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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할머니가 되어버린 울엄마 ㅠ.ㅜ

뽀로리~ 조회수 : 1,350
작성일 : 2004-08-10 01:07:30
6개월 전 결혼하고 결혼 다음다음날 신랑따라 미국에 왔습니다.
떠나기 전에는 결혼 준비다 뭐다 해서 부모님이랑 떨어져서, 특히 울엄마랑 뚝 떨어져서 살아가야 한다는것에 대해 별로 생각할 겨를도 없었는데 결혼식날 폐백 하면서 시댁 식구들 다 끝난후 울 엄마아빠한테 절하는데 왜그렇게 눈물이 나던지요...

울 엄마는 저랑 너무 달라서 주위에서 '걸어다니는 윤리교과서'라고들 합니다.  
30년 넘게 신념을 가지고교사 하시면서 다분히 가부장 적인 아버지랑 사시면서 '지는게 이기는거다.' , ' 나보다 못해보이는  사람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 등등 철없고 못되고 욕심 많은 저로서는 절대 공감할 수 없는 생각을 가지고 학교일 집안일 혼자 다 하시면서 성실하게 사셨지요.   제가 보기엔 참기만 하고 엄살 부릴줄도 모르고 당신에게는 돈쓸줄 잘 모르는 엄마가 너무 답답했었나 봅니다.

흔히 딸들이랑 엄마랑 꼴보기 싫은 사람 흉도 보고 하던데 저는 제가 밖에 나가서 만났던 싫은 사람 흉보면 '그 사람을 보고 그러지 말아야 겠다는 점을 배우렴...' 이러시는 울 엄마가 철없던 시절 얼마나 답답하게 느껴졌는지요...  반항도 했지요.  " 엄마처럼 살면 본인만 힘들어.  찾을건 찾아가면서 살아야지.  난 안참고 살거야!" 하면서요...

결혼식 다음다음날 공항에서 출국심사하러 들어가는데 끝까지 참고있던 눈물이 비행기타고 한참을 멈추질 않더군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이 있지만 이제는 더이상 평생 내 방패막이자 해결사였던 엄마 품을 벗어난다는 생각에 갑자기 아무도 없는것 같고 끝없이 불안하기만 하고...  

어찌어찌 미국에 와서 적응하고 집 정리하고 이제는 미국생활에 꽤 적응이 되어서 나름 재미도 있습니다.  그러다 6개월만에 부모님이 오셨답니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셔서인지 울 엄마는 연세보다 젊어보이신다고 항상 생각해 왔었습니다.  
맨날 안경에 화장도 별로 안하셔도 피부도 좋았고 옷도 비싼건 아니어도 센스있게 입으셨고 결혼식날 안경 벗고 곱게 화장한 울 엄마는 너무나 인자하고 예뻤거든요...

처음 엄마를 딱 만났을때 드는생각...  갑자기 울 엄마가 할머니가 되어버렸네...  머리는 하얗고 얼굴에 주름살도 많고... 저 시집 보내고 갑자기 늙으신것 같습니다.  10년 키우던 강아지도 얼마전에 죽고 이사도 하시고 이래저래 힘드셨나봐요.  ㅠ.ㅜ
나중에 보니 엄마 귀에는 솜이 틀어막혀져 있었습니다.  원래 중이염이 있었는데 비행기 타는날 갑자기 심해져서 병원에서 약만 처방받고 오셨다는겁니다.  귀에서 고름이 날 정도면 통증도 심할텐데 울엄마 아프단 얘기 한마디도 안하고 그냥 약하고 타이레놀만 드셨습니다.

다음다음날 아침 차리는중  갑자기 싱크대에 피가 흥건히 묻어서 깜짝 놀라서 봤더니 엄마가 김 자르시다가 가위로 손가락을 베이신 겁니다.  너무 놀라 있는데 수건으로 손가락을 계속 누르고 있어도 지혈이 되지 않아서 이멀전시를 가자고 해도 조금 있음 괜찮을거라 하십니다.  신랑이 얼른 나가서 지혈제랑 붕대랑 등등을 사왔습니다.  지혈제 두개 뿌리니 피가 멎더군요...
병원가자해도 - 사실 저희도 미국와서 병원 한번도 안가봐서 신랑이 아는사람한테 물어보려고 전화를 계속하는데 그날따라 그분은 전화도 안받고 발만 동동 굴렀지요. - 엄마는 피 멎었으니 괜찮다고 좀 있어보자고...

미국 의료비가 정말 엄청나게 비쌉니다...  한 두바늘 꼬매는데 천 몇백불이라 하더군요.  엄마아빠 부담스러우실까 억지로 모시고 가지도 못하고...  - 정말 돈 많았음 좋겠더군요. ㅠ.ㅜ  신랑이랑 저랑 가슴만 쳐댔습니다.  한심하게...  나쁘죠? ㅠ.ㅜ
소독해 드리고 약바르고 응급 조치 해드리고 담날 아는 레지던트 언니가 다행히 보셨는데 처음에 꽤맸으면 상처가 좀더 빨리 아물었겠지만 근육은 안다쳤으니 괜찮다고. 소독 자주 해 드리라고...  
암튼 엄마한테 농담삼아 한마디 했죠.  왜 김은 안자르고 손가락 잘랐냐고...  울 엄마 '그러게..' 하며 웃습니다.  
주말 끝나고 내과라도 가서 항생제 처방이라도 받을까 하는 생각에 여기에 있는 한인 병원에 다 전화 해봐도 새 환자는 당장 안받는다고 냉랭한 말만 하고...    
첫날밤엔 할머니가 되버린 엄마가 안쓰러워서 혼자 울고 셋째날 밤엔 아퍼도 아프다 말 안하시는 미련할 정도로 참기만 하는 엄마가 속상해서 울고 넷째날엔 당신 가방 하나 사라해도 안사시고  비싼거 사드릴 형편은 안되고 40불 짜리 가방하나 싫다는 엄마한테 억지로 사드린 내가 속상해서, 시집가서 조금이나마 살아보니까 같은 여자로서 엄마가 안쓰러워서 울었습니다.   가방 사드린다고 뭐라 하는것 도 아니고 아무소리도 안하는 착한 신랑인데 눈치는 왜 보이는건지...   시집가면 이러면서 철드는 건가요...

우여 곡절 끝에 보스턴 관광도 같이하고 맛있는것도 먹고 - 저희가 돈낸건 한번밖에 없습니다.  엄청나게 받기만 했지요.  ㅠ.ㅜ 시부모님 오셨을때와 마찬가지로...   - 저 영어배우러 가는날은 엄마 아빠 두분이서 뮤지엄도 다녀오시고 또 여기 결혼안한 친한 언니들 엄마가 잡채며 찌개며 해서 먹이고 알차게 6일을 보냈답니다.  부모님이 뉴욕에서 떠나셔서 이참에 신랑이랑 저도 같이가서 뉴욕 구경도 했지요.  뉴욕에서 하루 있다보니 너무 아쉬워서 부모님 떠나신후 신랑이랑 저는 하루를 더 머무르기로 했답니다.

출발 시간이 되어 뉴욕 32번가로 여행사에서 픽업을 나왔습니다.  엄마한테 가자마자 병원 가시라 하고 약 잘 챙겨드시고 몸좀 생각하라고...  엄마아빠 차에 타시는데 안그럴려고 했는데 또 눈물이 마구 나더군요.  차가 막혀서 차가 안 움직이는데 갑자기 엄마 소독연고 안드린게 생각나서 연고랑 밴드랑 챙겨서 차문 두드리고 드렸더니 엄마 눈도 역시나 새빨개져있습니다.   더 서있을수가 없어서 간다고 하고 걸어 나왔습니다.  

부모님 태운 차가 지나갈 도로 옆에 서있으니 역시나 아빠엄마가 지나가면서 쳐다보시더군요.  마지막으로 인사한번 하고...  

또한번 느꼈습니다.  처음 미국가는 비행기 탈때의 횅한 느낌...  
번화한 뉴욕의 거리에 또한번 주위에 아무도 없는것 같더군요...

철인이었던 엄마가 갑자기 몸이 너무 약해지셔서 이번엔 더 맘이 아팠나 봅니다.  돈 많이 벌어서 엄마한테 좋은거 많이 사드려야 겠습니다.  아빠한텐 맛있는거 많이 사드리고요...   친정 부모님 오시고 나니 오히려 시부모님께도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랑도 부모님한테 이렇게 짠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저 철들고 있는거 맞나요?  ^^;;

전화해서 엄마한테 잔소리 또 해야겠네요.  
몸 좀 챙기시라고......  
IP : 65.96.xxx.1
1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이옥희
    '04.8.10 2:08 AM (211.235.xxx.83)

    참 많이 속상하셨겠내요.
    엄마가 언제 그렇게 늙어버렸는지...... 저도 그랬답니다.
    마음은 있는데 다 하지 못하고 나 바쁜것 지나고 전화해야지 하면서 미뤄대고,,,

    엄마~~~ 사랑해.
    내 맘 알지?

  • 2. Ellie
    '04.8.10 2:57 AM (24.162.xxx.174)

    제가 왜이렇게 눈물이 날까요..
    우리엄마 주름의 80%는 제가 만든 걸거에요...
    우리엄마도 워낙 낙천 적이신 분이라 내색 안하시지만, 속상한일 딥따 많았거든요.
    어휴.. 빨랑 졸업을 해야 효도를 할테인데..
    이래저래 저는 나쁜 아이 입니다..ㅠ.ㅠ

  • 3. Ellie
    '04.8.10 2:58 AM (24.162.xxx.174)

    압. 하나 빠져먹은말.
    뽀로리~ 님이 어머니 사랑하시는 마음.. 너무 너무 듬뿍 담겨 있는 글이에요~~ *^^*

  • 4. 솜사탕
    '04.8.10 3:46 AM (18.97.xxx.211)

    뽀로리님.. 저두 눈물이.. ㅠ.ㅠ
    엄마가 그냥.. 일시적으로 늙어보이시는걸꺼에요.. 화장하고 머리하고 그냥 그래서요..
    울 엄마도 저 여기 오자마자 나중에 보내주신 사진이 왜 이리 할머니 같으신지...
    그런데, 지금은 또 안그래요.. 훨씬 더 세련되고 젊어지셨어요.

    엄마에게 그 얘기 하니까.. 미장원에서 머리를 잘못해서 그래.. 그러시더라구요.

    저는 아빠가 많이 이래저래.. 편찮으셔서 참 속이 상했는데....
    이번에 오셨을땐 아빠가 많이 기대를 하고(여기저기 자동차 여행) 몸도 힘들고
    시간도 없을때 겨우 내서 오셨던것 같은데... 제가 갑자기 결혼도 하고 그러느라
    그냥 일주일만 머무시고 휑하니 가셨었어요. 가지 말라는 소리두 못드리구..
    저두 어찌나 오랫동안 맘이 편치 않았던지.. ㅠ.ㅠ

    부모 자식간은.. 이렇게 항상 애타는 마음으로 살아가는건가 봐요..

  • 5. 김혜경
    '04.8.10 7:27 AM (211.201.xxx.51)

    조모상이니 꼭 가야 하는 자리는 아니지만,
    단지 제일 가까이 사는 제가 못간다고 하니 (이유야 어떻든 전적?도 두 번 있고)
    그게 많이 미안한 건데...

    문자 말고 전화로 말해야겠어요. 진심으로 미안해 하면서..
    (다들 감사해요)

  • 6. 소금별
    '04.8.10 9:33 AM (211.203.xxx.186)

    엄마의 모습... 나약해지신 모습.. 가슴아프지요..
    왜 엄마들은 자신을 돌보는 일엔 그리고 약하신지..
    저는 절대로 그런엄마 안되고.. 조금은 뻔뻔하고, 잘난척두 하는 그런엄마가 되어야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만, 쉽지가 않습니다..
    2살배기 아들녀석한테두 꼼짝하지 못하는 내모습이라니..

  • 7. 쌍봉낙타
    '04.8.10 9:36 AM (221.155.xxx.53)

    나도 눈물이...
    우리 엄마도 예전에 오시면 바리바리 싸들고 오시고 오자말자 '시장 가자' 그러셨죠,
    엄마 왔다가면 한 달 동안 시장 안가도 됐을 정도였는 데.
    몸이 안좋아서 딱 두번 오시고...

  • 8. 체리공쥬
    '04.8.10 10:07 AM (210.90.xxx.177)

    갑자기 저도 눈물이....
    지방사시는 부모님 오실때마다 먹지도 못할 분량의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셔셔
    무거운데 왜 들고 오시냐고, 다 먹지도 못하고 버릴텐데 들고 오셨다고 화내고 그랬는데..
    이글을 읽고나니 갑자기 죄송함이 물밀듯이 밀려들면서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저도 시집가면 철좀 들까요?

  • 9. 샘솔양
    '04.8.10 12:02 PM (130.126.xxx.33)

    저랑 똑같으시군요. 저도 작년에 결혼하고 바로 유학나왔거든요. 공항에서 짐이 무게를 초과해서 다풀어헤치고..뭐하고 하느라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리고 떠나왔거든요.
    올 여름에 시부모님이랑 아가씨 두 명이 왔다 갔지요..캘리포니아 일대를 여행하면서 나름 재미있기도 하고..힘들기도 하구요.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친정 부모님이랑 동생들 생각나서 가슴 아프더라구요. 시댁편에 큰 박스하나를 보내셨는데 여러보니 제가 한국에서 입에 물고 살던 쟈일리톨까지 보내셨더라구요. 동생은 공부하는 그 바쁜 와중에 편지도 넣어놨구..시어머님은 껌을 보시더니 뭐 그런 것까지 싸서 보내냐..고 웃으셨는데 전 눈물이 핑돌았습니다. 제가 전화하면서 이제 자일리톨 같은 거 안 사먹는다..1불이 아까워서 커피도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구 그랬더니 보내셨드라구요. 동생들이 고시 공부중이라..못 오시고 계신데..언제나 오실런지.. 오시면 밥이랑 반찬이랑 다 제가 해드리고 아무것도 못하시게 막으려구요...정말 효도해야 할텐데..아들도 없는 집의 딸 셋중 맏딸이..이러고 있네요..

  • 10. 뽀로리~
    '04.8.10 12:41 PM (65.96.xxx.1)

    앗! 샘솔양님. 저도 그랬어요.. 이민가방 큰거로 네개였는데 그중 두개가 무게 초과해서 공항 한바닥에서 풀어헤치고 하느라 진짜 정신없었죠... ㅠ.ㅜ
    저는 이번에 오시는 엄마가 필요한거 말하라 그러시기에 평소 사기 힘들었던거 다 말했었답니다. 자일리톨과 케라시스 헤어앰플 까지요... 제가 부탁한거 한개도 안 빼놓고 다 사다 주셨다지요. ㅠ.ㅜ
    우리 다같이 친정 부모님께 잘하자구요~~~~

    혜경선생님.
    제가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혜경선생님과 울 엄마 반반씩 닮은 사람이 되는게 소망이랍니다. 감사해요....

  • 11. 반달곰
    '04.8.14 12:17 AM (24.63.xxx.218)

    뽀로리님...저도 한국에 계신 엄마생각나서 아직도 가끔 눈물고이는데....뽀로리님이 그런 맘 너무 잘 표현해주신것 같아요. 자주 전화라도 드린다 하면서도..그러지도 못하고....맘이 찡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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