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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우둥의 장작불로 음식(?)하기!

인우둥 조회수 : 901
작성일 : 2003-12-16 20:50:32
82cook이 너무 복잡해졌어요.
너무 읽을 것이 많아 좀 읽다보면 내가 쓰고 싶은 글들을 쓰는 데에
쓸 힘이 남아있질 않거든요.
오늘도 사실 지난 주말에 손님치레 한 이야기, 곰탕 끓인 이야기, 시골장 본 이야기... 등을 쓰고 싶었는데
우왓, 다른 글들 읽느라 그만 힘이 빠져버렸어요.
오늘은 그냥 '장작불로 개죽쑤기 프로젝트'만 쓸랍니다.

인우둥이 직장을 다니는 관계로 깁스를 하신 할머니 대신에 할 수 있는 집안일이란 건  밥 하기, 상 차리기, 설겆이 하기 정도입니다. 반찬도 거의 새로 못 만들고 할머니가 다치시기 전에 만들어 놓으신 김치와 밑반찬으로 그럭저럭 버티고 있을 뿐이죠. 그러다가 지난 주말 큰 마음을 먹고 집안일을 했습니다. 밀린 빨래를 하고 대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태우고,,, 끊임없이 찾아드는 문병 손님들을 치루고....
그 와중에 개죽을 쑨 일이 제일~ 스스로도 기특한 일이었습죠.

인우둥네는 작은 발바리 두 마리가 있습니다. 인우둥이 이곳 수동으로 오기 전, 할머니는 이 녀석들을 벗삼아 지내셨어요. 그냥 사료를 먹여도 될 것을 꼭 장작불을 지펴 개죽을 쑤어주셨습니다. 예전에 소에게 여물을 끓여 쇠죽을 쑤어주듯이 말이에요.
그런데 할머니께서 깁스를 하셔 꼼짝을 못하시니 이 녀석들은 뜨끈하고 맛난 개죽을 못 먹고 딱딱한 사료 알갱이만 씹어야했죠. 그마저도 제가 빠트리기 일쑤니 녀석들의 배가 홀쭉해지더군요.
토요일 집을 청소해놓고 쓰레기를 태운 후에(시골이라 쓰레기를 태워야합니다) 개죽솥 앞에 앉았습니다. 전에 얘기했지요? 인우둥네는 가마솥을 걸 수 있는 부뚜막을 집 밖에 따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두 개의 걸쇠가 있는데 하나는 두부도 쑤어 먹고, 손님이 많이 오시면 가마솥 밥도 지어 내고, 메주 쑬 콩도 삶고, 잔치용 콩탕이나 비지찌개를 하는.. 인간용(?) 가마솥이 왼쪽 아궁이에 반질반질 윤을 내며 걸려있어요. 나머지 오른쪽 아궁이엔 개죽만 쑤어주는 견용(?) 양은솥이 사시사철 걸려있지요. 그 개죽 솥에 과자 공장에서 얻어온 라면 부스러기와 곰탕 끓일 때 첫물 끓여버린 국물과 음식 찌꺼기 등과 곡물 부순 것을 넣고 불을 지폈습니다.
앗, 너무도 중요한 개김치(?)도 넣구요.
개김치가 뭐냐면 김장할 때, 저희는 밭에서 바로 배추를 툭툭 따서 바로 절구기 때문에 시퍼런 우거지가 많이 나오거든요. 깨끗한 것은 엮어 말려 우거지로 만들기도 하지만 새파랗고 질긴 겉잎은 따로 양념을 대강 해서 개김치를 담가 둡니다. 개죽 끓일 때 넣어주지요.
이것저것 개죽답게 섞어 넣고는 신문지에 불을 붙여 나무에 불을 옮기려고 했습니다. 옆에 장작은 별로 없고 콩을 떨고 남은 콩단이 있길래 그것을 한가득 넣고 불을 지폈는데.. 잘 안 붙더군요. 목이 매캐해지고 기침을 몇 십 번 한 뒤에 간신히 불을 붙였습니다. 바람을 불어넣느라 후후 숨을 쉬니 머리도 어질어질하더군요.
그렇게 불을 붙이고나자 센불에서 끓여야겠다는 일념하에 콩단을 매우 넉넉히 넣었습니다. 바작바작 잘도 타길래 신나게 들쑤셔 넣었지요. 짐작하셨겠지만 너무 쑤셔넣어 불이 또 꺼지고 말았습니다. 장작불을 처음 지피니 요령이 전혀 없어 불조절을 못하겠더라구요. 할머니는 불을 지펴놓고 밭도 매시고 우물에서 물일도 하시고 여유만만이셨는데 저는 불앞에 코를 받치고 앉아있어도 꺼트리기 십상이더라구요.
한 세 시간 아궁이 앞에 앉아있었나? 불 앞이라 춥지는 않았는데 다리가 저려 일어나서 스트레칭도 하고 죽은 끓을 생각을 안 하고 콩단만 자꾸 타 없어져 속이 좀 상하려고 하는데 친척 할머니가 오셨습니다. 병문안을 오셨는데 제가 하는 꼴을 보시더니
"에이구, 네가 뭘 하냐."
하시면서 삭정이를 툭툭 분질러 불을 놓아주셨습니다. 단 십 분만에! 그렇게 끓지 않던 개죽이 바글바글 끓기 시작했습니다. 세 시간을 끓여도 끓지 않던 것이 맞나.. 허탈한 마음 반, 신기한 마음 반.
누렁이와 흰둥이는 오랜만에 맛난 개죽을 맛볼 수 있었지요.

사실은 호기심이 막 나서
그냥 사료 주라고 하시는 걸 한 번 해보겠다고 장작불을 지폈던 것이었습니다.
전에 할머니가 하시는 것을 볼 때마다 꼭 해보고 싶었거든요.
할머니는 인간용(?) 무쇠솥에서
인우둥이 좋아하는 묵도 쑤시고
불조절이 어렵다는 환상의 누룽지밥도 해주시고
직접 재배한 콩을 맷돌로 갈아 집에서 내린 간수를 부어 두부도 만들어주시고
가끔 엿도 고아주셨는데
인우둥은 아무렇게나 걸린 견용(?)솥의
불조절 하나 필요없는 개죽쑤기에 무려 세 시간을 투자하고도
제대로 못 끓이고 말았습니다.
이번 토요일엔 곰탕 끓이고 남은 뻐다귀를 넣어
맛있는 개죽에 다시 도전하겠다고,
퇴근길에 꼬리를 살랑거리며 달려드는 흰둥이와 누렁이에게 약속하였습니다.

개죽 프로젝트에 성공하면 한번쯤
반들반들 윤이 나는 할머니의 왼쪽 무쇠솥(인간용^^)에서
가마솥으로 밥 하기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할머니가 얼른 나으셔서
도란도란 어릴적 얘기를 나누며
고구마 한 두 개도 넣어 구워먹으며
장작불로 가마솥밥 하기를 가르쳐주셨으면 좋겠어요.

시골집이라 우풍이 너무 심해 장갑을 끼고 자판을 두드리는,,,,,
남양주 물골안의 인우둥 통신원이었습니다!!!
IP : 218.156.xxx.178
1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김혜경
    '03.12.16 8:54 PM (219.241.xxx.226)

    인우둥통신원 수고 하셨습니다...

  • 2. 치즈
    '03.12.16 8:56 PM (211.169.xxx.14)

    하하하 너무 재미있어요
    올라오는 글읽고 기운 빼지 말고 글 많이 올려주셔요.^^

    할머님 빨리 나으셔야 할텐데요 빠른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인간용,,견용 가마솥보러 남양주 지나가면 물골(수동?) 한번 들리고 싶네요.
    장작 타는 냄새가 그립네요.

  • 3. 꾸득꾸득
    '03.12.16 9:37 PM (220.94.xxx.39)

    넘넘 정겨운 글이네요, 개죽,,,그런것도 있군요..

  • 4. 빈수레
    '03.12.16 11:08 PM (211.108.xxx.150)

    개죽...이건 첨 들어 봤네요.
    울집도 어릴 때 개를 많이 길렀는데, 사람 먹고 남은 것 몽창 섞어서 부그르~ 끓여서 줬을 뿐, 따로 담근 "개김치"에 개죽이라니...ㅎㅎ.

    근데, 그런 개죽을 먹던 녀석들이 멋도 없는 사료를 먹기는 합니까???

  • 5. 김수영
    '03.12.16 11:28 PM (203.246.xxx.131)

    아...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인우둥 님 글은 늘 입가에 미소를 자아내네요.^^

  • 6. cargopants
    '03.12.17 2:03 AM (203.26.xxx.217)

    인우둥 님!
    이름도 정겹구 글두 정겹구...
    장작 타는 내음이 멀리 여기까지 느껴지니 이를 어째!?
    인우둥 님! 화이팅~~~!!...^^

  • 7. 솜사탕
    '03.12.17 5:03 AM (68.163.xxx.247)

    정말 통신원 글 같습니다. 구수하게 잘 읽었어요. ^^
    아궁이 불 붙이는것이 그렇게 어렵다고 하잖아요. 애쓰셨네요.
    할머니는 아직도 깁스를 하시고 계신가 봐요. 빨리 쾌차하셨음 좋겠습니다.
    날도 추워지는데.. 따뜻하게 지내세요~

  • 8. begood
    '03.12.17 8:32 AM (203.233.xxx.252)

    장갑끼고 자판두드리는 모습이 막 상상되네요. ㅎㅎㅎ

  • 9. 복사꽃
    '03.12.17 8:50 AM (211.196.xxx.89)

    장갑끼고도 자판이 두들겨지나요? 저렇게 많은 글을 장갑끼고.....대단하세요.
    아무나 못하는 고난이도 기술이네요.
    인우둥님네 발바리는 행복하겠어요. 장작불 음식도 먹어보고....

  • 10. 새벽달빛
    '03.12.17 9:44 AM (211.219.xxx.58)

    어렸을적 외할머니 계신 시골집에서 아궁이, 무쇠솥에 밥해먹고 그 불에 고구마까지 구워먹다가
    너무 쑤셔대서 깊게 들어가 꺼내지 못하는 불상사도 있었고, 무쇠솥에 추수한 볏단에서 훑어낸
    벼이삭들을 팝콘처럼 튀겨먹은 기억도 있고, 한겨울 꽁꽁언 동치미가 어찌 그리 사이다처럼
    톡쏘는지 궁금해 하기도 하고...
    이제는 외할머니가 안계셔서 어릴적 추억으로 남아 있을뿐이지만 인우둥님 글 읽다보니
    정말로 정말로 외할머니 생각이 많이 납니다. 고마와요. 가슴이 따뜻해져와요..

  • 11. 은맘
    '03.12.17 1:39 PM (210.105.xxx.248)

    제 어릴적 마을 풍경을 보는듯.....

    수동이라해서 저희 시골 인줄 알고 뎡말 반가웠는데.... 남양주라.... 멀군여.

    땔감 태우는 연기에 제가 다 콜록 거렸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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