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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짭짤 고소한 김혜경의 사는 이야기, 요리이야기.

잡담

| 조회수 : 13,524 | 추천수 : 105
작성일 : 2007-02-11 23:43:30


인간은 누구나 그런 건지..아니면 제가 유난히 그런 건지...
제게는 남들이 알면 웃어넘길...그런 유치한 구석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내면의 아름다움이 무엇보다 중요한 건데, 그런 내면의 아름다움 보다는 거죽 치장에 신경쓰는 그런 치기...

회사에 다닐 때...
종이 원고지에 기사를 쓰던 시절, 볼펜을 꼬옥 쥐고 기사 쓰느라 손을 오그리고 있어 손톱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책상에서 종이 원고지가 사라지고, 키보드가 놓이면서, 손가락을 펴고 자판을 두드리다보니 자꾸 손톱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꿈꾸는 제 손가락은 하얗고 길고 손톱은 잘 정리되어 예쁜 색깔의 매니큐어가 발라져있는 것이었습니다.
예쁜 손가락이 자판에서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면서 좋은 글을 빨리 많이 써내는, 능력있는 기자...
남들이 저를 그렇게 봐줬으면 하는..., 그런 철딱서니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글을 잘 쓰는 건 접어두고라도,
불행하게도 제 손가락은 하얗지도, 길고 예쁘지도 않았습니다.
집안일을 그렇게 많이 하는 편도 아닌데, 손가락은 굵고 마디는 두꺼우며 다른 피부색보다 훨씬 검고 미웠습니다.

손이 예쁘지 않을 때 빨강색 매니큐어를 바르면 손이 깨끗하고 예뻐 보인다는 소리는 어디서 들어가지고,
한때 제 취미가 매니큐어 바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새빨간 색으로...
새빨간 손톱으로 글을 쓰면 괜히 멋있어 보일 것 같다는..생각을 했다는...

그런데 자판을 치는 제 타법이 문제가 있는 건지, 아니면 매일 아침 머리를 감을 때마다 손톱으로 두피를 벅벅 문지르는 탓인지,
매니큐어를 발라봐야, 한나절도 못가서 벗겨지기 일쑤였습니다.
게다가 시간에 쫓기는 관계로 충분히 말리지 못해서 밀리기도 하구요.

회사를 그만 두기 3~4년전부터는 회사에서 아침마다 매니큐어를 발랐습니다.
남들보다 30분에서 1시간 정도 일찍 출근해서 그날 해야할 일들을 정리하면서 매니큐어를 발랐습니다.
물론 매니큐어를 바르기 위해서 일찍 출근한 것은 아니고,
어차피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야하니까,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남자동료들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마음놓고 매니큐어를 바른 거죠.
매니큐어를 바르고, 그것이 뭉개질세라 조심해서 자동판매기의 커피를 뽑아 한잔 마시면서,
중앙 일간지, 경제지, 스포츠지도 모두 한번 훑어보며 뭐 물먹은 건 없는 지 살피는 것이 그날 업무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책상위에는 여러가지 색깔의 매니큐어와 네일리무버가 항상 놓여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 7월에 회사를 그만 두면서...매니큐어 바르는 습관이 없어졌습니다.
자판을 빨간 손톱으로 두드릴 일도 없었고, 또 집에 있어보니 회사 다닐 때보다 오히려 매니큐어 바를 시간이 더 없었습니다.


며칠전...베란다의 잡동사니를 정리하던 kimys, 쇼핑백 하나를 들고 들어오더니,
"이거 웬만하면 좀 정리해서 버리지!!" 하는 거에요.
뭔가 하고 보니까, 회사 그만두면서 싸가지고 들어온, 명함이며 가위,포스트잇, 자 등 쓰던 사무용품이 들어있는 보따리 였습니다.
회사에 명퇴바람이 불기시작했을 때, 명예퇴직을 자원하기는 했지만 자의가 70%라면 나머지 30%는 타의도 섞여있어,
100% 자의는 아니었다는 그 아쉬움 때문에 7년이 되도록, 회사에서 들고들어온 보따리를 여지껏 풀지 않고 있었던 겁니다.

그 보따리에서...사무용품들과 함께 나온 매니큐어들...하나하나 열어보니, 아직 쓸만한 것도 있고, 못쓰게 굳어버린 것도 있는 거에요.
뚜껑이 열리는 걸 하나 손톱에 발라보니...당시 제가 입었던 옷, 제 메이크업, 제 헤어스타일이 하나하나 다 기억나는 거 있죠?
구불구불 퍼머를 한 머리는 손질이 쉽게 양쪽으로 핀을 꽂고,
하얀색 파운데이션을 바른 얼굴은 입술을 새빨갛게 발라 생기있어 보이게 하고,
그리고 활동적이면서도 여성스러워 보이도록 바지나 롱스커트에 니트나 셔츠블라우스를 받쳐입고...
그런데, 그게 벌써 7년도 더 전의 일이라니...

뭐 꼭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거나, 회사를 퇴직한 것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거나 하는 건 아닌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싸한 것이 가슴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아요.
그게 뭘까, 20년 이상 몸담던 곳에서 끝장을 보지 못한 아쉬움일까...




음식 만드는 사람이 매니큐어라니...어울리지도 않을 것 같지만....오늘도 매니큐어를 발랐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이거 지우고 새빨간 거 바르고, 저녁밥 할 때는 또 지우고..밤에 다른 색 또 발라볼거에요..^^
몇년동안 잊고있던 과거의 취미생활 며칠만 즐겨보려구요.

그리고, 이 매니큐어가 들어있던 보따리 말고도 남아 있는, 아직도 못풀고 있는 회사소지품 보따리, 이제는 마저 풀 수 있을 것 같아요.
지울 건 지우고, 잊을 건 잊고...


비록 매니큐어는 매일 바르지 못하지만, 그때에 비하면 지금 얼마나 행복한 지...,
매니큐어 때문에 옛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국 도달한 지점입니다.
2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051m
    '07.2.12 12:57 AM

    <지울 건 지우고, 잊을 건 잊고....>
    다시 한번 되뇌입니다.
    깊이 숨겨둔, 나를 풀어줄 보따리를 찾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불현듯 스치게 하는....

  • 2. 올드블루
    '07.2.12 1:00 AM

    이쁜거 한번씩이라도바르세요..^^
    손가락보니 선생님 부끄러워하며 찍으신거 같아요...ㅎㅎㅎ

  • 3. 솔이맘
    '07.2.12 1:01 AM

    선생님 글을 보니 저도 회사다닐때가 생각나네요. 엇그제 투명색 손톱보호제를 하나사서 발랐거든요
    며칠 지나니 다 없어졌더라구요. 무척 바쁘게 살고 있거든요. 여유를 갖고 내일은 족발 한번해보려구요. 좋은 밤 되세요

  • 4. deep blue
    '07.2.12 1:54 AM

    와... 손이랑 꽃이랑 다 넘 예쁜데요. 선생님 손가락을보니 갑자기 울엄마가 보고싶어지네요.

  • 5. 몽당연필
    '07.2.12 2:07 AM

    저도 메니큐어랑은 전혀..인연이 없어요.

    나중에..손자손녀 다보고 할머니되면 바를려구요.

  • 6. Blueberry
    '07.2.12 3:52 AM

    회원수가 많은 82cook 운영하시느라
    힘드실텐데요...^^
    예전 직장 다니셨을때 보다도....
    저희들은 이곳에서 덕분에 좋은 정보도 얻고
    맘 속에 담아둔 얘기도 풀어내면서 나름
    스트레스도 해소하고....
    직장을 그만두셨기 때문에
    82cook이 존재한다는 사실^^
    감사드립니다!!!^^

  • 7. 돼지용
    '07.2.12 7:54 AM

    누구나 그런 보따리가 하나씩 있을거에요.
    시간이 지나면
    아무리 무겁던 보따리도 결국은 추억으로 남게 되고요,
    그것도 아름다운 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게 되더군요.

    저도 이제 나이라고 드니, 손이 눈에 보이네요.
    투명 메니큐어 바를려구요.
    이번 설 지나면요.^^

  • 8. 제제의 비밀수첩
    '07.2.12 9:05 AM

    메니큐어 바르다보면 작은 행복을 느껴보기도해요. 요즘 저렴한 메니큐어들이 많이 나와 참 좋아요.

  • 9. 푸름
    '07.2.12 9:27 AM

    ㅋㅋ 여자의 행복감이란 참 사소한것에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저도 가끔 메니큐어 바르면 기분이 좋아요. ^^
    또 스트레스받을때는 새빨간 놈으로 바릅니다. ㅋ 이상하게도 스트레스가 쫌 풀리는것 같더라구요 ^^
    물론 멀쩡하게 하루를 못갑니다.
    머리감을때도 그렇고, 쌀 한번만 씻으면 다 벗겨집니다. ㅠ.ㅠ
    문제는 그후에 그걸 닦을시간이 없어서 추한모습으로 돌아다닌다는거죠 -.-;;;

  • 10. 미영
    '07.2.12 10:08 AM

    그때에 비하면 행복하시다니 ...다행이네요.
    전 아직도 아침에 음식물쓰레기 들고 오가다 만나는상큼한 출근녀들의 모습을 보면 속이 쓰리답니다.
    언제나 극복이 될까요. 이런 기분은..
    그런데 꽃이 이뻐요.그꽃을 담은 님의 손도 이쁩니다.

  • 11. 항상감사
    '07.2.12 10:21 AM

    저도 회사 그만둔지 3년 정도 됐는데 마지막날 싸가지고 온 사무용품 보따리 아직도 안 풀고 잘 간직하고 있어요...다시 취직하고 싶은데... 애들은 어리고 제 나이는 점점 들고... 애들 다 키워놓으면 누가 일 시켜줄 지 모르겠어요.

  • 12. lorie
    '07.2.12 10:52 AM

    1997년 IMF. 오히려 그후 3,4년후에 우리에게는 더 힘들었던것 같아요...
    구조조정, 인원감축, 명예퇴직등, 그리고 갑자기 물가(집값등)는 급등하구,,,,
    젊은 저도 감당하기 힘들었는데, 그 당시 40,50대 어르신들은 더욱 힘드셨겠지요...
    지금 생각하면, 나보다 먼저 인생을 사신 분들에 대한 경외심까지 듭니다.

  • 13. 소금별
    '07.2.12 11:49 AM

    비밀수첩을 보는 느낌입니다.. ㅋㅋㅋ 재미납니다.

    저는 누구에게서인지 , 손톱관리 잘 하는 여자가 정말 센스도 있어보이고, 부지런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어가지구는 센스있고 부지런해 보이려고 손톱에 무척 신경썼던적이 있었네요. ㅋㅋ 그런데, 지금 우리신랑이 손톱 메니큐어 바른 여자 뒵다 할일 없는 여자로 보인다는 그 한마디에 손톱 땡강하게 잘라버렸네요. ㅋㅋㅋㅋ 그뒤로는 계속 땡강한채로.

  • 14. 달라스 맘
    '07.2.12 2:54 PM

    이글을 읽으니 결혼 전 회사 다닐때가 생각이 납니다.
    저도 마감이 끝나면 손톱에 메뉴큐어를 바르며 한가롭게 잡지를 보곤 했죠.

  • 15. 하얀
    '07.2.12 3:38 PM

    제가 아는 어떤분은 이리 말하시더군여...
    손톱은 여자의 생명이라고...
    그래서 그분은 손톱 관리에 무지 공들이신데여...
    네일아트도 배우시러 다닐정도로...
    근데 전 메뉴큐어 이날 이때까지 손으로 꼽아야 한답니다...
    버릇이 있어서 손톱을 못기른다지여...
    불안하면 손톱 물어뜯는 버릇...ㅡ.ㅡ

    제 고교 스승님께서 남자분이셨는데 이런 말씀을 해주셨더랬습니다...
    여자들이 새빨간 메뉴큐어 바르고 음식하는거 보면 젤 맘에 안든다고...
    선생님께서 음식할땐 지우고 다시 바를거라고 하시는걸 보니
    고교스승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나네여...^^

  • 16. joreauva
    '07.2.12 3:49 PM

    예쁜 손을 가진 여자들이 부러웠던적이 있었고 지금도 그렇답니다
    선생님처럼 일도 많이 하지도 않는데 가늘고 길지도 하앟지도 않은 제손. 선생님과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은데요

  • 17. miru
    '07.2.12 6:37 PM

    저도 출산때문에 퇴직한지 이제꼭 1년이 되어가요..
    저는 퇴직 짐보따리는 한 4개월정도 지나고 풀어버렸지만,
    그때 열심히 사용했던 다이어리를 아직도 정리하지 못하고 있어요..
    어느날 신랑이 책꽂이에서 그 다이어리를 보더니 그러더라구요..
    "**아, 너 회사 다닐때 일 정말 열심히 했나 보다~^^" 라구요..
    남이 봐도 정말 제 손때가 많이 뭍어 있는... 그런 다이어리...
    다시 쓸 날이 있을가 싶은게...가끔 그걸 펼쳐 보고 기대를 하고 있어요.. 아직, 저는요...^^

  • 18. 보르도
    '07.2.12 9:05 PM

    저도 선생님 글 읽으니 직장다닐때 생각나네요.
    비행기 승무원이었는데 항상 새빨간 메니큐어를 발랐거든요.
    뭐 다른 색을 발라도 되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빨간 매니큐어를 주로 발랐었죠.
    저도 당시에는 정말 용모에 신경 많이 쓰고 예쁘고 당시 유행하는 반지도 돈모아 사서 끼고 다니곤 했는데 지금은 주부습진이 항상 떠날 날 없이 거친 손이 되어버렸네요.
    그런데 선생님 손 정말 예뻐요.
    꽃 옆에 있어도 손이 더 돋보여요.

  • 19. 코스모스
    '07.2.13 12:41 AM

    제 손과 공통점이 있어 보여 좋으네요....그래도 ㅣ제 손보다 더 예뻐보여요.

  • 20. mulan
    '07.2.13 2:11 AM

    20년에 비하면 적지만... 저도 수년간 몸담아 일하던 곳을 그만두었더니만... 젖먹이 아기를 두고도 아침마다 집앞으로 훤히 보이는 큰도로가 꽉 막힐정도로 출근전쟁중인 차들 안으로 마음이 가있더군요. 나도 저 꽉막힌 출근전쟁중인 도로로 뛰어들어가야 하는거 아닌가 하면서 말이죠.... ^^

  • 21. 오금동 그녀
    '07.2.13 9:16 AM

    대학시절 손톱에 정말 정성 많이 들였었는데...... 두아이의 엄마인 지금 손은 엉망이 되어버렸지만 건강히 잘 자라를 아이들과 강아지 한마리를 보면 이쁜 손톱보단 짧고 관리되지않은 지금의 손톱이 더 자랑스럽습니다. 아이들이 좀더 자라면 선생님처럼 꽃앞에 앉아 손톱사랑을 해봐야 겠네요.

  • 22. 보미
    '07.2.13 5:03 PM

    저는 짧게 자르는 걸 좋아해서 지금껏 한 번두 길러보지 않았네용..
    다른 데 가서 밥 먹을 때, 메니큐어 바른 사람이 요리한 건 먹기가 쫌... (괜한 편견인지 몰라두 음식에 들어갈 것 같아서요 ㅜ.ㅜ)

  • 23. 라니
    '07.2.13 8:13 PM

    ^^
    나도~~~
    저는 빨간 립스틱에 무지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빨간 색에도 좀 다른 계열의 색상들이 줄지어
    있는 립스틱을 여러가지 번갈아 쓰곤 했는데...
    아예 원으로 들어가며 빨간색을 접은지 벌써 1년이군요.
    그래도 그 빨간색을 사랑해요.
    왜요? 안이상하지요? 왜~ 한 번씩 빨간 구두 신어보신 적
    있지요? ^^

  • 24. 주복실
    '07.2.14 10:39 AM

    저도 한때는 빨간립스틱 빨간 메니큐어를 좋아했어담니다...ㅎㅎ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색이 어울리질 않아요...ㅎㅎ
    지금은 브라운계열을 가끔씩...^^

    선생님 추억이 담긴 메니큐어~~ 오늘은 무슨색을 바르셨을까~~~???

  • 25. 이진희
    '07.2.16 3:17 AM

    너무 감동적인 잡담이세요......^^;;
    전 직장댕기지만 더 여유가 없더나...ㅜㅜ
    이렇게 새벽에나 82에 와볼수가 있으니...

  • 26. 하늘찬가
    '07.3.5 11:33 AM

    전 자신이 정신적으로 피곤하다 싶으면 바르는것이 메니큐어 인거 같아요..
    나를 한겹 포장한거 같아서 힘들어서 도망가고 싶으면 고운 색상으로 바르곤 해요..

  • 27. 박미영
    '07.3.12 12:42 AM

    지울건 지우고, 잊을건 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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