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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네요.

에드 조회수 : 1,585
작성일 : 2004-09-09 11:34:10
신랑이 근무여건이 바뀌면서
나흘에 한 번 꼴로 숙직을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숙직이라는 것이 단순히 회사에서 밤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밤새도록 컴퓨터를 쳐다보며 모니터링을 하고,
보고서를 작성해야 되는 일이라 몸이 많이 축나게 생겼더라구요.

게다가 며칠 전에 신랑이 말하길,
같은 근무를 하는 팀 사람들은 몸 생각해서, 죄다 보약을 먹는다는 거에요.
그러면서 자기한테도 먹어야 되지 않겠냐고 물어보길래,
자기는 보약을 안먹어도,
부인이 너무너무 잘해줘서 괜찮다고 대답했다 하더라구요.

그건 아닌데.. -_-;


결혼 초에는 열심히 아침도 해주고, 이것저것 반찬도 시도해보곤 했었는데
임신하고 나서는 아침마다 우리 신랑, 물 한 잔 마시고 출근하고..
숙직 다음날이나 다다음날이면 집에서 쉬게 되는데,
제가 퇴근할 때까지 하루종일 굶고 기다리거든요.
집에 반찬이 암것도 없어서
정 배가 고프면 간식으로 사준 쥐포만 뜯어먹으면서 말이에요.
얼마 전엔 속이 쓰린지 저 몰래 위장약도 하나 뜯어먹고 출근했더군요.


그래서 사실..
지난달에 여행을 다녀와 이번달 카드값도 엄청나고,
담달에는 애기도 태어날 예정인지라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남들 다 먹는 보약이라는데, 혹시나 부러울까 싶어

"당신도 해줄까?" 했더니
"정말 해줄꺼야? 정말?" 하면서 아이처럼 좋아하더라구요.


그래서 어제 시어머님께 전화를 드렸죠.
신랑에게 보약을 한 첩 지어줘야 되겠는데..
저는 아는 곳도 없고 하니 어머님께 의논 드리려고 연락드렸다구요.

제 딴에는 어머님이 좋아하시지, 싶었어요.
우리 어머님, 정말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시거든요.
결혼 초에 신랑 건강 걱정을 정말 많이 하셨던 어머님이셨고..
그래서 작년에 보약도 한 채 해주셨던 어머님이셨거든요.
밥 먹을 때면 어떻게든 한 술이라도 더 먹이시려고 애쓰시던 어머님이셨고,
술 마신 후 해독에 좋다며, 인삼도 꿀에 재워주시고,
헛개나무 열매도 잔뜩 챙겨주셨던 어머님이셨기에
당연히 막내 아들 사랑에 좋아하시려니.. 기꺼워 하시려니... 싶었어요.



그런데 이게 왠일이래요. -_-;

제가 신랑도 은근히 먹고 싶어하는 눈치고..
몸 생각해서라도 한 채 지어줘야 되겠다고 말씀드리자,
그게 무슨 소리냐며...
펄쩍펄쩍 뛰시며, 절대 안된다고 하시는 거에요.


생각과는 너무 다르신 반응에 제가 놀라서 다시 여쭤보자
니 신랑이 배가 얼마나 나왔는데!!!!
거기다가 보약을 더 해먹이냐고 하시는 거에요.
아뿔사...


사실 어머님이 신랑 몸 걱정을 너무 하셔서
지난 번에 놀러갔을 때, 두둑하게 나온 뱃살을 보여드린 적이 있었거든요.
신랑이 다른 곳이 비해 배가 좀 심하게 나왔어요.
그 때는 예전에 먹은 보약 땜에 그렇다. 그 정도면 괜찮다, 하시면서
그냥 넘어가셨는데..
내심 너무 나왔다, 생각이 되셨나봐요.
그토록 아들 사랑하시던 어머님께서
손사래를 치시며 절대 더 먹이지 말라고 하실 정도면 말이에요.


근데 막상 어머님이 먹이지 말라고 하시자..
보약 먹는다며 좋아하던 신랑 얼굴이 마구 생각나대요.
그리도 좋아했었는데...
그래서 어머님.. 다른 사람들도 다 몸생각해서 먹인다는데요..
신랑 기죽지 않게 저희도 해줘야지요.. 했더니
지난 번에 보니 니 신랑 얼굴이 볼살도 통통하니 쪄서 걱정없겠던데,
뭘 먹이냐고... -_-;

개소주나 홍삼은 어떨까요, 여쭤봤더니..
개소주는 아래 힘만 좋아져서 안되고..
홍삼도 걔처럼 토실토실한 애한테는 먹일 필요가 없다고...
신경도 쓰지 말라고........









불쌍한 우리 신랑.

니가 말하기 어려우면
어머니가 대신 신랑한테 전화해서, 보약은 꿈도 꾸지 말라고 전해주랴, 하시는데..
웃어야 될지.. 울어야 될지..

어머님이 워낙 아들 걱정 많이 하시던 분이라서 그런지..
신랑한테도 이 소식을 전해줬더니
정말 자기 어머니가 그런 얘기를 하셨냐며, 한동안 못미더워 하대요.


저도 정말 상상도 못한 일이었어서, 전화 끊고 한참을 어리둥절 했었는데..
한편으로는
장가 간 아들이 건강해졌다고 걱정 안하시는 모습에 뿌듯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임신하고 나서 신경도 별로 못써줬는데,
어머님께서 이렇게 안심하고 맡겨주시니 더 잘해줘야 되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앞으로는 좀 더 부지런해져서..
신랑 먹을 반찬도 조금씩, 조금씩, 냉장고에 넣어놓고 출근해야 되겠어요.
요즘 그릇 땜에 침흘리느라 정신이 없는데.. 거기에 갖는 관심 만큼이나..
그릇에 담길 음식에도 관심을 가져야지요. 모. ^^;;


어머님과의 통화 이후.. 괜시리 실실 웃음이 나는 하루에요.
이렇게 평안한 맘으로 계속 살 수 있다면 좋을텐데요..
다들 즐거운 오후 되시면 좋겠네요~~~



ps.
앗, 저는 82쿡 초짜 회원이랍니다.
어디에 인사를 드려야 될지 몰라 한동안 방황하다,
이렇게 꼬릿말에 인사드립니다. 만나뵙게 되어 너무너무 반가워요.
IP : 203.255.xxx.19
1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샘이
    '04.9.9 11:44 AM (165.213.xxx.1)

    ㅎㅎㅎ 전형적인 한국어머니가 아니라 신세대 어머님이시네요.. 그냥 밥이 보약이다 생각하시고 하루세끼 잘 먹으라고 하세요.. 님이 못해주면 나가서 사서라도 먹으라구요..

  • 2. 깜찌기 펭
    '04.9.9 11:48 AM (220.81.xxx.243)

    임신하고나서 울신랑도 아침밥못먹고 새벽출근해요. ^^;;
    미숫가루를 우유에 타서 한잔, 찰떡(영양떡이라고 견과류골고루든것)을 냉동실뒀다 한개 해동해서 함께줘요.
    미숫가루+우유, 찰떡 모두 소화잘되고 든든한것이라 혼자서도 잘 챙겨먹어요.
    가끔 토스트에 과일쥬스로 바꿔도 주구요.
    임신한 몸으로 직장다니느라 힘드신데, 신랑까지 챙기시고..대단하세요. ㅎㅎ

  • 3. 행인1
    '04.9.9 11:51 AM (211.199.xxx.135)

    보약을 처음 드시는 분한테는 비싼거 안권하거든요.
    사실 울집 남편도 남들 보약먹는거 보면 부러운가봐요.
    약 먹고 싶으면 배부터 처리하고 먹으라고 제가 말하긴 하지만요.
    예전에 첨 간 한의원에서 보약얘기했더니 그러더라고요. 처음먹는 사람은 젤 싼거부터 시작하라고..그리구 녹용이니 이런 약재 안넣어도 된다고요. 진맥을 해보시는게 좋겠지만. 시간상 여건이 안된다면.한의원같은곳을 가셔서 상의해보세요.
    그리고 남편한데 아주 아주 비싼 거라고 살짜쿵 거짓말을...(사실 제가 그랫거든요 ^^;;)
    남편은 엄청 비싼건줄 알고 좋아라~먹었는데.. 사실 약값은 10만원인가? 줬다는..(몇년전에요)

  • 4. jasmine
    '04.9.9 11:57 AM (218.237.xxx.149)

    영양제랑 비타민 사드리세요.....^^

  • 5. J
    '04.9.9 11:58 AM (61.74.xxx.124)

    운동을 하시면 어떨까요? 힘든데 운동까지...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제가 결혼 전에 일년 꼬박 헬스를 다녔던 적이 있어요. 하루 두시간 정도..
    얼마나 체력이 좋아지는지 모른답니다.
    그렇다고 잠을 더 자는 것도 아니고 컨디션이 정말 좋아졌어요.
    몸이 건강해지니까 정신적으로도 항상 컨디션이 좋았구요.
    지금 저도 나날이 불어가는 지방덩어리 때문에 움직이는 게 너무 힘들답니다.
    운동을 해야 하는 줄 알면서도 불규칙적인 생활을 벗어나기가 힘드네요..
    운동이 보약보다 낫다고 권해드립니다.

  • 6. 키세스
    '04.9.9 12:02 PM (211.176.xxx.134)

    ㅋㅋㅋ 남편이 보약 먹는거 부러워한다에 한표.
    뭐라도 먹여야 될 것 같은데요.
    홍삼은 살도 좀 빼준다던데 비용부담이 크지요?
    그리고 근본적인 해결책은 J님 말씀처럼 운동일 거예요. ^^

  • 7. 저도
    '04.9.9 12:23 PM (203.241.xxx.142)

    신랑이 체질적으로 워낙에 금방 금방 피곤해져서 한의원 갔더니 이상없다더라구요.
    그야말로 체질이라고. 그래도 억지로 억지로 보약이라고 지어 왔는데 울 남편은 시큰둥.
    그나마도 좀 먹다가 말았어요.

    시댁에 보란듯이(?)이 보약 해왔다 했는데..
    반응이 좀.. 뭐랄까.. 젊은 사람이 뭐 그런 거 먹냐 이런 느낌이랄까요?
    어머님이 평소 인삼 대추 넣고 다린 물을 잘 해주시는데 그거 들어갈 자리를 뺏긴듯 서운한 표정? 암튼 저도 기분이 묘했어요. 어쨌거나 저는 한 번 해줬다는 데 의의를 뒀습니다.

  • 8. 에드
    '04.9.9 1:09 PM (203.255.xxx.19)

    저도 운동을 권유하고 있어요.
    신랑도 수영을 해볼까, 하는 마음은 있는데
    워낙 게으른 사람이라 움직이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

    그래도 보약 해줄까 했을 때, 워낙 좋아하던 얼굴이 마음에 걸려서리
    아로나민 골드나 암웨이 영양제 종류라도 사다줄까 싶은데..
    효과가 있을까요???
    마음 같아서는 신랑 어깨 으쓱하라고 예쁜 통에 담아
    회사에라도 들려보내주고 싶은 심정이에요!!!

  • 9. 마농
    '04.9.9 1:41 PM (61.84.xxx.22)

    잘 맞는 보약먹으면..오히려 쓸데없는 뱃살이 빠지던데.. 잘 안 맞는 약을 드셨었나봐요.
    제부가..배가 장난 아니게 나왔는데...영업직인 업무탓이 많이 피곤해했거든요.
    홍삼 엑기스 사서...물에 희석해서 먹이니........ 훨씬 덜 피곤해하고...
    심하게 쪘던 살이..특히 배가..오히려 많이 들어갔어요. 찐게 아니라..부은것이었나?^^;;;
    뚱뚱하고 열많은 사람에게도 홍삼이 좋더군요....

  • 10. 에드
    '04.9.9 1:59 PM (203.255.xxx.19)

    마농님.. 아니에요. T_T
    저희 신랑은 보약 땜에 배가 나온게 아니구요..
    (그건 어머님이 그렇게 스스로 위로하시는 거구..)
    사실은 움직이는 거 싫어하고 오락하는 거 좋아해서..
    밥 먹고 데굴거리기만 해서 배가 나온 거에요.
    (본인은 제가 먹다 남긴거 청소하느라 그렇게 됐다고 해요.)

    그래서 몸은 딱 표준 체형인데, 배는.. 흑..
    배꼽에 오백원 짜리 동전을 끼워넣어도 끄떡 없어요.
    운동만 하면 딱인데.. 홍삼 먹음 정말 배가 들어갈까요?
    요즘엔 친구들이 놀린다고 풀죽어 들어올 때도 있어서, 걱정이 되네요.
    (가끔은 신랑이 아니라 울집 큰아들이에요. -.ㅠ )

  • 11. 열쩡
    '04.9.9 2:38 PM (220.118.xxx.2)

    근데 뱃살 그거 진짜 걱정되지 않나요?
    제 남편도 자꾸 배만나오네요...
    체력은 떨어지는거 같은데..
    배나왔다고 힘이 넘치고 건강하다는건 아니니깐
    예정대로 그냥 보약지어주셔도 될거같아요

  • 12. 미가입
    '04.9.9 3:52 PM (192.33.xxx.39)

    그렇게 보약을 좋아하시는 분이시라면 정신적인 효과가 있을 거예요.
    가벼운 거 한 재 해드리세요. (녹용,,,이런 거 들어간 거 말구요, 싼 거,,)

  • 13. teresah
    '04.9.9 4:36 PM (218.237.xxx.87)

    시어머님 말씀이 넘 우껴요
    개소주와 홍삼 ㅋㅋ

  • 14. 리틀 세실리아
    '04.9.9 5:03 PM (210.118.xxx.2)

    저도 운동에 한표!!
    울 신랑도 점점 나오는 뱃살의 압박!(물론 저도 만만치 않치만)
    휘트니스에서 나이드셔도 열심히 운동하셔서 탄탄 근육과 날렵한 몸선을 보이시는
    남정네들 보면 정말이지 너무나 멋져 보인다죠!
    탄탄근육 남편 만들고싶은데..흐흐흑. 자꾸만 멀어져만 가네여...

  • 15. 레몬트리
    '04.9.9 6:18 PM (211.225.xxx.216)

    합리적으로 생각해본다면야.. 비타민.영양제..그리고 운동이겠지마는
    저는 마음을 들여다보라고 권해드리고 싶네요.
    배가 나오고, 술잘마시고 늦게들어오고, 간혹 성질더럽게 굴고, 충치도 있고, 화나면 말도 더듬고, 담배도 줄창피워대지만,전 울 남편이 좋거든요. (이렇게 쓰면 돌맞는다면서요?) ^ㅠ^
    그래도 다른 잘난 남편하고 바꾸고 싶지는 않아요.(흑흑.사실 얄미울땐 버리고 싶기도 해요 ^^;;)
    이게 왠 뚱딴지 같은 소리냐면요.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윗분들이 지적해주신게 맞지만,
    남편이 원하고 좋아하는데... 남자들은 간혹 어린애같은 구석이 있어서.
    아내가 하는일이 돈덜들고 몸에도 더 좋은데도, 안들을때가 있거든요.

    저희집도 그래요.
    영양제 알약하나 챙겨주는거 보다. 한약 한봉지 주는걸 더 기쁘게 생각하면서 먹거든요.
    사실 영양제를 더 비싼걸 줄때도 있는데 말이죠.
    남편이 그렇게나 부러워한다면...
    한약을 한재 지어드리지 그러세요?
    그리고 "쉿~ 어머님께는 비밀이야..알지?.. 그런데 말야 ,,사실은 이것보다 운동을 하면 더 좋을것 같은데..당신생각은 어때? 난 당신 배나온게 더 걱정되거든.. 난 우리애기랑 나랑 당신이랑 건강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 이렇게 말하면 남편이 더 좋아하지 않을까요?

    한약먹는거 부러워하는 남편이라면, 남편의 마음에 보약을 지어드리는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요? 물론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은 들지 않더라도말입니다.

  • 16. 김혜경
    '04.9.9 9:26 PM (211.215.xxx.92)

    반갑습니다...자주 뵈요...

  • 17. 에드
    '04.9.10 9:37 AM (203.255.xxx.19)

    에구~ 얘기를 하다보니 신랑이 넘넘 철없어 보이게 썼네요.
    사실 속깊고 좋은 사람인데.. ^^;;
    사실은 저도 레몬트리님 얘기처럼, 그냥 지어주고 싶어요.
    우리 신랑이 원한다면, 뭘 못해주겠어요.
    하지만 신랑이 원하는 것이 보약인지..
    저의 관심과 애정인지를 잘 몰라서리.. 조금만 더 생각해볼려구요.
    다들 얘기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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