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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은 멋있었다.

장수산나 조회수 : 1,239
작성일 : 2004-02-07 13:23:43
그 놈의 첫인상은 멋있었다.
암쎈타의 초라한 환자복도 그 놈에겐
멋지게 어울렸다.

꺽어신은 운동화....
주렁주렁 매달린 수많은 링겔병들....
창백한 얼굴에 짙은 눈썹, 그리고 매우 신경질적인
눈매도 멋있었다.
그리고 늘씬하게 큰 키도....

잠시도 그 놈에게 평화를 허락하지 않는
말기 암세포들의 끊임없는 공격에도
절대 비굴하지 않게 대처하는 당당함....

그 놈의 고통앞에서 오히려 쩔쩔매는 봉사자들을
민망하지 않게 정리정돈해 주는 카리스마...

확실히 그 놈은 멋있었다.

나이도 어린 그 놈 앞에서 나는 마치 처음 미팅에 나간
스무살 아가씨처럼 얼굴을 붉히며 까딱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안녕, 가브리엘? 반갑다~~~"
짧게, 아주 짧게 그 놈은 대답한다.
"아~~예."
그러곤 눈길도 한번 안준다.

근데....그게 더 멋있다.


<꽁지글>
지금 그 놈은 일산병원에 입원중입니다.
치료는 의사들도 포기한 상태....
통증완화를 위한 입원일 뿐입니다.

다음 글은 가브리엘을 돕기위해 모 국회의원님과 성당 사목위원회의
높으신 분들에게 보낸 글입니다.
수산나의 글빨이 잘 안먹혔슴다.......







* 늦기전에....

이름 : 양의종 가브리엘
나이 : 22세
직업 : 항공대재학중
가족 : 어머니와 고등학생인 여동생
사는곳 : 화정동의 작은쪽방
        (전세 천만원에 세들어 있지만 그것도 빌린돈이라 이자를 월150,000원씩 지급함)
환경 : 3평남짓한 부엌과 방이 함께 되어있고 인공항문을 달고 있지만 씻을수 있는 공간이
      전혀없슴. 화장실은 외부에 있음.
병명 : 대장암으로 발병이 되어 현재에는 간과 췌장으로 전이가 되어있는 상태임.



어른들이 젊은이에게 해주는 덕담 중에
‘네 꿈을 맘껏 펼쳐 보아라’라는 말을 자주하곤 합니다.
그 말 속에는 자신이 이루지못한 꿈에 대한 회한이 담겨있을 수도 있지만
지나서 생각해 보니, 삶이란 것이 의지대로만 살아지지는 않지만 꿈을 가지고 있을 때
진정 행복한 삶이였다는걸 깨달았기 때문이겠지요.

여기에........
하늘을 나는 파일럿이 되는 꿈을 가진 한 젊은이가 있습니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상상할 수 없을만큼의 피나는 노력을 하면서
살아온 젊은 친구의 꿈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접을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게 진정 우리네의 삶이라면.....
하느님의 속내를 알 수가 없습니다.

남들은 사춘기라고 불리우던 중학교때 이미 대장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알콜중독자인 아버지는 술만 취하면 어머니를 때리고....
암환자였던 사춘기소년은 매맞는 어머니를 말리다가 아버지에게 미움을 사서
함께 매를 맞으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또다시 암세포는 간으로 전이가 되고,
간의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또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힘든 투병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파일럿이 되어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살아온 소년은 눈보라속의 나무처럼 자라서
항공대에 당당히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동생과 어머니, 그리고 파일럿이 되고 싶었던 소년은 주머니에 단돈 십만원을
넣고 알콜중독자인 아버지의 눈을 피해 부산에서 항공대학교 근처로 야밤도주를 하였습니다.
3평남짓한 쪽방에서 초라한 생활이 시작되었지만 그에게는 꿈이 있었기에
행복했습니다.

매를 맞으면서도 치욕의 삶을 살아왔던 어머니는 오로지 자식들 때문이였습니다.
혹, 자신이 사라지고 없으면 아이들이 아버지에게 매맞아 죽을까봐.....
온몸으로 자식들을 아버지의 매로 부터 막으면서 살아왔던 어머니...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밝게 자라주었던 사랑스런 여동생....
그녀들이 있기에, 그리고 꿈이 있기에 행복했던 그에게 또다시 잔인한 시간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암세포는 췌장으로 또다시 전이가 되어 이제 겨우 스물두살의 나이에 인공항문을
달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삶이라도 그에게 길게~~~~아주 길게만 허락된다면
축복이며 은총이라 여기며 살 수 있을텐데.....
스물두살의 나이로 막아내기에는 너무나 벅찬 삶들이 그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지금껏 그를 지탱하게 해준건 자존심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살아온 그의 짧은 삶....고통과 상처로 점철된 그 삶을 초라하게
만들지 않았던건....그의 젊은 자존심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너무 깊이 병들어 있습니다.
자신의 몸을 자신이 가눌수도 없을만큼 깊이......

이제......
그에게 삶은 자존심으로 버티는게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임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술에 절어있던 아버지에게 매를 맞으면서 자라온 그가 자신에게 호의를 보여주는
어른남자들조차도 거부하는 그의 마음의 깊은 상처를 더 늦기전에 치유해줘야할
몫이 살아있는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요?

사람에게 받았던 상처, 사람에게서 치유받을 수 있도록....
그래서 자신을 학대했던 아버지조차도 용서하고 그 짧은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우리모두의 사랑을 모았으면 좋겠습니다.

양의종 가브리엘....
너의 스물두해가 고통과 상처뿐인 기억을 가지고 저 세상으로 가게 하지는 않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이 세상이 너무나 아름답다는걸 더 늦기전에......
가브리엘, 너에게 알려주고 싶습니다.


* 우리는 해가 있는 동안에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해야 한다.
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 때는 아무도 일을 할 수가 없다. (요한복음 9장4절)

* 호스피스 행동강령 1번
- 내일이면 늦으리 -


사랑........
서둘러서 선포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양의종 가브리엘은 오래동안 기다릴 수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IP : 218.148.xxx.4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장수산나
    '04.2.7 1:26 PM (218.148.xxx.4)

    진흙속의 진주가 치매어머니와 벌이는 이야기를 올리려 했는데....
    그 놈의 이야기부터 먼저 올림니다.

    저의 간단한 소개를....
    유방암 수술을 5년전에 받았고 (왼쪽절제), 현재는 호스피스임다.

  • 2. Ellie
    '04.2.7 3:00 PM (24.162.xxx.70)

    글을읽고.. 제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요즘 좀 힘들어서 이리저리 방황한다고 가끔들어오던 82cook에도 죽순이짓하고...

    어떻게 하면 사랑을 배풀수 있을까요?
    그리고... 수산나 님도 정말 대단하신 분이에요.
    저도 병원에 있어봤는데.. 정말 다시가고 싶지 않은데..(병원 소독 냄새만 맡아도 속이 미식거리는 이상한 증세를 보입니다.. ㅡ.ㅡ)
    그곳에서 다른 사람을 도우시다니...
    오늘 가브리엘을 위해서 기도드리겠습니다. ^^

  • 3. 키세스
    '04.2.7 4:06 PM (211.176.xxx.151)

    저도 부끄럽습니다.
    어찌 해야 하나요?

  • 4. 경빈마마
    '04.2.7 4:53 PM (211.36.xxx.98)

    당신도 아프면서 또 다른 아픈이를 위해서 봉사하는 아름다운 그녀 입니다.
    얼굴이 얼마나 해 맑은지 모릅니다.

    늘 부끄럽습니다.

  • 5. 김혜경
    '04.2.7 6:14 PM (211.215.xxx.95)

    장수산나님...사랑을 몸으로 실천하시는 분이시군요...
    부끄럽습니다.

  • 6. 장수산나
    '04.2.7 8:14 PM (211.227.xxx.166)

    아이구 다들 왜이러십니까?
    저는요, 이런 친구들이 있다는걸 세상에 알리는 역할만 맡았답니다.
    봉사는 울호스피스회 형님들이 하시고...저는 입으로만 하는 역할임다. ㅎㅎ...

    저두 괜히 쑥스럽고, 부끄럽고 그렇네요. *^^*

  • 7. 경빈마마
    '04.2.8 12:53 AM (211.36.xxx.98)

    후후후 언제나 씩씩해서 좋아요...!!
    수빈이가 수산나님...말씀하시는 것이 시원하고 재미있고 확실하대요...^^

  • 8. 신자
    '04.2.8 6:57 AM (80.186.xxx.57)

    가브리엘을 위해서 오늘 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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