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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딸린 암컷은 암팡지다

주석엄마 조회수 : 911
작성일 : 2003-09-26 13:19:41


1. 새끼 딸린 암컷은 암팡지다.
새끼에게 젖을 물리는 순간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세상으로 부터 새끼와 자신을 지켜줄수 있는것은
자신의 연약한 육체 밖에 없다는것을
잘알기에..

2.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먹고 사는 일이다.
새끼를 기르다 보면 그 절실함을 느끼게 된다.
어디서 그 어려운 일을 하는 힘이 나오는지 스스로도
모른채 해 나가는 것이다.

--------------어제 읽은 책 '엄마'중에서

결혼전 속옷한번 빨아본적없고, 다리미 전원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던 내가 결혼을 하고보니 '집'이라는 무생물이
'가정'이라는 따뜻한 공간으로 변할수 있게 되기까지에는
'엄마'에미'들의 얼마나 큰 희생이 있어야 되는가를 알게 되었다.
나는 '엄마'들은 원래 잠이없고, 요리를 잘하고, 황소처럼 묵묵히
일만해도 전혀 억울함이나 감정의 동요가 없는 사람들인줄 알았다.

그런데 결혼해 살면서 느끼는것중에 하나는 우리엄마나 혹은 시엄마
가 원래 잠이없고, 황소처럼 묵묵히 일하는걸 좋아하는, 매끼 된장
찌게라도 지져내는걸 번거로와 하지 않는게 아니라 무진 노력으로
이 경지까지 이르게 되었음을 알았다.

속에선 천불이 나,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키면서 희생하고, 또 참고,
속에선 화가 화산처럼 끓어 넘쳐도 비가 올때만을 기다리며
속병을 키우는 세월이 길다보니 이젠 엄마들에게 위와 같은 일들이
만성이 되어 버린것이었다.

나........
결혼한 바로 후엔 살림이란게 어려워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솔직히 너무 하기 싫었다.
학교만 다니다가 살림 할려니 너무 억울했다.
무엇도 무엇도 다 싫었다. 그냥 살림이 싫었다.
그래도 그놈의 '사랑'때문에 나는 싫은것도 참을수 있게 되었고
하기 싫은것도 할수있었다.

엄마........
만일 결혼전에 엄마가 나에게 학교갔다와서 집청소 해놓고
저녁준비하고, 빨래 해놓구 주말엔 다림질을 하라고 했다면
아마 나는 난리를 쳤을거다.
그런데 아내가 되고 보니 속옷하나 세탁기에 넣지 않던
내가 서서히 주부가 되어갔다.

그러곤 얼마후엔 한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를 낳아놓고 나는 생전 앓아본적없는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지금까지 학교다니면서 살림한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고생고생해서 아이 낳아놓으니 이것이 밤낮으로 울어대고
시간맞춰 먹여야지, 입혀야지, 오줌, 똥치워야지 대체 내인생이
이제 어떻게 되어갈려고 이러는지 이제 이세상에서 영원히
김혜연이란 존재는 사라져 버린것 같았다.

도무지 자고싶을때, 먹고싶을때, 쉬고싶을떄, 하다못해
친구랑 수다라도 떨고 싶을때, 어떨땐 오줌마려울때도
내 의지대로 할수 없었다.

우리 엄마가 동생을 낳았는데 나보고 우는애 달래고 시간맞춰
먹이고, 기저귀 갈아주고, 빨래 해놓구, 젖병두 삶아놔라고
했다면 '게거품'을 물고 열개의 다리를 마구 흔들며
발작을 했을거다.
그러면서 나는 또 에미가 되었다.

고백하건데 나는 살림이든, 육아든, 아직도 너무나 하고싶고,
즐겁고 행복하고, 기껍고, 쉽지가 않다.
내 친구가 새로 개발한 '즐겁자'라는 단어가
가장 적절한것 같다.
즐겁진 않지만 '즐겁자'
더 솔직히 말하면 즐겁고 싶다.

엄마나 시엄마, 그리고 세상의 많은 엄마들은 과연
이 모든 일들이 너무나도 쉽고, 행복하고, 기꺼웠을까?
....................................................................

떄로는 우리 주변의 사소하고도 너무 당연하게 여겨졌던것이
이렇게 사람을 철들게 한다는게 놀랍다.

아직도 나는 남편과 아이에게 매일 다른 점성의 밥을
제공한다. 떡밥, 삼층밥, 탄밥, 설익은밥등등..
밥의 종류가 콩밥, 쌀밥, 보리밥이 아닌 내가 위에
열거한 밥도 있음을 나와 살면 알게 된다..
그런데도 나의 남편과 아이는 쑤걱쑤걱 그밥을 먹어준다.
'꼬들밥'을 먹고 똥을 싼 우리아기 기저귀에서 소화안된
현미낱알을 볼때면 나도 기가막혀 웃음이 난다.

엄마는 나한테 '니년은 대체 시집간지가 몇년인데 밥물도
못맞추냐며' 매일 지청구에다가, 원래 엄마가 진밥을 내면
집어 던져버리는 수준의 우리 친정아버지는 그래도 막내딸이
해준 밥이라 오만상을 짓누비며 억지로 잡수시곤 뒤돌아
뒷짐을 지고 혼자 조그만 소리로 '에구,, 미친년.."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이 보는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평소에 큰언니가 아이를 봐주고
학교끝나면 찾는게 오일이고 주말엔 내가 아일 보는데
월요일 아침에 출근해보면, 피부가 부석하고, 화장이 뜨며
눈밑이 까매질정도로,, 주말은 나에게 힘겹다.
차라리 학교나와서 근무하는게 더 쉽다.

우리 엄마나, 시엄마나 세상의 모든엄마들은 너무나도 아무렇지도
않게 이 모든일을 그야말로 척척 해낸다.
한마디로 척척박사다.

나도 어제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척척박사가 아니어도, 적어도 척척학사라도 되야 되지 않겠느냐는
그리고 그동안 나의 솜씨없음을 참아준 우리 남편과 아기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느낀다.

세상은. 이렇게 . 철들고 . 또 철들어 가는것같다...............






IP : 210.102.xxx.131
1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딸기짱
    '03.9.26 1:22 PM (211.194.xxx.10)

    아~~~~ 감동의 물결이.....

  • 2. 때찌때찌
    '03.9.26 1:26 PM (61.78.xxx.240)

    짝짝짝 ☞☜

  • 3. 손 샘
    '03.9.26 1:30 PM (218.149.xxx.96)

    강한자 드대 이름은 어머니일지라 ㅋㅋㅋ

  • 4. jasmine
    '03.9.26 1:35 PM (211.204.xxx.175)

    12년짼데, 손을 보면 좀 슬퍼요.....캬바레 제비도 내 손은 안 잡아줄 겁니다.....ㅠㅠ
    나는 어떤 에미인지 잠시 생각해 봤습니다.
    글 참 잘 쓰시네요.

  • 5. 매니아
    '03.9.26 1:40 PM (221.166.xxx.10)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모두 적어놓으셨네요.
    전 글재주 뿐아니라 속감정까지도표현할 줄 모른답니다.
    모두 구구절절 마음에 와 닿네요.

    저도 결혼하기전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몰랐죠.
    김치찌게하나 못 끓였으니..참 한심하죠?? 그래서 한동안 친정엄마 탓을 참 많이 했더랬죠.
    왜 진작 요리하나 안 가르쳤냐고요...실은 제가 집에 잘 붙어있지도 않았어요.
    노는걸 너무 좋아해서..그러다 집에 있는 날이면 늘 잠만 늘어지게 자고 차려놓은 밥만 먹었어요.

    왜 이런말 많이 듣죠. 우리딸은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고 키웠다는....
    근데 결혼하고 보니 이런 말 별로 좋은거 같진 않아요. 그리고 딸 귀하게 키웠다는 생각도 별로
    안 들구요. 오히려 독립심을 뺏앗은 것 같은.....
    전 제 딸 아니 아들도 마찬가지로 어려서부터 부엌일이며 집안일 시키려 다짐합니다.
    제 남편은 결혼 후 저의 능글맞은 애교로 가끔 도와주구요.

    우리의 어머니들 모두 훌륭하시구요, 저 포함 모든 아줌마들 씩씩해집시다.

  • 6. .........
    '03.9.26 1:56 PM (61.75.xxx.171)

    .............................ㅠㅠ

  • 7. 건이맘
    '03.9.26 2:36 PM (211.188.xxx.184)

    엄마 정말 대단하지요...
    전 일하면서 건이 엄마한테 맡기고 나오는데..참 못할짓 한다 싶어서 항상 죄송하죠.
    그냥 저도 조금씩 닮아가고 변해가는것 같아서 다행이다 생각해요.힘들어도 움직이게 되고
    '집'을 '가정'으로 만든다는 말이 참 와닿네요.

    가끔 이렇게 나이를 먹고 이렇게 두아이의 엄마가되고 '일'이 아닌 다른 곳에서 날 찾는 손길이 많아지면서 조금씩 사회에서 발을 빼야 한다고 생각하면 쓸쓸하지만..
    항상 엄마말씀 기억하려고 해요 '밤에 잠들때..오늘 참 열심히 살았다..' 그런 생각으로 하루 하루 사신다구.. 그렇게 살면 저한테도 여러가지 기회가 있겠죠..
    다같이 열심히 자부심 갖고 살자구요...

  • 8. 치즈
    '03.9.26 6:47 PM (211.169.xxx.14)

    님은 솜씨없음이 아니고
    솜씨를 미처 내지않았던거 같네요.
    님의 어머니 언니들이 다 잘해네셨던 것 처럼 님은 하고자 하시고 즐겁자 하는 순간
    이미 솜씨있음이 되실거예요.
    아기키우시며 힘드실 때네요.기운내시고 즐겁자구요.

  • 9. 레아맘
    '03.9.27 2:01 AM (81.248.xxx.107)

    정말 많이 공감이 가는 얘기들이네요.
    오랜기간 공부한 저는 외국에 뿌리를 내리게 되고 아이를 가지면서 제 자신과의 싸움이 참 많았어요. 지금도 가끔씩 '에미' 보다는 '나'가 고개를 치고 올라와 힘들때도 많답니다.
    님의 글을 읽으니 사랑하는 나의 가족에게 따뜻한 '가정'을 만들어주기위해 '즐겁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야지 하는 힘이 생기네요.
    저도 오늘부터 잠자기 전에 오늘은 정말 열심히 살았나 하루를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 겠네요. 참 좋은글 많이 보구 많이 배우네요. 저두 82cook중독이 점점 심해지니....

  • 10. 우렁각시
    '03.9.27 5:51 AM (63.138.xxx.121)

    쟈스민님..아무도 안 잡으려 하는 못나고 거친 손을 불평없이 잡아주기 땜시...
    바로 "제비"라고 불리우는거 랍니다. ----> 엄청난 프로 정신이죠?

    모든 여자는 당연히 밥 잘 하고 (새벽같이 일어나...)남편 와이셔츠 싸악 다린후
    방에 잔먼지 하나 없게 해놓고 만족해하는 존재인줄 알았던 우리 또또로 신랑...
    결혼후 "왜 넌 우리 엄마(시엄니) , 아니 널 낳아 길러준 장모님과 이리도 다르냐"고 울부짖더이다....
    그게 그리 쉬운 일인줄 알았나 보죠? 깊은 내공이 쌓여야 하거늘.

  • 11. ...
    '03.9.27 8:43 AM (211.109.xxx.135)

    여자들이 뭘 모르고 결혼하는 것 같죠?
    주부 노릇, 엄마 노릇 예비 체험 코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하긴 뭐 그런 코스가 있으면 해 보고 그래도 결혼 안하셨을까만은....나이 들면서 주변에 결혼한 여자들 사는 거, 힘든 거 많이 듣고 보고 하다 보면 노처녀 됩니다. 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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