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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짭짤 고소한 김혜경의 사는 이야기, 요리이야기.

아주머니 열전 (上)

| 조회수 : 7,887 | 추천수 : 118
작성일 : 2004-02-26 14:31:46
"김혜경씨, ○○○인데요, 이번 목요일은 못가겠어요"
"무슨 일, 있으세요?"
"젤 친한 친구가 외국에서 와서, 부산 친구네 놀러가기로 했어요."
"아, 그러세요...재밌게 놀다오세요"

일주일에 한번 반나절씩, 절 도와주는 도우미 아주머니와의 대화입니다.
오늘 오후에 오셔야하는데 친구들과 회포를 푸시느라, 못오셨어요. 그래서 여느때와는 달리 하루 종일 집에서 걸레질이며, 이런저런 집안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우리 어머니들은 어린 소녀들을 가정부로 두고 사셨죠. 그렇지만 우리 세대는, 아주 부유층이거나 아니면 육아 때문이 아니고서는 입주도우미를 두고 사는 분들 거의 없죠? 그저 일주일에 한두번씩, 일을 도와주는게 고작이죠.


전 여태까지 도우미 아주머니 3분의 도움을 받아봤습니다. 오늘은 절 도와주셨던 아주머니 열전~.

첫번째 아주머니는 한 12년전쯤, 저희가 지금 집으로 이사오기 전부터 절 도와주셨던  분이었습니다.
원래 고향은 강원도 셨는데, 바깥아저씨가 건축현장의 발파기술자셨대요. 애들은 다 큰데다가 객지인 서울에서 심심하니까,
도우미를 해볼까 하셨던 건데...마침 첫 집이 저희 집이었습니다.

얼굴이 하얗고 아주 조신하게 생기신 이 아주머니는 인상대로 차분하고, 일은 좀 느려도 꼼꼼하게 다 마쳐주는 분이었습니다.
1주일에 2번, 반나절씩 일을 해주시기로 하고, 한달치씩 몰아서 보수를 드렸어요.
그런데 바깥 아저씨도 그렇고, 자녀들도 그렇고, 저희 집에 일오는 걸 싫어하셔서, 약속된 날에 못오시는 경우가 많았어요. 공사현상이 그렇잖아요, 갑자기 비가 오면 일을 안하니까, 아저씨가 직장에 안나가시면 덩달아 아주머니도 못오시고...

약속은 잘못지켜 주셨지만, 전 이 아주머니가 참 좋았어요.
저희 어머니는 옆에서 일하는 걸 보면 느려서 답답하다고 하셨지만, 해주시기로 한 일, 와이셔츠 등 손빨래, 집안 대청소, 다림질은 꼭 해주셨으니까요 느린 건 뭐 그렇게 문제가 안됐구요.
열쇠를 통째로 맡겨도 조금도 불안하지 않고...참 좋았는데. 한 3년정도 저희 집을 다니시다가 갑자기 어느 날부터 안오시는 거에요. 전화도 안되고...

며칠 후 아주머니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여동생이 입원했어요, 암이라서...(우시는 듯), 동생 간호해야되서...어떡하죠"
"저희 집 걱정하지 마시고 병간호 잘 하시구요,빨리 나으셨으면 좋겠네요"
이러곤 소식이 끊겼어요.

이 아주머니 그만두시고 몇년동안 도우미 아주머니 안 쓰고 제가 혼자 집안일을 했죠.
와이셔츠는 일일이 손으로 빨수 없으니까, 목이랑 손목에 바르는 세제 발라서 세탁기에 돌리고, 다림질은 다리오 사다 다리고, 물걸레 청소기도 구입하고.

아주머니가 그만 두고 한 1년쯤 지났을까, 아주머니에게 전화가 왔어요.
제가 수고비를 선금으로 드렸는데, 아마도 1회분 정도를 더 받으셨던가봐요, 전 잊었는데...
"받은 돈이 있어서 한번 가서 일을 해드리려구요"하시는 거에요.
무슨 말씀, 아니에요. 동생분은 어떠세요,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지금도 후회가 되는 것이 그때 아주머니 연락처를 받아둘 것을...담에 전화해보니까, 전화번호가 바뀌었더라구요.
일을 부탁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아주머니 한번 뵙구싶어요. 구수한 강원도 사투리도 듣고싶고.


첫번째 아주머니 그만두시고, 몇년 동안 그냥 살았는데...
도저히 안되겠는 거에요. 6년쯤 전인가, 아는 목욕탕 아주머니의 소개로 다른 아주머니를 모셔왔어요.
이 아주머니는 아저씨가 개인택시 기사 시래요.
근데 아주머니 말로 자기 아저씨는 너무 멋있는 사람이고, 바깥에 친구들이 너무 많아서, 번돈을 집으로 들여오지 않으신대요.
그래서 아주머니가 평생 도우미 일을 해서 아들 대학 보내고, 딸 시집 보내고 하셨대요.

반나절씩 일주일에 3번은 해야한다고 하셔서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가사도우미를 오래 하신 탓인지, 첨엔 진짜 일을 넘넘 잘하시고, 집안을 번쩍번쩍 하게 해놓으시라구요.
그랬는데 차츰차츰 좀 그렇더라구요.
다녀가신 날도 거실  TV에 먼지가 뿌옇고, 바닥도 깨끗치 않고, 커튼 같은 것도 제가 세탁기에 돌려야 하고...
어머니도 "청소를 해도 걸레질을 안한다"하시구요.다림질도 그렇구요.
오셔서 제일 먼저하는 일이 자신이 먹을 점심쌀 씻는 거라고도 하시구요.

그래도, 자꾸 아주머니를 바꾸는 것 보다 그냥 다니시는 분이 나을 것 같아서 횟수만 일주일에 2번으로 줄였어요. 그런데 영 안되겠다 하던 차에 지금의 아주머니를 소개받았어요.

제가 막 회사를 그만 뒀을 때라, 먼저 아주머니에게 "제가 회사를 그만 둬서, 살림을 직접하려구요"하고 거짓말 했습니다.
참 비겁하죠? 그후로도 그 아주머니에게 몇번 전화가 왔었어요. 직장 안나가냐고..., 다른 사람 쓰냐고...
거.짓.말 했습니다. 그래도 코는 안커지대요.

글이 길어서 지루하시죠...일단 요기서 끝냅니다.
1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테디베어
    '04.2.26 3:03 PM

    한낮에 쓰시니 제가 1등...

  • 2. 신유현
    '04.2.26 3:04 PM

    아뇨...안지루해요. ^^
    저도 일할때 도우미아줌마를 부르고 싶어도 제가 나이가 어려서 좀 그랬어요. 산후도우미아줌마도 첨에는 삐까뻔쩍하게 해주시더니..점점 안해주시더라구요. 가신후에 제가 청소하고 빨래하고 그랬을정도로...ㅡㅡ;;
    그래서 사람쓰는게 어려운가 봐요. 차라리 지금 집에서 혼자하는게 편하긴 하네요.
    몸아프신데..너무 많이 하시지 말고..며칠만 참으세요.

  • 3. 오이마사지
    '04.2.26 3:05 PM

    예전에 어느글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에 대해서 한번쓴다고 하신거 같은데요,,,,
    거.짓.말 하니깐 갑자기 푸우님이 생각났어요...ㅎㅎ

  • 4. 테디베어
    '04.2.26 3:11 PM

    3번째 아주머니 이야기 듣고 싶어요..
    처음 분은 참 좋으신 것 같습니다.^^

  • 5. 김혜경
    '04.2.26 3:12 PM

    네...저희집 김치 없으면 슬그머니 김치도 가져다 놓으시고...강원도 별식 있으면 가져다가 저희 어머니도 드리고...그 아주머니 많이 보고 싶어요.

  • 6. scymom
    '04.2.26 5:03 PM

    저도 예전에 애들 어릴땐 도우미 아주머니 도움 몇 번 받았는데
    특히 기억 나는 한 분이 있어요.
    벨이 울려서 나갔더니 구루프 말고 잘 손질한 머리에
    진한 화장, 세련된 옷차림,,,뾰족 구두,,,저보다 훨 멋장이이신 분이 도우미로 오셨더라구요.
    남들이 보면 제가 도우미 아주머니같고 그 분은 외출하기 직전의 집 주인일것 같은,,,ㅎㅎㅎ
    일도 어찌나 잘 하시던지, 화장실도 번쩍거리고,
    와이셔츠 다려놓은 것도 정말 판판했구,,
    보증을 잘못서서 일을 시작하셔다구요.
    그 후에 연락해보니 사무실 열었다던데, 요즘 어찌 사실까,

  • 7. 이영희
    '04.2.26 5:12 PM

    전 이주일에 한번 오시는데 참 마음에 다가오는분 입니다. 깨끗하고 알아서 침대보까지 빨아 다려놔요. 두곳에 소개 시켜주었죠. 소개 시켜주고 고맙단 소릴 듣는분인데 가끔 아파하셔서 마음이 아파요. 그렇게 힘들게 일하니 점점 더 아플까봐.... 자식들도 다 성공 했는데 일을 계속하더라구요.인간관계 는 어떤 위치나 그런건 아닌것 같아요. 좋은분을 만나는것도, 만들어가는것도 큰 복인듯 하네요.글 읽고 저도 생각할 기회가 되 마음이 짠 했어요.

  • 8. 티라미수
    '04.2.26 7:36 PM

    잼나다~

  • 9. june
    '04.2.27 3:20 AM

    코 안커진다에 올인입니다...

  • 10. 카페라떼
    '04.2.27 12:12 PM

    호호..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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