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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여 그대는 우리의 평화이옵니다.

귀여운 토끼 조회수 : 877
작성일 : 2004-05-24 09:46:07

저는 불교인은 아니지만 스님들을 뵐 때마다 일종의 경외감이 듭니다.
맥없이 살다가 맥없이 죽어야 하는 인생의 허무함을 극복하려는 그 분들의 노력이 숭고하게도 보입니다.
그분들의 '화두'도 우리가 익히 아는 단어의 나열이지만 그 '화두'를 깨닫기 위해
수 많은 세월을 면벽과 좌선과 명상으로 보내는 스님을 뵐 때마다 속세에 찌든 때를 조금이나마 씻고 싶은
생각이 든답니다.

며칠전 mbc 방송으로 방영된 '노인 다큐'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월을 그리고 인생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 준 좋은 프로였습니다. 그 누구든 통과의례 처럼 맞이해야 하는 '늙음'의 문제가 새삼스럽게 내 문제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이가 들어가는 탓도 있겠지만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자괴감이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아가고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꼭 부처님이 아니고 예수님이 아니고 공자님이 아니라도 내 마음의 평화가 되는 그 무엇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임이여 그대는 우리의 평화 이옵니다  (석가탄신일에 부쳐)



갈매빛 등성이가 이어져
또 이어져
수 천년 묵은 노송만이 세월의 무상함을 담은
이 시간에
그저, 있기에 있어야만 하는
하루라는 존재를
임 앞에 무릎 조아리며 곱게 바치옵니다.
드릴 것 없는 세상에서
드려야 하는 마음 하나로
세월접어 마음접어 두손들어 바치옵니다.

손끝 마디마디에 담긴
눈물어린 두 손 모은 정성이
이웃집 담과 담의 무의미한 경계를 모두 허물어 버린
그들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 되었습니다.
그건 우리에게 주어진 버려서는 안 되는
평화의 약속이었습니다.
터질세라 안아 올린 고운 두 팔에
바람도 비켜 갑니다.
무언지 모를 광명이 주위에 머물고
삶의 의미를 담은 시간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영원 전부터
인간이 온갖 산지를 두루 헤매며 먹이만을 찾아
목숨 하나 부지하기 위한 동물 같은 시절에도
우리가 찾아야 하는 그 무엇은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무릎 꿇는 우리들의
풀 수 없는 영혼의 갈증입니다.

드디어 만났습니다.
시간의 축적만큼 높이높이 쌓아 올린 서적 속에서도
봄날의 아지랑이 처럼 흔들리기만 할 뿐
잡히지 않는 좁혀지지 않는 거리였습니다.
더러움으로 가득한 몸을 가리기에는 비단 옷이 좋았지만
끓는 듯한 더운 피가 갈구하는 영혼의 갈증은
한 겹 두 겹 아무리 두껍게 몸을 감싸도
매양 남는 건 싸늘한 虛無 뿐이었습니다.
당신이 우리의 임이 되기 위한 슬픈 고독은
쾌락으로 둘러친 높다란 성곽을 뛰어 넘은
어느 어둔 밤이었습니다.
향내 나는 아내의 숨결을 조용히 덮은 채
지금까지 소중한 명예와 권세의 굴레를
저 먼 언덕에 버리기 위한
가뿐 숨을 몰아 쉰 그날 밤은
별도 잠들어 보이지 않는
어둔 밤이었습니다.
그러나
만남이 그렇게 힘들었던가요.
계절이 수없이 바뀌고
안개낀 망막에 순수한 자연을 아무리 담아도
만나기 위한 만남은
거친 고통 뿐이었습니다.
육체의 배고픔이 당신을 더 큰 손으로 붙잡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움직일 수 없는 온갖 고통에
육신마저 움직이기 힘든 날
쓰레기 더미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이
色과 空을 구별해주는 깨달음이 되었습니다.
잡을 수 없는 공간에서
말 없는 자연에서
당신은 드디어 만남을 이루었습니다.

아!
오늘은 임이 오신 날
마주치는 사람마다 두 손모아 축복하고
우리 모두 입을 모아 할 수 있는 말은
임이여 그대는 우리의 평화이옵니다.
임이여 그대는 우리의 평화이옵니다.

IP : 211.57.xxx.2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포푸리
    '04.5.24 12:57 PM (210.95.xxx.7)

    귀여운 토끼님의 귀한 글, 언제나 잘읽고 있습니다.
    다음에도 좋은은 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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