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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면만 잘 끓여도
제가 속했던 동호회중의 하나가 식도락동(taste)이었는데, 요리와 식도락(맛집찾기)이 섞인 곳이었습니다. 저는 음식점을 찾아다니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서, 요리에 대한 글만 가끔 쓰고, 인터넷에서 찾아서 Q&A에 답해주고 그랬었죠.
그러던 어느날, 어떤 모르는 여자로부터 쪽지가 왔습니다. (당시는 저장되는 쪽지가 아니라 둘 다 접속해 있을 때에 말을 전달하는 say 라는 기능이었습니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글 잘 봤다는. 그저 가벼운 인사 정도였을 겁니다.
그 후 통신에서 만나면 아는 체 하고 농담도 하면서 한 반년 쯤 지났습니다. 어느 여름날 늦은 오후.
(체팅으로) 이런 저런 얘기 끝에 제가 "밥 먹는 것도 지겹다"고 했더니 "왜요, 맛있는 거 잘 해 드실 거 같은데".
여기서 잠시 당시의 제 상황을 설명하자면, 회사 사무실 한켠에 제 숙소를 만들어 놓고, 숙식을 해결했습니다.
사실 제가 음식 해먹는 건 좋아하지만, 직원들이 다 퇴근하고 난 후에 혼자 해먹는 음식이 무슨 맛이 있겠습니까? 그런 예기를 했더니 이 사람이 "그럼 제가 먹으러 갈까요?" 이러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는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는데, 통신에서 만난 사람은 일년 이내에는 만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쓸데없는 환상 다 깨지고, 좋은 면 나쁜 면 다 알고, 아무 얘기나 거리낌 없이 솔직하게 나누려면 일년은 걸려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안 지 반년밖에 안 된 사람이 온다니 ...
잠시 생각 끝에 오라고 했습니다. 원래는 "다음 기회에..."라고 했어야 하는 건데, 혼자 차려먹는 식탁에 대한 외로움이 컸나봅니다. (당시는 그 사람이 혼자라는 것도 몰랐을 때라, 단지 말이 통하는 사람과 저녁을 먹고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준비한 음식은 메밀면인데 농심에서 나온 춘면에 와사비와 파 썬 것, 무 간 것, 김가루를 모두 준비했습니다. 인스턴트 면이긴 해도 정식으로 갖춘거죠.
일곱시쯤 그 사람이 왔습니다. 첫인상이 맘에 들지 않았지만, 얘기를 나누면서 보니까 밝고 시원스럽더군요. 제가 만든 메밀면도 - 사무실의 회의용 탁자에 차렸는데 - 맛있게 잘 먹더군요. 자기가 원래 면을 싫어하는데, 참 맛있다면서.
나중에 알게 됐는데, 그 사람도 시사랑(poem)회원으로서 양쪽에서 제 글을 봤던 모양입니다.
음식점 비슷한 걸 하는 아저씬가본데 시에도 관심이 있고,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호기심이 발동해서 쪽지를 보냈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그렇게 해서 만나기 시작했고, 만나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까, 사람 솔직하고, 착하고, 성실하고, 똑똑하고, 그렇게 생각되니까 조금씩 관심이 가고 ...
그러니까 제 말은, 처음부터 끌렸던 것이 아니고, 서로 속내를 털어놓다 보니까 차츰 정이 생겼다 이거죠.
지금도 가끔 이런 얘길 합니다.
"내가 면이라면 질색을 하는데, 그때 그 메밀면은 왜 맛이 있었던거야?"
"에구 내가 바보지, 메밀면 한그릇에 홀딱 넘어가서는 ..."
이상이 저와 상궁마마가 맺어진 얘깁니다.
여러분이 판단해 주십시오. - 누가 누구에게 넘어간건지.
이건 암만 봐도 제가 넘어간 거 아닙니까? 아주 고단수에.
1. 이론의 여왕
'04.2.25 2:11 AM (203.246.xxx.249)천생배필이라 사료되옵나이당, **꽃 님. ^^
2. 메누리
'04.2.25 2:21 AM (61.77.xxx.143)저도 그렇게 생각하옵니다..무**님.^^
3. 우렁각시
'04.2.25 3:05 AM (65.93.xxx.64)넘어갔던 넘어왔던 알콩달콩 정답기만 하면 됐죠, 뭘? ...ㅋㅋㅋ
만나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까, 사람 솔직하고 착하고 똑똑하고...ㅎㅎㅎ
잘생겼단 얘긴 없는데 혹시???4. 아라레
'04.2.25 3:15 AM (210.221.xxx.250)역시 남의 연애담은 재미있어요. ㅎㅎ
그러데 <상궁마마>의 호칭을 쓰시면서 익명을 고집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ㅋㅋㅋ5. 지성원
'04.2.25 4:42 AM (220.121.xxx.33)맞아요. 이래서 남잔 순진한 면이 있다니까요.
6. 무시꽃
'04.2.25 5:17 AM (210.118.xxx.196)외모는 그러니까 에 ... 그렇다고 제 눈에 비친 모습을 말하는 것도 그렇고 ...
그러니까 ... 둘 다 버금간다고 해두죠.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마세욧)
가끔 우리 상궁마마가 여기 순찰을 나오거든요. (괜히 가르쳐줬죠?)
이 글 들켰다가는 저 주금입니다.
하이고 그러고 보니 저 제목 보고 눈치 채지 않을까 몰라.7. 솜사탕
'04.2.25 6:15 AM (128.197.xxx.14)전요, 상궁마마 호칭 모르고 **꽃님이나 무**님 못봤을때...
두번째 단락 읽으면서 *우*님 글인줄 알았습니다.
너무 멋진 만남이네요. ㅎㅎㅎ 그래요, 제목 바꾸세요.
상궁마마님도 넘 멋질것 같아요~~8. 김새봄
'04.2.25 8:06 AM (218.237.xxx.29)ㅋㅋㅋㅋㅋ........제가 보기엔 무**님이 고단수 이신거 같습니다.
이글도 보세요...은근히 자랑을 하시면셔...내가 누군지는 직접 밝히지 않으시면셔..
셔셔셔...은근히 사람맘에 불지르시는거...
앞으로도 계속 행복하소서...9. 거북이
'04.2.25 8:18 AM (203.26.xxx.218)아니, 얼케들 무우꽃님인지 아셨어요?...
무우꽃님, 임자있는 싱글이라 하셨는데 그 임자가 이 상궁마마인가요?
그럼 두분 언제 메밀면 먹게 해주시는 건가요?...^^
날아가는 비행기 잡아 타고 휘리릭~~~!!!
근데요~
만난 시간까정 기억하시네요!
제 머리속에 빨간 하트가 마구마구 피어오르고 있슴다!!10. 깜찌기 펭
'04.2.25 8:37 AM (220.89.xxx.4)얼레리 꼴레리~ 무**님 선수가터요. ㅎㅎㅎ
11. 나르빅
'04.2.25 9:29 AM (211.219.xxx.68)호.. 10년전 하이텔 'go taste' 저도 단골회원이었는데..
거긴 두 부류로 나눠졌죠.
순수한 맛과 요리를 추구하는 독고다이 그룹과,
떼로몰려 맛집멋집을 찾아다니던 사교그룹..
하이텔시절이 그립네요.12. 무시꽃
'04.2.25 10:42 AM (210.118.xxx.196)아니 제가 뭘 어쨌다고 고단수니 선수니 그러시는 겁니까?
저는 어디까지나 "순수하게" 요리 애호가의 입장에서 쓴 글이라 이겁니다.
증거 대 볼까요? 제목을 보세요.
"메밀면만 잘 끓여도" 그 다음에 생략된 말이 뭐겠습니까? - "장가갈 수 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미혼 남녀들에게 음식 한가지만 잘 해도 결혼할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넣기 위한 글이라 이겁니다. (믿거나 말거나)
그런 순수한 교육적인 글을, 선수여자후리문으로 보시다니. 떼찌! 맴매!
(말하고도 내가 낯뜨겁네)13. 깜찌기 펭
'04.2.25 10:56 AM (220.89.xxx.11)ㅋㅋㅋ
14. 행복한토끼
'04.2.25 11:39 AM (210.102.xxx.9)하하...
전 10년까지는 아니고, 5-6년 전에 식도락동 자주 들락거렸어요.
이제 다른건 까마득히 기억이 안나는데
맛집.. 요리.. 모두 제껴놓고
추억의 음식 얘기하던게 기억나네요.
아련했던 학교앞 문구점에서나 먹던 음식 얘기하고
과자얘기하던....ㅋㅋㅋ15. rmsid
'04.2.25 1:32 PM (220.92.xxx.153)어머 식도락 시사랑..거기 저도 열심히 들락거렸는데.
전pc 통신 하이텔.....정말 그리운 이름이죠.
반갑습니다..누군지 모르지만..^^16. beawoman
'04.2.25 4:41 PM (169.140.xxx.8)ㅎㅎ 얼레리 꼴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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