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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동백에 관한 추억
지난 주에 서천에 갔습니다. 동백이 대단했습니다. 마량이라는 바닷가 언덕에 있는 동백나무 숲 --사실 숲이라 하기엔, 너무 잘 정돈되어 있고, 그 옆에 화력발전소인가가 있어서, 그런 이름을 붙이기엔 좀 뭐한 곳이지만, 그래도 동백을 제대로 구경하지 못한 서울촌놈인지라, 그 숲이나마 동백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그저 감지덕지했습니다. 거기서 나는 보고야 말았습니다. 붉은 눈물을…
이차저차한 사정으로 4.19를 전후해 학교에 휴학계를 내고 무전여행이라는 걸 했습니다. 아주 짧은 기간이었지만, 가끔은 얼굴에 철판을 단단하게 깔고는 남의 집 안방에 들어가 밥을 얻어먹기도 했습니다. 그때 해남에서 강진까지 걸어서 가게 되었는데, 걷는다는 게 정말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차로는 30분이면 갈 거리가 하루 종일을 걸어야 할 거리라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어쨌든 갑자기 놀란 덕에 다리가 마비된 적이 있었습니다. 가래토시라고 하던 것 같았는데, 사타구니부터 넙적다리가 몹시 아팠습니다. 다음날 강진에 있는 약국에 가보니 근육이 놀라서 그런 거라고 했습니다. 다산 초당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뱀을 10분 정도의 시간동안에 무려 세번이나 보고는 백련사에 가려던 생각을 접고 다산초당을 마구 뛰어내려왔으니 근육이 놀랄 만도 했습니다.
어쨌든 강진의 아주 조그마한 여인숙에서 잠을 잤습니다. 하루 숙박비로 3천원을 달라길래 천원을 깎아서 2천원에 잤습니다. 주인 아주머니가 저녁을 먹고 있길래 그 주위에서 어슬렁거려서 저녁까지 얻어먹었습니다. 아주머니의 아들이 광주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내게서 당신의 아들을 보셨던 모양입니다(군대에 있을 때 이 여인숙 아들과 친구로 지내던 사람을 만났는데, 그 아들은 후에 강제징집되어 군대에서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날 밤 비가 내렸습니다. 다리는 아파서 잠은 안 오는데, 비는 어찌 그리 추적추적 내리는지… 결국 자는 둥 마는 둥 해서 아침을 맞았는데, 여인숙 방문을 여는 순간 마당에 피어 있는 동백이 보였습니다. 봄날의 여인숙 마당, 비에 젖은 동백 한 송이가 거기 있었습니다. 천 다발 만 다발의 꽃에서도 볼 수 없었던 광경이었습니다. 그날 왜 내 눈에서 눈물이 났는지 모릅니다. 나는 아직도 그 여인숙의 동백을 잊을 수 없습니다.
지난 주에 본 동백은 사실 그저 그랬습니다. 하지만 동백나무 주위로 떨어진 동백꽃은 가히 절경이었습니다. 나는 아직까지 땅에 떨어져서 그토록 처절하게 아름답고 슬픈 꽃을 보지 못했습니다. 동백은 꽃그늘로 꽃이 되었습니다. 그 꽃그늘이 붉게 자라날 것 같았습니다. 해가 떨어질 때까지 몇 시간을 동백나무 아래, 떨어진 동백을 보았습니다.
동백정 근처에서 사진을 찍으며 생계를 꾸리는 한 아저씨는 동백이 질 때는 더 장관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한번 더 오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나는 가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도 처연한데, 그 슬픔이 다 질 때 그 많은 슬픔을 어떻게 다 이 두 눈으로 보겠습니까? 나는 차마 그리하지 못합니다.
서천에서 본 요리 이야기 하려다 괜히 꽃이야기에 개인사까지 이야기하게 되었네요.
서천에 요즘 주꾸미가 아주 좋습니다. 크기도 아주 튼실합니다만, 고소하기가 아주 끝내줍니다. 마량 동백숲 가는 길 입구에 있는 똘이식당이라는 곳에서 전골을 먹었는데 맛있었습니다. 여기서 주꾸미를 먹고 나오니 간판마다 주꾸미 샤브샤브라는 메뉴가 있었습니다. 샤브샤브가 뭡니까? 초간편 얼렁뚱땅 파파팍 샤샤샤 요리 아니겠습니까? 똘이식당의 샤브샤브도 눈여겨 봤던지라 똘이식당에서 주꾸리를 사가지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마침 다음날 손님들이 집에 와서 샤브샤브에 도전했습니다. 배추, 새송이버섯, 팽이버섯, 미나리, 파, 양파를 멸치국물에 넣었습니다. 양은 어떻게 되냐구요? 그냥 먹고싶을 만큼만 넣습니다. 이런 야채는 국물 맛을 내는 데 그만이구요, 간이 조금 싱겁다 싶으면 된장으로 간을 해보세요. 된장 맛이 살짝 돌 정도면 좋습니다. 너무 많이 넣으면 된장찌개가 되니까 조심하세요.
주꾸미는 서너 마리씩 넣어서 다리는 살짝 익으면 꺼내서 드세요. 다리는 너무 익으면 질겨요. 그리고 주꾸미 몸통은 충분히 익혀서 드시는 게 좋습니다. 주꾸미 몸통에 알이 있는데, 주꾸미밥이라 하여 마치 모양도 밥알이고, 씹는 맛도 밥알 씹는 것 같습니다. 요거만 별도로 드시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야채 부족하면 야채 더 넣고, 주꾸미 부족하면 주꾸미 더 넣고… 히히 이렇게 무진장 많이 먹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차돌박이까지… ㅎㅎㅎ…
1. 이성수
'04.3.30 10:08 PM (211.204.xxx.107)치즈님
홍어맛 아주 죽입니다.
그런데 시중에서 파는 홍어는 좀 더 삭혀먹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제 맛이 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돼지고기, 신김치, 홍어, 이렇게 삼합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홍어가 덜 삭혀지면 돼지고기 맛에 그만 홍어의 맛이 묻혀버리고 마는 것 같습니다. 셋이 궁합이 맞으면 돼지고기 맛도, 홍어 맛도, 신김치 맛도 아닌 아주 달콤한 맛이 나지요… 뭐 돼지고기가 없어도 신김치만 있으면 홍어의 맛을 아주 산뜻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홍어는 신김치와 먹으면 단맛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아주 죽여줬답니다.
하긴 목포라면 서울보다 더 좋은 홍어맛을 보지 않을까 싶습니다.
쟈스민님
다음에 또 홍어파티가 열리면 전날 족지무공을 실연하여 전음해 드리리다.
그리고 감자요리나 기타 등등의 사진에 제가 못 삽니다.
가뜩 나온 배가 줄어들 기미조차 없는데 자꾸자꾸 식욕자극신공으로 저를 공격하시면 저는 그만 죽고 말 것이옵니다.
하긴 팔이국방 방주 이하 여러 장문들의 무공이 워낙 출중하여 감히 야밤에 이곳에 드나드는 곳이 가히 공포이옵긴 하옵니다…
사진 보고 이번에는 제가 그 요리를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나 고민이랍니다...
그리고 혜경샘
옥동장 분만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전에는 옥동자 그러면 아주 예쁜 아기 얼굴이 떠올랐는데 지금은 아주 못생긴 어른 얼굴이 떠오르니… ㅎㅎㅎ2. 치즈
'04.3.30 10:19 PM (211.194.xxx.166)오메..깜딱이야..
동백꽃이 끝내주는 곳을 하나 알려드리려고 열었다가...
홍어를 요..저도 들은 풍월로 말씀드리면요..
신김치에 돼지수육을 올리고, 홍어를 올려서 쌈을 싸서 입에 넣고 한 두어번 씹다가
막걸리를 마셔서 같이 넘기는 것이 전통 삼합이랍니다.
다음에 쟈스민님께 족지무공 실연으로 전음하셔서 같이 드셔보시와요.
그리고 동백꽃..울산 울기등대에 가시면 고목같은 동백꽃길이 좌~악 펼쳐져있습니다.
붉은 동백이 뚝뚝 떨어져 있는 해송밭을 지나면 동해바다가 펼쳐집니다.
울산이 좀 멀지만 꼭 한번 가보서지요.3. 김혜경
'04.3.30 10:48 PM (218.51.xxx.151)이성수님...옥동자 이름이 뭔가요?
4. jasmine
'04.3.30 10:55 PM (219.248.xxx.148)옥동자라고라~~~~
추카합니다요......글구, 밤에는 파리에 오지마셔유~~~~^^5. 싱아
'04.3.30 11:44 PM (221.155.xxx.63)서천의마량포구......
작년에 두번이나 다녀왔는데...........
옥동자가 이성수님을 닮았나요,,,,,,,,하하하하하...
축하드려요,,,,,,6. 궁금
'04.3.31 9:54 AM (203.238.xxx.212)이성수님이 감자요리의 그?
그리고 혹시 무우꽃님?7. 이성수
'04.3.31 4:38 PM (218.156.xxx.59)쿠하하하하
이러다가는 내가 또 애를 낳은 줄 알겠습니다그려 ㅎㅎㅎㅎ
궁금님 저는 무우꽃님이 아니랍니다...8. titry
'04.3.31 6:05 PM (61.75.xxx.15)이번 주말에 가볼까 하니... 부산에서 어떻게 가나요 대중교통수단으로
혼자 가볼려고 하는데 너무 먼가요 .
부산이외의 곳으로 가볼려고 계획잡고 있다가 이성수님글보고
완전히 병도졌는데..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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