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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게 되려나봐요.

나결혼하나봐ㅠㅠ 조회수 : 1,633
작성일 : 2005-02-14 17:27:39
쓰고보니 괜히 길기만 하네요.. 그냥 남얘기려니, 하고 재미로 읽어주세요. ^^

남자친구가 결혼을 하자고, 하여 구정이 지나 어제 제손에 선물을 들려보냈습니다. 찾아뵙고 인사하기에는 좀 타이밍이 거시기한 사정이 있어서..

남친이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인줄 알았는데, 어젠 쫌 기특하데요.. 제 남친, 딱봐도 어리버리 마냥 순진하게 생겼거든요.

어제 저녁때 데이트약속이 있었어요. 만나자마자 갑자기 실실 웃으며 선물 사야지.. 하더니 백화점에 가자더이다. 만난 이후로 명절을 몇번이나 지났는데, 한번도 안찾아가뵈었다고, 자기 집에서도 가보라고, 욕하실거라고 한다고 하면서..

굴비세트를 할까 술을 할까 버섯을 할까 홍삼을 할까 이것저것 물으며 거의 30분을 서성대더군요.
저희 아버지가 외교관을 오래 하셨기에, 좋은 술은 많이 드셨을 거라며 술 앞에서 서성대다가, 홍삼은 드시냐며 또 그 앞에서 두리번두리번.. 실용적인것으로는 굴비인데, 하며 또 굴비는 어디서 파는지 두리번두리번..

그 모습도 어찌나 귀여운지.. 본심은 아니겠지만 우리집에 잘하는 티라도 내는게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가 저희 집에 뭘 사드리든 저에겐 다 빚이겠지만..
저는 속으로 '굴비해야지 굴비' 외쳤으나 노골적으로는 티를 못내겠더라구요..
그냥, '"술은 건강에 별로고 비싸기만 하잖아// 홍삼같은건 잘 안드셔.. 예산에 맞춰서 자연산 버섯이나 갈비세트 같이 실용적인거 좀 봐바요.. 버섯은 많이 드시거든.." 하며 같이 서성댔습니다.

구정 연휴가 지나서 그런지 백화점의 굴비코너 아주머니가 혈안이 되어 저희들을 잡으시더군요..
결국 30만원짜리 굴비세트, 양면보자기에 노리개포장 곁들여 22만원에 사더이다. 큭큭. 때깔이 좋던데요..
핸드폰을 세탁기에 돌려 고장내도 고쳐쓰는 짠돌이가 웬 굴비, 짠돌이인걸 알고 있었던지라 더 고맙더라구요.
판매원 아주머니가 저에게 자꾸 동의를 구하고 부추기길래, 전 옆에서 '전 몰라요.. 결제하는 사람이 결정해야죠..' 하며 남친 쳐다보며 웃기만 했는데 남친은 흥정 잘 하데요..
원래 여자 판매원들이 남자에게 좀 관대하기도 하거니와,
워낙에 그거 못팔면 백화점도 손해니까 굴비가 좀 크다해도 22만원이면 백화점에서는 많이 남기긴 하는거죠..
그래도 흥정하는 모습이 기특하더라구요. ^^

(결혼해서 가격흥정 잘못하면 잔소리 엄청 들을거 같아요. 히히. 그럼 전 '그래.. 난 못하겠다, 당신이 해.. 재주 좋잖아~' 해야겠어요. ^^)

남친은 저보다 능력있지만 집은 저희보다 좀 기우는.. 그런 결혼인데.. 연애기간은 1년 좀 넘었구요..
그래서 전세아파트는 저희쪽에서 장만하려 했는데, 남친이 모아놓은 삼천오백이랑 남친집에서 사천정도 보태주시겠다고 하셨대요. 거기다가 제 돈 오천에서 좀 헐어서 같이 작은 전세아파트를 구하잡니다. 남는 돈으로는 혼수 간단히 하고, 천만원만 대출내서 드레스랑 잡비랑 신행 하자고 하네요.
저희집 도움 안받고 싶어하는 거 같아요. 도움 줄 수 있을 거 같다고 하니까 또 실실 웃으면서 아 그럼 좋지~ 하는데, 실제로는 자기 머릿속 예산에 저희 집 도움은 포함 안되어있는거 같네요.. 저희 부모님이 강경하게 도움주겠다고 하지않는한은 안 받고 싶어하는 거 같아요. 아마 저희집에서 전세아파트를 해줄거라는 걸 예상했을 텐데.
사실 잘사는 처가 덕 안보고 간섭도 받기싫다는 심뽀겠지만, 그래도 마냥 기대려고 하는 것보다는 고맙다고 생각할래요.

나중에 남친집에 인사갈때도 과일바구니보다는 고기나 먹거리 등 다른 실용적인 것을 해가야 할듯하여 걱정입니다.. 예단도 넉넉히 해야할텐데, 저희 집에서는 걱정말라고 하시지만 나중에 어떻게 될지 또 모르잖아요? 아직 양가어른들의 속내가 나온 시점이 아니기에.

어제 굴비세트는 굴비를 싼 보자기랑 노리개도 엄청 이뻤거든요.
남친은 이번에 돈좀 쓰고 실속과 외형 다 챙겼는데.. 저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선물로는 자연산 송이버섯 좋을 거 같은데.. 어떤가요?

솔직히 결혼생활이 쉬울 거 같지는 않아요.
나죽었다, 생각하고 살아야 할 거 같거든요. 종손은 아니지만 장남이고 해서.. 남친도 집안 덕 보는 남자는 아니구요.
죽었다, 생각하고 살면 살아지겠죠?

저희 집에서도 둘이 얘길 해서 확신이 들면 남친 오라고 하고, 남친도 찾아뵙겠다고 하고, 양가 어머님께서 (따로따로) 궁합도 보셨다고 하네요.

이 남자와 만나자마자 결혼할 거 같은 생각 들었지만, 이상해요, 기분이.
이제 모든게 새로 시작이구나 싶어요. 그 와중에 얼마나 힘든일이 또 많을지..

그냥 82에 털어놓고 싶었어요. 친한 친구 딱 1명만 대강의 사정을 알고 있고요..
그나저나 이제부터 모든게 시작이네요. 잘 할 수 있어야 할텐데.. 나이만 먹고 할줄 아는건 없고.. 들뜨기도 하지만 그저 마음이 복잡합니다. ^^
IP : 61.32.xxx.33
1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IamChris
    '05.2.14 5:33 PM (163.152.xxx.46)

    ㅋㅋㅋ 친한 친구 1명에게만 털어놓으셨다더니... 이제 2만명 82회원에게 털어놨으니
    뉘댁 규수인지 날은 잡아놨구려.

  • 2. Nineyard
    '05.2.14 5:33 PM (221.163.xxx.13)

    사랑하는 사람과 시작할 수 있는거..축복인거 같아요~부럽네요~ 그 착한 예비신랑과 행복하세요~

  • 3. 초록달
    '05.2.14 5:35 PM (221.143.xxx.85)

    몇년전 제 생각 나네요
    남친분도 제 남편과 비슷한 면이 좀 있구......
    결혼생활은 물론 양가 집안도 중요하지만 둘이서 잘 맞고 진심으로 사랑하면 웃을일이 훨 많더라구요
    근데 저의 남편도 워낙 소탈하고 욕심 없구 남 덕보자는 스탈은 아니엇지만 예단문제에 있어서는
    좀 의견다툼이 있었어요
    집안에 자랑하고 싶었는지 좀 많이 받구 싶어하더라구요
    고스란히 다 돌아와서 얼마햇는지 별 의미도 없긴 했지만 .....

  • 4. 소금별
    '05.2.14 5:50 PM (211.203.xxx.165)

    너무 어려워말구요... 편하게.. 준비하시고.. 편하게 다가서세요..

    님 이야기 들어보니.. 현명하게 잘 대처하며 사랑받구 사시겠어요...

  • 5. 나결혼하나봐ㅠㅠ
    '05.2.14 6:09 PM (61.32.xxx.33)

    어.. 축복 들을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놀랐어요.
    다들 너무 고맙습니다. ^^

    Nineyard 님, 별로 안착해요.. 자기 맘이 불편한게 싫으니까 굴비씩이나 샀던 거죠..
    자기 생각에, 저희 집 수준에 맞추려니 그랬던 겁니다.
    그래도 그게 다 제 빚이죠, 뭐.

    이제부터 본격적인 한국식 주고받기가 시작이네요. ㅠㅠ
    결혼하면, 맞벌이하고 아이키우고 돈모으고 집장만하고 살림하고, 전 이제 죽었스요.. ㅠㅠ

  • 6. 겨란
    '05.2.14 6:32 PM (222.110.xxx.155)

    이리 행복한 사연을 겸손하게 쓰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인데 히히
    결혼 축하합니다
    저도 그렇게 괜찮은 남자를 만났더라면..........
    그래도 결혼은 안했을거 같아요 하하하
    팔랑팔랑~

  • 7. apple
    '05.2.14 8:47 PM (211.205.xxx.248)

    남자친구분이 참 이쁜짓(?)하셨네요...^^
    결혼준비 잘하세요..^^

  • 8. 마당
    '05.2.14 9:44 PM (211.215.xxx.174)

    전 처음 남친집에 인사갈때.. 고기..타파통에 (요즘 말하는 락앤락같은) 제일 비싼놈으로 곱게 담아달라고 해서.. (그 통도 싸가지고 가서..-_-) 보자기에 싸서 들고 갔던 기억이 나네요.
    그땐 정말 모든지 지금보다는 안 좋았지요. 정성이 깃든 선물이라면 어른들이 모두 좋아하실거 같아요.

  • 9. 여진이 아빠
    '05.2.14 10:08 PM (59.0.xxx.207)

    부러버라... 나도 그런적이 있어떤가 마눌 기억에 그런 먼가가 남아 있어야 할텐데..

  • 10. 준원맘
    '05.2.14 10:17 PM (218.38.xxx.107)

    참지혜로우신 분인것 같네요
    결혼해서 제일 욱해도 하지 말아야하는 말이 있는거 같아요
    절대 건드리지는 말아야 할 부분이죠,,

    이미 그것을 간파하고 계신것 같아요..
    행복하고 이쁜 가정^^되시길 바래요

  • 11. Harmony
    '05.2.15 2:11 AM (210.106.xxx.141)

    하하~축하드려요.
    두분 다 이쁘네요.
    처가가 잘 살면 덕 보려 하는 남자 많은데 그래도 혼자 서려 애쓰니 너무 이뻐요.
    깨가 서말이겠어요.
    남자가 그정도면 충분히 결혼해서 잘 사시겠어요.
    행복한 결혼 준비 하세요~

  • 12. 축하드려요
    '05.2.15 11:02 AM (220.83.xxx.177)

    말씀하시는게 님께서 마음이 예쁘신 것 같아요...
    그리고 현명하신 것 같고...
    축하드려요~ 결혼해서도 지금과 같은 마음... 변치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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