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대단한 연기력의 소유자입니다.
정말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엄청난 사기를 쳐댑니다-_-;
선량한 시민이었기에 망정이지, 범죄자로 나섰으면 대성할 뻔 했습니다....;;;
저희가 한창 연애질중이던; 이십대 초반의 일입니다.
평일에도 맨날 보는 얼굴인데, 기어이 일요일에까지 만나서
뭐했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아무튼 잘 놀고 잘 먹고,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핫쵸코 시켜서 호호 불며 맛있게 먹고 있는데,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합니다.
뭔가 테이블 위로 어둠의 장막이 깔리며;; 어디선가 장중한 음악이라도 울려나오는 듯한;;;
(그렇습니다...본인의 후까시(;;;)하나로 이런 분위기를 연출하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이 인간은;;)
그러더니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 남자에게는, 고등학생시절부터 사귀던 여자친구가 있었습니다.
(편의상 이름을 캔디라고 하겠습니다)
대학교 들어와서까지도 한동안 사귀었으니,
캔디의 존재에 대해서는 저도 물론 알고 있었지요.
이 남자, 하도 요란하게 연애를 하는 스타일이라;
저 뿐 아니라 저희 과의 많은 사람들이 캔디를 알고 있었고, 만나 본 아이들도 있었을 정도입니다.
저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캔디의 인상착의, 이름석자, 대학, 전공까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캔디와 남편은, 대학 1학년 말~2학년 초 쯤에 헤어졌습니다. (...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다른 도시에 있는 대학이니 우연히라도 마주칠 일 없어서, 전혀 신경 안 쓰고 살았는데...
그 날, 남편이 처음으로 저에게 캔디 이야기를 하더군요.
캔디와는, 사실 싫어져서 헤어진 건 아니었다.
정말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
뭐 그런 뻔한 얘기를 길게길게 잡아늘이고 슬프게 각색하여
저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놓은 후-_-;;;
이거 봐봐, 하고 자신의 손가락을 제 눈앞으로 들이밉니다.
제가 생전 처음 보는 가느다란 금반지가 끼워져 있더군요.
그 반지, 원래는 자기 어머니께 받은 쌍가락지였답니다.
헤어지면서, 한 쪽을 캔디에게 주었다고 하더군요.
혹시라도 자기에게 돌아오게 된다면, 그 때 다시 돌려달라고 했다고...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똑같이 생긴 금반지 하나를 더 꺼내어, 손가락에 마저 끼우는 겁니다.
그리고는, 미안하다, 먼저 갈께, 라는 말을 남기고 일어서더군요.
..............저는 한참을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그저 멍하니 아무 생각 없이;;
사고불능의 방심상태랄까 무아지경에 빠져-.-;;;
그러다가 조금씩, 정신을 수습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업자득, 이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 저희는 '정식으로' 사귀는 상태가 아직 아니었거든요.
남편이 저를 열심히 따라다니다가, 제가 비로소 호응;하기 시작하여
만나기는 만나되, 공식지정남자친구의 위치로는 아직 승격시키지 않은;;
뭐 그런 애매모호한 관계가 꽤 오래 가고 있었던 참이었습니다.
제가 이것저것 재고 그랬던 건 아니구요,
그냥 느낌이 오는 속도랄까 그런 것이 예전 남자친구에 비해 느려서
좀 긴가민가 우물쭈물 하고 있었을 뿐인데ㅠㅠ;;
암튼...그렇게 저의 지난 행적을 묵묵히 반성하고
저도 이윽고 그곳을 나섰습니다.
컴컴한 지하카페에서 훤한 바깥세상으로 걸어나오며,
캔디와 남편의 행복을 조용히 빌어주는데...
갑자기 누가 앞을 막아섭니다.
씩 웃는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머리를 스치는 단어, '속았다-_-;;;;;;;;;;;;;;;;'
아아아아악;;; 그런 뻔한 연극에 홀라당 속아넘어간 저 자신의 바보스러움은
지금 생각해도 벽에다 머리를 박고 싶을 정도입니다ㅠㅠ;;;;
하지만 소도구로 반지까지 준비하다니 정말 너무 사악하지 않습니까ㅠㅠ???
그렇게까지 하는데 어떻게 안 믿느냐고요.....(풀썩)
그러고 보니 그 반지의 정체는 뭐였을까요.
설마 그 연출을 위해 따로 사온 건 아니겠지요;;
음, 혹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오백원짜리 반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일이었는데, 오늘따라 갑자기 생각이 나네요.
나중에 남편한테, 그 반지의 출처라도 한번 물어봐야겠습니다....^_^;;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옛날 얘기.
생크림요구르트 조회수 : 924
작성일 : 2004-10-04 12:12:59
IP : 218.145.xxx.226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쵸콜릿
'04.10.4 12:20 PM (211.35.xxx.9)ㅎㅎㅎ연기하셨음 대성하셨을 것을~~~
먼지나도록 때려주시지 ㅋㅋ2. 헤스티아
'04.10.4 12:51 PM (220.117.xxx.238)크헐... 넘 대단@-@;;;
그런 희안한(?) 이벤트까지 생각해 내고,, 연애에 정말 열심이셨군요... 부러워라^^;;;3. 핀구루
'04.10.4 12:55 PM (137.68.xxx.139)ㅎㅎ 넘 재미있는 스토오리... 입니당.
저도 예전에 몇번 당해보긴 했는데..ㅋㅋ
이 사람이 남친에서 남편으로 바뀌더니... 잘하던 연기력이 다 어디로 갔는지..4. 체리공쥬
'04.10.4 1:09 PM (210.90.xxx.177)ㅎㅎㅎㅎㅎ
정말 대단하신 분이시네요...
지금이라도 연기에 입문케하심이...ㅋㅋㅋ5. 카푸치노
'04.10.4 1:45 PM (220.85.xxx.97)흐흐..
혹, 요즘도 완벽한 연기에 속고 사시는거 아닌가요??
생크림요구르트님네 연애시절 얘기 여전히 재밌네요..6. 사기진작
'04.10.5 2:02 PM (222.108.xxx.191)요즘도 가끔 그런 연기력을 보여주실때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연애시절 이벤트 한번 없었던 저로서는 넘 부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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