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많이 자랐다.
초등 마칠때 151센치였는데 이제 중등을 마치니 178로 자랐다.
그리고 방학동안 또 몇센치 자랐나보다.
9월 학기 떠나면서
한국서 캠프를 같이 했던
같은 학교 선배들이
옷들을 많이 두고 떠났다.
작아지거나 낡은걸 챙겨서 동네 근처 옷 수거함에다 넣었다.
버리면서
너무 멀쩡한 것들이 많아 아깝기도 했지만 마땅히 줄 사람도 없고 아깝다고 하며 남편이랑 수거함에다 망설이며 같이 넣었다.
그러다
추석을 앞두고 미국서 시누이도 온다고 하니
명절채비와 함께 과감히 옷들을 정리했다.
수거함에 넣기 아까운 것들이 많기에....갑자기 얼마전 영등포 모임때 본 노숙자들이 생각났다.
식사모임이 끝나고 뒤풀이 하러 노래방 갈적에 역을 가로질러 가야 하기에 들어가 본 영등포역.
정말 놀라왔다.
백화점과 연결된 역 구내에는
비싼 밍크나 무스탕 제품을 늘어 놓은 롯데 백화점 매장옆으로 냄새나는 노숙자 무리들이 여기 저기 모여들 있다.
그 비싼 옷들앞에 그 더러운 무리들.
우리 일행들은 냄새 난다며 빨리 지나갔지만 오가는 내내 정말 가슴아팠다.
거기다 비까지 무지 막지로 내려서 좋은 자리를 차지 못한 노숙자들이 길 옆에서 비 맞는 체로 쓰러져 있기도 하다.
기가 막힌다. 백화점옆에 저런 무리라니.
젖은 옷 채로 자기 체온으로 다시 말려 입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새것은 아니지만 수거함에 넣느니 그들에게 전해 주고 싶었다.
남자옷 여자옷 분리해서
윗도리에 바지와 면 티셔츠 하나씩 묶음을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짝을 마추려 안 버려도 될 옷까지 내어 놓게 되었다.
어떻게 노숙자들에게 전달해야 하나 몇일을 생각했다.
택배 로 부칠까 하니 안된다 한다.
어디다 갖다 놓느냐 고....
그래서
오늘 저녁 딸이랑 영등포 역을 다녀왔다.
일산에서 영등포역까지
왕복 50KM가 넘는다.
차를 주차할 수가 없어서 영등포역옆의 롯데백화점 증축 공사장에 차를 잠깐 세우고 경비반장님을 만났다.
공사장에다 차를 세우면 안된다고 한다.
역에 노숙자들에게 잠깐 다녀온다 하며 사정 설명을 하니..
공사장옆에도 노숙자들이 많다고 굳이 역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길래 대신 전해달라고 옷들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
오늘 사무실서 선물받은 선물셑트를 그 경비반장님께 전했다. 대신 수고해 주시는 품삯이라고..
돌아 나오는데 눈물이 핑돈다.
이렇게 추운날씨에 , 집이 없는건지 일부러 나온건지 모르지만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이 너무 가슴아팠다.
일을 하려는 의지도 없으며 아무 희망도 없는 무미건조한 모습이 안타깝다.
무슨일을 해보려해도 저렇게 더러운 모습으로는 공사판 인부도 할 수 없는 모습이기도 하지만.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할 수 없다고 하였나...
아무런 희망없이 떠도는
역의 노숙자들은 정말 시의 골치거리 일 것이다.
그러나
대책이 없으니...
뭔가 해보려는 희망이 있어야 할게 아니냐 말이다.
앞으로 점 점 더 불어나는 노숙자들을 어떤 문제로 풀어 나가야 할지 나랏님이 아니어도 정말 골치가 아프다.
매일 나 갈 수 있는 일터가 있으며 작지만 오손도손 모일 수 있는 집이 있고
어울릴 친구가 있으며
뭔가 해야겠다는 내일의 꿈도 있으니,
아이러니 하게도 매일 불평만 하던 나는
남의 불행스런 모습에서
상대적으로 너무 행복한 나의 일상생활이 아닌가.
다시 옷들을 보낼 수 있게 경비반장님의 성함을 묻고 다음에도 부탁드린다고 하고는 되돌아 오는데 정말 눈물이 난다.
그들에게 삶의 희망이 스며 들기를 기도 하고 싶다.
그리고
자칫 무미건조한 나날이라고 불평하던 나의 범사가 정말 감사할 일이다.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옷을 싸면서........☆☆☆
김세연 조회수 : 1,006
작성일 : 2004-09-24 01:57:23
IP : 61.252.xxx.254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제민
'04.9.24 5:11 AM (168.122.xxx.201)정말 따뜻한 글이었습니다. 마음이 고우세요.
2. 헤르미온느
'04.9.24 7:19 AM (61.42.xxx.86)......실천하는 봉사정신...아름다우세요...
저는 그냥 교회에서 몽골같은데 보낸다고 하면 거기다 내고 마는데...
직접 하는게 쑥스럽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요...
정말 따쓰한 마음씀씀이...배우고 갑니다...^^3. 핫코코아
'04.9.24 9:02 AM (211.243.xxx.132)또 한분의 마음 따뜻한 분을 보게 되어...너무 좋습니다
짝짝짝!!4. ..
'04.9.24 11:56 AM (220.94.xxx.231)존경합니다..
마음조차 먹지 못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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