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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가야 보이네.

토끼지우개 조회수 : 346
작성일 : 2011-06-14 11:50:23


어릴때, 산입에 거미줄 치고 살던 가난한 빈촌에서 살았었어요. 초등학교 2학년부터 4학년 가을초까지 살았던 곳인데요, 그때 생각만 하면 정말 제 머리카락이 저절로 까치집이 되는것처럼 소름끼치고 곤두서는 기분이 들어요.

우리 아버지 이야기부터 해야할것같아요.
매일 술에, 의처증에, 알콜중독에, 게다가 여자밝힘증에, 지독한 수전노에, 학교 일이라면 게거품물고 눈이 돌아가서 펄펄 뛰면서 도화지 한장 사는것도 아까워서 고아원에 내일이면 갖다줄 애들이라고 동네가 울리도록 소리질러대고, 술마시고 들어서면 동네초입부터 그 허름한 바지입성이 시끄러운 풍악을 울려대고 교양은 하나도 없는 그동네에서도 내놓은 개차반이었던 사람.

왜이리 무서웠는지, 점점 말을 잃어가고, 사람들보는것도 다 싫고, 잘 못먹고 지내서 하늘도 노랗게 물드는 것같은 현기증을 느끼면서 비오는날이면 홀딱 비 다맞고 오고가던 그 시절. 가난이 그런가보다 하고 살았는데요.

그런 제 모습에서 자존감이라는것은 도대체가 찾을 수가 없었고,, 도대체가 위생관념은 눈씻고 찾아볼길없는 단칸방 가난한 사람들의 이빨은 누런색으로 빛나는 그 동네에서 모두가 굶주린 들개처럼 눈만 퀭해선~ 여편네 등이나 후려패는 건달패들이나 많아선 여자와 북어는 사흘에 한번씩 패야 한다는 말만 명언처럼 해대고,, 아이들은 어디나 북적북적이는 곳에서 우리집은 유독 더 먹질못해서 팔다리는 배배 말라선 얼굴은 유독 하얀채로 햇빛속에 비실비실 돌아다니고 부모들이 다 다리밑의 거지들 같아보였던지 늘 그 동네 키큰 아이들의 놀림감세례, 발길걸어 넘어지기는 온통 다 도맡아했던 몹쓸기억이 있네요.

그땐 몰랐는데, 세월이 가니까, 밑바닥이 더 잘보이는 양동이속의 물처럼 어린시절이 더 잘 생각나는거에요.
그런데, 더 무서운 기억이 있어요..
그걸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었는데,, 여태 한번도 못했어요..

그 다리밑 가난한 동네에 무당집 딸이 있었고, 제가 그 아이와 똑같은 나이의 국민학교 3학년 동창이었죠.
그 아이와 하교길에 문득, 저보고 그러더군요.
"너네 엄마는 무당이지?"
물론 아니라고 했는데, 그 아이는 결국 제게 무당이라는 말을 내 뱉고, 그 긴 미나리꽝사잇길을 정신없이 뛰어가더라구요.

다음날, 우리반 다른 아이한테 우연히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분하고 슬펐다고 하니까 그아이가 다음날, 자기엄마에게서 놀라운 사실을 들고 온거에요.
우리동네 가난한 집의 단 하나 있는 그 단층벽돌 양옥집딸이 무당집 딸이라는 거에요.
금새, 그 소문은 일파만파 퍼졌고 그 곁에 같이 있던 저도 얼떨결에 소문을 퍼뜨린 아이가 되었어요.

집에 가서 같이 놀자고 그 무당집 딸네 언니가 절 데려가더니, 왜 흉을 봤냐고, 경찰서에 신청하겠다고 으름장 놓고, 전 그후로 9개월을 그아이 심부름에, 사회숙제 지도 그려주기에, 수학문제 해주기, 아무튼 갖은 숙제는 다 제 차지가 되었고, 그 아이의 혹독한 심부름을 다 견뎌야 했어요.
그때에도, 전 다 제잘못이 아니었던 것같았어요. 하지만, 제겐 그걸 같이 들어주고, 대항해줄 부모님이 없었으니까요. 있었어도 술을 마시건 안마시건, 늘 화가 나있던 아버지가 멱살을 끌고 우리자매들을 자주 문밖으로 나가 내팽개쳐두고 싸대기를 후려치곤 의기양양 돌아오는데 그 누가 그런 사람을 무섭게 보겠어요,

가을무렵에, 그 곳을 이사올때 얼마나 후련했는지...

그런데, 그 기억이 클땐 잘 몰랐는데 서른 후반인 지금 잘 안지워집니다..

집에서도 아직 그걸 잘 모르고 있구요..

참 무서운 기억 맞는거죠?
단지 그옆에 있었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집의 고명딸인 귀한 자식을 그렇게 놀림감당하게 했다고,, 물론 제가 그런게 아니란걸 잘알고 있을텐데도, 범인은 따로 있을거라는걸 알텐데도, 소문이 너무 많이 퍼지니까 힘없는 저를... 잡아서,, 그 생각을 하다보면, 그 잿빛 하늘이 떠오르고.. 김숨의 백치들이란 소설을 읽을때에도 그 기억이 나서 참 많이 힘들었는데,,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지금은 물론 그 일이 있다면, 당당히 맞설수 있는데,, 왜 이리 그때는 어디 하소연 할데도 없고..
오늘밤엔 혼백이 찾아와 널 데려갈거야라는 그 무당집 딸의 저주가 정말 무서웠던 그 기억.. 참 몹쓸기억이네요.
그 아이가 19살에 결혼해서 딸아이 엄마가 되었다는데, 이 글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합니다.
IP : 110.35.xxx.171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저런,
    '11.6.14 12:20 PM (147.46.xxx.47)

    너무 무섭고 충격적인 경험이네요.사람들이 님을 함부로하고 위협하고 하수인 대하듯 부려먹어도,님을 보호해줄수있는 가족이 없었다는게..ㅠ하늘아래 어떻게 이런일이 있나요....
    기억속에 가해자들..머리속에 지우개가있다면 지워버리고싶을듯,
    감히 어떻게 위로할수가 없는 일이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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