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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를 두고 눈을 감으려니...

승연맘 조회수 : 1,662
작성일 : 2004-04-01 01:04:14
제가 불치병에 걸린 건 아니구요...얼마전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주말에 남편이 다니는 대학원 워크샵이 있어서 부부동반으로 제주도를 다녀왔습니다.
공항에서 내려 버스로 호텔까지 이동을 하는데 40여분이 걸리는 비교적 먼 거리였습니다.

워낙 오랜만의 여행이기도 했고 경치가 좋아서 넋을 잃고 바라보는데 갑자기 차가 기우뚱
하는 겁니다. 급브레이크를 밟다가 결국은 쾅 소리를 내며 앞차와 추돌사고를 일으킨 겁니다.
2차선 도로에서 추돌을 피하려다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 차선까지 침범을 했고 앞차와 저희
버스는 범퍼가 박살이 났지요.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만약 반대편 차선에서 고속으로 질주하는 차가 있었다면 여럿
죽어나갔을 겁니다. 안전벨트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운전기사도 말 한마디 없더군요.
문제는 뭔고 하니... 사고원인이 기막히더라는 거죠.

저희 앞차도 알고보면 억울한 인생인 게 그 바로 앞에 가던 차가 도로 한 복판에서 멈춘게 화근이
되었습니다. 신호등도 없는 국도에서 갑자기 깜박이도 켜지 않고 서 버리니 환장할 노릇이죠.
그러니 바로 뒷차도 서게 되고 저희 버스도 그 상황을 모면하려 했다가 사고가 난겁니다.

왜 섰냐구요? 두 노인양반이 차안에서 싸우다 운전자인 할머니가 급브레이크를 밟은 겁니다.
부부인 줄 알았더니 또 그건 아니랍니다. 우리들은 불륜으로 추정합니다만....^^;
두 노친네들의 말다툼에 수많은 이들이 천당과 지옥을 왔다갔다 했으니 허탈해집디다.

사고가 난 순간 딸아이가 눈에 아른거리는 겁니다. 남편도 같이 죽으면 천애고아가 되는데
딸아이는 누가 키우나...어찌나 서글프고 가슴이 울컥하는지 정말 눈을 못 감을 것 같더라구요.

뉴스에서 황혼이혼이 늘어서 어쩌구저쩌구 하는 엄기영 앵커의 클로징 멘트에 불현듯 생각이
나서 적어봅니다.

82cook 여러분!  절대 차안에서 싸우지 맙시다.
여러 생명이 달려 있으니까요, 말다툼을 하더라도 갓길에서 합시다.

이상 승연맘이었습니다....  
IP : 211.204.xxx.95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하늬맘
    '04.4.1 1:23 AM (218.50.xxx.201)

    정말 다행이네요..많이 놀랐겠어요.
    그 짧은 순간에 그 생각이 젤 먼저 드는거..저도 경험 했어요.
    친구 가족이랑 같이 여행중이었는데 딸아이는 친구네 딸이랑 함께 가야한다고 우겨서 그집 차에 있었거든요.속도 충분히 안 줄인 상태에서 비포장 갓길로 핸들 꺽었더니 두 바퀴의 마찰력 차이로 차가 빙그르 돌면서 길아래로 곤두박질 치기 일보 직전에서 멈추는데..
    '죽는구나' 보다 'ㅈㅇ이는 살아서 다행이다'가 먼저 떠오르더라구요.

  • 2. 레아맘
    '04.4.1 4:57 AM (82.224.xxx.49)

    정말 다행이네요....참 부모가 된다는게 그런건가봐요....
    저도 그런 경험 있지요....생사를 왔다갔다 했던일...
    일반 국도에서 갓길에서 나오는 차가 멈춤표지판이 있는데도 그냥 나오는겁니다.
    우리차를 보고 멈찻하다가 다시 속도를 내서, 순간 우리 신랑이 중앙선을 넘었는데, 좀만 더 늦었더라면 바로 뒤에 있던 기둥 박고 튕겨나갔겠죠...
    정말 신랑도 자기가 어떻게 그리 했는지 모르겠다더군요....
    저는 뒷자석에 딸아이랑 있었는데...순간 이렇게 죽는건가....우리 딸도 이렇게 죽는건가하는 생각에 딸아이의 카시트를 꽉 껴안았다는거 아닙니까...딸이라도 살려보자구......

    자동차 사고 소식들어보면 정말 어이없는 일로 사고가 나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 3. 달개비
    '04.4.1 9:29 AM (221.155.xxx.21)

    제목보고 깜짝 놀랐어요.
    정말 다행이예요.
    저도 딸아이 하나라
    이런글 읽기만해도 눈물이 찔끔나고 가슴이 뻑뻑 해집니다.

  • 4. 글로리아
    '04.4.1 9:48 AM (210.92.xxx.230)

    아이들이 어릴 때는 가족여행이더라도
    부모는 비행기를 따로 타고 다니는거 봤습니다.
    아빠나 엄마 한쪽은 딴 비행기로 따로 움직이는거죠.
    여행은 같이해도 절대로 함께 이동은 안합디다. 물론 장거리지만.
    저희 친척분 얘기입니다.

  • 5. 저도 경험
    '04.4.1 9:52 AM (218.51.xxx.178)

    저도 그런 경험이 있답니다
    딸아이 어릴적 강원도에 겨울 빙어 낚시 다녀오다가 길이 빙판이라 차가 낭떠러지쪽으로 슬슬미끄러지는데 브레이크를 밟으면 바로 쭉 밀리는지라 그러지도 못하고 속도만 줄이며 겨우 핸들로 버티며 조정하는 상황이었지요.
    운전은 운전 베테랑 남편이 하는데 전 그때 처음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경험을 했답니다
    저와 남편의 능력으로 어찌할수 없는 그런 순간이더라구요.
    겨우겨우 차가 벼랑 끝에서 멈추고 -밑은 얼음 낚시하던 강이었지요-다시 출발해서 가는데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심장이 어찌나 뛰던지 ,아이는 숨이 막힐지경으로 안고 있었구요.
    긴박한 순간에 드는 생각이"나 수영 못하는데.. 우리딸은 누가 구해주나" 였지요.
    미안하지만 남편 생각은 안 들더라구요.
    그저 딸아이를 구해보려고 그럼 미리 창문이라도 열어 뭐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니까요.
    나중에 빠진후에 애라도 그리 내보내야 할거 같아서요.
    부모 마음은 다 같은가봐요.

  • 6. 미백
    '04.4.1 10:15 AM (211.175.xxx.2)

    이런글 읽으면 그나마 남편과 나 같이 종신보험들었으니 다행이다 싶은거 있죠...

    저희 둘 같이 들면서 "이거 잘죽으면 2억5천씩 잘못죽으면 1억5천씩이야..."
    했던 농담도 생각나고...

    보험 아이들은 위한 최소한의 선택입니다..

  • 7. 코코샤넬
    '04.4.1 2:21 PM (220.118.xxx.250)

    승연맘님..진짜 놀래셨겠어요...큰 사고가 아니어서 천만다행이네요...

    저는 작년 12월 초에...몸이 무지 아파서 동네 병원에 갔더니,원장샌님 말씀이 큰 병원으로 가야겠다구 ㅠ.ㅜ
    소견서를 써주셨어요.. 저 그거 받아들고 큰병원으로 가는데...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라구요.
    우리 유지는 아직 내가 옆에서 챙겨줘야 할게 너무 많은데....이를 어쩐다...이를 어쩐다...
    누가 내대신 우리 유지를 잘 챙겨 줄 수 있을까.....하면서....무지 걱정했었어요.
    신랑은 모...걱정이 안되는데...우리 딸래미가 어찌나 눈에 밟히던지........ㅠ.ㅜ
    그때 그 걱정때문에 몸무게가 한 4키로인가 빠졌었어요...
    검사결과는 신장결석으로 나왔는데.. 검사 도중에 저절로 빠져나가구....
    암튼 그때 죽는거에 대해서 엄청 고민했었습니다.
    흠....좌우지간.. 엄마들은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아파서는 안된다니깐요...
    누가 아프고싶어 아픕니까 만은.....ㅜ.ㅡ

  • 8. 김혜경
    '04.4.1 10:26 PM (211.201.xxx.215)

    그렇게 놀래시고 나면 한약이라도 드셔야합니다. 울혈이 생긴다고 하던가..
    그만 하기 참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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