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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일기] - 원서.

임소라 조회수 : 881
작성일 : 2004-12-03 21:03:08

혹시 청소년 드라마 '반올림' 보시는 분~~ 계세요?
어른들은 그런 거 잘 안보실까요?  애들은 그 드라마 얘길 많이 하던데...
개인적으론 별로에요. 청소년들이, 특히 여학생들이라고 365일 남자친구 얘기에 연예인 얘기 친구 뒷담화 이런거만 하는 게 아닌데 그런 쪽으로 상당히 많이 치중된 거 같구... 캐릭터들도 마음에 와닿는 구석이 없거든요. 옛날에 했던 '학교' 시리즈가 훨씬 더 좋았는데^^

자유게시판이니까, 그리고 주로 엄마들이시니까 한번쯤 이런 글 써보고 싶었어요.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교과서와 다른 생활들...
학생의 입장이자 저 혼자의 입장으로써. 물론 제가 모든 청소년들을 대변할 수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저의 생각이니까요. 그렇지만 아마 어느정도 청소년들은 한번쯤 해봤을 생각이구, 겪었을 일들입니다. 청소년의 부모님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크나큰 꿈을 꾼거죠. 제가.

일기 쓰는 형식의 수필이랄까요? 글을 아주 잘 쓰는 편이 아니라서. 그래서 독백식, 다시말해 존대가 안 붙습니다. 이해해주세요~ 성장일기라니, 거창해서 부담스럽긴 한데... ^^
  
++++++++++++++++++++++++++++++++++++++++++++++++++++++++++++++++++++++++++++++++++++++++++++++

원서를 썼다.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일반계와 실업계로 나뉘어서 원서를 따로 받고 따로 썼다. 졸업고사 보기 전과 후, 지금까지 실업계 진학을 해야만 하는 애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또 많이 봤는데 정작 원서를 쓰기 시작하니까 기분이 좀 그랬다. 내 손으로 선택하는 인생에 대한 설레임과 두려움이랄까.. 막연함이랄까...

난 내신이 인문계 가기에는 안정권이라 물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인문계지만 60% 왔다갔다 하는 애들은 인문계와 실업계 중 무리를 해서라도 인문계를 가려고 한다. 솔직히 공고, 상고 다닌다고 하면 잘 모르는 어른들은 무조건 양아치 취급이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폼도 안 잡히니까 그런 거 같은데.. 선생님들은 그런 애들을 어떻게 해서든 실업계로 보내려고 한다. 인문계에 가봤자 죽어라 노력해도 내신 좋은 놈들 발판밖엔 못 해준다는 거다. 그런데도 애들은 인문계를 가려고 했다. 오늘 원서쓸 땐 거의 대부분이 실업계 원서를 썼지만.

선생님들이 보기에 애들은 미련스럽게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 인문계를 고집하고 있으니까 설득해서 실업계를 보내려고 하는데, 애들이 그러는 거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생각나진 않겠지만 그런거다. 뒤쳐지는 것. 처음으로 인생이 갈리고, 선택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데 그 누가 하향지원하고 싶겠나. 그게 자기 자신 때문이라면 그 기분... 정말 뭐같을 거다. 나중에 우연히 교복입고라도 만나게 되면은 뭐팔릴까봐서. 비참할까봐서... 나중엔 슬퍼지지 않을까.

인문계와 실업계.
하나는 공부 좀 하는 놈이 가고 하나는 대다수 공부 못하는 놈이 간다. 우리나라 고등학교는 한종류가 더 있었지.. 특목고. 특목고 가는 녀석들은 그만큼의 노력을 했다. 그래서 외고 가는 애들을 정말 부러워한다. 근데 과고가는 애들은 사람으로 안 보인다. 민사고? 거기 몇 명이나 가는가. 그것들은 정말 인간이 아닌 것이다. 괴물 취급 하냐고? 진짜,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인생이 갈리는 건데, 미래가 어찌되었든 지금 현재는 인생이 갈리는 건데 기분이 좋을리 없다.
제일 속상한 게 누군지 어른들은 잘 알지 못한다. 시험성적 떨어지고 실업계 원서 어쩔 수 없이 쓰면서 피눈물 흘리는 거 우리다. 공부 잘하는 녀석들 보면서 자존심 뭉개지는 게 우리고 힘든 것도 우리다. 무슨 일인가를 하도록 채찍질 하는 것도 실은 우리들이고 달래는 것도 우리들이다. 지금이 중요한 순간이라는 거 진짜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속상하고, 더 화나고 그런 거다.

인문계에 원서를 넣는다고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다. 더 망설여지고 더 고민된다. 실업곈 가서 자격증 열심히 따고 그러면 취업 할 수라도 있지만 인문계는 대학 못가면 그걸로 끝이다. 3년을 전장에 나간 거 처럼 미친듯 공부해야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내신으로 대학가는 우리 시대 때문에 더 그런 거 같다. 선생님들이 실업계에 대해 예찬하는 말을 들으면 하루에도 수십번씩 헷갈린다. 정말 인문계가서 승부를 낼 수 있는 건지. 좋은 대학 갈 수 있을지... 수능날이 되면 심장마비로 사망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오늘 실업계 쓰는 애들 얼굴을 보니까 되게 자존심 상해 하는 거 같았다. 평소 할 일도 안하고 뺀질거리는 게 얄미워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애들인데도 어딘지 그 마음이 이해되었다. 실업계를 가는 애들의 전부가 가기 싫은 걸 억지로 가는 건 아니고 꿈이 있어서 가는 애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꿈을 확실히 알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가는 거라면은... 인생에서 처음으로 맛보는 좌절이다. 어느 학교로 가든 열심히 하면 된다고 하지만은 좌절을 하지 않는 애들이 과연 있을까?

고등학교 입학까진 3개월정도.
선생님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기를 이 기간이 제일 중요하다고 한다. 지금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 고 1이 되어 공부를 다시 하게 되면 난 우리 모두가 두번째 후회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문계를 가는 애들이든 실업계를 가는 애들이든 원서를 쓰면서 누구나 후회를 했을거니까. 중학교 3년을, 어쩌면 초등학교 때까지도. 경험으론 그 후회가 정말 아팠다. 눈물이 날 정도로. 시간이 지나면은 후회의 깊이가 더 깊어지고 크기도 커질 것 같다. 그걸 안다.
지금이 지나고 나면 지금이 어떻게 기억될까... 부디 좋게 기억되었으면 싶다.




주사위가 던져졌다.
가장 작은 수가 나올수도, 가장 큰 수가 나올수도 있다.
어떤 수가 좋은 지는 하고 있는 게임에 따라 다르다.
홀짝이면 홀수나 짝수가 좋을 것이고, 숫자 맞추기라면 돈을 건 숫자가, 말판을 놓는 게임이라면 수가 클수록 좋을 것이다.    
내 주사위가 큰수인지 작은 수인지 모른다.
그치만 아직 우리가 가진 주사위는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
얼마든지 더 흔들고 뒤집어서 큰 수가 나오게 할 수 있다. 게다가 우린 어떤 게임을 할지 정하지도 않았지않는가. 내 주사위엔 가능성이 있다.  


IP : 218.238.xxx.68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127836
    '04.12.3 11:09 PM (194.80.xxx.10)

    소라양 말데로 주사위는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않았어요.
    요즘 공고에서도 여학생을 받거든요. 졸업하자 마자 대기업에 취직하는 여학생들도 많아요.
    물론 그런 학생들은 공부는 잘하는데 집안이 너무 어렵다거나 해서 실업계에 진학한 경우가 대부분이죠.
    상고를 가서 은행에 취직했다가, 돈을 벌어 4년제 대학을 졸업하는 여학생들도 많아요.
    그런 예가 일반적이지는 않아서 이런 말로 학생들을 위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요.

    사실...행복이 성적순은 아니지만...

    우리나라가 고학력을 가지지 않아도, 자기 분야에서 일을 제대로 하기만 하면 누구나 평균 수준의 삶이 보장된다면, 이런 희비는 점차 사라지겠죠. .

    친구들에 대한 따스한 시각을 가진 소라양의 마음이 애틋하게 느껴집니다.

  • 2. 김혜경
    '04.12.3 11:17 PM (211.201.xxx.27)

    한사람의 장래가 내신 몇점으로 바뀐다고 생각하니..참 가슴이 서늘합니다...
    어른으로서 해줄 것도 없고, 해줄 말도 없고...

  • 3. 찐빵만세
    '04.12.4 12:08 AM (220.73.xxx.193)

    '주사위가 던져졌다' 이부분부터.. 정말 표현력이 좋으십니다. 소라님 말씀 백번 맞습니다. 전 솔직히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고, 다른 사람을 돌아볼 만큼 생각이 넓지 못해서 고등학교갈때 그런 생각 별로 못해봤습니다만..30대중반이 된 지금 이런 저런 사람들을 보니..기회는 많더라구요. 주사위는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주사위를 던질 기회도 이제 시작인거죠..저는 '간절히 원하는것은 이룰 수 있다'라는 말을 믿습니다. 인생에서 간절히 원하는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세요..

  • 4. 겨니
    '04.12.4 1:26 AM (218.53.xxx.173)

    인생은 길지만...아주 길지만...그렇게 길지만도 않은것이 인생임을 알기에 한순간이라도 헛되게 보내게
    하지 않도록 뒤에서 애태우는 것이 부모와 어른의 마음입니다...다만....자신들도 뻔히 겪었던 일이었음에도
    늙을수록 건망증(?)이 심해져서리...그 시절의 세세한 내면들을 그만 잊어버려서...결국은 닥달만을 할수밖에요...ㅡㅡ;;;;
    저도 아이를 낳고 내 딸이 가장 힘들게 느낄 중,고생 6년간을 같이 보내기 위해 그 시절의 제 모습을 기억
    해내려고 무지하게 노력중입니다...조금이라도 이해하고 같이 보내주고 싶어서요...
    하지만, 인생을 쬐금 더 살다보니...지나가다 교복 입은 여학생들만 봐도 부러운건 왜일까요...?
    "저땐 아무걱정 없이 학교만 다니면 됐었는데..."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건 왜일까요...?
    인생은.....정말 길고, 던져진 주사위의 숫자는 언제 밝혀지는건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답니다...
    소라님...힘드시겠지만...정말 힘드시겠지만....잎으로 3년...길지 않습니다...후회없이 보내세요...

  • 5. 아임오케이
    '04.12.4 1:29 AM (222.99.xxx.119)

    저도 중학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할때 실업계와 인문계로 나누면서 그때 벌써 장래를 정하는 결정을 한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리고 그게 이렇게 이른 나이에 정해야 하는것이 좀 황당했지요.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실업계,인문계.. 그건 전체 인생으로 보면 작은 결정에 불과했던거 같아요.
    그 이후에, 더 중대하고도 결정하기 어려웠던 갈림길이 얼마나 더 많았었는데요.

  • 6. 헤스티아
    '04.12.4 8:18 AM (221.147.xxx.84)

    저는 중3 이맘때가 되기 전까지는 . '원서' =영어책, 인줄 알고, 왜 다들, 학교 입학하는데, 영어책을 내야 한다고 난리들이냐... 정말 이상하게 생각했다지요..-.-;;;;; 잊혀진 '원서'의 추억이구먼요..

    저희집도, 늦깍이로 뭘 해 보려는 사람이 있어 어제 원서 냈답니다.... 임소라양 홧팅~~

  • 7. Ellie
    '04.12.4 9:44 AM (24.162.xxx.174)

    얼마 안살아 봤지만... 사람일은 정말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것 같아요. 기억을 더듬어 보건데, 저도 소라님 나이때, 인생 다 끝나느냐, 아니면 내인생이 짱짱해 지느냐... 이런줄 알았는데, 살다 보니깐, 별일 별별일 다 있더라구요. 그리고 의외의 기회도 찾아오구요.

    요즘 많이 심란하죠? 저도 지금 결정해야 할일이 있어서 많이 심란 하답니다. ^^;;

    저는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할려구요, 점이 모여서 선이되고 선이 모여서 면이되고, 공간을 이루는 것처럼... 순간의 마음가짐이 훗날 제 인생 평가가 되겠죠.

    소라님도 저도! 아자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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