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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말 그대로 남성이 부양해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인가요(펌)

김이박 조회수 : 349
작성일 : 2011-03-03 13:59:27
오후 네 시. 압구정 역 근처 일반통행 골목에서 차가 줄지어 나온다. 일렬로 늘어선 차량이 열네 대. 이 중 열두 대가 외제차다. 네 대는 벤츠, 세 대가 베엠베, 두 대가 닛산, 두 대는 아우디, 혼다가 한 대. 억지 검증 하나. '압구정동에는 부자가 많다.'
그리고 성별 변수 투입. 운전자를 확인해 보니 외제차 열두 대 운전자 모두 여성. 그리고 연령 변수 투입. 나이는 60대 전후로 보임. 그리고 문화취향 변수 투입. 족히 몇 천만 원은 돼 보이는 밍크코트와 윤기 흐르는 (그러나 운전에 그다지 필요해 보이지 않는) 장갑. 결론.'압구정동에는 부자 여사님이 많다.'

한국 사회는 많은 사람이 이러한 부자 여사님을 보면 일단 욕부터 한다. 그 핵심은 “남편 잘 만나 저런 인생 산다!”는 것. 그러나 이것은 질투의 다른 표현일 뿐. 사실 노후의 안락한 삶, 그걸 넘어서는 과시적 삶은 (모두 이런 말이 불편하다고 하지만)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인간이라면 모두 꿈꾸는 거다. 결국 압구정 여사님에 대한 비난은 자기 남편을 지금껏 믿었는데 벤츠 사줄 상황이 오지 않아서 하는 속풀이에 불과하다.

이처럼 압구정 여사님과 이들을 욕하는 여성은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Male breadwinner model)이라는 동일한 사회구조의 ‘다른’결과물에 불과하다. 이 모델은 간략히 설명해서 남자가 생계를 책임지고 여성은 이를 지원, 전문용어로 ‘내조’, 한마디로 집안일을 담당하는 것이다. 이러한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은 농경사회 이후 ‘힘’이 존중되면서 나타난 역사 현상이자 산업사회 이후 이러한 ‘힘’에 대한 ‘보상’이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효율성 차원에서 상호 합의된 성별 역할분업이었다.
당연히 (이론적으로 문제였지만) 사회는 남성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여성이 경제 활동영역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것은 힘들었다. 임금도 적었고 해고도 먼저 당해야 했다. 범죄에 가까운 성추행을 당해도 ‘조직문화’라는 이름 앞에 그저 침묵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 여성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남편 잘 만나서, 그런 남편 내조 잘해서 나중에 호강하는 인생설계를 그리는 것이 지극히 합리적인가? 압구정 여사든 내가 사는 동네 아줌마든, 이 모델 ‘안’에서 발버둥친 것은 마찬가지. 한명은 대박을 쳤고 한명은 대박을 못 쳤을 뿐.


문제는 압구정 여사님이 ‘될’가능성이다.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이 모든 여성을 압구정 여사님으로 만들어준다면 왜 남자만 일하느니, 왜 여자는 내조해야 하느니 등의 논쟁이 필요했을까? 문제는 아니라는 거다. 더구나 압구정 같은 경우는 1퍼센트의 가능성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 사회는 “나중에 잘 살려면?”이라는 희망고문에 압구정 여사님의 벤츠 승용차를 오버랩하면서 여성은 남성을 내조하는 구조로, 남성은 죽어라 일하는 구조에 편입해 버린다.

압구정 여사를 꿈꾸지만 현실은 어찌?


일본 드라마 <프리터, 집을 사다>(フリーター、家を買う, 2010)를 보자. (원작 소설은 우리나라에 『백수알바 내 집 장만기』로 번역됐다.) 이 드라마는 일본사회 불황이 야기한 청년실업자, 이른바 ‘프리터’를 주인공으로 하는데 여타 한국판 백수 이야기와는 다른 의미를 제공한다. 국내 백수 논의는 단순히 백수 자체의 ‘찌질한’ 삶을 소개하는데 재미를 부여한다. 조금 진지해졌다는 것이 “책임은 너한테 있다! 목숨 걸고 살면 안 될 것 없다!”정도다. 오죽했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있을 정도다. 그것도 베스트셀러로. (아픈 것 당연하니 징징거리지 말라?)  

하지만 <프리터, 집을 사다>는 경제 불황이라는 사회 상황이 가족과 평범한 이웃에게 불안 심리를 제공하고 여기서 모든 문제가 뒤엉킨다는 것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한국은 패배자로 20대를 독특하게 규정하기에 산업시대 불철주야 기름 묻혔던 기성세대의 개입을 항상 열어둔다. “우린 안 그랬는데, 너희는 약하다!”는 논리 말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주인공 다케 세이지(니노미야 카즈나리)가 프리터라는 사실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매개로 단란했던 가정이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희생당하는지 주목한다. 이를 통해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승자가 되지 못한 사례(한국처럼)가 아니라, 승자가 될 수 없는 사회구조가 얼마나 비극적인지 설명한다.

아버지 다케 세이치(타네카마 나오토)는 전형적인 산업화 시대의 아버지상이다.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의 바로 그 부양자다. 그는“내가 가장이다! 너희는 나를 잘 보필하면 모든 게 다 잘 될 것이다!”라는 식으로 아내와 자식 앞에서 권위로 군림하길 희망했다. 그리고 평생 그렇게 살았다. 아마도 압구정 여사님 남편도 이랬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 벤츠를 부인에게 사줄 형편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그는 원했던 대기업에 들어가지 못한 콤플렉스를 평생 가지고 있고 현재 회사에서도 실력으로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 때문에 좌불안석이다. 회사 사택에 사는 그는 집세를 아끼기 위해서라도 이사를 가지 않는 소인배에 불과하다.

그런 그에게 아들의 잉여적 삶은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다. 백수는 이른바 산업화 시대의 메커니즘으로 볼 때 무능함 그 자체다. 그래서 대기업에 입사했다가 신입사원 연수에 불만을 느끼고 퇴사한 아들이 한심하기만 하다. 생계를 부양하는 자신의 은퇴는 생계를 부양하는 자식으로써 가능한 것인데, 그에게 아들의 프리터 인생은 배신감 그 자체였다. 이른바 평생 긴장하며 살아온 살얼음판이 깨지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 얼음판이 깨지자 오직 남편에게만 의지했던 아내가 가장 큰 희생자가 된다는 것이다.


평생 살얼음판을 걷는 남편 ‘옆’에서 또 다른 살얼음판을 걸어야 했던 부인 다케 스미코(아사노 아츠코). 그녀는 지금껏 자칫 자신의 불똥이 가정에 피해를 줄까봐 인생 자체를 소극적 영역으로 제한한다. 그래서 그녀의 인생은 오직 남편과 자식만 잘되면 그걸로 본인 역할이 종료되는 전형적인 어머니상이다. 조금이라도 개인적 욕망 때문에 다른 이가 피해를 보아서는 안 되는 그런 삶 말이다.
그런 그녀가 행복이 아닌 ‘불안’코드로 변해버린 가정에서 엄청난 자책감을 느끼고 결국 우울증에 걸린다. 그녀는 구석진  곳에서 반복한다.
“죄송합니다. 죽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녀는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이 만들어낸 희생자다. 물론 아버지도 아들도 희생자지만 그나마 이들은 능력을 닦고 키울 기회라도 있었다. 그래서 대안적 무엇을 찾을 가능성이라도 있다. 그러나 아내는 말 그대로 남성이 부양해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오직 가족만이 잘 되기 원했던 결과가 이처럼 비참할 줄 알았다면 누가 그런 삶을 받아들였을까?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에 문제를 제기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은 철저히 남성에 의해 또 다른 남성을 파멸로 유인한다는 것이다. 살얼음판을 당연하게 규정하고 한 인간이 내조라는 역할로 기능을 제한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남자들은 ‘목숨 걸고’ 살아가지 않고서는 이 구조에서 버틸 수 없다.
이처럼 승자 독식사회라는 큰 그림이 그려지게 되니, 당연히 자기가 소속된 곳의 이윤에만 눈에 불을 켜게 된다. 자기 회사에 비정규직이 많을수록 집안 여사님이 벤츠 몰 확률이 높아지는 딜레마의 시작.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 벤츠만  주목한다. 그래서 남자들은 “나중에 벤츠 타게 해줄게!”그러면서 복종을 강요하고, 여성은 그것을 또 바보처럼 믿는다. 과연 이 사람들의 결론은 벤츠일까?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망가져버린 가정일까?


그렇다면 이 모델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남성에게만 부과된 이 구조가 양성평등 개념으로 다시 세팅된다면, 이른바 남자에게 과중하게 부과된 스트레스, 그리고 그 남자 때문에 여자가 우울증에 걸릴 확률은 줄어들지 않을까?

그런데 이 사회 모습은 어떠한가? 여전히 여자는 동일노동을 해도 임금을 적게 받는다. 임신만 해도 눈치 보아야 하고 출산휴가는 소수의 이야기다. 여성이 생계를 부양할 수 있는 사회 체제가 제로라는 거다.


게다가 남자는 사이버 공간에서는 별 것 아닌 남녀논쟁에서 “씨발! 왜 남자만 일하는데!”라고 따지면서, 일상에서는 이상하리만큼 이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에 동조한다. 이렇게 힘든 구조를 알고 있으면서 애써 태연한 모습이다. 엉엉거리며 울 만한 현실인데, 이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울지 않는다. 남자는 세 번만 울어야 한다나 뭐라나. 게다가 여자는 세 번 이상 우는 남자를 남자답지 못하다고 외면한다. 이것 참. 이래저래 X같은 사회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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