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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귀여운토끼 조회수 : 739
작성일 : 2004-09-20 09:34:28
이철환 님의 반딧불이를 소개 합니다.
효는 모든 행동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이 글을 읽고 현대 사회에서 잊혀지기 쉬운 효를 잊지 않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반딧불이

가을바람이 우수수 낙엽을 몰고 다녔다.
은행나무의 긴 그림자가 교수실 안으로 해쓱한 얼굴을 디밀더니, 조롱조롱 얼굴을 맞댄 노란 은행알들이 경화 씨 눈에 정겹게 들어왔다. 경화씨는 기말고사 시험지를 채첨하다말고 우두커니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가루처럼 환한 대학시절의 추억들이 경화 씨 마음속으로 성큼 다가왔다. 모교의 교수가 된 경화 씨에게 지난 기억들은 유쾌한 아픔이었다.
경화 씨가 대학시절 퀭한 눈으로 중앙도서관을 오갈때면 늘 마주쳤던 청소부 아줌마가 있었다. 몽당비만한 몸으로 이곳저곳을 오가며 분주히 청소하던 아줌마.
개미떼처럼 기미가 앉은 아줌마의 얼굴엔 한겨울에도 봄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청소부 아줌마를 만나면 경화 씨는 항상 반가운 얼굴로 다가갔다.
"아줌마, 오늘도 또 만났네요. 아줌마도 반갑지요?"
"그럼요, 반갑고 말고요."
"아줌마께 여쭤볼게 있어요. 어떻게 아줌마 얼굴은 언제 봐도 맑게 개어있지요?"
그렇게 물을 때마다 아줌마는 빙그레 웃으며 결린 허리를 두드렸다.
"그거야, 희망이 있기 때문이지. 대학 다니는 딸이 어찌나 착하고 열심히 공부하는지, 딸 애만 생각하면 허리 아픈 것도 다 잊어버려요."
"대학 다니는 딸은 얼굴이 예쁜가요?"
"그럼요, 예쁘구 말구요."
"딸의 이름이 뭔데요?"
"이름은 경화구, 성은 나도 잘 모르겠는데............"
우스꽝스런 대화를 주고받은 뒤, 두 모녀는 까르르 웃곤 했다.
청소부 아줌마는 바로 경화 씨 어머니였다.
경화 씨는 마음 아픈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고 청소하는 엄마를 만나면 늘 그런식으로 대화를 이끌었다.
엄마를 대신해 걸레질을 할 순 없었지만, 열람실 바닥에 떨어져있는 크고 작은 휴지들이 경화 씨 손엔 언제나 가득했다.
대학시절을 회상하던 경화 씨는 문득 시계를 봤다.
그리고 서둘러 교수연구실 문을 나섰다.
경화 씨는 엄마가 있는 행정관 지하 보일러실을 향해 빠르게 걸었다.
엄마는 비좁고 궁색한 방 한구석에서 낡은 수건을 줄에 널고 있었다.
"아니, 우리 딸, 민 교수님이 여기 웬일이세요?"
"그냥."
"왜, 속상한 일이라도 있는거냐?"
"그런거 아니라니까."
"그럼 다행이구, 근데 안색이 안 좋아 보인다."
"실은 엄마에게 할말이 있어서 왔어."
경화 씨는 허공에 시선을 둔 채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엄마, 있잖아, 청소일 그만두면 안 돼?"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냐, 내 몸뚱이 성한데, 왜 일을 그만 둬."
"엄마 나이도 있고, 허리도 무릎도 많이 아프잖아."
"나야, 이날까지 청소일로 이골 났는 걸 뭐. 하루 이틀 허리 아픈 거냐. 허긴 네가 학생들 가르치는 대학에서 엄마가 청소일 하는게 창피스러울까봐, 그 생각을 안 해본건 아냐. 너, 혹시 그래서 그러는 거냐?"
"아냐, 그런 거 아냐. 엄마."
"그런 거 아니면 됐다."
경화 씨는 속마음을 들켜버린 듯 엄마의 물음에 당황한 빛을 보였다.
같은 대학 내에서 청소일을 하는 엄마가 경화 씨 마음에 무거운 돌처럼 매달려 있었다.
"엄마가 청소일 한지 얼마나 됐는 줄 아냐?"
"나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니까 얼마나 된 걸까?"
"벌써 삼십 년이나 됐다. 너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내 뼈마디 마디를 다 묻은 곳을 떠난 다는게 어디 쉬운일이냐. 아파 누워있는 어린 너를 방에 두고 새벽버스를 타고 나와야 하는 에미 마음이 얼마나 찢어졌는데......
그런 날이면 하루 종일 눈물만 닦으며 일한 적도 많았었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하는 엄마의 얼굴은 깊은 희한에 잠겨 있었다.
"이제는 엄마가 일하지 않아도 살 수 있잖아. 엄마도 봉천동 집에 혼자 계시지 말고 이젠 우리 집으로 들어오셔야지. 김 서방도 그러길 바라고, 아이들을 다른 사람 손에 맡기는 것두 좀 그렇고 말야."
경화 씨는 진심을 말하면서도 조금쯤 감추어진 속마음을 차마 드러낼 수 없었다.
명색이 교수가 돼가지고 엄마 허드렛일 시킨다고 사람들이 수근거릴 것 같다는
말이 경화 씨 입에서만 깔끄럽게 맴돌았다.
"허기사 이일 그만두고 나면 몸뚱이야 편하겠지. 그런데 에미 마음속엔 차마 이일을 버릴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거야. 엄마에게 있어 청소일은 쓸고 닦는 일만이 아냐. 이 에민 삼십년 동안 이일을 간절한 마음으로 해왔어.
아버지도 없이 불쌍하게 자란 내 딸이 순탄하게 지 갈길 걸어가게 해 달라고 빌었던 간절한 기도였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쓸고 닦고, 바닥에 쪼그려 앉아 흉하게 붙어있는 껌을 뜯어내면서 인상 한번 쓰지 않았다.
남들 걸어가는 길 깨끗하게 해놔야, 내 새끼 걸어갈 길 순탄할거라고 믿으면서..."
차마 엄마 얼굴을 바라볼 수 없어서, 곰팡이 핀 벽만을 바라보던 경화 씨 눈엔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
"엄마, 내가 괜한 말 했지?"
"아니다. 네 마음 다 안다. 학교에서 엄마와 마주칠 때 네가 창피해 할까봐 내심 걱정되기도 했는데, 늘 달려와서 에미 손을 잡아주니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창피하기는, 엄마가 누구 때문에 그 고생을 했는데....."
엄마는 꺼칠꺼칠한 손을 뻗어 딸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에미는 네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지난번 교수식당에서 너랑 나란히 앉아 밥을 먹는데 어찌나 낯설고 어색하던지 모르겠더구나. 어엿한 교수님이 내 딸이라는게 믿어지질 않더구나. 고개두 못 들고 에미가 밥 먹을 때, 너는 음식 맛있어 코박고 먹는 줄 알았겄지만, 지나간 세월이 고마워서 눈물 감출 길이 없어 그랬다. 때론 서러움까지 당해야 했던 곳에 내 딸이 어엿한 교수가 됐다는 것이 하도 고마워서 말야. 걸레질 허다가 물이라도 조금 튀는 날이면 사납게 쏘아 붙이고 가는 여학생들을 그저 웃음으로 흘려보낼 때, 에미 심정인들 좋았겄냐. 그래도 쓴 인상 한번 보내질 않았다. 그래야 내 자식 잘되겠구나 허는 생각에.....
지금은 네가 학생들 가르치는, 더 책임있는 일을 하는데 내가 어찌 이곳을 떠날 수 있겠느냐. 무지랭이 에미가 도와줄 건 아무 것도 없지만 말이다....."
경화 씨는 엄마를 가슴에 꼬옥 끌어안았다.
그리고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고마워. 엄마를 보면 반딧불이가 생각나. 야윈 몸 한켠에 꽃등을 매달고 깜박깜박 어둠을 밝혀주는 반딧불이 말야. 엄마의 속 깊은 마음 내가 어떻게 다
알겠어. 엄마, 있잖아. 어제 우리과 교수님들과 회식이 있었거든. 강남에 있는 일식집에서 했는데. 식사비가 얼마나 나왔는 줄 알아. 한사람당 십만 원 해서 육십만원이 넘게 나왔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 생각을 하니까 그렇게 서럽더라구. 우리 엄마는 새벽 다섯 시 반이면 집을 나와, 삽십년 동안 눈비 맞으며 고작 받는 한달 월급이 육십오만원인데 하고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더라구.
2000년도에 월급 육십오만원 받는다면 누가 믿겠어.
그래서 엄마한테 이런 말 했던거야. 미안해 . 엄마..."
"미안하긴, 엄마가 늘 너한테 미안하지."
엄마는 딸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
부모 자격증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식만 낳았다고 다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부모 자격증의 제일 요건도 사랑이요,제이,제삼 요건도 참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청소년 문제가 많다고 하지만 이런 사랑으로 뭉쳐진 가정은
아무런 문제가 없으리라 봅니다.
제 자신을 진심으로 반성하면서 윗글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IP : 211.57.xxx.2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김혜경
    '04.9.20 9:32 PM (211.215.xxx.120)

    눈물나는 얘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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