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첫눈 오는 날에 우리 곁을 떠난...

인우둥 조회수 : 1,358
작성일 : 2004-11-26 23:05:34
가끔 제 이야기에 등장하는 '노랑이'라고도 불리고 '애기'라고도 불리는
아주 작은 강아지가 있어요.
할머니와 함께 산 지는 4-5년 쯤 되었으니 '애기'도 아니고 '강아지'도 아니지만
하도 작은 개라서 그렇게 불러요.
애기는 처음 친척집에서 애완견으로 태어났지만
키울 형편이 안되어 이 시골에 오게 된 개였어요.
잡종이지만 치와와쪽 혈통이 있는지 털이 노랗고 아주 작았어요.
처음엔 자꾸 집 안으로 들어오려고 해서
버릇들이려고 (우리집 개 규칙에 맞게 ^^ )
할머니가 엄하게 키우셨어요.
그래도 여느 똥개들하고는 달리 붙임성이 좋아 할머니의 각별한 귀여움을 받았지요.
할머니가 밭에 가시려고 하면 벌써 알고 따라나오면서 앞서가곤 했어요.
진지 잡수시러 집에 들어오실 때가 되어야 함께 돌아와서 기특한 마음에 더 이뻐하셨지요.
할머니 곁을 떠나질 않았죠.
겁이 많아 집을 지키는 노릇은 하지 못했지만
할머니께 항상 붙어서 살랑살랑 귀여운 짓을 많이 했어요.
어디 가서 싸우는 일도 없고 짖는 소리도 거의 내지 않아서
할머니는 '개가 참하다'고 칭찬도 하셨어요.
그동안 개 많이 키웠지만 유독 정이 많이 가는 개라고 몇 번을 말씀하셨는지 몰라요.
그러면서 작년부터는 '애기'도 늙어가니 언젠가 죽겠지..하시면서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원체 작아 장에 팔 수도 없었거니와
또한 정이 각별하게 들어 팔 생각은 하지 않으셨고
새끼나 낳고 죽었으면.. 하셨지요.

지난 여름에 '애기'가 자꾸 말라가고 털이 심하게 빠지면서
마당에서 자꾸 졸기만 하고 할머니도 따라나서질 않곤 해서
저게 죽을 때가 되었구나..하시면서 안타까워하셨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살이 다시 오르면서 새끼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간 한 번도 새끼를 갖지 않아서 영영 못 갖는 줄 알았는데
다 늙어서 새끼를 가져서 할머니는 '고맙다' 하셨지요.
그 새끼를 나뭇단 구석에 낳았는데 너무 사람을 안 보고 자라서
그 새끼는 사람만 보면 도망을 가요. 눈 한 번 마주칠 수 없게 말이죠.

마당에서 깨갱대는 소리에 놀라 나가보니
동네를 어슬렁 거리던 눈빛 불량스런 깡패개가
우리 '애기'를 물어죽이고 있었어요.
'애기'는 그 개들의 새끼로 보일만큼 작은데, 입에 물고  패대기를 치고 있었죠.
저는 너무 놀라 마루에서 소리를 막 질렀지만
깡패개들은 흘끔흘끔 보기만 하고 멈추지 않았아요.
"할머니, 애기가 죽어요! 나와보세요! 동네 개들이 물어죽여요!"
안방에서 메주를 빚으시던 할머니가 뛰쳐나오셔서 버선발로 마당에 나가셨을 때
이미 '애기'는 일어서지도 못하고 있었어요.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믿기지도 않는데
할머니가 부지깽이를 들고 깡패개들을 쫓아가시는 거에요.
저도 막대기 하나를 들고 쫓아나섰죠.
할머니는 개 주인을 만나시겠다는 거에요.
이번이 벌써 두 번째로 우리집 개를 물어죽이는 일이라면서요.
할머니가 싸움(?)을 잘 못하시니까
나라도 따져(?)드려야겠다 생각하면서 따라갔죠.
피 흘리는 애기가 있는 마당에 혼자 있기가 무서웠기도 했고요.

깡패개들은 동네의 작은 공장집 개였어요.
막 무슨 짐을 싣고 있는 아저씨들이 여럿 있었는데
막상 할머니와 저는 깡패개가 무서워(개들이 원래 자기 집안에서는 남에게 사나워지잖아요)
들어가지도 못하고
막 뭐라고 뭐라고 말을 했어요.
좀 정신없고 격앙된...
그러니까 그게 사실 꼭 따지겠다 그게 아니라
애기가 죽게 생겼으니까 당황스러운, 화는 엄청 나는데 어찌해야할지 모르는
그런 상태에서 쏟아진 말이었어요.
할머니하고 저하고 꼭 실성한 사람 같았어요. 정신이 없었죠.
몇 마디 하지는 않았는데...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죠.
이미 '애기'는 혀를 내밀고 똥을 싸놓고는 식어가고 있었어요.

할머니는 애써 일을 열심히 하셨어요.
앙 다문 입이 보이는 듯 했어요.
그러다가
"내가 그걸 의지하고 살았는데..."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셔요.
저도 같이 눈물이 나서 혼났어요.

그때 잠깐뿐,
할머니는 한번도 '애기'얘기를 하지 않으십니다.
할머니에게는 손주들보다 더 손주노릇을 했던(사실이 진짜 그래요) '애기'라는 걸
저는 아는데...

사건이 있고난 직후엔 '애기' 생각에 마음이 안 좋았는데
지금은 '애기'가 없는 할머니 생각에 마음이 안 좋습니다.


애기야, 잘 가.
할머니 곁에서 손주노릇 해주어 고마웠어.
아프게 가는 걸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할머니가 많이 가슴 아파하셔.
너는 알지? 할머니 마음.
사람만 보면 도망가는 네 새끼는
할머니가 잘 보살펴주실 거야.
할머니, 믿지?
그동안 우리 할머니 곁에서
효도 해주어서 정말 고맙다.
잘 가.
IP : 218.148.xxx.65
1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날날마눌
    '04.11.26 11:12 PM (218.145.xxx.193)

    넘 슬퍼요...ㅠㅠ

  • 2. 쌍둥엄마
    '04.11.26 11:12 PM (211.208.xxx.118)

    연락 잘 안하고, 자주 찾아가지 않는 자식, 손자보다
    옆에서 말동무 해주곤 하는 동물들이 더 나을때가 있는 것 같아요...
    할머님의 손자노릇 해 주던 애기....
    비록 동물이지만, 좋은 곳으로 가길 기원합니다...........

  • 3. 미스테리
    '04.11.26 11:43 PM (220.118.xxx.51)

    ㅜ.ㅡ

  • 4. 치타엄마
    '04.11.26 11:48 PM (211.243.xxx.93)

    가슴이 너무 아프네요 인우둥님..
    저도 개를 키우다 보니 개얘기만 나오면 남의 얘기 같지 않아서 늘 귀를 쫑긋하게 됩니다
    살다보면 늘 이별이란 있기 마련이지만 그런식의 갑작스런 이별은 늘 우리 맘을 아리게 하죠..
    할머님께 위로를 전해주시고 애기가 좋은 곳으로 갔을꺼라고 전해주세요
    저랑 같이 살고 있는 더이상은 강아지가 아닌 우리집 개가 오늘따라 건강하게 지내주는게 고맙게 느껴지는 날이군요..

  • 5. yuni
    '04.11.26 11:54 PM (211.178.xxx.48)

    저도 봐야겟어요 정보주셔서 감사합닏다

  • 6. 메밀꽃
    '04.11.27 12:01 AM (61.74.xxx.132)

    슽프네요....
    애기.....좋은곳으로 갔을거예요.....

  • 7. 아라레
    '04.11.27 12:02 AM (210.221.xxx.247)

    가엽고도 불쌍해서....ㅠㅠ
    애기 좋은데로 갔을거에요...할머니께 인우둥님이 많이 귀여움 부리세요.

  • 8. 테라코타
    '04.11.27 12:11 AM (211.58.xxx.221)

    저도 강아지 2마리 키우는데, 넘 슬퍼요 ㅠ .ㅠ
    코커랑 푸들인데... 저도 죽을때까지 어느누구한테도 주지 않을꺼예요.
    아마 ,애기는 하늘나라에 가서도 할머니를 잊지않을꺼예요.
    담에 태어날때는 꼬옥 사랑받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좋겠어요.

  • 9. 러브체인
    '04.11.27 12:23 AM (61.111.xxx.12)

    아흑 눈물이........ㅠ.ㅠ
    저도 우리 강아지 두리를 키우고 있지요..
    정말.. 눈에 넣어도 안아플 정도로 이쁘고.. 착하고..
    가족같다는 느낌을 뭐라고 설명 할까요..
    이제 2살을 향해 가는데.. 강아지는 사람보다 오래 못사니까.. 어째야 하나 싶은게..
    에휴..애기야..무지개 다리 건너 그쪽에선.. 더 행복해야해..

  • 10. Ellie
    '04.11.27 8:36 AM (24.162.xxx.174)

    서울대 입니다...서울대 소아과는 이미 세계적 수준 입니다.

  • 11. 글로리아
    '04.11.27 10:50 AM (210.92.xxx.238)

    할머니가 충격을 받지 않으셔야 할텐데요.
    지난 여름 저희 친정집도 15살먹은 까만 개가 운명했습니다.
    눈도 어두워지고 몸이 비대해져 움직이기 힘겨워하면서도
    저만 찾아가면 동굴같은 집에서 나와서 온 몸으로 환대를 했죠.
    그때 온 가족이 어떤 심정이었는지 제가 잘 압니다.
    개는 가족같이 정들어서 오히려 못 키우겠어요.

  • 12. 키세스
    '04.11.27 2:22 PM (211.177.xxx.141)

    ㅜ,ㅜ 수명 다하고 떠나도 마음이 아프실텐데...
    눈 앞에서 그런 일을 당하고 죽었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요?

  • 13. 상우조아
    '04.11.27 2:48 PM (211.106.xxx.62)

    (ㅠ.ㅠ)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682633 자유게시판은... 146 82cook.. 2005/04/11 154,576
682632 뉴스기사 등 무단 게재 관련 공지입니다. 8 82cook.. 2009/12/09 62,243
682631 장터 관련 글은 회원장터로 이동됩니다 49 82cook.. 2006/01/05 92,524
682630 혹시 폰으로 드라마 다시보기 할 곳 없나요? ᆢ.. 2011/08/21 19,975
682629 뉴저지에대해 잘아시는분계셔요? 애니 2011/08/21 21,672
682628 내가 투표를 하지 않는 이유 사랑이여 2011/08/21 21,380
682627 꼬꼬면 1 /// 2011/08/21 27,412
682626 대출제한... 전세가가 떨어질까요? 1 애셋맘 2011/08/21 34,607
682625 밥안준다고 우는 사람은 봤어도, 밥 안주겠다고 우는 사람은 첨봤다. 4 명언 2011/08/21 34,794
682624 방학숙제로 그림 공모전에 응모해야되는데요.. 3 애엄마 2011/08/21 14,851
682623 경험담좀 들어보실래요?? 차칸귀염둥이.. 2011/08/21 16,993
682622 집이 좁을수록 마루폭이 좁은게 낫나요?(꼭 답변 부탁드려요) 2 너무 어렵네.. 2011/08/21 23,215
682621 82게시판이 이상합니다. 5 해남 사는 .. 2011/08/21 36,193
682620 저는 이상한 메세지가 떴어요 3 조이씨 2011/08/21 27,399
682619 떼쓰는 5세 후니~! EBS 오은영 박사님 도와주세요.. -_-; 2011/08/21 18,311
682618 제가 너무 철 없이 생각 하는...거죠.. 6 .. 2011/08/21 26,632
682617 숙대 영문 vs 인하공전 항공운항과 21 짜증섞인목소.. 2011/08/21 74,080
682616 뒷장을 볼수가없네요. 1 이건뭐 2011/08/21 14,556
682615 도어락 추천해 주세요 도어락 얘기.. 2011/08/21 11,626
682614 예수의 가르침과 무상급식 2 참맛 2011/08/21 14,361
682613 새싹 채소에도 곰팡이가 피겠지요..? 1 ... 2011/08/21 13,392
682612 올림픽실내수영장에 전화하니 안받는데 일요일은 원래 안하나요? 1 수영장 2011/08/21 13,646
682611 수리비용과 변상비용으로 든 내 돈 100만원.. ㅠ,ㅠ 4 독수리오남매.. 2011/08/21 26,041
682610 임플란트 하신 분 계신가요 소즁한 의견 부탁드립니다 3 애플 이야기.. 2011/08/21 23,545
682609 가래떡 3 가래떡 2011/08/21 19,759
682608 한강초밥 문열었나요? 5 슈슈 2011/08/21 21,819
682607 고성 파인리즈 리조트.속초 터미널에서 얼마나 걸리나요? 2 늦은휴가 2011/08/21 13,808
682606 도대체 투표운동본부 뭐시기들은 2 도대체 2011/08/21 11,933
682605 찹쌀고추장이 묽어요.어째야할까요? 5 독수리오남매.. 2011/08/21 18,084
682604 꽈리고추찜 하려고 하는데 밀가루 대신 튀김가루 입혀도 될까요? 2 .... 2011/08/21 21,835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