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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맞겠지만....

강금희 조회수 : 2,095
작성일 : 2004-09-30 19:09:24
.
저희 시모께서는
작년에 남편을 먼저 보내시고 늙은 둘째아들이랑 서울 작은 아파트에서 살고 계십니다.
저희 시숙모께서는
40여 년 전에 남편을 먼저 보내시고 아들내외와 두 손녀가 사는 집에 적을 두고 계십니다.
적을 두고 있다 함은 거기서 늘상 사는 건 아니라는 얘기지요.
저희 시모님이 사는 아파트에서 많은 날을 함께 지내십니다.

며느리와 사이가 너무너무 안좋은 시숙모님께서는
추석 전 주말에 아들과 함께 성묘를 다녀옴으로써 추석행사를 끝내셨고
올라오는 길에 전화를 드렸더니 "나는 추석날 아침에 가도 되겠지?" 하십니다.
그래서 제가,
그럼 그 많은 송편은 누가 만드느냐고, 말도 안된다고 응석 부리듯이 펄쩍 뛰었더니 하하 웃으시더이다.
안동까지 하루 만에 다녀오신 고단한 몸으로 다음날 일찍 오셔서는
저희 시모님이랑 두 분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시며 제사 음식 다 만드셨지요.
저는 온갖 준비 해드리고 설거지를 맡구요.

등뒤에서 두 분이 나누는 얘기를 들으면 참말로 눈물납니다.
긴 세월 아들 하나 키우며 살다가 겨우 장가를 보낸 지 오륙년 되었는데
이제는 며느리와 사이가 좋지 않아 살아가는 일이 고역이라는 숙모님,
며느리 삼모녀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도 외면당한다는 얘기를 하시며 울먹거리십디다.
고부간의 이야기야 숙모님에게만 들어 그 속내를 알 길이 없지만
사촌동서보다는 시숙모님을 먼저 만난 저로서는,
더구나 그분의 인품을 존경하는 저로서는,
며느리와 손녀들에게 외면당할 때면 살이 떨린다는 얘기를 들을 때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댁 모든 사람들은 다 적군이라는 생각을 가진 우리 동서와 저는 제사 때 외에는 교통이 없습니다.

어제, 누워 뒹구는 신랑을 사주하여, 서울로 가시려는 그분들을 노래방으로 모셨습니다.
평소 테레비에서 흘러간 옛노래 프로그램을 너무나 즐기시고
두 분이 베게 하나씩 의지하고는 흥얼흥얼 따라부르시는 모습은 우리집에서는 흔한 장면입니다.
두 분, 처음에는 다 늙어서 무슨 노래냐며 사양하시다가
큰아들 노래 실력 함 보시라고 떠다미는 저를 못이기는 척 따라가시더니
두 시간 동안 너무나 신나게 노래를 부르시며 즐거워하시더이다.
노인대학 동아리에서 배운 율동에, 탬벌린 흔드시며, 해병대 박수 치시며
아주 그냥 딴 사람처럼 노시더이다.
우리 부부도 재롱삼아 옛노래를 불러드렸지요. 황포돛배, 아네모네, 여로....

오늘은, 어제 시숙모님이 사주고 가신 포도 한 상자를 손질했습니다.
질부 덕분에 스트레스 다 풀렸다며.
리빙노트에 보니까 주스 만드는 법이 나와 있어서 함 해볼려구요.
포도가 조혈작용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포도만 보면 환장하는 빈혈쟁이랍니다 제가.

어떨 땐 가끔,
엄마가 아무리 애원한들 홀로 계신 분을 두고 분가를 할 수 없다는 사촌시동생 처사가 오히려
시숙모님을 더 힘들게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고작 노래방 한번 모신 걸로 위안이 되겠습니까마는
질부에게 항상 감사하고 있다는 메일을 가끔 보내주시는 시숙모님이
이제는 좀 편해지셨으면 하고 바래봅니다.
IP : 211.212.xxx.177
1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04.9.30 7:24 PM (210.115.xxx.169)

    돌맞겠지만
    저도요. 이 게시판에서 가끔 무서운 며느리를
    보고는 놀랍니다.

    며느님들도 나이들고 시어머니 되어보면 그 마음을 알때도 있겠지요.
    그땐 이미 늦었지요.
    ......

  • 2. 마농
    '04.9.30 7:36 PM (61.84.xxx.22)

    나쁜 시어머님 비율만큼 나쁜 며느리들도 많아요.
    나쁜 사람은 나쁜 사람끼리 만나면 서로 좋을텐데......그러면 음양의
    조화가 안맞는건지...... 휴...
    나쁜 엄마 비율만큼 나쁜 자식들도 많고....
    그러면서 세상의 전체적인 균형이 맞아가는건가 봅니다....

  • 3. kimi
    '04.9.30 7:40 PM (144.59.xxx.154)

    저의 엄마 동네에서 유명한 시누이였어요.
    동네 아줌씨들이 우리엄마 같은 시누이면 100명이라도 괜잖다고 할 정도로.
    덕분에 어렸을때나 다 커서도 외숙모/외삼춘에 대한 이미지는 제로죠.
    너무 얄밉다 못해 반발심이 생길 정도로....

    그런 4가지였던 외숙모, 이제는 늙으니깐....
    시누인 저의 엄마 생일까지 챙기네요
    헌데 못된 나 무슨 생각이 드는지 아세요?
    왜, 이제와서 새삼스레 변하는 것이야? 무슨 변죄부를 받을려구?

  • 4. 저는요.
    '04.9.30 7:48 PM (211.176.xxx.188)

    잘 해드리고 이쁨 받고 살아보려고 엄청나게 노력했는데 그게 안되더라구요.
    받는건 당연하게 생각하시고 여러가지로 절 서럽고 힘들게...
    저희 어머니는 제가 큰시누잊 뒤치닥거리(반찬 만들기,산후조리, 이사청소, 애 봐주기 등등등)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분이세요.
    신랑과의 이혼도 여러번 생각했었어요.
    너무 힘들어 할말은 조금 하고
    (그래봤자 행주는 가끔 삶아줘야 해요... 정도, 저희 어머니는 일년내내 행주를 안삶고 물에 담궈 놓으시거든요. -_-)
    만나는 횟수를 조금 줄여 거리를 조금 유지하니까 덜 서럽고 덜 힘들더라구요.
    시댁문제로 고민하는 분들께 저는 거리유지를 좀 하라고 조언을 몇번 했었는데 저도 그 무서운 며느리 축에 들어갈까요?
    대화가 안통하고 가까이 있으면 제 몸과 마음까지 해치는데 꼭 가까이서 성심껏 모셔야 착한 며느리라면 전 무서운 며느리 할렵니다.
    제가 며느리 입장이어선지 강금희님 시숙모님의 며느리가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도 혹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면 저렇게 안한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연세 드신 분들도 예전 며느리 입장일 때의 마음을 가끔은 되새기시면 서러운 며느리들 안나올 것 같아요.
    좀 무서운 이야기지만...
    처녀땐 자식들이 외면하는 어른들이 불쌍해 보였었는데 요즘은 예전에 어떻게 행동했으면 저런 대접을 받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저는 기본적인 도리는 하겠지만 결혼 초창기처럼 노력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추석 지나고 우울해서 그냥 제 넋두리 적었네요.
    저 우울하니까 돌은 던지지 마세요. ㅜ,ㅜ

  • 5.
    '04.9.30 7:48 PM (211.201.xxx.179)

    돌맞긴요..
    눈물이 핑도는걸요.
    감동 받았어요..

    근데 제 생각에는 우리가 말하는 일반적인 시모들이 나쁘다기 보다는
    젊은 세대와 않맞는다가 더 정답인거 같아요..
    한마디로 그들이 살아온 세월이 젊은이들과는 않맞는거죠..
    그렇다고 젊은이들이 다 거기에 일일이 맞춰서 살순 없잖아요..
    그 반항하는 젊은이들이 다 나쁘다고만 볼수도 없구요..
    강요하면 오히려 더 튕겨나가기 쉽구요..

    어떻게 보면 구세대와 신세대간에 대립인데.
    참 힘든 문제죠..

  • 6. beawoman
    '04.9.30 8:22 PM (61.80.xxx.155)

    윗분 말씀처럼 서로 다르다는 것이 본질적인 문제인것 같아요.
    거기에 한쪽 방향으로만 치우쳐라고 하면 삐걱거리게 되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사는 것 힘들어요.

  • 7.
    '04.9.30 8:27 PM (211.217.xxx.116)

    다르다는거가 이런걸까요?
    며느리가 있는데, 늙은 내가 왜 집안일을 해야해?
    그리고 아들 결혼시켰는데 이제 효도 좀 남들처럼 받아야지- 시모의 입장

    내가 뭐 혼인신고를 한거야? 노비문서를 만든거야? 나만 보면 일만 시키시는거야? 것도 자기는 놀면서 그리고 아들며느리 힘들면 좀 사정 봐주지 그렇게 받아야 직성이 풀리나? - 며느리 입장

  • 8. 죄송합니다..
    '04.9.30 9:16 PM (210.183.xxx.33)

    저도 죄송하지만, 돌 맞을 소리 하나 할께요..강금희 님이나, 님의 시숙모님께 드리는 말씀은 전혀 아니지만, 저도 시집살이 고되게 하다보니 (뭐, 자살시도까지 할 정도요) 누구네집 며느리가 어쨌다..이런 이야기 나오면 '오죽했으면'..이런 말이 나올때도 있어요..ㅠ.ㅠ 그리고, 제가 결혼해서 제일 크게 느낀건, 나한테 좋고 아무리 훌륭한 엄마라도, 며느리 입장에선 그렇지 않은 어머니가 분명히 있다는 거예요..저희 시어머니 객관적으로 제가 봐도 좋은 훌륭한 어머니랍니다..신랑네 형제에게는..저에게는 아니지만요..그러다보니 신랑이 절 이해 못하지요..-_- 신랑도 이해 못해주는 고부 관계의 일방적인 싸움을 세상 누가 알아줄까요..답답한 마음에 이런 좋은 글에 이런 답글이라 죄송합니다..머리속이 온통 시댁 생각뿐이라서 이래요..ㅠ.ㅠ

  • 9. 나두...
    '04.9.30 9:31 PM (220.83.xxx.145)

    며느리 입장에서 뿐 아니라 딸의 입장에서 볼때도 나이가 드시면
    어른들은 다시 아이와 같은 수준이 되는게 맞나봐요.
    자신들의 생각만 옳고. 다른사람의 말은 전혀 들으려 하지 않으며,
    남의 자식들은 다 잘하는것 같은데 내 자식은 그 많은 고생으로 키웠건만
    며느리가 들어와 아들 망쳐놓고...

    해가 갈수록 서로를 이해 하는 것보다 서로에게 원하는것만 더 많아지니,
    어른들 모시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드네요...

  • 10. 에고..
    '04.9.30 9:51 PM (218.49.xxx.181)

    이런 상황에선 차라리 분가가 훨씬 낫지 않을까요? 고부간 모두에게요..
    가족이랍시고 한집에 살면서 이렇게 미워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요.
    오히려 따로 살고 가끔 만나면 예의도 차려지고 매일 보면서 부대끼는 게 사라지면서
    만나면 반갑기도 해서 갈등도 많이 해소된다던데..
    딱히 문제가 없어도
    당신만 건강하다면 아들 여럿 두고도 혼자 사시면서 친구도 만나시고 노인대학도 나가시고..
    가끔 찾아오는 자식들 반갑게 맞으시고 그렇게 사시는 분들도 있고요..

    아무래도 남편된 분이 명분이나 홀어머니에 대한 안스러움으로 같이 살기를 고집하고 있는
    모양인데.. 어찌보면 무책임합니다.

    모르는 입장에서야 누구 탓인지 알 수 없는 갈등이지만
    그걸 저렇게 곪아터지도록 내버려두고 있다는 건 그나마 해결의 열쇠를 쥔 사람으로서
    무책임하달 수밖에요.

    조부모님과 함께 사는 아이들이 인성 교육에 유리하다는 얘기도 있지만
    저래서야 애들이 뭘 보고 배우겠어요? 미움과 갈등 밖에..

    아무래도 저 가족 안에서 풀 수 없는 문제라면 주위에서 말도 꺼내고 분위기도 조성해주면
    좋을텐데..하고 생각해봅니다.

  • 11. 달개비
    '04.9.30 11:23 PM (220.88.xxx.142)

    강금희님 참 잘하셨어요.
    짝짝짝!!! 박수 보냅니다.
    제가 잘 못해서인지 어른들께 잘하시는분들 보면
    제가슴이 흐뭇하면서 찡해집니다.

  • 12. 모란
    '04.10.1 12:46 AM (220.118.xxx.45)

    강금희님 한번 뵙고싶네요 필경 마음 따뜻한 분이겠죠?

  • 13. 엘리사벳
    '04.10.1 1:00 AM (218.147.xxx.104)

    명절끝에 흐믓한 집안사 잘 읽었습니다.

    덧글들에 여러 의견들이 있지만..
    노인분들도 고기 한근이 생기면 본인의 입을 먼저 생각하는 분이 있고
    자식들 먼저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죠,

    또 혹이라도 혼자서 뚝 떨어져 어딘가에 있다면 악착같이 못된 자식들 찾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노인과, 자식들 흉잡힐까 당신이 누군지도 말안하고 말아 버리는
    그런 노인도 계시구요.

    내가 아무리 잘해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다른거 같아요.

  • 14. 빼빼로
    '04.10.1 10:01 AM (219.249.xxx.146)

    감동...정말 맘이 고우신 분 같네요.
    전요,저희 시어머니 정말 좋으신 분인데도 왜 그런 거 있잖아요.
    같이 있어보면 단점만 보이는 거..그거 맞던데요.
    위에 어느 분처럼 행주도 안 삶으시고..ㅎㅎ 돈문제도 많이 터뜨리셔서 아들들 번갈아 가면서 갚아 드리고 대책없는 문서 남발해서 뒤치닥꺼리에....정말 속상하고 밉죠.
    그래두요,입장 바꿔 놓고 많이 생각해요.나도 한 20여년 후엔 시어머니가 될텐데...하구요.
    전 혼자 살 자신 없거든요.밤에 외출 후에 불꺼진 방...무섭고 싫어요.
    저희 시어머니 혼자 계셔요.근데도 모시긴 또 싫거든요.못 됐죠?
    적당히 자주 찾아 뵙고 모셔서 맛있는 거 해 드리고 용돈 드리고...그러고 살래요.얌체...ㅎㅎ
    참,불꺼진 방에 혼자 안 들어가기 위해선 지금부터 신랑 건강 관리 열심히 체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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