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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뚝뚝한 남편...

xingxing 조회수 : 1,337
작성일 : 2004-07-27 01:44:59
전에도 경상도 남편 얘기가 나왔었는데
오늘은 저도 남편 흉 좀 보렵니다.

봄에 엄마가 양념에도 쓰고 반찬하라고
텃밭에 심고 남는 고추모종을 하나 주셔서 베란다에 키웠는데,
그게 열리고 보니 꽈리고추지 뭡니까?
그래도 하루하루 자라는 재미에 물 주면서 바라만 보다가
오늘 아침에 드디어 수확(?)을 했어요.
열 댓 개 되는데 뭘 할까 하다가 멸치랑 볶아서 밑반찬 만들고 국도 끓이고
오전 시간 부지런 좀 떨면서 기특한 꽈리고추 덕분에 소박한 행복을 맛보는 중인데,
어쩐일로 남편의 전화가 왔습니다.
저희집 남자 안부전화, 귀가전화, 편지는 더더욱... 이런 것과는 담을 쌓은 사람입니다.
아직도 업무상 만나는 사람들에 어릴 적 친구까지 챙겨가며 폭넓은 인간관계를 자랑하는
평균 귀가 시간 새벽 2시... 우리집 하숙생이랍니다.

"아,,,출동 함 해야겠다."
아침마다 출근하는 뒤에 대고 "핸드폰", "지갑",,,
차례차례 꼭 불러주면서 챙겨줘야하는데, 뭘 또 잊고 안 가져갔나봐요.
애들 데리고 그냥 운전해서 쌩~하니 다녀올까 하다가,
오늘따라 왕복 한 시간 넘게 운전하기 싫고
시내 나가는 김에 은행이랑 큰 시장 들렀다오자 싶어서
친정에 애들 맡기고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갔답니다.

점심시간이라 조금 기다려주면 같이 밥 먹을 수도 있었지만,
월요일은 정신없이 바쁜 걸 알기에 쉬는 시간 빼앗기 싫어서
먼저 먹으라고 하고 12시 반 쯤 회사 로비에 도착했어요.
지하철에서 나와 얼마 걷지 않았는데도
날씨가 워낙 더우니 벌써 땀나고 얼굴에 열 오르는데,
에어콘 빵빵한 사무실에서 내려온 남편은 뽀샤샤한 얼굴로 걸어오더니,
필요한 것 받아들고는 딱~ 한 마디 했습니다.

"더.운.데...... 가.라.~!!!"

아~ 무뚝뚝하고 거의 30년 전 우리 아버지 같은 경상도 남편이랑 살면서
자상함이라든지 집안 일 이런 것 기대도 않고 그냥 그렇게 살아왔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순간 망치로 띵~ 맞은 듯 기가 막히는데, 화가 난다기 보다는 웃음이 나오더군요.
'그래도 그렇지 더운데 가라가 뭐냐~'고 했더니 그제서야 멋적은지
자판기 가리키면서 '뭐 하나 마실래?' 하더군요.
'그냥 갈란다~집에서 보자~' 하고는 그대로 헤어졌습니다.
집에서 보자고 했더니 오늘도 역시 시계는 2시를 향하고 있네요.

아마 '더운데'......'가라' 그 사이에는
'더운데 온다고 수고했다. 고맙다. 뭐라도 좀 마실래? 조심해서 가라~'
이 정도 내용이 들어있었으리라 믿어야겠죠?

IP : 222.97.xxx.129
1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junomi
    '04.7.27 2:09 AM (206.116.xxx.77)

    님의 너그러움에 항복입니다.
    역시 현명하신 분입니다.
    아마도 저라면
    "아이스크리므 안사줌 오늘 집에 못간데이. 내는 ...."
    했지 싶어집니다.

  • 2. ..
    '04.7.27 2:13 AM (219.248.xxx.237)

    항상 들어올때마다 많은걸 배웁니다
    원글님의 너그러움도
    junomi님의 애교스럼도 저에게 한수 가르쳐주네요
    감사합니다 ^^

  • 3. champlain
    '04.7.27 2:28 AM (69.194.xxx.234)

    남편분의 속 마음을 읽어내는 님의
    지혜로운 모습이 참 아릅답네요..^ ^

  • 4. 너무해
    '04.7.27 2:40 AM (210.124.xxx.203)

    그래도 좀 너무한거같네요 ..
    이 더운날씨에 남편분이 잊어버린걸 아내가 꼭 챙겨다줘야 하는지 ...
    아무리 무뚝뚝하다지만 사무실에서도 그럴까요 ?
    아내가 젤 편한 존재이긴 하지만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 무뚝뚝함은 고쳐지지 않겠네요 ..
    조금이라도 개선되도록 궁리를 해보세요 ..

  • 5. 개월이
    '04.7.27 8:55 AM (221.155.xxx.116)

    남편분도 눈있고 귀있으시니 다 아실꺼예요
    결혼 느므느무!!!!잘했다는거
    행복하신 분 입니다

  • 6. Adella
    '04.7.27 9:53 AM (210.117.xxx.206)

    정말 원글님 착하신것 같네요.
    그래도 표현하지않고 내 맘 알아주길 100년 기달겨도 안된다하니까, 담엔 음료수 사주신다하면, 돈 아까워도 커피숍(별다방 이런데 있잖아요..)가자해서, 아~좋다..하고 표현 만땅해주세요~
    남자고 여자고 무뚝뚝한사람들은 상대가 해주는거 늘 받아오던 사람들은 그걸 아~고마워라...하고 잘 못느낀답니다.

    junomi님~ ㅋㅋㅋ 재밌으시네요~

  • 7. 딸딸맘
    '04.7.27 10:25 AM (221.154.xxx.177)

    저두 여기 올라온 글들 읽으면서 위안이 되기도 하고 배우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님!! 저두 경상도 무뚝뚝한 남편땜에 항상 열받다가 혼자 제풀에 풀엇다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누가 경상도 남자랑 결혼한다 그러면 재미있게 알콩달콩 사는건 포기하려면 결혼해라! 그러고 싶어요..
    그러고 저는 아이가 3살, 5살인데 이제껏 제혼자 힘들엇지 남편이 아이들한테 해준개 암것도 없답니다. 가끔 생각하면 열받아요 오늘 아침두 아이들만 해서 먹이구 남편은 굼겻습니다, 얄미워서..
    다른남편들은 놀이터에서 아이들 졸졸 따라다니며 봐주고 놀아주고 하는데 저는 집에서나 밖에서너 항상 제가 해야 된답니다. 아후 그래도 님은 넓은 마음을 가지셧네여..저는 2틀에 한번씩 열받는답니다. 저렇게 와이프 위할줄도 모르는 사람한테 밥은 왜 해줘야 하나 싶구여..TT

  • 8. 무뚝뚝한 친정아버지
    '04.7.27 10:46 AM (220.126.xxx.168)

    저희 친정아버지 같으시네요. 저희 친정어머니께서 아버지 회사에 잠깐 들르면 주위 직원들이 뭐라그러는 것도 아닌데 괜히 더 무뚜뚝 하게 대하시고, 어디 여행가실때도 저희 삼남매를 어머니 혼자서 건사하시고 여기저기 다니시고 하셨어요. 그래서 늘 속상해 하셨는데,
    지금 생각하시면 그런 면도 있지만 저희 친정어머니 하시는 일에 일체 간섭이 없으시고, 믿어주셨어요. 설사 그 결과가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탓하지 않으시구요.
    저희 남편은 정말 간섭쟁이랍니다. 친정아버지완 정반대예요. 이럴땐 친정아버지 같은 남편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니까요.

  • 9. 소금별
    '04.7.27 10:49 AM (218.53.xxx.27)

    울신랑도 간섭쟁이죠..
    간섭만하지 도와주지는 않는..
    자기 필요할때만 어정쩡한 애교를 부리는 간, 섭, 쟁, 이...
    전라도 남자랍니다.

  • 10. 하루나
    '04.7.27 12:29 PM (61.73.xxx.164)

    음훼훼~윗글 '무뚝뚝한 친정아버님'글 찌찌뽕...그리고 소금별님도 뽕뽕~!..울남편도 왕간섭쟁이 전라도남편이랍니다.

    울친정아부지 천하의 둘도없는 갱상도사나이죠.. 울엄마는 맨날 혼자서 쑈한다고 투덜거리시고..그래도 말없이 엄마만 믿어주고 따라주시는거 보면 따뜻한 사랑이 솔솔 느껴져요.

    울남편...도 자기필요할때만 비비적거리고 결코 어울리지않는 애교로 더 화를 부르는...글고 엄청 간섭쟁이에요. 마트에가서도 이거 왜샤냐? 저거가 더 낫지 않냐? 울아빠가 알면 기절초풍할 일이죠...아빤 엄마랑 뭐사는거 절대 싫어하셨거든요. 남자가 자잘한 여자일에 간섭하면 뭐 떨어진다고요...

    휴...정말 온갖일에 참견하고 따지는 남편 덕택에 친정아부지가 오늘따라 더 보고 싶네요...잉잉...

  • 11. 헤스티아
    '04.7.28 1:09 AM (218.144.xxx.245)

    흐흐 제 남편도 대구 토박이에요.. 전 그냥.. 무뚝뚝하게 고맙다는 말도 안하고 넘어가려 하면, "이럴땐 이렇게 이야기하는거야"라고 하면서 따라하게 하는데요,, 옆구리 찔러서 듣는 이야기라도, 맘이 훨씬 나아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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