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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대한민국 한 맞벌이 주부로서

서호맘 조회수 : 975
작성일 : 2003-06-27 16:59:59
저는 직장 9년차, 결혼 7년차, 아이는 39개월입니다. 결혼해보니 정말 어느 한가지도 제 손이 안가는곳이 없더군요. 그나마  그동안의 시간을 쭈욱 돌이켜보니 아이없이 둘이 있을땐 천국이었고 임신했을땐  육체적/정신적으로 조금 힘들었고 아이가 어릴때 정말 지옥이었다 싶네요.

지금은요? 지금은 무지 행복합니다. 비결은 없고 시간이 답인것 같네요. 다 잘한다 생각하지도 않고 맞벌이라는 이유로 가정/직장 어느한곳에 태만하지도 않게 긍정적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몸 내키는만큼만 하고 사는게 답입니다. 즉, Speed/Smart Working이 곧 행복입니다.

학교다닐때는 꽤나 낙천적이었는데 지난 몇년은 에스컬레이터에서도 맘이 급해 층계를 뛰어다닐정도로 그렇게 힘들게 살았답니다.  퇴근하면서 적어둔 품목대로 식품코너를 날라다니며 후다닥 장을 봐서 애 맡기는 집에 들러 애까지 들쳐업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애랑 장바구니 무게에 뒤로 걷는 느낌이었답니다. 여름엔 그래도 환해서 서글픈 맘이 덜하지만 캄캄한 겨울 저녁에 그러고 집에 들어가면서 '우찌 이리 사는게 힘드나' 하는 생각 수없이 했답니다. 집에가서는 놀아달라 매달리는 애 한손으로 안고 정말 손끝하나 까딱 안하는 남편 저녁 준비 할때도 많았답니다. 그러면서 그런것때문에 남편이랑 많이 싸운것 같네요.

지금 제 생활은 나름의 맞벌이 노하우가 많이 쌓였습니다. 청소 대강, 빨래 대강, 먹는것 대강 그러고 삽니다. 스팀청소기, 광고하는 갖가지 청소도구들 사놔봐야 다 그림의 떡입니다. 문제는 그걸로 청소할 시간이 없습니다. 요즘 제가 애용하는건 손바닥만한 극세사걸레가 찍찍이로 달린 밀대입니다. 2만원정도 주고사서 부담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옛날엔 "집에서 무슨 밀대?"했지만 이젠 내게 맞고 내가 편한게 젤입니다. 빨때도 손바닥만해서 별 스트레스없이 빨수있거든요. 그것마저도 빨기싫으면 욕실에 며칠이고 그냥 방치합니다. 남편은 왔다갔다하며 보기 힘들겠지만 빨아주지도 않으면서 그정도도 못참으면 정말 .....
집안 먼지에, 남편 잔소리에 일단 초연해야 합니다. 원래 게으른 사람이 잔소리도 많이 하쟎아요. 일을 많이 해본 사람은 이런건 참 힘들더라, 이건 정말 죽어도 하기싫더라는 감이 딱 오쟎아요. 그래서, 자기가 손댈거 아니면 말을 아끼죠. 아닌가요?

빨래도 옛날엔 헹굼을 8번했답니다. 지금생각엔 고생을 사서한듯. 요즘 4번 헹굽니다. 속옷, 양말 많이 비축하고 삽니다. 그래야 빨래 스트레스에서 벗어날수 있습니다. 애옷도 옛날엔 손빨래했는데 요즘은 유아복코스로 그냥 휘리릭~ 실제 가사노동중 세탁에 M/H가 많이 소모되긴 해요. 저도 드럼세탁기를 사용하면 건조대 널고 걷고 하는 과정이 많이 줄어 참 편할것 같은데 가지고있는 세탁기가 너무 멀쩡해서.... 일주일에 거의 매일 빨래가 돌아가는 형편입니다. 빨래해서 바로 건조되면 꺼내서 개거나 걸어두는 방법이 답인것 같네요.

가사노동중 M/H가 많이 드는게 해먹고 사는 겁니다. 들이는 M/H에 비해 결과는 너무 참담하고 스트레스는 젤 많이 받지않나 싶습니다. 저는 그동안 외식도 많이 해보고 배달도 많이 시켜보고 만들어먹고도 살아보고 여러가지해봤는데 결론은 본인이 스트레스 적게 받는걸로 결론을 봐야한다는 겁니다. 시간과 피곤함에 스트레스 받으면 외식이나 배달을 자주 이용하고 얄팍해지는 지갑때문에 스트레스가 더 심하면 해먹고 살아야하고. 그동안 제 스스로 食 부분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82cook에 드나들며 즐겁게 해먹고 사는 기쁨을 요즘 누리고 있습니다. 매실쨈, 마늘 장아찌, 양파 피클 어느 한분 스트레스 받으시며 그거 만드시는분 안계시죠? 이겁니다. 저도 그동안 엄마가 애써 만들어준 마늘 짱아찌 찬밥 신세로 냉장고에 넣어두었고 냉동해서 주시는 갖가지 생선, 조개, 새우 이런거 시간 없다는 핑계로 온갖 짜증 부리며 받아와서는 녹이다가 시간없어 냉동실 다시 집어넣고 이러면서 참 많이도 버렸습니다.(해동판 산뒤로는 잘 해먹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동안 나름대로 해먹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형식적으로 해먹고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이것저것 해보면서 만드는 기쁨도 느껴가는 중이고 가사 스트레스로 남편한테 부리던 짜증도 많이 줄었습니다.

어디서보니 대한민국이 맞벌이주부한테 젤 힘든 나라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저는 일을 계속할 생각이라 이런식으로 시간과 함께 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지금이 제일 행복한 상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제일 힘든 순간도 아니라는 맘을 가지세요. '남편이나 기타 경제적인 이유로 할수없이'가 아니라 어떤 이유에서건 본인 스스로 직장을 포기하지않고 가사를 병행해간다면 맞벌이가 될수밖에 없습니다. 본인의 의지로 직업을 가지는 거라면 힘들더라도 스스로 방법을 모색해보는수밖에 없습니다. 저부터도 남편에게 짜증을 내고 그동안 살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제가 일이 좋아 다니면서 힘들다고 가까운 남편에게 화를 낸것 같습니다. 남편도 맞벌이 아내를 두었기때문에 힘들었던 순간이 많았을겁니다.  

아무쪼록 현실을 받아들이고 시간을 절약하면서 즐겁게 사는 노하우를 하나씩 배워가는게 답일것 같습니다. 모두들 힘내세요!!
IP : 211.193.xxx.3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natukasi
    '03.6.27 11:24 PM (61.102.xxx.214)

    자유게시판의 글들은 빠짐없이 보기는 해도 열어봐서 좀 길다 싶으면 대강 읽어버렸거든요.
    지금도 대강 읽다가, 대강 읽을것이 아니다 싶어 시선을 위로 옮겨 다시 천천히 읽어봤어요.
    나이 많은 1년차 초보라... 많은 부분에서 헤매고, 스트레스 받고, 하고나도 보람을 못느끼다 여러가지 상황을 핑계삼아 지금 5개월째 전업주부랍니다.
    조만간 다시 일을 가져야 해서 지레 겁부터 먹었는데 서호맘님 글을 보니 용기가 생기는듯 해요.
    부끄럽기도 하고요......선배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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