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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육아상담

동경미 조회수 : 754
작성일 : 2004-07-30 14:14:18
진서어머니,


첫아이 키우기 참 힘들지요.
저도 첫 아이를 기르면서 정말 많은 부분에 실수하고 좌절한 엄마거든요. 그런데, 밑으로 세 아이들이 더 태어나면서 돌이켜보면 내가 그렇게 밤낮으로 고민하며 힘들어했던 많은 부분들이 기우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큰 아이도 제가 일을 하느라고 돐도 안되어서부터 남의 손에 맡기고, 돐이 갓 지나서는 두어 달은 직장에서의 연수 때문에 떨어져있기도 했어요. 그 이후에도 제손으로 돌본 시간이 길지 않았어요. 그때는 그저 아이가 보고싶을 때에 눈물 한두 방울 흘리는 정도였고, 아이가 아직 어리니 무슨 영향을 받으랴 싶었는데 아이가 자라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물론 떨어져있는 동안 아이는 아빠와 할머니가 돌보아주셨고 별다르게 칭얼대지도 않았다고 했어요.

유치원 갈 정도가 되니 진서처럼 무엇하나 제대로 되지 않으면 화도 많이 내고 엄마가 잠시 외출이라도 하면 쉴 새 없이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고 통하가 안되면 불안해하고 메세지도 수없이 남기고...
한마디로 '분리불안(separation anxiety)' 증세였어요. 저는 그때 진서어머니처럼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도 못가보는 무지한 엄마였어요, 아이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야단도 쳐보고 달래보기도 하고 자책도 해보고...힘들었던 시간이었어요.

지금 그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인데 많이 좋아졌답니다. 어려서는 사교성도 많이 부족하고 친구도 넓게 사귀지 못하고 한 아이에게만 집착하고 공부나 학교 외에 다른 활동에 관심도 그다지 없어보이고 해서 걱정을 많이 했었거든요. 지금은 오히려 친구를 너무 좋아하고 너무 털털한 성격이 되어서 새로운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동안 저도 많이 공부하고 노력을 했어요. 저도 일을 하다보니 많은 시간을 할애하진 못하더라도 아이가 보기에도 엄마가 자기를 우선순위에 놓는다는 느낌을 주려고 애를 썼어요. 일대일 데이트를 엄마와 아빠가 번갈아가며 하기도 했고, 아이와 함께 교환일기도 쓰면서 아이의 생각을 알아가게 되었지요.

진서도 물론 유아기의 분리불안이 아직 다 해소되지 않아 여러가지 걱정이 있으시겠지만 아이들이 자라가면서 정말 많은 변화들이 있거든요. 다른 아이들이라고 다른 문제들이 없이 자라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제가 볼 때에는 엄마들이 느끼시던 아니던간에 아이들마다 한 두가지씩의 문제들을 가지지 않은 아이들은 한 아이도 없답니다. 왜냐하면 저를 포함해서 엄마들 모두가 인간이고 우리 모두가 완벽하질 못하잖아요. 최선을 다하는 정도는 다를 수도 있지만 아이의 욕구를 완벽하게 채워줄 수는 없답니다. 엄마 아빠가 아이의 욕구와 불안을 완벽에 가깝게 해소시켜줄 수 있다면 최상이겠지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들도 성정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힘으로 부족함을 메꾸고 극복하는 기술을 배워야 하지요.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결핍되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가 아니라 그 결핍을 잘 수용하고 해결해가는 능력을 얼마나 잘 길러주는가 입니다. 진서가 분리불안이 있다는 것에 너무 마음을 두지 마세요. 엄마가 그 문제에 자꾸 집착하고 자책하는 마음이 많을수록 아이는 그것을 느낀답니다. 그래서 그 부분을 더 자극하려고 하기도 하고요. 아무리 어린 아이도(생후 5,6 개월) 엄마의 마음에 가장 약한 부분을 잘 알아낸대요.
아이가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면 다행이고 좋은 일이에요. 초등학교 1학년인데도 학교 생활에서 행동 및 감정의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답니다(우리 세째가 초등학교 1학년이거든요).

우선 아이가 지금 제대로 못하는 것, 아니 바꿔 얘기한다면 엄마가 보기에 아이가 잘 못한다고 보이는 부분에서 눈을 떼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부분은 아이가 점점 자라나면서 조금씩 발전해갈 부분이거든요. 다른 아이들은 지금 그 부분이 다 되어있는 것처럼 보여 조바심이 날 수도 있지만 아이들마다의 속도가 다르거든요. 그 부분이 다 되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의 엄마들은 아마 다른 부분이 안되어 걱정하고 있을겁니다(진서는 아마도 그 부분들이 먼저 이루어졌을 수도 있고요). 만일 주변에서 자기 아이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 걱정이 없다는 엄마가 있다면 자기 아이를 잘 모르는 엄마이거나 자기 아이의 문제를 터놓고 말하고 싶지 않은 엄마에요.

아이가 발레 등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아마도 그것은 아이가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을 엄마가 권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거든요. 저도 저희집 세 딸들을 강제로(?) 발레를 시키려고 애를 쓰다가 포기한 엄마에요. 나는 멋있고 좋아보이고 분명히 아이에게 도움이 될 것같은데...아이가 싫어하니 별 수 없더라구요. 대신 저는 많은 것을 돌아가며 시켜보면서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찾게 도와주었어요. 한 달만 다녀보고 싫으면 그때 새로 생각하자고요. 발레, 야구, 미술, 체스, 탭 댄스, 피아노, 바이얼린, 걸스카웃, 한국무용, 태권도...모두 한달 씩은 다 다녀보았답니다. 이것저것 다 경험하더니 큰 아이는 피아노와 미술(정적인 것), 둘째는 태권도와 한국무용(운동), 세째는 발레(여성스러운 요소가 많은 것) 등으로 추려지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한다면 아무 것도 안해도 무방하다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다른 아이들이 다 과외활동을 한다고 내 아이도 반드시 해야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과외활동을 해야만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한다는 것도 아니고요. 아이의 특기를 찾아내는 과정일 뿐이지 그게 아이의 성격형성에 치명적인 것은 아니랍니다. 아직 1학년이니까 시간이 많아요.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놀고 싶다고 하면 그냥 놀리세요.

제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나올 때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 교장선생님이 작별인사를 하면서 제 손을 꼭 붙들고 신신당부를 하셨어요. 동양권 나라들이 아이들 공부를 너무 많이 시킨다던데 제발 하루에 세시간씩은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제 마음대로 놀게 해야 한다고요. 한국에서 아이를 기르면서 하루에 세시간씩 놀린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지만 그게 얼마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인지 몰라요. 요즘 아이들은 노는 시간이 너무 없잖아요. 놀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해서 정서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한국에서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지요. 진서어머니도 병원에 가 보셔서 아시겠지만, 아이들 정신치료는 대부분이 놀이치료거든요. 그만큼 놀이가 중요하지요.

진서가 아무 것에도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그냥 여름 동안만이라도 놀리세요. 자기 마음대로 아무 거나 하고 놀게 하세요. 저는 저희 아이들과 날마다 더운데 피아노 학원 하루 쉬라고 하고, 아이들은 꼭 가야한다고 하고 그런답니다. 엄마가 채근을 할수록 아이들은 반대방향으로 가는 것같아요.

두서없이 길어졌네요. 건강한 여름 보내세요.



IP : 221.147.xxx.89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파스텔
    '04.7.30 3:33 PM (211.211.xxx.217)

    동경미님의 말씀, 늘 감사드립니다.
    저의 큰 아이도 무척 예민하고 짜증이 많고 잘 아파서 참 키우기 힘들답니다.
    아이가 " 제대로 못 하는 것에서 눈을 떼는 것 " 명심하겠습니다.
    아이를 하나님이 주신 선물 그대로 받아들이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드립니다.

  • 2. 조용필팬
    '04.8.1 12:19 AM (210.117.xxx.104)

    동경미님의 말씀 늘 가슴 한쪽에서 되네이면서
    아이들에게 행동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오늘은 하루 3시간에 대해 저 나름대로 많은 반성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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