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하의 창의력 에세이'라는 칼럼이 있는데 거기서 읽고 퍼왔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16세대가 사는 빌라다. 우리 빌라의 501호와 502호는 사이가 아주 나쁘다. 두 집의 사이가 나빠지기 시작한 건 입주가 끝나고 첫 반상회를 할 때서부터 였다.
건물을 지은 회사가 분양을 끝내고 철수했다. 그 동안 건물 관리를 신경 쓰지 않았던 입주자들이 첫 반상회를 하기로 했다. 사실, 반상회는 건물에서 사용하는 공용 전기요금을 내지 않아서 전기 요금을 내라는 독촉장을 받으면서 건물의 관리 책임을 공동으로 지자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501호 아저씨가 반장을 맡았다. 가장 먼저 입주해서 건축회사와도 잘 알고 해서 501호 아저씨가 반장으로 봉사하기로 했다. 당시 가장 급한 문제는 전기요금을 내는 거였다. 큰 돈은 아니지만, 전기요금을 내지 않으면 당장 공용으로 쓰는 모든 전기의 공급을 중단한다는 통보를 받은 상태였다. 전기가 끊기면 출입문도 열리지 않아서 문을 열어놓고 살아야 하는 곤란한 문제가 발생할 상황이었다.
501호 아저씨는 나름대로 일을 처리하며 각 집에서 일단 5,000원을 내서 전기요금부터 해결하고 관리인을 두기로 했다. 아저씨는 집집마다 다니면서 5,000원을 걷었다. 502호와의 갈등은 그때 일어났다.
501호 아저씨가 집집마다 5,000원을 걷으면서 502호에도 갔다. 502호는 가장 늦게 입주해서 이사한지 1주일 정도 지났을 때 였다. 501호 아저씨는 502호가 이사한지 얼마 안 돼서 전기를 사용한 양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공용으로 전기를 사용하니까 5,000원은 아니더라도 1,000원은 내야 한다며 전기요금 1,000원을 502호 아줌마에게 내라고 했다.
502호 아줌마는 이사한지 1주일도 안됐는데, 무슨 전기 요금이냐며 501호 아저씨에게 문도 열지 않고 이야기했다. 501호 아저씨는 몇 번씩 초인종을 누르며 이야기 했지만, 아줌마는 절대 1,000원도 줄 수 없다며 문을 닫아버렸다.
첫 반상회가 열렸다. 사람들은 인사를 하며 이웃사촌이라며 사이 좋게 지내자고 했다. 501호 아저씨는 사람들에게 반장으로 봉사를 하겠으니, 협조를 해달라며 그간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특히, 그 자리에 없는 502호 아줌마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어떻게 1,000원을 낼 수 없다고 문도 안 열어줄 수가 있냐며 불만의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1,000원에서 시작한 말은 502호 아줌마가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인상이 나쁘고 성격까지 괴팍하다는 말로 이어졌다. 빌라와 같은 공용주택에 살 때에는 옆집에 누가 사느냐도 매우 중요하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그 다음달에는 2번째 반상회가 열렸다. 2번째 반상회에는 건물의 하자보수를 건축회사에 의뢰하는 안건으로 갑자기 소집됐다. 우리 빌라에 건축회사를 운영하시는 사장님이 계신데, 하자보수 기간이 그렇게 넉넉한 것이 아니라며 급하게 사람들을 모았다. 예정에 없었던 반상회가 열렸고, 501호의 반장집은 주말에 시골에 갈 일이 있어서 참석을 못했다.
그날은 502호의 아줌마가 반상회에 나왔다. 502호 아줌마는 지방에 살다가 서울로 이사 왔다고 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아이들의 공부도 걱정되고, 아저씨와 음식점을 하시는데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서울로 음식점을 진출한 것도 많이 걱정되신다고 말하시며 매우 수줍게 이야기했다. 수줍게 이야기하셨지만, 친화력이 있고 상냥하신 분이었다.
그때, 어떤 아줌마가 502호 아줌마에게 전기요금 1,000원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502호 아줌마는 1,000원에 관한 이야기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니까 생각이 나셨다는 듯 이야기 했다.
<제가 처음 이사 온지 1주일도 안 됐을 때였어요. 누가 초인종을 누르더니 다짜고짜로 5,000원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왜 5,000원을 달라고 그러느냐고 그러니까, 전기요금이라고 하더라고요. 서울에서는 전기 요금을 직접 사람이 다니면서 받아요? 그렇지 않잖아요.
그래서 전 이사 온 지도 얼마 안됐는데, 무슨 전기 요금이냐고 했죠. 그랬더니 이번에는 1,000원을 달라고 하는 거에요. 전 절대 줄 수 없다고 했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왜 함부로 문을 열어주고 돈 1,000원이라도 왜 그냥 줘요>
그날 반상회에서는 501호 아저씨가 너무 어눌하고 허술하다며 사람들이 입을 모았다. 어리숙하다고 시작한 말은 사람이 쪼잔하고 일의 진행도 제대로 못한다는 걸로 이어졌다. 아무튼, 그 자리에 없었던 501호 아저씨는 아주 무능한 반장이 되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갈등은 앞의 이야기와 같이 일어난다. 경우에 따라서는 특별하게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갈등은 상황이 문제를 만들거나 더 크게 키운다. 그래서 사람은 약간은 여유를 갖고 상대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 사이의 갈등은 내가 상대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갈등을 겪는 사람들은 대부분 상대를 악당으로 보기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악당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거다.
분명 악당은 존재할 거다. 하지만, 나와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이 진짜 악당일까 하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어리숙하고 약간은 허영이 있고 때로는 공주나 왕자처럼 특권의식을 갖고 있을 수는 있어도 그렇다고 그가 극악무도한 악당은 아니지 않은가?
상황에 따라서, 내가 상대를 악당으로 보면 상대는 악당이 된다. 하지만, 내가 상대를 정말 믿을 수 있는 친구로 본다면 상대는 나를 먼저 배신하지는 않을 거다. 때로는 상황이 그로 하여금 나를 배신하도록 만들 수는 있을 거다. 그때는 상황을 대처해야 한다. 그를 악당으로 먼저 보기 전에 말이다.
상대를 보는 시각은 매우 중요하다. 가령, 과잉보호를 하는 부모를 보자. 자기 자식의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두 챙겨주는 부모는 자식을 어떻게 보는 걸까?
그런 부모는 자식이 혼자서는 모든 일을 알아서 잘 할 것이라고 보지 않고 있는 거다. 과잉보호를 하는 사람들은 자식이 혼자서는 제대로 무엇인가를 하지 못할 걸로 보게 된다. 부모의 의도가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과잉보호를 하는 이면에는 그런 것이 깔려있다.
예를 들면,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하지 못했던 부모가 아이들에게 공부할 것을 강요하고 공부에 강한 집착을 나타낸다. 공부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한다. 부모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아이가 혼자 가만 놔두면 스스로 공부를 잘할 것이란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대를 못 받는 아이는 결국 기대에 못 미치는 게 되는 거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사랑을 이렇게 나쁘게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부모는 자신의 사랑의 표현이 자식에게 어떻게 해가 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과잉보호를 받는 아이는 그렇게 과잉보호를 받지 않으면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가 된다. 과잉보호를 하는 부모는 은연중에 자식을 열등하게 본다.
이런 부모의 시각은 또 모르는 중에 자식에게 전해져 아이는 스스로를 부모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처음부터 열등하지 않았던 아이도 부모의 과잉보호를 받으면서 열등한 아이라고 지속적으로 취급을 받게 되면 뛰어난 인간으로 성장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상대는 내가 인식하는 대로 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악당으로 보는 사람은 나에게 악당이 되고, 내가 친구로 보는 사람은 나에게 친구가 된다.
당신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을 어떻게 보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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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악당이 아니다
공감 조회수 : 935
작성일 : 2004-11-27 16:27:25
IP : 62.142.xxx.35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Rainyday
'04.11.27 5:38 PM (221.163.xxx.188)끄덕끄덕...
2. 일복 많은 마님
'04.11.28 1:25 AM (211.217.xxx.199)나와 내 주위를 한 번 돌아보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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