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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香氣)
귀여운토끼 조회수 : 906
작성일 : 2004-06-07 10:24:20
"사람들은 저마다의 향기를 지닐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인위적인 향기는 없다. "
북적거리는 출근길 지하철은 우리들이 잠정적으로 요구하는 최소 사적인 공간을 무시합니다. 어깨나 다리가 닿는 것은 물론이고 가끔은 역겨운 입 냄새도 맡아야 합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기 싫다는 강박적인 신경의 예민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저는 병적으로 양치질을 합니다. 언젠가 치과에 가니까 의사 선생님이 제 잇몸은 과도한 칫솔질에 의해서 모두 헐었다고 합니다. 앞으로 조심해서 살살 하라고 당부했지만 제 뇌조직은 신체 조직의 요구를 항상 무시합니다.
오늘 아침 빈자리가 없는 지하철에 다리는 절룩거리고 호박 만한 보퉁이를 옆구리에 낀 노숙자 차림의 영감님 한 분이 타셨습니다. 출입문을 들어오는 것도 힘이 드는지 잠시 쉬면서 걷습니다. 저는 중간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모두들 힐끔 쳐다보고 잠을 자는 척, 책을 보는 척 합니다. 저도 일어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임에 저울질을 하고 있을 때 제 옆에 앉은 중년 아주머니가 일어납니다.
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코를 조심스럽게 막아도 영감님이 풍기는 역겨운 냄새는 참기가 힘들었습니다. 분명 언 몸을 녹이기 위해서 하루종일 지하철 순환을 하는 길이리라 생각됩니다. 웅크린 등이 활처럼 휘어지고 땟물에 절은 옷에서는 썩은 냄새가 났습니다.
일어나 그 냄새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을 거부하는 것은 그것 자체가 커다란 죄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향수로 뒤덤벅이 된 가식적인 냄새보다는 차라리 가난과 고통으로 어쩔 수 없이 몸에 남은 냄새가 덜 역겨울거라는 생각으로 긴 시간을 버텼습니다.그것은 치졸한 나의 자존심과의 싸움이기도 했습니다.
♠ 신향 (身香)
깨끗한 몸에서는 맑은 향기가 납니다. 진한 화장 냄새는 진실을 감추고 싶은 위선이 보여 싫지만 한 듯 만 듯한 엷은 화장은 자연의 향기와 섞여 황홀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향에 얽매어 평생 신향을 가꾸는데 보내지만 가끔은 그런 행동이 덧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 심향 (心香)
평생을 마음과 함께 살아도 가장 알 수 없는 것이 마음입니다. 프로이드는 마음을 이드, 에고, 슈퍼 에고로 나누었지만 강물보다 더 빠르게 흐르고 구름보다 더 자주 변하는 변덕스러운 마음을 어떻게 나눌 수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그러나 남을 배려하고 진심어린 위로의 말속에는 마음의 향기가 묻어 납니다.
♠ 문향 (文香)
제 남편에게 반한 것은 글 속의 향기 때문이었습니다. 만나지 못하고 편지로 사연을 주고 받았는데 그 글은 두고 두고 읽어도 싫지 않는 향기가 있었습니다. 함부로 쓰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소담스럽게 엮어 가는 글은 사람을 감동하게 합니다. 지금처럼 말의 홍수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기다림의 미학이 되기도 합니다. '글은 곧 그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글 속에 자신의 모습을 조심스럽게 담고 책임질 줄도 알아야 비로소 문향이 풍긴다고 생각합니다.
♠ 영향 (靈香)
영혼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차치하고 종교적으로 오랜 수도를 하신 고승이나 목사님, 신부님이 풍기는 영혼의 향기입니다. 사람이 풍길 수 있는 최고의 향기라고 생각합니다.
친구 사이에도 최고의 경지는 묵교(黙交) 라고 합니다.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말없이 같이 앉아만 있어도 어느 한 공간을 공유하고만 있어도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이 있는 친교를 말합니다. 영혼의 향기는 말없는 가운데 멀리멀리 퍼지기에 보다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 허향 (虛香)
노자는 가장 큰 도를 비어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불가에서도 가장 큰 깨달음을 말할 때 깨달음을 하고 있는 그 자체마저도 의식하지 않는 경지라고 말합니다. 그 어떤 향기를 갖고 싶은 모든 욕망을 버리고 버려야겠다는 의식마저 버릴 때 나타나는 향기가 허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불현듯 안개꽃이 보고 싶어집니다. 꽃의 모습을 안개처럼 흩어 버리고 안개처럼 흩어진 꽃들이 모여 또 하나의 아름다움을 만드는 향기가 그립습니다.
안 개 꽃
비를 맞고픈 마음이
버려진 양심에 비로 젖고 싶은 마음이
눈감으면 그리워
만나는 이마다 형제같음에
가만히 넘겨보는 잊혀진 추억속에 떠오르는 너
문득
세월의 덧없음에
이유없는 외로움이 느껴져
창가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
항상
좋은 자리 내어주고
먼저 버려져도
소담스런 모습 잃지 않던
가난한 이들의 작은 위로였던 너
오늘도
가난한 노시인의 펜끝에서만
가여운 주인이 되는 너
나에게는 무슨 향기가 날까?
혹여 역겨운 냄새만 나는 것은 아닐까?
이루어지기 힘든 소망이지만 상큼한 비누 냄새,쌉살한 풀향기 냄새,있는 듯 없는 듯 코 끝에 머무는 들꽃 냄새,대화에 담긴 사랑의 냄새........늘 손끝에 머무는 영혼의 냄새 그런 향기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IP : 211.57.xxx.2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김혜경
'04.6.7 2:50 PM (211.201.xxx.12)저한테는 무슨 향기가 날까요? 마음의 향기가 피어났음 하는 욕심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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