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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짭짤 고소한 김혜경의 사는 이야기, 요리이야기.

옛날을 생각케해주는 ~~ [막 밥]

| 조회수 : 14,671 | 추천수 : 97
작성일 : 2007-04-01 23:00:06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을 비워야 하고...가족들의 점심은 걱정되고..그래서 아침에 싸놓고 간 막밥입니다.
왜..춤에도 막춤이 있잖아요...대충 막 추는...
이 밥도 주먹밥도 아닌 것이, 김밥도 아닌 것이..그냥 막 만들어서..막밥이라고 해봤는데...이상한 건 아니죠?

더운 밥에 밥에 뿌려먹는 가루, 이걸 일본말로는 후리가케라고 하지만, 한국말로는 뭐라해야할까요?? 밥이랑? 밥짝꿍?
암튼 이 가루를 밥에 뿌리고 참기름을 조금 넣은 다음에 김밥용 김에 둘둘 말았었어요.
말 때 가운데에 날치알을 조금 넣었는데..너무 적었는지..잘 보이지는 않네요.

그냥 외출하기 미안해서, 성의 표시만 하려했던 건데..이걸 싸면서 삼십년전 추억에 푹 빠져들었답니다.

1978년, 제가 대학 졸업반이던 때 이야기입니다.
3학년 때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후, 섬 여행에 재미붙인 우리과 친구들, 졸업여행지로 울릉도를 잡았습니다.
울산쯤인가에서 배를 타고 울릉도를 가는 거였죠.
가는 뱃길은 날씨가 너무 맑아서, 배멀미하는 사람 하나 없이 하하호호 웃으면 즐겁게 배여행을 했답니다.

요즘 TV에 나오는 울릉도를 보면 관광하기 더할 나위없이 좋은 곳 같은데,
당시는 섬에 차가 단 한대 없고, 여관 하나 없는 아주 조용한 섬이었습니다.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의 이야기지요. ^^
뭐, 지금처럼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온갖 정보를 미리 수집하고 여행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울릉도가 좋다더라'하는 정도의 사전지식만 갖고 당도한 울릉도는 저희 일행을 참 많이 당황시켰습니다.

막연하게 가기만 하면 훌륭한 숙박시설도, 식당도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도동항에 내려서 아무리 찾아도 여관 하나가 없는 거에요.
어차피 돈 없는 학생들이라 직접 밥을 해먹을거니까 변변한 식당이 없는 건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지만,
숙박시설이 없다는 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죠.
다행스럽게도 도동항에서 좁은 길을 따라 올라오다가 깨끗한 민박집을 하나 잡게 돼 큰 불편은 없었습니다.

성인봉 등산도 하고, 배 타고 섬 주위를 관광하는 등 3박4일인지, 4박5일인지..그 일정을 잘 보내고,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배를 타기는 해야겠는데 배를 타고 가는 동안 우리 일행의 식사 때문에 여간 걱정이 되는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김밥이나 싸보려고 가게를 돌아다니면서 단무지나 소시지 같은 것을 좀 사려고 했는데, 그림자조차 볼 수가 없는거에요.

어렵사리 구한 건 오직 김밥용 김 10장뿐.
친구들에게 가방을 열어 남은 양념들을 모두 꺼내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밥 해먹고 남은 쌀을 싹싹 긁어서 코펠에 밥을 지어서, 민박집에 있던 양푼에 푼 다음,
되는 대로 남아있던 양념들, 간장 참기름 소금 깨소금 등을 넣어 간을 맞췄습니다.
김밥용 발도 없는 터라 그냥 김에 대충 밥을 얹고 대충 손으로 말아서 쑹덩쑹덩 썰어서 코펠같은데 담았습니다.
이게..제가 창의력을 발휘해서 만든 첫번째 음식입니다.
그전에 여행가서 만든 음식이라는 건, 뻔한 거..카레라이스, 캠핑찌개가 고작이었으니까 창의력이고 뭐고 없는 거죠.

이렇게 배에서 먹을 도시락까지 준비해서 배에 올랐는데...아..이를 어쩌면 좋답니까?
바다가 고요하지 못해, 망망대해의 일엽편주처럼 배가 마구 춤추는 거에요.
배 바닥에 난짝 누워있는데도, 정말 죽을 것 같은 거에요.

여행의 마지막 밤이라고 전날 밤 거의 잠을 자지 않고 수다떨며 놀다가, 새벽부터 도시락을 싼다 부산을 떨었었어요.
잠은 배안에서 자면 된다며 잠도 자지 않구요.
게다가 전날 한 오징어가게에서 우리 일행이 모두 한두축씩 마른 오징어를 샀더니 값을 깎아주는 대신 같이 먹으라고 오징어 한축을 줬었어요.
모두의 오징어라고 밤새 그 오징어 한축을 모두 같이 먹어버렸는데...마른 오징어가 그리 소화가 잘되는 식품은 아니잖아요.
그게 딱 체한 거에요. 미련스럽게도 울릉도 오징어 한번 실컷 먹어보겠다고 악착같이 먹었던 거죠.

그러지 않아도 수면부족에 소화불량 상태에 배멀미까지 겹쳤으니...너무 괴로워서 어찌 할 바를 모르겠고,
정말 바다물로 뛰어들고픈 생각밖엘 나지 않는 거에요.
속에 들어있는 걸 모두 비워내고, 거의 시체처럼 늘어져서 선실바닥에 착 달라붙어 누워있는데,
친구 하나가 화사한 웃음을 띄면서 이러는 거에요, "니가 싼 김밥 진짜 맛있다, 얘, 너도 좀 먹지..."
허걱...완전 불난 집에 부채질이었는데... 입술 하나 달싹할 기운이 없어서 한 마디 대꾸도 못했다는 거 아닙니까?
이 친구는 같이 수다떨고 놀다가, 제가 김밥을 쌀 때 나 몰라라 하며 쿨쿨 자던 친구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친구가 어찌나 얄미운지..


오늘 막밥을 싸면서, 그 때 그 밥이 정말 맛있었을까? 아니면 시장이 반찬이라고 배고파서 맛있게 먹었던 걸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첫번째 요리였던 셈인데...맛이라도 하나볼껄....아쉽기도 합니다. ^^;;
1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김명진
    '07.4.1 11:06 PM

    추억의밥이네요. 저도 함 만들어 볼께요

  • 2. 놀란토끼
    '07.4.1 11:08 PM

    혹시나해서 컴끄기전에 다시 들어왔는데... 역시나 선생님 글이있네요~
    담주한주도 기분 좋은일만 생기길 바라며~^^

    저희 엄마도 이거 잘해주셨는데..

  • 3. 김명진
    '07.4.1 11:08 PM

    참...송화단을 샀는데..노른자 부위가 정말 물러서..약간 비위가 상해요...삶아도 될까요?
    혹시 선생님은 아실가 해서요. 적당이 무른게 있는 건 먹었는데...좀 많으면...비위가 상하네용~

  • 4. 무늬
    '07.4.2 12:36 AM

    추억의 막밥..
    어릴적 저희 엄마도 가끔해주시던 밥이에요.
    옹기종기 오남매 앉혀놓고 찬장에 들어있던 반찬 모두 꺼내 섞어서
    살짝 구운김에 한입씩 싸서 돌아가며 입안에 쏘옥~ 넣어 주셨죠.
    서로 얼굴 마주보며 낄낄 웃어가며 참 즐겁게 먹었는데...
    이제 그 시간이 너무나 그립네요.

  • 5. 콩이엄마
    '07.4.2 8:57 AM

    음.. 진짜 먹으면 맛나겠어요. 저 예전에 (아가씨 때) 직장갔다가 퇴근하면 아르바이트를 했었어요. 배운게 도둑질이라 중등학원에 수업을 했었었는데 늘 밤늦게 끝났지요. 지금이나 그 때나 애들이랑 노는게 좋아서 힘든 줄도 모르고 다녔어요. 밤잠은 없어도 아침이면 못일어나는 스타일이라 출근한다고 정신없이 챙기고있으면 친정어머니께서 늘 이렇게 김밥한 줄 싸주셨어요. 그 김밥을, 출근길 운전하면서 우적우적 먹으면 얼마나 맛났던지.. 이것저것 그날의 반찬이 들어가 늘 새로운 김밥이었는데 (뭐... 김치만 들어도 맛나지요) 지금 사진을 보니 참 기억이 새롭네요. 10년이 지난 지금도 늘 그 생각이 나네요.

  • 6. 제제의 비밀수첩
    '07.4.2 10:08 AM

    선생님의 글을 보면서 저도 아침부터 추억에 잠겨 봅니다. 벌써 나이가 많이 먹긴 했나봐요. 기억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는걸 보면요.

  • 7. 둥이둥이
    '07.4.2 10:15 AM

    1970년대 후반의 ....조용한 을릉도에 여행 다녀오신 선생님이 너무 부럽습니당....^^
    저는 70년대의 끝자락에 이제 막 태어났습니다....ㅎㅎ

  • 8. 혀니맘
    '07.4.2 1:23 PM

    선생님의 요리를 감히 따라할 수 가 없었는데..
    이건..ㅋㅋㅋ
    쉽게 할 수 있을것 같아요..ㅎㅎ

  • 9. miru
    '07.4.2 9:44 PM

    요즘처럼 진기하고 신기한 김밥들이 많은 세상에도,
    저렇게 딱 단촐해보이는 김밥이 넘 맛나보이네요~
    군침이 쓰읍~^^

  • 10. 왕언냐*^^*
    '07.4.2 10:52 PM

    아~ 배고프다....야식??? 안됏!!
    요거 요거 지금 당장 싸서 먹고프게 하네요~ 아~ 배고파...

  • 11. 주복실
    '07.4.3 9:40 AM

    막밥....ㅎㅎ
    제목부터가 왠지 따라하기가 쉬울것 같아요...^^

    그래도 선생님이 만드시면 모두 맛있을것 같고
    근사해 보임니다........^^

  • 12. 튼튼이
    '07.4.3 9:51 PM

    저도 비슷한 추억이 있는데요, 대학교 3학년때 태종대에서 밥을 해먹고 서울 올라갈 기차를 타야하는데 밥이 많이 남아서 제가 아이디어를 내서 주먹밥을 만들었는데요 옆에서 그걸 보던 친구가 비위생적이라고 투덜거리더니 그 친구가 기차안에서는 제일 맛있다고 많이 먹더라구요^^

  • 13. 유나
    '07.4.4 5:50 PM

    ㅎㅎㅎ 재밌는 추억거리예요~
    급하게 외출할때 해놓고 볼일을 볼수 있어 좋겠어요..

  • 14. 김혜경
    '07.4.4 8:18 PM

    김명진님..송화단을 냉장고 안에 넣어두면 그렇게 노른자가 무른다네요..저도 배운 거에요.
    그리고..송화단 삶아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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