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 들어 암스텔담과 유트레이트에서 '한국 국악의 밤' 행사가 있었고 'Asian Bites Film Festival' 에서는 '올드 보이'가 선을 보여 극장에서 동시 상영을 했다.
'올드 보이'는 곧 독일에서도 상영될 것이다.
내가 유일하게 참석(두 아이가 어리다보니 문화 생활이 안된다)할 수 있었던 것은 암스텔담의 소극장 'Melk weg(Milk way)'의 "Shadow Festival"이였다.
저녁 10시 상영이라 아이들을 일찍 재우고 암스텔담으로 따라 나설 수 있었던 까닭이다.
10일 간 상영된 각국의 다큐멘터리 37개 필름 중 한국 필름으로는 이호섭씨의 "And Thereafter"가 꼽혔다.
외국 필름을 소개해서인지 영어 카탈로그가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이곳에서는 영문을 찾기가 정말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시작 전 잠시 이호섭 감독과 인사를 나누었다.이 작품은 작년 부산영화제에서도 다큐멘터리 부분에서 대상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도 약 20여 군데에서 초청을 받았다고하니 더욱 기대가 컸다.
6.25 전쟁 때의 흑백 필름을 시작으로 미군과 결혼하여 미국에 도착한 한국 여성의 행복하고도 수줍은 모습을 소개하는 뉴스가 나온다.
감독은 봄,여름,가을,겨울 네 개의 장으로 나누었다고 소개를 했는데 봄은 할머니가 고추를 심는 장면과 할아버지의 알 수 없는 가위질,같이 사는 두 아들 이야기이다.
기다랗게 넓은 집과 작은 태극기가 펄럭이는 고추밭.
쓰레기를 모아 이것저것 가위질을 부지런히 하는 할아버지,Bill.
왜 하는지 무얼 위한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45세나 된 큰 아들 Jimmy는 별다른 직업도 없이 방 안에는 G.I 인형과 트럭,칼,포르노 테잎과 성인 잡지만이 가득하다.
둘째 아들 Timmy 역시 늘 늙은 어머니에게 돈을 요구한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이발을 해 준다.
이발을 해 주면서 할머니가 말한다.
"Honey,You hansome."
"You longer longer time to live."
"I love you."
할머니는 자신은 아는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할아버지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한다.
영자 할머니는 40년 간을 미국에서 가정을 꾸리며 살았는데 그것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Bill과 결혼하여 미국에 왔지만 또 베트남 전쟁에 나간 Bill은 한국에 들렸다가 어린 여자에게 정신이 빠져 그 여자를 미국으로 데리고 오기 위해 딸로 입양 할 생각이였다.영자가 허락을 않자 영자를 정신병으로 몰기도하고 실제 발가벗겨 추운 길거리로 내좇았다고 한다.
여름,할머니의 회상은 계속 우울하다.
할머니는 밤 늦게까지 한인 위성 방송으로 나오는 뉴스를 꼭 보지만 무슨 내용인지 뜻을 전혀 모른다.
미국 시민을 갖고 있지만 누가 자기를 미국인으로 인정하겠느냐고 한다.영어를 제대로 못하는 덕에 미국인들에게 비웃음을 사고 한국인들에게는 양공주라는 오명으로 괄시를 받는 것이다.
"한국 사람이 더 해."
라는 말은 칼처럼 후벼진다.
거실에 세 아이의 어린 시절 사진이 놓여 있다.
할아버지가 꺼낸 모양으로 할머니가 짜증을 내며 왜 저 사진을 꺼냈내고 치우라고 한다.뭔가 사연이 있는 모양이다.
"기뻐도 고추밭,슬퍼도 고추밭.나는 이 고추밭이 없었더라면 미쳤을 거야."
할머니에게는 고추밭이 생계의 유지이기도한 동시에 마음을 쏟을 큰 위안이고 힘이였다.
"고추밭이 가족보다 더 나아."
가을,고추가 빨갛게 익었다.
작으마한 체구의 할머니.고난의 세월을 그대로 말해주는 그 거칠고 울퉁불퉁하나 단단한 야무진 손끝은 쉼없이 움직인다.
고추를 따고 말리고 닦고...
덜 익은 고추는 지하에 펴 널어 놓는다.
파란 고추 사이에서 익어가는 빨간 고추를 추려내며 회상하는 Bill의 이야기는 쇼킹이였다.
어느날 Bill의 지갑에서 발견한 발가벗은 딸의 사진.
막내 딸 Elein이 7살 때부터 10년간을 Bill이 성추행을 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 Bill은 3년간 감옥 살이를 했다.
Thanksgiving day.
모처럼 한 식구가 모인 저녁 식사인 모양이다.
할아버지가 칠면조를 썬다.
물론 그 자리에는 Elein의 모습은 없다.
잠깐 비스듬히 비친 장남 Jimmy의 말은 거칠기 짝이 없고 두아들은 어느새 대충 먹고 나가버린다.
오랜만에 화사한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은 할머니.
외로이 설겆이를 하다 딸을 맞이하는데 역시 그녀가 집에 들린 이유는 돈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질끈 하나로 묶은 머리,큰 까만 안경에 살이 무척 찐 Elein.
딸이 자기가 당한 과거를 들먹이며 돈을 요구하자 할머니는 아무 소리도 못한다.
겨울.
"전쟁이 싫어서 미국을 왔는데 미국은 계속 전쟁만 해."
할머니는 그 어떤 것도 그냥 버리는 것이 없다.
고추잎을 일일이 떼어 내고 가지는 따로 쌓아둔다.
비닐 하우스에서 잘 말려진 고추를 손질하는 할머니.
아무 감정 없이 뱉아내는 것 같지만 그 말 한마디한마디에는 피나는 애한 뿐이다.
전쟁이 터지자 남편은 갑자기 사라져 버렸고 그 난리통에 네 아이를 혼자 감당해야했다.
남편을 기다리다 못해 네 아이를 업고 끌며 피난을 가는데 피난 도중 네 아이는 모두 굶주려 죽었다.
아기가 한참 전에 죽었는데도 모르고 그냥 업고 다녔는데 내려 놓으려고하니 등에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가 않았다고 드디어 눈물을 쏟는 할머니.
가난했어도 다섯 식구끼리 행복했었는데 그 전쟁이 모든 것을 바꿔 놨다.
Bill을 만난 직후에 어떻게 소식없던 남편이 찾아왔다.
남편은 북한으로 끌려 갔다가 도망쳐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같이 가자고 했지만 할머니는 따라 나설 수가 없었다.
"내 몸은 이미 더럽혀졌는데 어떻게 같이 가요."
할머니의 하얀 수건이 얼굴을 덮는다.
오열하는 할머니 앞에 주욱 널부러진 고추들은 너무 빨갛다.
할머니가 무슨 일인지 치장을 한다.
목욕 뒤 분도 바르고 립스틱도 바른다.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할머니의 표정이 밝다.
"고추 빻으러 가는 날이야."
방아간에서 고추가 잘려지고 고운 가루로 쏟아져 내려 온다.
할머니는 보기가 안타까울 정도로 기형이 되어버린 그 작은 손을 모아 기도를 한다.
식구를 먹여 살려 줄,그리고 늘 마음의 위안으로 길러지고 다듬어졌던 고추에게 감사를 비는 것일까.
빨간 가루가 하얀가루로 변해 쏟아 내려지면서 눈으로 덮힌 할머니의 집으로 오버 랩된다.
눈 덮힌 세상은 저리도 평화로운 것이다.
필름이 끝나고 박수가 쏟아졌고 앞좌석의 두 한국 아줌마는 눈물을 연신 훔쳤다.
아마도 가장 잘 이해 할 수 있으리라.
그 당시 한국 여인들의 한과 그 험한 여정을.....
주최자와 감독,그리고 통역자가 셋이 앞에 앉아 관객들에게 질문을받았다.
필름은 물론 영어였고 오로지 할머니의 독백에만 영어 자막이 있었다.관객들은 영어로 꺼리낌없이 질문을 했고 감독 역시 통역이 거의 필요없이 대답을 잘 해 주었다.
3년간 할머니 집을 매일 가다시피 하며 만들었다고.
특히 장남 Jimmy가 상당히 부정적이여서 한 번은 내던지는 칼에 무척 놀라 상당히 조심을 했다고 한다.
3년간 매일 대화를 했다지만 어떻게 저렇게 자연스럽게 필림을 찍었는지 무척 놀라웠다.
질문 중 역시 몇몇 여관객들은 할머니가 왜 그렇게 소극적으로 당하고 참고 사는지에 대한 분노를 드러 내었다.
"그런게 인생이지."
그것이 가장 정확한 답이 될 수 있을까?
전쟁이 가져다 준 어느 여인의 기구한 일생을 훔쳐보면서 다시 우리 과거에 대한 아픔을 생각해 보게 되었고 깔끔한 구성의 필림에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매력을 갖게도 되었다.
필림이 약 1시간 간 상영되었기 때문에 너무 늦은 시간이라 오래 질문을 주고 받을 수 없었고 감독과 따로 좀더 대화를 나눌 수가 없어 아쉬웠지만.
암스텔담의 야경을 처음 본 나는 이런 여러 Film Festival에 두루 참석 할 수 없다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고 이런 문화에 투자를 넉넉히 하는 선진국의 힘이 또한 다시 부러웠다.
또한 토론이 얼마나 멋진 일상인지 다시 한 번 부러웠고.
내 인생을 뒤돌아 볼 그 날에 나에겐 어떤 주름이 깊게 잡혀져 있을까?
나는 내 삶,인생에 대해 무엇을 말 해 줄 수 있을지.
And Thereaf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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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Thereafter
김현주 조회수 : 1,012
작성일 : 2004-11-24 20:08:47
IP : 81.205.xxx.243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민트조아
'04.11.24 8:51 PM (219.250.xxx.15)글을 읽으면서 마치 내 눈으로 직접 다큐를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한국에서도 지난 여름 EBS 방송에서 다큐 영화제를 했었어요.
즐거운 시간들이었구요.
전 우연히 봤다가 나중엔 상까지 받은 슬로미란 이름의 젊은 남자 다큐가 인상적이었어요.
암 환자를 가까이서 봤던 저로선 보는 내내 눈물로 봤었습니다.
그런게 인생이지..
인생이 뭘까요? 가는 사람은 보내고 뚜벅 뚜벅 내 길을.. 그 길을 걸어가는게 인생일까요?2. -.-;;
'04.11.24 9:26 PM (81.205.xxx.243)아씽~눈물이.....
나도 아직 젊은가벼...감정이 살아있다니....3. 피글렛
'04.11.24 10:59 PM (194.80.xxx.11)정말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합니다.
앞으로도 글 많이 올려주세요...기대합니다!4. 마농
'04.11.25 1:23 AM (61.84.xxx.28)김현주님 너무 잘 읽었어요....고맙습니다.
5. 코피
'04.11.25 2:05 AM (81.205.xxx.243)글 잘 쓰시네요.아,나도 저런 장문을 쓸 실력이 있다면....
정말 여자들은 한이 많은 거 같습니다.
남자들도 나름대로 사회 생활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지만....6. 달려라하니
'04.11.25 11:50 AM (218.152.xxx.168)좋은 글 감사합니다...
7. 풀내음
'04.11.25 12:02 PM (210.204.xxx.4)정말 너무 슬픈 다큐군요. 전쟁속에서 겪은 할머니의 생이..
.이렇게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해요.8. 김현주
'04.11.25 5:47 PM (81.205.xxx.243)맞아요.
교육감 잘 뽑고 정치인들 잘 뽑아놔도 엄마들 욕심 먼저 버리지 않으면 아이들이 행복할 수 없을 거예요.
유치원 가기 전부터 학습지에 선행학습에... 유치원생이 한자는 왜 배워야 하고 영어로 줄줄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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