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연출가가 아니다
열린 교육을 위해 열린 자세 필요
이옥임 기자
2004-10-31 19:14:46
<필자 이옥임님은 전직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편집자 주>
내 나이 스물 둘. 한창 겁이 없고 철도 없어서 선배 교사들의 수업이 눈에 차지 않았고, 수업이라면 내가 제일인 양 우쭐거리며 수업에 임하던 시절이었다. 그 날은 마침 내가 학년 대표로 연구수업을 하게 되어, 내 딴에는 자료 준비며 교수-학습 지도안이며 완벽하게 준비를 했다.
나는 아이들과 호흡을 맞춰 가며 신나게 수업을 했기 때문에 이젠 칭찬 받을 일만 남았다는 심정으로 수업 협의회에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교장선생님을 필두로 하여 교감선생님, 학년부장 선생님들이 줄줄이 한 마디씩 칭찬을 해주셨다. 그런데 동학년이었던 한 선생님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 수업에 대해서 무언가 지적을 하고 나선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이번 수업에 임하면서 아이들 입에서 어떤 대답들이 나올 것인가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 말에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그야 물론이죠. 수업을 한다는 사람이 그런 사전준비도 없이 수업에 임하나요?”
그러자 그 선생님은 대뜸 당시로선 내가 듣도 보도 못하던 말을 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대답을 예상하고 계셨단 말씀이지요? 그것은 그 대답이 아니면 틀렸다고 생각하셨단 얘기도 되네요. 미안하지만 오늘 선생님 수업이 바로 그랬습니다. 예상된 질문이고 예상된 대답이었지요. 그렇다면 아이들의 창의력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이들의 창의력을 위해서 선생님은 어떤 부분을 열어두고 계십니까?”
나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가슴이 답답해 왔다. 아이들의 창의력 계발을 위해서 어떤 부분을 열어두었느냐고?
그 때까지 그랬었다. ‘완벽한 수업 모형에 따르는 수업’ 그것이 최고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 연구수업은 정말이지 연출자에 의해서 연출된 하나의 연극에 불과했던 것 같았다. 그것을 가지고 수업을 잘 했노라고 해온 나의 자존심과 교사로서의 능력 여부가 사정없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 그 선생님은 교육현장에 들어선 나에게 있어 첫 스승이 됐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이미 정해진 것들만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아니라 창의력과 상상력, 그리고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힘을 키워야 한다. 그런데 교사가 정해진 답을 염두에 두고 있으면 아이들도 그에 맞춰 정해진 것만을 이야기하게 되며, 그것이 반복되면 결국 아이들의 창의적인 사고가 키워지긴커녕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 날 이후로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지식을 전달함과 더불어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워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됐고, 그러한 고민은 스물다섯 해 동안 계속됐다. 그 과정 동안 아이들이 왜 ‘선생님의 스승’이 될 수 있다고 하는지 깨닫게 된 것 같다. 내가 노력하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났을 아이들의 그 다양한 생각과 표현방식들은 교사인 내게도 많은 공부가 됐다.
요즘은 아이들에 대한 창의력 교육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도 그 방식에 대해선 밑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은 것 같다. ‘열린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란 기성세대가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칠 때, 그 아이들의 창의력을 키워주기 위해 ‘열린 자세’를 갖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교사였던 경험을 비추어볼 때,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아무래도 아이들에게 ‘주입’식 교육을 하게 되기 쉽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나보다 교육론에 대해 더 많이 배웠을 요즘 선생님들에게 이 같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아이들의 말랑말랑한 머리 속에 담긴 것들을 끄집어 내주고, 존중해 주고, 키워주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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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연출가가 아니다
퍼옴 조회수 : 889
작성일 : 2004-11-05 14:49:28
IP : 211.201.xxx.204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삼천포댁
'04.11.5 4:21 PM (221.152.xxx.98)참 좋은 글이네요. 비단 선생님 뿐만 아니라 우리 엄마들도 아이가 내가 원하는 정답만을 대답하기를 바라면서 창의성을 잃어버리게 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님 좋은 글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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