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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성적순은 아니듯이...

익명 조회수 : 1,591
작성일 : 2005-03-06 21:00:19
딸아이가 공부를 안해서 속상해 하시는 부모님 글을 읽고...
그리고 많은 분들이 자녀들의 성적이 좋지 못하다고 속상해 하시는 걸 보고...

저희 오누이 이야기를 적을께요.
저희 오누이는 공부로는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 드린 적이 없어요.

오빠는 흔히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다는 대학을 졸업하고 이름 있는 신문사의 기자가 되었구요.
저도 같은 대학 사범대를 가서 교사가 되었어요.

중고등학교 다닐 때 오빠는 전교 1,2 등을 다투었고,
저도 전교 10등 이내를 벗어난 적이 없어요.

우리 부모님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둔 덕분인지,
잘해도 잘했다는 칭찬 한마디 해 주신 적이 없어요.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우리 부모님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거였어요.

우리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생활을 시작했을 때까지만 해도
부모님은 다른 분들에게 자부심이 대단했지요.

그런데....
오빠는 지금 나이 마흔이 다 되어 가도록 미혼인데다가
신경성 피부염이 있어요.
그리고 우울증이 심해서 정신과 상담도 몇 번 받았구요.
오빠의 성격이 직업 특성에 맞질 않습니다.

저는 30대 중반인데 아직 미혼이고,
오빠 만큼은 아니지만, 비관적이고 심각한 성격입니다.
저는 교직에 몇년 있다가 유학 가서 박사 학위를 받았구요.
돌아온지 얼마 되지는 않았고, 시간 강사를 하고 있어요.

엄마가 그러시는데,
너희 둘 다  학교 다닐 때는 몰랐는데
커갈수록 너무 힘든 자식들이라구요.
우리 둘은 이제 자랑이 아니라 문제아인 셈이죠.

이런 연구 결과가 있대요.
학창 시절에 성적이 상위권이었던 여자들은
결혼하고 주부가 되어 행복해 하지 않을 확율이 높다구요.

이전에 같은 학교에 있던 연세 드신 선생님도 그러셨어요.
학교 다닐 때, 이름과 얼굴도 잘 기억이 안 될만큼,
평범한 여학생들이 시집가서 잘 산다구요.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스트레스가 심합니다.
단 한번의 좌절에도 쉽게 무너질 수 있구요.

저는 결혼할 생각도 별로 없지만,
결혼을 하게 되어
딸아이를 낳으면,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기 보다는...

공부 못하더라도
행복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미용사든, 제과제빵인이든, 네일 아티스트가 되건,
하루 하루 삶을 즐겁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IP : 194.80.xxx.8
1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저두 익명
    '05.3.6 9:29 PM (211.37.xxx.190)

    정말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 2. ...
    '05.3.6 9:44 PM (222.234.xxx.111)

    저도 동감입니다.
    저도 원글님 만큼은 아니지만 공부 꽤 괜찮게 했고요
    남편은 우리나라 최고 대학에서 박사학위 받았지만
    아무리 봐도 성적이 행복순으로 늦겨지는 것은 고등학교 다닐때 까지인것 같습니다

    사실 제 주변에는 고등학교때 등수를 전국등수로 따지던 사람들도 있고
    최고대학에서도 최상위로 치는학과를 다니는 사람 많이 봤지만
    그 사람들이 그렇게 특별히 남보다 행복한지 모르겠어요.
    오히려 생각이 많기 때문에 고민도 많고(남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까지도 고민인 경우가 많습니다)
    고등학교때까지 자기가 꽤 괜찮은 줄 알았다(사실 지금도 밖에서는 그렇게 여깁니다만) 세상 살아보니 어디 그럽니까? 또 남들의 평가가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가 자기가 성에 차지않아 괴로워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걸 볼때
    성적과 행복은 전혀 상관없는것 같습니다.
    우리 시조카나 형님은
    객관적으로 제가 봤을때 별로 잘난것이 없는것 같은데도
    (외모-약간 아닌축에 들어갑니다.
    공부-많이 배우지 못했을 뿐더러 남편말 들어봤을때 잘하는 것과도 거리가 멀었던 듯합니다
    재력-중간에서 조금 아래)
    남보다 잘났다 여기며 매우 만족해 하시며 즐겁게 사십니다.

    제 생각에 인생의 행복요건은 건강과 건전한(긍정적인)사고방식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변에 아이가 유치원때부터 가정에 심하게 무리를 줘가며 공부시키는 것 보면 정말 뜯어 말리고십습니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혼자서도 자신의 인생을 헤쳐나갈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도움이 될듯한데 ...

  • 3. 그래요...
    '05.3.6 9:47 PM (221.159.xxx.224)

    저도 참 공감이 갑니다....
    여기 자유게시판은 인생을, 삶을 배우는 또 다른 장이 아닌가~~
    학창시절, 공부 잘해본 기억이 없는 저로서는 이런 글 쓰고싶어도 쓸 수가 없겠지요 .
    저도 기본적인 생각은 글 쓰신 분하고 같지만...한편으론
    지금, 저는 저의 아이들이 진심으로 공부잘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삶의 선택의 폭을 넓혀줄 여지는 될 수 있겠다 싶어서입니다.
    좁은 삶의 선택안에서 좌절하지 말았으면 싶습니다.

  • 4. 추천 이빠이~~^^
    '05.3.6 9:52 PM (221.159.xxx.224)

    이런 글은 추천 팍팍 밀어줘야 합니다.
    공부 잘하셨던 분의 또 다른 이야기도 경청하고 싶습니다.
    뭐~ 공부못하자라는 분위기로 몰고가는 것, 아니라는 것 잘 아시죠.
    공부, 잘하면 좋지요.

  • 5. 전요
    '05.3.6 10:02 PM (211.212.xxx.228)

    저 같이 공부 못해서 학교때 기가 팍팍 죽었던 아이가 행복이 성적순이 아니란걸 조금더 일찍 알았더라면 정말 좋았을듯해요
    전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이 떨어졌습니다
    물론 공부가 더 어려워지는탓도 있지만 가세가 점점 기울면서 살얼음걷듯 불안한 집안분위기도 한몫..
    자존심만 드립다 세지고 나 자신을 자꾸 미워하고 하찮게 생각하구요
    부모님도 역시 공부 못하는 딸에게 가슴에 상처주는말 많이 했구요 그러다 보니 더 비판적이고 꼬여갔죠
    대학도 2년제 갔는데 그것도 굉장히 컴플렉스였어요
    그런걸 극복한게 결혼하고 애 낳고 서른이나 넘어서 이니까 그동안 참 어둡게 살았어요
    결혼하고 살림을 하면서 주변에서 음식도 잘한다, 손재주가 좋다, 인테리어 감각도 있네 (^^::) 등의 칭찬을 많이 받은편이었거든요
    그러면서 공부 못하는 나도, 잘하는게 있구나 이런걸 느끼면서 자신감을 찾았어요
    돌아보니까 그때서야 사람에게 자신감이란게 얼마나 중요한데 난 공부하나로 이렇게 어둡게 살았나 이상하기까지 했죠
    제 주변에서 공부를 잘해 저를 완전 벌레처럼 보이게하던 저희 큰집 언니오빠 모두 일류대학 나왔거든요
    큰엄마의 자랑앞에 늘 울엄마는 기죽었었는데 요즘은 울 엄마가 오히려 기 폅니다 ㅋㅋ
    언니는 마흔인데 미혼이라 애간장이 타구요 오빠는 큰엄마가 그리도 바라던 아들대신 딸 셋을을 낳고 아들손주 문제로 서로 맘이 상해 큰엄마와 왕래를 잘 안하거든요
    작년 명절에 큰엄마가 저보구 그러시데요
    언니 결혼걱정하며 여자팔자 네가 최고다 너 살림 잘하지 착한 신랑에 아들만 쑥쑥 둘을 낳았으니 ...
    이러시며 약간 눈물을 보이시는데 괸시리 죄송하기도 하지만 기분이 좋데요
    요기서 큰집 언니오빠와 감히 함 겨루어라도 보는구나 하구요
    전 제 아이들에게 정말 공부못한다고 상처주지 않을겁니다 저같이 어둡게 살게될까 두려워서요

  • 6. 코스모스
    '05.3.6 10:18 PM (59.186.xxx.5)

    하지만 부모는 늘 자식이 공부를 잘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은 버릴수가 없습니다.
    항상 저의 딸이 안스럽고 힘들겠구나 하면서도 가끔식 마음에 상처를 주곤 합니다
    저의 딸은 공부 못하는 죄아닌 죄로 무엇하나 떳떳하게 요구하지를 못합니다
    스스로가 위축되는 듯 싶습니다.

  • 7. ...
    '05.3.6 10:23 PM (194.80.xxx.10)

    그게 우리나라 사회 분위기가 그래서 그렇지요.
    그런 생각에서 자유롭고 싶어도 힘들지요
    우리 조상들이 생각하는 자식의 최고의 도리는 입신양명하는 것이었으니까요.
    수백년 내려온 전통이 바뀌기가 싶겠습니까.
    이웃나라 일본처럼 명문 대학 나와서 국수 가게를 하는 부모님의 가업을 잇는 것이 당연시되는
    전통이 있었다면, 아마 지금쯤 우리나라가 훨씬 더 잘 살았을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저는 가끔...자식이 공부 잘하시기를 바라는 부모님들은
    학교 다닐때 과연 얼마나 공부를 잘했을까...가 궁금해요.
    자신이 그다지 잘 하지 않았다면, 애들에게 공부 잘하라고 강요할 입장이 아니질 않나...
    아님, 못한 것이 한이 맺혀 내 자식 만큼은 잘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강한 것이겠지요.

  • 8. 김혜경
    '05.3.6 11:31 PM (211.178.xxx.52)

    제가 아는 사람...저보다 나이가 아래인 사람인데...우리나라의 유명한 사립대학에서 경제학박사 까지 받았는데, 몇년전 뇌출혈이 일어났어요.
    다행히 몸은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언어의 구조가 깨져서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게 됐어요. 최근 매일 등산으로 소일하다가...몇주전 북한산에서 실족사했어요.실종후 이틀이 지나서 간신히 시신 수습했구요.
    그 사람 일생동안 공부 하지 않은 해가 몇년 되지 않을거에요. 맨날 공부만 한 사람인데. 그렇게 공부한 거 제대로 써먹어보지도 못하고 갔습니다.
    그 소식 전해듣고 어찌나 마음이 좋지 않던지...


    K박사님의 명복을 늦게나마 머리숙여 빕니다. 하늘나라에서는 공부하지말고, 노세요...ㅠㅠ

  • 9. 저는요
    '05.3.7 12:12 AM (220.72.xxx.23)

    고등학교 때도 공부 잘 했고, 대학 가서도 4년 내내 장학금 받으며 기특한 딸 소리 들었지요.
    하지만 공부 잘 한다 소리에 더 잘 하겠다는 마음에 매일 책상에만 앉아 책에만 매달렸고
    사회에 나온 지금은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법도, 받아들이고 수용할 줄도 몰라요.
    그래서 혼자 연구만 하는 그런 직업을 가져야 맘 편히 남은 인생 살것 같습니다.

    게다가 더 아쉬운 것은 말이죠, 제가 했던 공부는 진정한 학문이 아니라(깊이도 없었는데 당연하겠죠)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을 뿐이라는 겁니다.
    그런 교육 과정을 20년 정도 거쳐오면서 껍데기만 남은듯한 공허한 자신에게
    앞으로는 정말 알차고 참된 지식을 쌓자고 다독여 봅니다.

  • 10. 완전공감
    '05.3.7 2:42 AM (81.67.xxx.41)

    원글님, 꼭 제 얘기같네요.
    전 한층 더 나가 공부뿐만 아니라 외모도 집안도 최고였어요. (내 입으로 말하니까 좀 웃기네요)
    제 친구들이 신이 너무 불공평하다고 했죠. 전 모든걸 갖추었었거든요.
    그러나 지금은...

    저 굉장히 힘든 삶을 살고 있어요. 이런저런 디테일로는 말씀드리기 싫고 (아직도 알량한 자존심이 남아서일까요?) 다만 제 처지가 누가 봐도 강한 연민을 느낄 수 밖에 없다고 보시면 돼요.
    20년전의 제 모습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보장받은 것 같았었지만 오늘날의 결과는...
    제가 대한민국에서 약 4천 3백만번째로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ㅠㅠ

  • 11. 나도익명
    '05.3.7 2:51 AM (24.157.xxx.5)

    좀 핀트가 안맞는 답글같지만요,
    아직 인생 다 산거 아니잖아요.
    얼른 원글님이 더 행복해지시길 아니 지금 님의 모습에서도 행복을 찾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시길 바랍니다.

  • 12. 저도 동감
    '05.3.7 6:06 AM (195.244.xxx.97)

    제가 하고 싶었던 말씀이네요! 저도 참 꽤 잘 난 축에 속했었지요. 적어도 공부에 있어서는요. 그런데 사회에 나와서 일을 하면서 그 ambition이 라는게 너무 크다 보니 조금만 충족이 덜 되도 그 자괴감이 이루 말할 수 없는거예요. 남들은 그냥 지나칠 일에 혼자서 스트레스 엄청 받고 우울증까지. 또 그러면서 이 사회에 잘난 사람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고, 또 그걸 받아들인다 해도 자존심이 상해서 항상 사는게 스트레스 랍니다. 차라리 학창 시절 공부 그냥 중간 쯤 했으면 세상 사는데 행복지수가 훨씬 더 크지 않을까 싶어요..지금도 부모님께서 잘난 우리 딸이라 생각해 뭐든 중간 정도 가게는 하는게 너무 힘들어요. 거짓말에 빚에...스트레스 이만저만 아닙니다..흑

  • 13. 리모콘
    '05.3.7 8:41 AM (211.36.xxx.14)

    원글님.......공부 못했던 사람도 썩 신나는 인생은 아녜요..(- -;)
    가끔 책을 읽고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 휘발성 메모리를 가지니 어찌나
    갑갑한지....
    공부를 못했거나 잘했거나 인생 유쾌하게 사는 건 마음에 달린 것 같아요..
    원글님도 기분 좋은 일을 많이 만들어서 재미있게 사시길 바래요..
    제가 우울할 때 기분 전환에 많이 도움이 되었던 건 '만화'였습니다..
    서른 넘어 만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여러 삶들이 보였어요...
    한번 보시길.....오늘도 즐거운 하루!

  • 14. ㅎㅎ
    '05.3.7 9:49 AM (220.118.xxx.222)

    재치만땅 리모컨님...
    휘발성 메모리... ㅎㅎ 저도 그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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