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시장은 도매 위주의 대형 거래가 주류를 이루지만, 가락시장 전철역으로 통하는 동쪽 샛문으로 나오다 보면 보통의 재래시장과 비슷한 풍경을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샛문을 나와 가락시장 전철역으로 가는 길 옆에는 스무명 남짓 되는 할머니들이 얼마 안되는 야채나 과일을 놓고 파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파는 물건들은 특징이 있습니다. 과일이나 당근을 보면 상한 부분을 도려낸 칼자국이 있고 배추는 푸른 겉잎이 없고 노란 배추속만 있지요. 지금부터 하려는 얘기는 할머니들이 파시는 이 물건에 대한 것입니다.
새벽과 오전의 도매시장이 진행되는 동안, 상인들은 물건을 선별하면서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들은 버립니다. 배추 더미에 망그러진 배추가 섞여있으면 전체가 하품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그런 것은 골라서 버리는 편이 낫지요. 그렇다고 그것들을 다듬어서 팔기에는 품값이 나오지 않고... (저도 가끔 "버리기에는 아깝다" 하고 생각되는 것들을 자주 봤습니다.)
도매시장이 끝날 즈음 할머니들이 그 더미에서 괜찮은 것들을 골라갑니다. 그리고는 보도블럭 한구석에 앉아서 다듬습니다. 지저분하거나 상한 부분은 잘라버리지요. 이렇게 해서 무자본에 노동력만 더해서 나오는 것이 바로 할머니들의 길거리 좌판 물건입니다.
따라서 그 좌판들은 주 취급 물품이 따로 없고, 그날 그날의 수확물(?)에 따라서 품목과 수량이 달라지지요. 가격은 가락시장에서 파는 일반 물품값의 반 정도이니, 물건만 잘 고르면 일이천원에 한보따리를 들고 올 수 있습니다.
이런 풍경은 마장동 축산시장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소나 돼지의 내장이나 머리 부분은 부산물이라 불리는데, 이것들을 식재료로 만들려면 잔손이 많이 가지요. 따라서 우리가 사먹는 값의 대부분은 재료의 원가라기 보다 손질하는 인건비와 상인들의 판매이익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런 부산물은 그래도 어느 정도 대접을 받습니다. 소 곱창의 경우는 기름 덩어리 사이에서 발라내야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기 때문에 돈이 되죠. 기술자들이 능숙한 솜씨로 갈비뼈와 갈비살을 분리하고 나면 갈비살은 랩에 둘둘 말려서 갈비집으로 가고, 뼈는 거기에 붙어있는 잔살들을 한차례 더 발라낸 후에 잡뼈로 팔려나갑니다. 뼈 사이에서 발라낸 돼지고기는 잡육이라는 이름으로 한근에 (질에 따라) 천원에서 천오백원 정도, 소고기의 경우 이천원 내외에 판매됩니다.
그런데 이런 부산물 축에도 못끼는 것이 있습니다. 수고에 비해 얻어지는 대가가 아주 적은 것이지요. (모르긴 몰라도 이런 것은 거의 거저 가져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소의 목부분을 보면 기름같은 것 속에 길다란 고기 부분이 하나씩 있는데 오전 내내 작업하면 대여섯 근 정도의 고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어제 마장동에서 근에 이천원에 산 잡육도 그런 것입니다. 값은 다른 잡육과 마찬가지지만 맛은 다른 부위보다 좋아서 저는 시장을 뒤져서 꼭 이것을 찾습니다. 다음주에 친구 몇명과 집에서 모임을 가질 예정인데, 천하일미 소고기 볶음밥을 해 줄 예정입니다.
기독교 경전에 보면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신명기 24장)"는 구절이 있습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이것이 단순한 권유가 아니라 유대나라에서는 법률과 같은 것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객"은 "나그네"라는 말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엄밀한 의미에서는 "유랑자"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유랑자와 과부와 고아, 이 셋은 경제적 최 빈곤층을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 속담에 "나무가 크면 그늘도 크다"는 말이 있지요. 제가 큰 시장을 다니면서 느낀 것 중의 하나가, 가게도 자본도 없이 노동력만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품어주고 있구나 하는 것입니다. 밭주인의 입장에서는 거두는 것보다 흘리는 것이 좋고, 그 이삭을 줍는 사람들에게는 빈곤한 살림이나마 떳떳이 일해서 꾸려갈 수 있는 터전이 되니 이 역시 좋은 일이지요. 시장에 가실 때면, 길거리의 좌판에 한번쯤 눈을 돌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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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크면 ....
무우꽃 조회수 : 923
작성일 : 2004-10-26 19:57:56
IP : 203.240.xxx.201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빈수레
'04.10.26 8:06 PM (218.53.xxx.189)오랫만이십니다~~!! *^^*
2. yuni
'04.10.26 8:13 PM (211.210.xxx.244)무우꽃님 반가와요. *^^*
3. 이현정(삼천포댁)
'04.10.26 9:47 PM (221.152.xxx.23)어쩜 글을 이렇게 맛깔나게 쓰시나요?
저는 글을 쓰다보면 샛길로 새거나 아니면 넋두리가 되버리곤 하는데 님의 글은 읽는 사람에게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네요.4. 눈팅이
'04.10.26 9:50 PM (192.33.xxx.53)방가워요~
5. 레몬트리
'04.10.27 2:19 AM (211.225.xxx.195)저는 글읽으면서 또 샛길로 빠졌습니다.
"나무가 크면 그늘도 크다"...비슷한 말을 어디서 듣긴 들었는데....뭐였더라??
곰곰 생각해보니..<죄가 깊으면 은혜도 깊다> "약속"에서 박신양이 (그 친구) 한 말이지요.
잘읽었습니다..6. Wells
'04.10.27 9:07 AM (61.255.xxx.184)안그래도 무우꽃님 요즘 왜 안보이시나 했는데, 반가워요.
노동력만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품어주는 큰 시장보다도, 그들을 알아 볼 수 있는 큰 마음을 가진 무우꽃님의 마음이 더 아름다워보여요.7. iamchris
'04.10.27 11:46 AM (163.152.xxx.159)죄가 깊으면 은혜도 깊다... 이거 성경에 나오는 말씀인데...
약속의 시나리오 누가 썼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말 제대로 알고 쓴사람이라면 정말 기독교의 진리에 도달한 사람같네요..8. 이영미
'04.10.27 3:00 PM (211.250.xxx.2)무우꽃님.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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