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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새

귀여운토끼 조회수 : 771
작성일 : 2004-07-02 08:46:01

으스름한 해거름과 낮과 어둠이 교차되는 흘수선이 끝없는 벌판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잔뜩 흐린 잿빛 하늘은 장맛비를 곧 퍼부을 듯 용틀임을 하고 있습니다.

허허벌판 한가운데 지하철 역사가 을씨년스럽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많아야 두 세명 내리는 고독한 사람 뒤를 따라 저도 내립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오십에서 백 개는 될 것 같은 계단을 올라가고 그만큼의 계단을 내려옵니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이런 분위기를 사랑합니다. 떠밀려 살아가는 것에 대한 저 나름대로의 최소한의 저항인지도 모릅니다. 한 두 정거장을 걸어 갈지언정 떠밀려 오르 내리기는 싫습니다.

제가 아는 화가 분은 검은 색과 약간의 어두운 색을 조화 시킨 누드화를 주로 그리십니다. 어두운 별아래나 어두운 해바라기 아래 검게 채색된 여인이 누워 있습니다. 어둠과 조화를 이룬 그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합니다.
검은색이 주는 수많은 말하지 않은 말이 시각화되어 그날 그날 기분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어 집니다. 그림과 시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가 저는 제 조그만 소망을 이야기 했습니다.
영혼을 온몸에 담고 있는 까마귀 그림을 그려 주면 그 위에 제 시를 남기고 싶다는 소망을 말했습니다.

86년도에 제가 살았던 곳은 이름만 포구인 **포라는 곳이었습니다.
저멀리서 비릿한 바다 내음과 파도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곳이지만 오래 전에 포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늙은이들의 어색한 주름살과 갯벌의 황량함만이 고독하게 펼쳐진 그런 곳이었습니다. 저는 주인 내외는 도회지로 떠나고 마당 한가운데도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난 버려진 집에서 젊음을 버리고 있었습니다. 미치도록 더럽게 여겨지는 삶의 무서운 욕망들을 공동 묘지나 버려진 집을 기웃거리며 달래고 있었습니다. 진한 풀내음과 쏟아지는 별빛에 취해 가슴은 휑한데 알 수 없는 눈물에 미친 사람처럼 가슴을 쥐어 뜯곤 했습니다.
어차피 가야 할 삶이고 그 끝이 죽음이라면 이런 고통스러운 시간에 죽어 버리고 싶다는 소망을 공동 묘지에게 조용히 이야기 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서글픈 청춘의 아픔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시를 쓰지 못하는 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항거였습니다.

참으로 우연이었습니다. 그날도 어둠이 내려 앉고 있는 갯벌을 바라보며 긴 둑길을 홀로 걷고 있을 때 였습니다. 저 멀리, 아니 어쩌면 가까운 곳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살아 있지만 죽어 있는 그를 발견 했습니다. 겨울 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 날이었지만 그는 꼼짝도 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어둠보다 더 진한 어둠으로 그렇게 있었습니다. 저는 움직일수가 없었습니다. 그 고독한 모습에 제가 앓고 있는 병은 사치스러운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천형처럼 다른 존재로부터 버림받고 죽은 듯, 한 곳에 머물러 삶을 이어가는 모습은 그동안 제가 갖고 있던 고독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얼마 동안을 그대로 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날 제 가슴으로 따뜻하게 자리잡은 고독한 어둠은 저에게 삶의 새로운 힘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참다운 고독은 슬퍼하거나 아파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가 느끼는 삶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화가 분은 제 마음을 아셨는지 조용히 웃기만 하셨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고독의 참된 의미를 자신이 느낄 때 그 그림을 그려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저도 그 그림 위에 어둠보다 조금 연한 색깔로 제 시를 담고 싶습니다. 아름다움과 행복만을 찾기에 길들여진 눈을, 어둠 속에서도 참된 어둠을 찾을 수 있는 눈을 갖도록 제 소망을 담은 그림위에 시를 적고 싶습니다.


    

        까마귀  


그냥 좋아하면 안되나
너무 예쁜 것만 있는 세상에서
아름답게만 보일려는 사람들
검은 빛의
너의 모습을 사랑하면 안되나

죄을 몰라 억눌린 가슴
불규칙한 심장 맥박만큼
돌이키기 어려운 추억들
너의 보이지 않은 눈동자가
원치 않은 숱한 이별을 말해준다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우리 앞에 주어진 운명같은 갈림 길
떠나지 못하고
망설이지 못하고
아파야만 하는 마음은 멍이 들어간다

IP : 211.57.xxx.2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제주도처녀
    '04.7.2 9:14 AM (211.228.xxx.112)

    "참다운 고독은 슬퍼하거나 아파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가 느끼는 삶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참으로 마음에 와닿는 글귀입니다. 님의 글은 늘 저를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좋은 글 계속 기다려도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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