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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못생긴 녀석이 ....

무우꽃 조회수 : 1,016
작성일 : 2004-03-02 03:03:36
내가 살던 의정부에 "예랑"이라는 클래식 음악 다방이 있었다.
27년 전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수십종의 원두커피 메뉴 하며, 명기라고 하는 앰프와 스피커, 그리고 붉은 벽돌로 장식한 실내며 - 말하자면 고급 지향의 클래식 다방이었다.
이곳을 차린 주인 아저씨는 쌕스폰을 잘 불었고, 부인은 피아노를 잘 쳤다. 인간적이고 참 좋았던 분이었는데, 한 일년 후에 다방을 팔고 이사갔다.

예랑을 물려받은 사람은 산과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서양 클래식만 음악으로 알고, 우리 음악은 뭣같이 여기는 사람이었다.  나는 여러날을 싸우고 이해시킨 후에, 저녁 9시부터 쫑치는 10시 반까지 DJ를 맡게 됐다. 매일 커피 한잔이 내가 원한 보수였다.

나는 국악판을 구입하기도 하고 문예진흥원 자료실의 테잎을 복사해오기도 하면서, 그간 내가 느꼈던 것을 전하려고 애썼다.  예를 들면, 베토벤의 교향곡 9번 4악장과 가야금 산조의 마지막 부분 휘모리를 들려주고 나서, 베토벤과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는 인생이랄까 삶이랄까 그런 것들을 말하기도 하고, 포레의 레퀴엠에서 키리에와 우리의 상여소리를 들려준 후에, 서양사람들이 느끼는 죽음과 우리가 받아들이는 죽음이 어떻게 다른가 - 뭐 그런 것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물 두세살의 나이에 내가 뭘 알아서 그랬는가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고정 손님도 몇명 생겼고, 시간이 파한 후에는 그들과 함께 곱창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함께 하기도 했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고금을 통털어, 다방에서 국악 DJ를 - 그것도 서양 고전음악과 우리 민속악을 함께 트는 DJ를 했다는 사람은 몇 안될 것이다.

그 때 예랑 주방에서 일하는, 인상이 좀 험한 편에 속하는 녀석이 하나 있었는데, 이녀석 꿈이 영화배우. 모두들 웃었지만 이녀석은 정말 진지했다.  틈만 나면 표정이며 얼굴 근육 움직이는 연습을 하는데, 험악한 인상에 그러는 게 얼마나 우스웠던지 ...  그럴때면 옆에서 다들 "관둬라 관둬, 차라리 내가 영화배우 할께" 그랬었다.

그 후로 한 십수년 넘게 못만나 이름도 가물가물해질 무렵, 출판사를 하던 나는 지방 출장중에 잠시 시간을 죽이기 위해 영화관에 들어갔다.  최진실이 나오는 "마누라 죽이기"

그런데 ....
영화 중간에 그녀석의 험악한 모습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기억하시는지 - 도로 옆 휴게소에서 탈영병이 최진실을 인질로 잡아 저항하는데, 박중훈은 탈영병의 약을 올려서 마누라를 죽이게 하려고 애쓰는 장면. 그 탈영병으로 나오는 권용운이 나와 함께 예랑에서 젊은날을 지냈던 - 자기는 꼭 영화배우가 되겠다던 바로 그녀석이다.

그날 나는, 영화보다 그녀석이 정말 배우가 되었다는 사실이 더 재미있었다.  하지만 내가 몰라서 그랬지, 그녀석은 이미 유명한 조연배우가 되어 있었다.
Dreams come true !!!
IP : 210.118.xxx.196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candy
    '04.3.2 9:10 AM (220.125.xxx.248)

    그럼,무우꽃님? 나이가?

  • 2. 호호
    '04.3.2 10:59 AM (65.240.xxx.68)

    무우꽃님 나이는 이미 공개되었답니다.
    56년생 원숭이띠시라고...

  • 3. 초록지붕
    '04.3.2 11:08 AM (61.84.xxx.19)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에서 마을버스 운전 하시는 분? 맞나요??

  • 4. 아라레
    '04.3.2 11:45 AM (210.221.xxx.250)

    하여튼 발이 넓으셔...

  • 5. 이론의 여왕
    '04.3.2 3:12 PM (203.246.xxx.194)

    나 권용운 진짜 좋아하는데! ^^

  • 6. 무우꽃
    '04.3.2 5:45 PM (210.118.xxx.196)

    그 때, "그래 넌 영화배우가 될 수 있어, 열심히 해" 이런 말을 해줬더라면
    혹시 [TV는 사랑을 싣고]에 나가는 일이 생기지 않았을라나 ..... ????
    언감생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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