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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갑자기 할머니가 되어버린 울엄마 ㅠ.ㅜ
조원영 조회수 : 744
작성일 : 2004-08-10 13:20:19
>6개월 전 결혼하고 결혼 다음다음날 신랑따라 미국에 왔습니다.
>떠나기 전에는 결혼 준비다 뭐다 해서 부모님이랑 떨어져서, 특히 울엄마랑 뚝 떨어져서 살아가야 한다는것에 대해 별로 생각할 겨를도 없었는데 결혼식날 폐백 하면서 시댁 식구들 다 끝난후 울 엄마아빠한테 절하는데 왜그렇게 눈물이 나던지요...
>
>울 엄마는 저랑 너무 달라서 주위에서 '걸어다니는 윤리교과서'라고들 합니다.
>30년 넘게 신념을 가지고교사 하시면서 다분히 가부장 적인 아버지랑 사시면서 '지는게 이기는거다.' , ' 나보다 못해보이는 사람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 등등 철없고 못되고 욕심 많은 저로서는 절대 공감할 수 없는 생각을 가지고 학교일 집안일 혼자 다 하시면서 성실하게 사셨지요. 제가 보기엔 참기만 하고 엄살 부릴줄도 모르고 당신에게는 돈쓸줄 잘 모르는 엄마가 너무 답답했었나 봅니다.
>
>흔히 딸들이랑 엄마랑 꼴보기 싫은 사람 흉도 보고 하던데 저는 제가 밖에 나가서 만났던 싫은 사람 흉보면 '그 사람을 보고 그러지 말아야 겠다는 점을 배우렴...' 이러시는 울 엄마가 철없던 시절 얼마나 답답하게 느껴졌는지요... 반항도 했지요. " 엄마처럼 살면 본인만 힘들어. 찾을건 찾아가면서 살아야지. 난 안참고 살거야!" 하면서요...
>
>결혼식 다음다음날 공항에서 출국심사하러 들어가는데 끝까지 참고있던 눈물이 비행기타고 한참을 멈추질 않더군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이 있지만 이제는 더이상 평생 내 방패막이자 해결사였던 엄마 품을 벗어난다는 생각에 갑자기 아무도 없는것 같고 끝없이 불안하기만 하고...
>
>어찌어찌 미국에 와서 적응하고 집 정리하고 이제는 미국생활에 꽤 적응이 되어서 나름 재미도 있습니다. 그러다 6개월만에 부모님이 오셨답니다.
>
>직장생활을 오래 하셔서인지 울 엄마는 연세보다 젊어보이신다고 항상 생각해 왔었습니다.
>맨날 안경에 화장도 별로 안하셔도 피부도 좋았고 옷도 비싼건 아니어도 센스있게 입으셨고 결혼식날 안경 벗고 곱게 화장한 울 엄마는 너무나 인자하고 예뻤거든요...
>
>처음 엄마를 딱 만났을때 드는생각... 갑자기 울 엄마가 할머니가 되어버렸네... 머리는 하얗고 얼굴에 주름살도 많고... 저 시집 보내고 갑자기 늙으신것 같습니다. 10년 키우던 강아지도 얼마전에 죽고 이사도 하시고 이래저래 힘드셨나봐요. ㅠ.ㅜ
>나중에 보니 엄마 귀에는 솜이 틀어막혀져 있었습니다. 원래 중이염이 있었는데 비행기 타는날 갑자기 심해져서 병원에서 약만 처방받고 오셨다는겁니다. 귀에서 고름이 날 정도면 통증도 심할텐데 울엄마 아프단 얘기 한마디도 안하고 그냥 약하고 타이레놀만 드셨습니다.
>
>다음다음날 아침 차리는중 갑자기 싱크대에 피가 흥건히 묻어서 깜짝 놀라서 봤더니 엄마가 김 자르시다가 가위로 손가락을 베이신 겁니다. 너무 놀라 있는데 수건으로 손가락을 계속 누르고 있어도 지혈이 되지 않아서 이멀전시를 가자고 해도 조금 있음 괜찮을거라 하십니다. 신랑이 얼른 나가서 지혈제랑 붕대랑 등등을 사왔습니다. 지혈제 두개 뿌리니 피가 멎더군요...
>병원가자해도 - 사실 저희도 미국와서 병원 한번도 안가봐서 신랑이 아는사람한테 물어보려고 전화를 계속하는데 그날따라 그분은 전화도 안받고 발만 동동 굴렀지요. - 엄마는 피 멎었으니 괜찮다고 좀 있어보자고...
>
>미국 의료비가 정말 엄청나게 비쌉니다... 한 두바늘 꼬매는데 천 몇백불이라 하더군요. 엄마아빠 부담스러우실까 억지로 모시고 가지도 못하고... - 정말 돈 많았음 좋겠더군요. ㅠ.ㅜ 신랑이랑 저랑 가슴만 쳐댔습니다. 한심하게... 나쁘죠? ㅠ.ㅜ
>소독해 드리고 약바르고 응급 조치 해드리고 담날 아는 레지던트 언니가 다행히 보셨는데 처음에 꽤맸으면 상처가 좀더 빨리 아물었겠지만 근육은 안다쳤으니 괜찮다고. 소독 자주 해 드리라고...
>암튼 엄마한테 농담삼아 한마디 했죠. 왜 김은 안자르고 손가락 잘랐냐고... 울 엄마 '그러게..' 하며 웃습니다.
>주말 끝나고 내과라도 가서 항생제 처방이라도 받을까 하는 생각에 여기에 있는 한인 병원에 다 전화 해봐도 새 환자는 당장 안받는다고 냉랭한 말만 하고...
>첫날밤엔 할머니가 되버린 엄마가 안쓰러워서 혼자 울고 셋째날 밤엔 아퍼도 아프다 말 안하시는 미련할 정도로 참기만 하는 엄마가 속상해서 울고 넷째날엔 당신 가방 하나 사라해도 안사시고 비싼거 사드릴 형편은 안되고 40불 짜리 가방하나 싫다는 엄마한테 억지로 사드린 내가 속상해서, 시집가서 조금이나마 살아보니까 같은 여자로서 엄마가 안쓰러워서 울었습니다. 가방 사드린다고 뭐라 하는것 도 아니고 아무소리도 안하는 착한 신랑인데 눈치는 왜 보이는건지... 시집가면 이러면서 철드는 건가요...
>
>우여 곡절 끝에 보스턴 관광도 같이하고 맛있는것도 먹고 - 저희가 돈낸건 한번밖에 없습니다. 엄청나게 받기만 했지요. ㅠ.ㅜ 시부모님 오셨을때와 마찬가지로... - 저 영어배우러 가는날은 엄마 아빠 두분이서 뮤지엄도 다녀오시고 또 여기 결혼안한 친한 언니들 엄마가 잡채며 찌개며 해서 먹이고 알차게 6일을 보냈답니다. 부모님이 뉴욕에서 떠나셔서 이참에 신랑이랑 저도 같이가서 뉴욕 구경도 했지요. 뉴욕에서 하루 있다보니 너무 아쉬워서 부모님 떠나신후 신랑이랑 저는 하루를 더 머무르기로 했답니다.
>
>출발 시간이 되어 뉴욕 32번가로 여행사에서 픽업을 나왔습니다. 엄마한테 가자마자 병원 가시라 하고 약 잘 챙겨드시고 몸좀 생각하라고... 엄마아빠 차에 타시는데 안그럴려고 했는데 또 눈물이 마구 나더군요. 차가 막혀서 차가 안 움직이는데 갑자기 엄마 소독연고 안드린게 생각나서 연고랑 밴드랑 챙겨서 차문 두드리고 드렸더니 엄마 눈도 역시나 새빨개져있습니다. 더 서있을수가 없어서 간다고 하고 걸어 나왔습니다.
>
>부모님 태운 차가 지나갈 도로 옆에 서있으니 역시나 아빠엄마가 지나가면서 쳐다보시더군요. 마지막으로 인사한번 하고...
>
>또한번 느꼈습니다. 처음 미국가는 비행기 탈때의 횅한 느낌...
>번화한 뉴욕의 거리에 또한번 주위에 아무도 없는것 같더군요...
>
>철인이었던 엄마가 갑자기 몸이 너무 약해지셔서 이번엔 더 맘이 아팠나 봅니다. 돈 많이 벌어서 엄마한테 좋은거 많이 사드려야 겠습니다. 아빠한텐 맛있는거 많이 사드리고요... 친정 부모님 오시고 나니 오히려 시부모님께도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랑도 부모님한테 이렇게 짠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저 철들고 있는거 맞나요? ^^;;
>
>전화해서 엄마한테 잔소리 또 해야겠네요.
>몸 좀 챙기시라고......
>
IP : 205.188.xxx.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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