짭짤 고소한 김혜경의 사는 이야기, 요리이야기.
복고 음식 4 [수란(水卵)]
별다방 콩다방 같은 커피전문점이 대세이고,
퍼콜레이터로 끓인 원두커피보다는 에스프레소 베이스 커피가 유행인 요즘,
30대 이하라면...정말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 한자락 할까봐요. ^^
요즘에는 다방이라는 용어도 잘 쓰지 않아서 생소하거나, 아니면 이상한 영업을 하는 곳을 상상하게 되지만,
제가 학교 다닐 때는 다방이 지금의 커피전문점처럼 일반적인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마담도 있고, 차를 나르는 레지도 있고, 달걀노른자를 동동 띄운 쌍화차를 마시는 아저씨도 있고,
학교 앞 다방도, 뭐,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DJ가 신청곡을 틀어주는 정도?!
당시 다방 메뉴 중에는 반숙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주머니 가벼운 청춘들이 다방에 모여앉아 죽치고 시간을 죽일 때,
배가 안고프면 커피, 배가 좀 고프면 이 반숙이었습니다.
반숙이라는 것이..원래의 용어는 노른자가 반쯤 익었다는 뜻인데...
당시 다방에서는 노른자를 반만 익히거나 말거나...반숙이라고 불렀습니다.
정확한 이름은 수란(水卵)인데 말이죠..
수란은...중고등학교 가정시간에 배워, 집에 돌아서 실습을 해본..달걀요리인데..은근히 까다롭죠.
끓는 물에 달걀을 익힌 것이라,
느끼한 달걀프라이보다 담백하고, 퍽퍽해서 목이 메이는 찐달걀보다는 부드럽고...
그런데, 프라이나 찌는 것보다 훨씬 난이도가 있어서, 잘 하게는 안되죠.
느닷없이, 며칠전부터..수란이 먹고 싶은거에요.
예전처럼 다방에 가서 반숙을 시킬 수도 없는 것이고, 오늘 저녁에 장난삼아 해봤습니다.
자료 검색도 귀찮아서..옛날 기억을 더듬어가며...
방법은 일단 냄비에 물을 펄펄 끓이고,
준비된 국자에 달걀을 하나 깨넣은 후에,
국자의 바닥을 끓는 물 위에 갖다대어 달걀의 흰자를 서서히 익혀갑니다.
흰자가 어지간히 익어가면 국자를 물에 담아 달걀을 익히다가,
국자에서 달걀을 분리, 달걀을 완전히 잠수시켰다가 건져내는 것이죠.
이때, 수란이 잘되고 못되고의 관건은 국자에서 달걀을 얼마나 잘 분리해 내느냐 하는건데..
오랜만에 해보는 것이라서, 은근히 걱정이 되는 거에요.
달걀 빨리 응고하라고 물에 식초를 넣으라고 했던 것도 같고,
국자에 기름을 아주 얇게 바르라고 했던 것도 같고,
아무래도 기름을 바르는 편이 쉬울 것 같아서..그렇게 했습니다.
식구들 앞앞이 작은 그릇에 수란을 담아냈습니다.
역시, 좀 까다로워서 그렇지, 어떤 달걀보다 맛있습니다.
수란을 먹으면서, 문득,
대학 방송국 활동할 때, 반숙 하나 먹어가면서 몇시간 동안 나름의 방송철학을 펼치던 그들은,
지금 어디서 다 뭘 하고 사는 지 궁금해졌습니다.
내가 허리 23인치의 날렵한 아가씨에서 당시보다 부피가 두배는 되는 아줌마가 되는 동안,
그들도 머리숱이 왕창 빠져서 머리 속이 훤하게 들여다보이는,
확 늙어버린 아저씨들이 되어있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회심의 미소도 한번 지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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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이린
'07.9.18 9:09 PM앗싸 1등!^^*
2. 진선
'07.9.18 9:12 PM계속 글 안올리셔서 조마조마했어요
어디 편찮으신가
완전 82중독 증상중 하나네요
환절기 건강 주의 하세요3. 아이린
'07.9.18 9:12 PM혜경샘 요즘 며칠째 소식?이 없어서 궁금해 하던 중인데
드뎌 오셨군요^^
수란 한번도 안해봤는데 낼 저녁 반찬으로 낙첨입니다.
기름을 안써서 담백할 듯 해요.4. 샤이
'07.9.18 9:15 PM몇 일 글이 안 올라와서 해외여행 가신거라 생각했어요~~ㅎㅎㅎ
달걀 엄청 좋아라해서 하루에 몇 개씩 먹었는데
아빠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셨느데 금기 음식에 노른자가 있대요 (콜레스테롤 때문에)
그래서 요즘은 먹어도 맘 한구석에 찜찜해요
그래도 열심히 먹어주지만요~~~
다방에서 수란을 팔았다는;;;;~~~~ㅋㅋㅋ 왜이렇게 웃음이나죠...5. onion
'07.9.18 9:33 PM약간 번거롭지만 담백하게 술술 넘어가는 수란...맛있지요.
외국 여행가서 매일 써니사이드-업만 외치다가 어느날 시켜 먹은 수란 생각이 나네요.
선생님, 건강하시죠?6. 에코
'07.9.18 10:33 PM매일매일 희망수첩 써주세요...
"나 여기 있어용~" 이렇게라두요! 네?
수란!
한식조리 실기에 수란이 나왔는데 급한 맘에
펄펄 끓고 있는 물에 입수를 해서 계란탕이 되어 버렸었어요~ㅎㅎㅎ
지금은 웃지만 이마에 땀 송글송글 맺힌 긴장되던 그 순간엔.....ㅋㅋㅋ
저도 다시 한번 해볼까 봐요~7. chatenay
'07.9.18 11:24 PM샘!! 한참 글이 안올라와서 제가 괜스리 고구마정과 해보고 물 어쩌구 해서 번거롭게 해드린건 아닌지...걱정 했었어요..
좀 바쁘셔서 그랬던거죵?ㅎㅎ~수란은 한번도 안 먹어 봤는데...한번 해보고 싶네요...
아~배고파라....8. 미조
'07.9.19 7:35 AM수란 간은 어떻게 해서 먹나요? 한번도 못먹어봐서요.
9. cozy
'07.9.19 8:21 AM식구들 앞앞이 작은 그릇에 수란을 담아내셨다는 글 보구 또 반성 해야겠네요. 저는..
부지런을 가끔 떨긴 떨어도 그게 오래 가질 않아서..
희망수첩, 키친토크 보면서 늘 하는 반성은 그때뿐이고 돌아서면 망각.
인사가 좀 이릅니다만 김선생님을 비롯한 82식구 여러분 우리 며칠만 고생합시다.
그리고 추석 잘 보내세요.~10. 김혜경
'07.9.19 10:31 AM미조님, 위에 소금 살살 뿌려서 드셔요.
cozy님, cozy님께서도 추석명절 즐겁게 보내세요.
chatenay님, 일이 좀 있었어요..^^ 정과 때문이 아니랍니다..ㅋㅋ.
에코님, 그동안 인터넷 접속을 아예 안했습니다...
onion님, 샤이님, 아이린님, 진선님..저 아주 잘 있습니다...11. 차노기
'07.9.19 10:45 AM쌍화탕에도 계란을 넣어 줬던거 같은데.
수란 보기엔 쉬울거 같아도 무지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 음식이네요.
잘못 넣어서 풀어지면.
ㅠㅠㅠ 계란탕으로 해야하나요?12. 유수맘
'07.9.19 11:04 AM한식 조리사 자격증딸대 수란이 과목에 있었어요. 왜그리 안되는지 하루에 10개 이상은 연습했는데 그 차지는 남편몫이었어요. 계란을 좋아하는 남편도 4-5일 지나니 연습용은 버리라고 하더군요. 벌써 8년이 되었네요.
오늘 옛기억을 더듬으며 수란을 해보렴니다.
모든분들 행복한 추석되시길 바랍니다.13. Xena
'07.9.19 11:45 AM저두 아침 식사로 수란을 해 볼까 했는데 마침 샘님께서 올려 주셨네염~
이심전심, 염화시중의 미소네여 ㅎㅎ
저두 샘께서 희망수첩 안올려 주셔서 넘 궁금했드랬어여~
출석도장 꼭꼭 찍어주세여^^14. lyu
'07.9.19 12:20 PM그 때는 노래도
'그 다방에 들어 설 때에......'
이렇게 시작했었어요.
지금 다시 나온다면
'그 카페에 들어 설 때에.."
이거 아니군요.ㅋㅋㅋ
분위기가 아니야.
다방에는 왜 꼭 수족관이 있었는지 몰라요.
잠시 옛 추억에 젖어 봅니다.
아르바이트로 친구들이 디제이도 더러 했었던 다방......15. 비타민
'07.9.19 1:33 PM어머나....제가요.. 며칠전에 갑자기 수란이 해보고 싶어서 했다가... 국자만 잡았어요 ㅠㅠ
국자에 기름을 꼭 발라야 하는 건가봐요...
기름을 안바르고 그냥 했더니... 국자에서 절대로 떨어지지 않고, 윗쪽은 너무 야들야들, 성공적이었는데... 밑쪽이 국자에 다 눌러 붙어서..
어설픈 계란 하나 먹고, 국자 닦느라 죽는줄 알았습니다. ㅠㅠ ㅋ16. 미조
'07.9.19 1:58 PM저두 아침에 했는데 실패했네요 ㅠㅠ 국자가 완전...수세미로 안닦이더라구요. 안쓰던 쇠수세미까지 동원됬어요. 시간도 오래걸리구 힘만 빠졌어요.
17. 서산댁
'07.9.19 5:03 PM별다방, 콩다방...
촌 아줌마 한 참 생각했어요.(ㅎㅎ)
태풍이 오고 있다고 합니다.
모두 모두
비 피해 없으시길 바랍니다.18. 야간운전
'07.9.19 7:51 PM저는 그냥 물에 빠뜨리는 수란을 했는데,
이렇게 얌전한 수란도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