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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미워할 수 있기라도 했으면..

뚱시 조회수 : 1,137
작성일 : 2004-10-21 11:07:21
요즘 친정 엄마에 대한 글들이 많이 올라오네요.
나름대로의 고민과 아픔은 다 있다지만..전 엄마가 제 미움의 대상이 될 수만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엄만 평생 고생만 하시다 이제 4남매 대학공부 다 시키고 좀 즐길만 하시니까...
제 결혼 한 달도 채 남겨두지 않고 쓰러지셨습니다.
뇌출혈이었는데 다행히 수술이 잘 되어 일상생활 하시는데는 문제는 없지만 예전의 엄마 모습은 아닙니다.
이해력, 판단력, 단어력 모두...
어린아이가 되신 것 같아 혹시 치매라도 걸릴까봐 또 두렵습니다.

황태자처럼 자란 저희 아빠, 세상 물정 모르는 아빠, 그 많던 재산 주식으로 다 날리시고..
엄마는 머슴처럼 일 하셨습니다.
안해본 식당이 없으시고, 관절염에..겨울이면 동상으로 팔목까지 빨갛게 되시고...

제가 고3병으로 원하던 대학에 못 가서 괴로워할때 저희 엄마 저 몰래 담임 선생님 찾아오셔서 당신딸 아프지만 않으면 되니 아무 대학이든 들어가서 몸도 안좋은데 재수하겠다는 소리만 하지 말게 해 달라고 하셨답니다.
저희 선생님 감동 받으시고..저 합격하던날 선생님께서 먼저 전화해 주셨더랬습니다.

저 대기업 최종 면접에서 떨어져서 낙심할때 저희 엄만 그러셨습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다 해결된다고..그깟 회사 못간 것 죽는일도 아닌데 왜 그러냐고..
그 후 저는 무슨 문제라도 만나게 되면 죽는 문제도 아닌데 하며 웃게되더이다.

우리 동생 초등학교 2,6학년 전학하던날 동사무소에 가서 서류 발급 받아오라 하시니 교무실에서 기다릴 동생들이 생각나서 조금만 둘러오면 다리 건너서 올 수 있는데 지름길로 오신다고 돌다리 건너시다 물에 빠지셔서 죽을뻔 하셨습니다.(물 소용돌이가 강해서 사람이 가끔 익사했다 들었습니다)
물에 빠져서 옷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데도 어린 딸들이 걱정되어 그 옷으로 교무실에 들어오셨더랬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이사오기전 학교때문에 혼자 자취했는데 일주일에 한번씩 오셔서 반찬해주시고..
80년대말 데모 엄청 하던 시절..시위대때문에 차가 움직이지 않자 저에게 가져다 줄 이불꾸러미 머리에 이고 체류탄 가스땜에 재체기 하시면서 1시간30분이나 걸어오셨다던 울엄마...

그런 엄마께서 이제 좀 살만하다 하니 아프셔서..
요며칠 저희 집에 오셨는데 제가 식사를 챙겨 드립니다.
예전같으면 어림없는 일일텐데..직장 다녀와서 피곤한 제가 공주처럼 엄마 밥 앉아서 얻어 먹을텐데..
어제 밥 차리는데 멍하니 TV 보고 계신 엄마를 힐끗 쳐다보고 눈물이 나서 혼났습니다.

저 결혼할때 사람의 도리라고는 눈꼽만큼도 모르시는 저희 시어머니땜에 제가 스트레스 받으면 엄마한테 하소연하고..결혼 안한다 짜증내고...내 돈으로 시집가니 이것저것 다 챙겨주시는 친구들 엄마 부러워서 엄마 가슴에 못박고..
얼마나 후회가 되는지 모릅니다.
저는 아주 나쁜딸이었습니다.

우여곡절끝에 청첩장 두 번 찍고서 결혼하던날 엄마는 가발을 쓰셨고, 폐백하던날 딸에게 한마디 하라는 사회자말에 아무말도 못하시고 눈물만 흘리시던 엄마...
결혼하고 애기 가졌는데 유산해서 엄마께는 말씀 못드리고 얼굴조차 내보일 수 없어서 빨리 애기 가질려다 오히려 잘못되어 수술까지 하고..

물론 받아들이기 힘들고, 제 몸도 이렇게 안좋은데 엄마 건강까지 신경써야 하니 가끔은 하나님도 원망하고, 임신했을때 허구헌날 술 마시고 들어와서 사람 미치게 만들던 우리 남편도 너무 밉지만 이제 다 받아들이고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저는 친정엄마가 차라리 미워할 수 있는 대상이라도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 4남매 엄마의 피를 먹고 잘 자라, 엄마는 작고 여린 사람이 되어 차라리 어렸을때 저의 등짝을 내리치던 엄마의 억센 손길이 너무도 그립습니다.
밉고 야속해도 평생 내 곁에 계실 엄마가 아니니 더 사랑해 주세요. 저처럼 후회하지 마시구요..
IP : 210.183.xxx.175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04.10.21 11:16 AM (210.115.xxx.169)

    마음아프시겠네요.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요.
    저도
    생활비 보내드리느라 못쓰고 못입어도 오래사시면 좋겠어요..

    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또 안그런가 봐요.
    참 그게.. 몹시 험악한 이야기 들이 오고 가쟎아요.
    존재자체가 부담스러워진 관계들이 되어서...

  • 2. 신원지
    '04.10.21 12:32 PM (221.158.xxx.180)

    울엄마..올해초1월4일날 저 결혼시키고 2월중순 본인생일 일주일 앞두고 쓰러져서 결국은 병원에서 3일만에 돌아가셨습니다. 세상허무함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당...56세. 이세대 엄마들이 다 그렇듯이 고생만 죽어라하시고 마지막까지 일하시다가 쓰러졌더래욤. 가끔은 제가 이렇게 살아가는것만해도 섬뜩한 기분이 들때도 있습니다. 엄마가 안계신데...안계신데...난 왜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있는거지...? 님~ 예전모습은 아니시래도 엄마가 곁에 계시는것만으로도 저는 부럽습니다. 옆에서 어머니 힘드신모습 지켜보는것도 님도 버거울것같습니다. 그래도 기운내세욤...

  • 3. 나이든 이
    '04.10.21 12:39 PM (218.145.xxx.1)

    요즘 여기 친정 엄마얘기 보면서, 그 분들 나이가 어느정도 일까? 궁금했어요.
    친정엄마도 사람인지라... 자식들이 느끼는 사랑도 여러가지...

    그러나, 한가지 아쉬워서 한마디 하고 싶은 말....
    옛날의 어머니들은, 많이 배우지 못하고,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 자기자신을
    돌아볼 능력이 없어,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서... 자식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것 같아요.

    그래도 자식들이 나이를 먹으면, 그렇게 모질게 했던 친정어머니도 이해가 되고
    그리워지나 봅니다.

    가까운 사촌언니... 항상 너무 정 많고, 희생적인 저의 친정어머니를 그렇게 부러워하고,
    근 10년동안 부모와 연을 끊고 사셨는데, 항상 가슴 한 켠에 원망을 가득 안고...

    얼마전 전화통화로 회한의 한탄을 하셨어요, 분명 자기부모님도 자기를 사랑했던 것
    같다고, 단지 그 사랑을 표현할 줄 모르셨던 거라고... 왜 자기가 이 나이되어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는지... 절망하더군요.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요.

    원글님도 남아 있는 세월동안 열심히 어머니 사랑하세요.
    그렇게 받은 사랑이 넘치는데.....

    이렇게 50새가 된 딸에게 지금도, 집에 모든 양념과 김치를 해
    날라주는 친정어머니를 , 저 역시 감사히 생각하고 많이 많이
    사랑할렵니다.
    첫아이 병원에서 분만할 때 너무 아파서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저에게,
    계속 쓰다듬으면서," 얘야, 내가 아플 수만 있다면, 내가 아이를 낳겠다.."
    정신 없이 말하던 친정어머니 말이 두고 두고 남더이다.
    어찌 친정어머니가 손주를 낳겠냐고....그냥 배아퍼하는 딸이 너무 안스러워.

  • 4. dlraud
    '04.10.21 12:40 PM (211.53.xxx.176)

    훌륭한 엄마신데요 ....
    가끔 친정엄마 원망하는 글은 님의 엄마같은 분 얘기가 아니랍니다 ..
    님의 엄마는 고생하시며 자식들 교욱 시키고 눈물도 흘리시는 분이고 ..
    어쩌다 병을 얻으신건 본인도 어쩔수없이 그렇게 되신거니
    미워할 이유가 되지는 않겠죠 ...
    어머니께서 다시 건강을 회복하실수 있길 바랄께요 ...^^

  • 5. 햇님마미
    '04.10.21 1:07 PM (220.79.xxx.51)

    힘내세요...엄마의 자리가 그리큰줄은 저도 이제서야 알았답니다...
    원글님도 나중에 똑같으실것 같습니다..
    원글님이 있는 한 엄마에게 잘해드리세요...

  • 6. 죽고 사 일만아니면
    '04.10.21 4:04 PM (211.244.xxx.158)

    그래요
    죽고 사는 일만 아니라면 천천히 해결하면 되지요
    이별의 준비 과정없이
    맞이하는 현실은 두고두고 한이 되지요
    장거리여행 가듯이 가신지 엊그제 같은 데 벌써 15주기라니
    생각외로 부모님과 사이가 안좋으신 분들도 많던 데 차라리 나도 그랬다면 벌써 털고 일어설 수 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자식도 너무 사랑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몇년씩 아프다 가시는 분들 부모자식정 떼고 가려고 그런다잖아요
    천륜이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식두고 어찌 세상을 고할 것이며
    자식또한 어찌 보내 드리겠습니까
    해가 갈수록 사무칩니다 세월이 흐른다고 엷어지는 게 아니더군요

    건강하셨을 떄의 어머니 모습 생각 하면 많이 힘드실 거예요. 그래 차라리 미워할수 있기라도했으면 고통이 덜 할텐데 싶으신거지요
    그래도 님이 마냥 부럽습니다

  • 7. 김혜경
    '04.10.21 7:48 PM (218.237.xxx.252)

    어머니 건강이 좋아지실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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