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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승리 우리 시어머니

뒤늦게 철든 며느리 조회수 : 1,753
작성일 : 2005-12-22 10:30:14
어느덧 시집온 지 17년이 되가네요.
이 곳에서 시댁 어른들과 여러 가지 어려움때문에 호소하는 분 많은데...
저는 어머니 삶을 통해 존경심을 표하고 싶어 글을 올립니다.

며칠전 화요일 저희 어머니께서는 학사모를 쓰셨습니다.
이화여대 평생교육원에서 주는 학사모지요.
벌써 7~8년은 되었나봅니다.
평생교육원에 다니신 것이...

시골에서 태어나 일찍 세상떠나신 아버지로 인해 막내딸 우리 어머님은
큰 오빠 집에서 성장을 하셨습니다.
굉장히 부유했던 큰 오빠 (한의사셨어요) 집에서 행복하게 자라질 못하셨지요.
올캐언니 시집살이가 대단했던가 봅니다.
겨우 겨우 힘없는 엄마에 의지해 고등학교는 졸업하셨는데
전체 1등을 하셨던 어머니는 대학 진학을 할 수 없었고
수녀가 될까, 절에 들어가 머리를 깎을까 ... 오랜 방활끝에 도망치듯 결혼을 하셨다네요.
저희 아버님 정말 좋으신 분인데
6남매 맏며느리로 기울어져가는 시댁에서 시동생, 시누이, 어머니 소생 3형제 굶기지 않으려
하숙도 치시고 농사도 지으시고... 온갖 고생을 하셨답니다.
그러나 어머님을 더 힘들게 한건 시아버님(돌아가신 시 할아버님) 의 무능과 엄청난 빚,
그리고 시동생의 끊임없는 돈 요구... 이런 것들은 2년전 할아버님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되었지요.
지금도 우리 시부모님께서는 할아버님 빚과 시작은아버님 빚을 갚고 계신답니다.

오직 3형제를 의지해 살아오신 어머님의 교육열은 대단하셔서
우리 남편 의대보내고 두 시동생들 서울대학교 유명학과를 졸업시키셨습니다.
그러나 자식들 잘 키워놓으면 뭐합니까?
사랑하는 사람 하나씩 꽤차면 다 남의 사람되는 것이 인지상정...
지금 생각해 보면 울 머머니 그 허전함 달래시려고 만학의 길로 들어서셨나봅니다.
오직 배움의 길에서 기쁨을 느끼시고 얼마전에는 수필 작가로 문단에 등단도 하셨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직장생활하는 며느리 안도와주시고 손주도 안봐주시고 ...
불평만 하는 나쁜 며느리였답니다.
저도 나이가 들어가고 자식들 성장해가니 어머니의 삶이 부쩍 가슴에 와 닿습니다.
현명하신 우리 어머니
자식들 가슴에서 떠나 보내시려고 지금껏 노력하며 사셨나봅니다.
생각해보니 지금껏 저리 물러서라 한 마디 않으시고 저희집 한 번 마음껏 방문하지 못하신 것이...
오늘따라 마음이 저려옵니다.
왜 좀 더 어머니를 이해하고 따뜻하게 못해드렸을까요?

전 항상 불만이 마음 속에 조금씩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제 복을 감사할 줄 몰랐던거지요.
친정어머니는 더 이상한 일을 하셔도 다 이해가 되면서 시어머님은 이해가 되지않는 것은...
제 마음의 문제이지요.

어쨌든 자식들 다 잘되고
이제 살만하신데도 우리 어머님의 검소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자식들 인간성 너무 좋게 키워놓으셔서
삼형제 모두 가족들이라면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로 여기며 살고...
부모님께도 얼마나 효자인지...

학사모쓰시는 날도 날 춥다고 오지말라십니다.
저는 일관계로 정말로 참석을 못해버렸네요.
그나마 손주들 보내서 축하해드렸습니다.

오직 하나님 의지하면서 성경말씀대로 정직하게 아름답게 살아오신 우리 어머니.
못난 며느리는 앞으로도 서운타, 밉다 하면서 사는 모습 또 보여드리겠지만
그래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어머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우리 82식구들 모두 인간승리 우리 어머니 축하해주세요.
우리 어머님들 인간승리 아닌 분이 누가 계시겠습니까?
정말 어려운 살림 속에서 우리 남편들 잘 길러주시고 손이 무르도록 고생하신 분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와는 고생의 정도가 많이 다르겠지요?

이 땅의 어머님들 그 수고로움에 사랑과 존경을 보냅니다.
우리 늙어가는 것도 금방이네요.
자식들 중학교만 가도 다 벗어나려고 하고...
내 나이듦에 여유있어지려면 우리도 떠나보내는 연습 해야할려나 봅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안부전화라도 하는 하루가 되세요.
그리고 시부모님 모시고 사는 이 땅의 며느리들 모두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냅니다.
더 사랑하며 사십시다.
행복하세요.
IP : 210.104.xxx.59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마우스
    '05.12.22 10:44 AM (210.178.xxx.18)

    꽁꽁언 한 겨울 정말 훈훈한 내용 온기가 주위를 감싼산답니다.
    시어머님의 꿋꿋한 정신력 그정신력을 이어받을 님의 마음 ...
    부럽습니다.

  • 2. 쁄라
    '05.12.22 11:14 AM (211.247.xxx.115)

    맘이 훈훈합니다. 아직 어린 아이들 키우면서 자식 키우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뼈속깊이
    체험하는 엄마입니다. 왜 국가에서 장한 어머니상을 주는 이유를 알겠더군요.
    어머님 정말 멋진분이십니다!!!

  • 3. 오랫만에
    '05.12.22 11:56 AM (211.222.xxx.219)

    시어머니에 대한 좋은 글이 올라 기쁘네요.
    원글님의 시어머니도 인간승리에 가깝지만...
    그것을 알아주는 원글님도 아름답게 성숙하셨네요.
    82cook을 오랫만에 들어와서
    가슴 속 저 깊은 곳까지 따뜻해지는 훈훈한 글 잘 읽었습니다.

  • 4. ^^
    '05.12.22 12:00 PM (218.53.xxx.8)

    윗님 말씀대로 정말 멋진 어머님이십니다...짱이예요...^^
    앞으로는 며느님과 평생친구처럼 멋진 고부사이가 될것 같은 예감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퍼집니다...^^

  • 5. ...
    '05.12.22 12:28 PM (211.104.xxx.180)

    진짜 멋진 분이네요..
    저희 시어머니랑 바꾸었음 좋겠지만.. 흑흑..

  • 6. m.m
    '05.12.22 12:38 PM (221.143.xxx.198)

    화나요...
    전체1등할정도면 엄청난 수재일텐데.....

  • 7.
    '05.12.22 4:26 PM (211.210.xxx.192)

    이런 멋진 시어머니를 두신 님,너무 부러워요.
    내게 없는 건 안 바래야하지만......

    님도 청출어람이라고
    훗날 님의 며느님도 여기에 우리 시어머니 멋지다고
    꼭 그런 글 남길거예요.

  • 8. 감동
    '05.12.23 1:47 AM (211.107.xxx.88)

    시어머님도 시어머님이시지만 님의 따뜻한 마음씨도
    너무 감동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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