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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행복하거나 엄청나게 슬프셨던 적 있지요?

연탄재 조회수 : 791
작성일 : 2011-04-02 02:36:13
저는 가끔 제가
미지근한 물 속에 담겨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체온이랑 같은 정도의 물이거나 조금 더 낮은
손을 대 보면 따뜻하기는 하지만
들어가 있다가 조금만 움직이면 몸이 조금 서늘해지는
들어간 순간은 조금 따뜻하지만 몸이 점차 식어가는 기분이 드는 그런 물요.

그래서 저는 저를 둘러싼 주변이 움직이지 않기를 늘 바라요.
움직이지 않고 있으면 온도차가 느껴지지 않거든요.

저는 딱히 행복해본 적도 없고
딱히 슬퍼해본 적도 없어요.
단 한번도 결혼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지만
다행히도 좋은 사람 만나 같이 있고 싶어 결혼을 했어요.
제 세상엔 엄마와 남편 단 둘만 있고
그보다 조금 더 먼 곳에 아버지가 계세요.
그 나머지는 어떻게 되든 별 상관이 없다는 기분이에요.
그 둘을 제외하고는 누가 날 떠난다 해도 전혀 놀랍거나 슬프지 않을 것 같아요.

다시 태어나면 미역이라던가 그런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해파리나.
물 위로 둥실둥실 떠서 다니게.
슬펐던 일도 괴로웠던 일도 행복했던 일도 없다고 하면
분명히 어느 분께서는 그것만으로도 행복이라고 말씀하시겠지만
저는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고
그것과는 조금 다른 상황에서 늘 흔들거리고 있어요.
행복과 불행과 저는
동쪽과 남쪽과 오른쪽 같은 관계같아요. 말로 쓰면 이상하지만.
뭔가 비슷하면서도 기준이 다른 그런 기분요.

이상하게 늘 치열하게 일을 하고 오늘도 일 끝내고 돌아와 잔업을 하지만
남이 보기에 정말 바빠보일 것 같지만
저는 이 세상에 한번도 속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만약에 버튼을 눌러 사라질 수만 있다면
남편과 엄마의 기억에서 제가 지워질 수만 있다면
진짜 얼른 눌러버리고 저 세상 멀리로 사라지면 좋겠네요.
하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죽고 난 뒤에도 혼이라도 계속 이 세상에 남아있을까 하는 것.
그래서 저는 죽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아요.
적어도 제가 여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 지금에 머물러 있어요.
이것보다 더 좋은 상황도 더 나쁜 상황도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돌이 길 가운데 박혀 있듯이 전 그렇게 세상에 있어요,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봐도
행복했던 기억도 슬펐던 기억도 딱히 없네요.
화났던 기억도 없구요.
외롭지도 않았던 것 같아요.
저는 가끔 흐린 날의 그림자같다는 기분이 들어요.
불 끈 다음에 천장에서 빛이 남아있는 형광등이나요.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가끔가다 참 따뜻한 일도 있어요. 내가 쓸모있구나,싶어 웃음이 날 때도 있어요.
하지만 조용히 혼자 있다 보면
샤워 후 몸에서 온기가 식듯이, 물 묻은 손이 차가워지듯.
알콜 바른 손등이 시원해지듯이
몸에서 따뜻하던 기분이 날아가버리는 기분이 들어서
그러고 나면 더 추워요.
따뜻했던 기억은 가슴 저 깊은 곳에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어서
하나를 꺼내면 줄줄이 따라올라오지만 절대 스스로는 떠오르진 않고
그렇게 떠올린 기억도 참 사진처럼 왠지 평평하고 조그마해요.
그런 기분 있잖아요, 유난히 예뻐서 사진으로 찍었는데 찍고 보면 아쉬운 그런 것.
지금 내 손에 남은 사진보다 훨씬 아름다웠던 것이 있었다,라는 그 기분만이 선명해지는 그런 것.

저는요, 가끔씩
제가 콩나물같아요.
위로는 자라지 못하고
어두운 곳에서 물만 먹어가며
아래로 아래로 발을 뻗어가며 자라는 하얀 콩나물.
꽃을 피울 수도 없고 가지를 뻗을 수도 잎을 만들 수도 없이
키만 커 가는, 땅에 발 한번 뻗어보지 못한 콩나물요.





IP : 59.9.xxx.111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그지패밀리
    '11.4.2 2:43 AM (58.228.xxx.175)

    휴...이제 제일 다 끝내고 자리 누우려고 해요.아침부터 아이 학교보내고 잠시 잠을 다시 청했다가 밥먹고 치우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그리고 일할 준비 하고. 일하다가 중간에 애 밥챙기러 집에 다시와서 밥하고 먹이고 다시 일하고. 그리고 밤에 아이숙제 공부 다 봐주고. 밀린 일 또 하고..이게 제 하루일과라..행복이니 불행이니 생각이 안드네요...그러나 전 아주 행복했던 일도 많았고 아주 힘든일도 많았어요.극강의 기쁨 슬픔을 다 맛보면서 살아왔던 사람이라. 뜨드미지근한 삶은 모르겠지만.극강의 감정을 겪는것도 뭐 딱히 좋은건 아니예요..
    이제 자야 할 시간이네요.그런데 이시간에 제일 행복해요.자리누우면 몸이 풀어지면서 잠이올때..항상 행복해요..
    작은일에 기쁨을 한번 느껴보세요..사정은 제가 잘 모르겠지만.힘내세요.제가 오늘 글로써 봉사를 했나 오늘하루를 또 한번 반성하면서 자리들랍니다.

  • 2. ㅇㅇㅇ
    '11.4.2 2:59 AM (123.254.xxx.51)

    저도 자야되는데.. 몇시간째 요 사이트에서 계속 머물고 있네요.
    님... 저도 그랬던적이 있어요. 내 가족과 내가 세상에서 없어지면 슬퍼할 사람들때문에 살아갈수밖에 없다고 여겼었던 때가요. 그런데 죽을 용기도 전혀 없고요.
    세상에서 존재감이 없고 또 존재하고 싶지 않은 그런 마음 같으세요.
    하지만 그렇더라고요. 내가 왜 태어났나. 왜 사나 이런 의문을 가질 필요도 없다는 것.
    숨쉬고 있음에 감사하고 그냥 현재에서 최선을 다해 사는 수 밖에 없는거 같아요.
    왜 그렇냐구요? 삶에 답이 있나요. 김태희든 누구든 결국 인생무상입니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살아요. 이왕 사는거 즐겁고 행복하면 더 좋겠지요.

  • 3. ㅐㅐ
    '11.4.2 3:04 AM (121.132.xxx.36)

    우와~글을 정말 맛나게 쓰시네요. 어쩜 이렇게도 표현이 생생한지...너무 신선했어요. 선명한 글 보여주셔서 감사해요.

    그건 그렇고, 님이 미지근한 사람인건 님같은 온도를 가진 사람이 세상에 꼭 필요하기 때문이겠죠.
    온통 뜨겁거나 차갑기만 하다면 세상이 유지되지 않을테니까. 그림자로 느껴진다면 그림자가 님의 역할이겠죠. 근데 so what? 그림자 없이 존재하는 대낮의 물체가 있나요.
    필요한 사람이니까 태어나서 여기 있는 거겠죠. 그 필요를 꼭 찾을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 4. ㅇㅇ
    '11.4.2 3:49 AM (124.80.xxx.165)

    저는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 삶을 마칠때까지 아무렇지 않은척 훌륭하게 조연을 해주고
    그분들이 모두 천국에 가시면 플로리다 해변이나 스페인에 가서 햇빛과 여행을 즐기고 히피생활을 할 예정입니다.
    먼훗날 언젠가 꼭 그날이 오리라 기대하고 오늘도 태연한척 웃고 살아요. 그래서 얼굴에 점점 청춘이 바래어져도 남친이나 남편이 없어도 슬프지않아요. 거추장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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