부터 어린이집 다니는 아이에 대한 일종의 편견은 아닌가 싶어
마음이 뾰족해집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가 잘 먹는다더라, 에서 이런저런 상황을 유추해주시는 분들보다는
매일 얼굴 보며 사는 내가 내 아이를 더 잘 알지, 하는 교만한 마음도 생기구요.
어떤 분은 정말 대놓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결국 돈 아끼자고 그 불쌍한 아이를 어린이집으로 보낸거 아니냐,
다른 엄마들도 돈이 남아돌아서 개인탁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어린이집에 보낸 아이에게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도
당연히 감수해야 되는 것 아니냐, 자꾸 우리집 아이는 아니라고 하지 말아라, 라구요.
하지만 자기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님으로써 뭔가 부족해보이고 힘들어하는걸 빤히 보면서도
그걸 모른척할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있을까요.
오늘 아침에도 자동차한테 손흔들고는, "생님~"하며 어린이집으로 뛰어들어가던 아이,
먼저 와있던 언니, 오빠들이 반겨주니 좋아서 신발 벗고 뛰어들어가다가
선생님 만류에 겨우 뒤돌아보고는 엄마한테 방글방글 인사하던 아이.
매일이 웃는 얼굴이라, 넌 뭐가 그렇게 신나니, 하고 사람들이 물어보는 아이.
제 딴에는 잘 크고 있다고 위안하다가도,
혹시나 제가 보고싶은 것만 보려고 하고 있지는 않은가 불안하여... 마음이 어지러운 하루입니다.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비가 오니 마음이 심난하네요.
갈대 조회수 : 437
작성일 : 2006-07-10 14:52:57
IP : 203.255.xxx.34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흠흠흠.....
'06.7.10 3:11 PM (220.95.xxx.95)잘 키우고 계시는데 뭔 걱정이시래요?
밥 잘먹어, 사회성 좋아, 인사성 좋아, 사교성 좋아.....
제가 보기엔 이보다 좋을순 없다로 보입니다.
얼토당토 않은 소리에 귀기울이지 마세요.2. 걱정하지 마세요.
'06.7.10 4:48 PM (61.96.xxx.149)30개월 끼고 키운 울 딸 너무너무 사람 좋아하는데요.
너무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어 걱정될 정도로요.
밥은 기분따라 양이 좌지우지 그렇구요.
순한 아기 둔 행복한 엄마시네요, 부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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