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짭짤 고소한 김혜경의 사는 이야기, 요리이야기.

마흔 아홉번째 결혼기념일

| 조회수 : 8,444 | 추천수 : 110
작성일 : 2003-10-24 22:20:30
오늘 무슨 날인줄 아세요?
오늘 UN데이에요. 아마, 오늘이 UN데이라는 걸 모르는 분들이 더 많을 걸요.
저 어렸을 때만 해도 손꼽아 기다리는 휴일이었죠. UN데이라서 기다렸던 게 아니라 저희 어머니 아버지 결혼기념일이셨거든요.

1954년 10월24일! 이날이 바로 역사적인 그날이었다죠.
하얀한복에 면사포를 쓴 너무너무 이쁜 우리 엄마의 이날 사진이 아직 남아있죠.

저희 어렸을 때는 해마다 UN데이가 되면 가족사진도 찍고, 외식도 하고,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값진 건 아니지만 장미석반지도 사드리고, 밍크숄(당시로서는 아버지가 엄청 큰맘 먹으신거죠)도 사드리고...
지금도 눈앞에 선하네요. 어린날의 저희가 담겨있는 가족사진들, 오빠가 중학생이 됐을 때, 제가 중학생이 됐을 때, 그때마다 다섯식구가 사진관 카메라앞에 서곤했는데...

kimys와 결혼전만해도 부모님 결혼기념일을 곧잘 기억했었어요.그랬는데 kimys랑 결혼후 영영 잊어버리고 말았어요. 혹시 모르죠, UN데이가 내내 휴일이었더라면 기억했을 지도...
하여튼 전 친정부모의 결혼기념일 따위는 까맣게 잊고 살았고, 울 엄마의 두 며느리들이 고맙게도 해마다 챙겨드렸었죠.

그런데 오늘 아침 일찍 호출전화가 왔어요.
"응, 난데, 오늘 저녁 먹자"
"왜요?(갑자기 웬 저녁하다가) 아~~"
"아버지가 쏘신단다(울 엄마 연세에 걸맞지 않게 쏜다는 표현 잘 하십니다)"
"근데 우리 시어머니 저녁 때문에 안되는데..."
"어머니 저녁 미리 해서 차려놓고 와"
"알았어요, 김서방에게 얘기해보고.."

저희 친정어머니, 제게 이렇게 강경하게 저녁먹자고 하신 거 이번이 처음입니다.
시집살이 한다고, 단 한번 시어머니 저녁진지 차려놓고 와서 친정식구들과 어울리라고 해본 적이 없으십니다.
우리 친정식구들, 저녁 모임에는 으례 저는 빠지려니 하죠. 오늘도 그러네요, 조카녀석이 고모에게 드릴게 있었는데 오실 줄 몰랐다고.

전 알아요, 왜 엄마가 이리도 강경하게 저녁먹으러 오라고 하는지...

요새 아버지가 자꾸 이상한 꿈을 꾸신대요.
하루는 꿈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타나서 아버지보고 이인삼각(二人三脚)을 하자고 하시더래요, 막 같이 뛰려고 하다가 잠에서 깨셨다고도 하고, 또 하루는 갑자기 세상을 뜨신 친구분들을 보셨다고도 하고.
지난번 병 나실 때도 발병 며칠전 할머니가 꿈에 나타나서 아버지보고 어딜 가자고 하셨다고 해서 엄마가 섬찟했었대요.

그래서 엄만 불안하신가보더라구요.
알죠, 엄마 마음. 울 엄마, 여태껏 남편 울타리안에서 세상의 험한꼴을 한번도 안 본 분인데...
그래서 평소에는 안그러시더니 딸에 사위까지 몽땅 챙겨서...

저녁을 먹으러 가는데 어찌나 맘이 안좋던지...
게다가 가보니 아버지 얼굴이 너무 부어있는 것이 썩 좋아보이지도 않고. 그래도 그동안 건강이 많이 좋아지셔서 한시름 덜었었는데...

그냥 밥만 먹으면 아무래도 분위기가 그럴 것 같아서 오버해서 분위기를 띄우고 돌아오니까 지치네요.
내년이 아버지 어머니 결혼 50주년인데...금혼식인데... 우리 식구들, 모두 모여서 잔치할 수 있을까요? 잔치할 수 있겠죠?
2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tear
    '03.10.24 10:25 PM

    눈물......................똑

  • 2. lien
    '03.10.24 10:29 PM

    아...가슴 한켠이 서늘해지네요...아버님 건강 쾌차하시길...저 21살때 아빠께서 돌아가셔서 그동안 엄마아빠의 결혼기념일이란걸 그냥 잊어버리고 살아왔는데...이번에는 엄마한테 전화라두 드려야겠네요...

  • 3. 천사초이
    '03.10.24 10:32 PM

    선생님.. 부럽습니다..전 아버지께서 고등학교때 돌아가셔서.. 쇼핑하러 갈때보면 부부가 같이 다니는거 보면 부지 부럽던데요.. 아버님께서 정정하게 계시는것이.. 너무 부럽습니다..
    전 아직 시집을 안갔지만.. 만약 결혼을 하게 되면.. 많이 울지않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처음을 글을 올리면서...

  • 4. LaCucina
    '03.10.24 10:36 PM - 삭제된댓글

    네! ^^
    저희 외할머니께서도 뇌에 문제가 생기셔서 수술까지는 아니었지만 몇번 쓰러지셔서 며칠 말씀도 못하시고 그러셨거든요..병원에 입원하시고..몇달간...다들 할머니 정말 위독하신 줄 알고 마음을 다 단단히 먹고 그랬거든요..그런데 기적처럼 일어나시더니 말씀도 하시고요. 보통 때처럼 다니시죠. 물론 자주 머리 아프시다 어디 아프시다고..편찮으시다고 가끔식 하시지만요..

    2년전에요. 할머니 할아버지 두분 금혼식 잘 치루셨어요.
    또 이번 여름엔 할아버지 팔순이셨거든요. 자식들이 모은 돈으로 가족들과 가까운 친지들 모이셔서 파티 하시고 또 유럽 여행 다녀오셨어요. 저희 외조부님 두분 젊으셨을 때부터 두분끼리/친구들과도 여행하시는 것 참 좋아하셨지만 한해가 갈 수록 더 여행에 횟수가 늘어나더라고요. 제가 오죽하면 울 할머니 할아버지 아프리카 빼고 다 가셨을꺼다라고 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두분은 이제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 싶으시니까 더 그러시는거 같아요. 요즘은 할머니가 자꾸 어디 가고 싶다..어디 갈꺼다 하신데요. 다들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힘든데 왜 그러나 싶다가도 두분 건강하게 사실날 얼마 안 남으셨으니까 생각하니 어디라도 많이 다녀오셨으면 좋겠더라고요.

  • 5. 방우리
    '03.10.24 10:37 PM

    선생님 부모님 결혼 기념일 축하드려요...
    두분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행복하셨으면 하는
    저의 마음도 아버님 어머님께 전해주세요...

  • 6. jasmine
    '03.10.24 11:04 PM

    울 부모님은 12년이나 남았네요....... 그게 힘든거군요.....제가 50줄에 가까와야 하는군요.
    고 1때 울 아버지 쓰러져 뇌수술을 3번이나 하셔서 집안 거덜나고 전 그때 홀어머니 자식되는 줄 알았는데, 여태 살아계세요. 건강하진 않지만..... 12년 후라.......휴......
    아이고, 어쨌든 샌님은 행복하신 분입니다. 금혼식도 보시고........츄카드릴게요. 부럽습니다.

  • 7. moon
    '03.10.24 11:25 PM

    정말 혜경님은 행복하신분 맞네요...
    부모님의 금혼식을 본다는 것....

  • 8. 홍차새댁
    '03.10.25 1:40 AM

    저도 마음이 찌--------잉----------
    하여튼 축하드려요...^^
    어제 밤에 울 친정엄마한테 전화했었는데..내일 또 전화해봐야겠습니다.

  • 9. 기쁨이네
    '03.10.25 2:45 AM

    저희 부모님은 내년 1월이 49주년이세요.
    금혼식 보시리라 믿어요!
    축하드립니다.

  • 10. june
    '03.10.25 3:18 AM

    저 저번날에 이상한 꿈꾸고 한국에 전화했는데 온 집안이 뒤잡어 졌었잖아요. 애가 울면서 전화 했다고... 어찌나 철없는 짓을 했었는지... 그런데 꿈이라는데 사람을 참 약하게 만드는거 같아요.

  • 11. 치즈
    '03.10.25 7:57 AM

    저....선생님의 그 마음 알아요.
    멀리 시집와서 살다보니 부모님 얼굴 뵙는게 일년에 몇번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에요
    그러다 보니 한번씩 서울가서 뵐 때마다 늙으시는 모습이 보여요.
    늘 보면 덜 느낄 건데...
    뵙고 다시 내려올 때 마다 마음이 좀 그래요.....
    서울 톨게이트 빠져나올 때까지 말이 없어지지요.....

  • 12. 쌀집
    '03.10.25 9:05 AM

    내년에 잔치 하실수 있을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때 82쿡 식구들에게 떡돌리는거 잊지마세요....

  • 13. peacemaker
    '03.10.25 9:07 AM

    꼭! 하실거예요..

  • 14. naamoo
    '03.10.25 10:43 AM

    꼭 하실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친정아버지 돌아가신지 벌써 6년째. 그렇게 따지니 저는 34년정도밖에 아버지를
    뵙지 못한 거군요.
    막내는 그래서 더 애틋하고 안스럽고..그런 게 당연한가 봅니다.

    모시고 나가서 식사하실 정도로 건강하실 때, 아쉬움없이 다 하십시오.
    모든 자녀분들 다 모일때 허전하게 빠져있는 혜경님 내외분 자리를 볼때마다
    내색은 않하셔도 섭섭하셨지 싶습니다.
    시어머니 저녁 한시간 빨리 챙겨드리고 , 가족모임에는 좀 늦게 도착하고..
    그러면 되지않나요?

    혼자되신 친정어머니는 작년에 친구분들이랑 유럽을 15일정도 여행하고 오셨는데
    돌아와서 하시는 말씀이. 이제는 그런 장기 여행은 못하겠다.. 하시더군요.
    아직도 엄마 모시고 긴 여행 한 번 못해봤는데, 그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덜컹했었습니다.
    계실 때.잘해야겠다. ...
    늘 새기는 말이지만, 참 ㅡㅡ. 말처럼 되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 15. 싱아
    '03.10.25 11:21 AM

    유엔데이..... 어디서 많이 듣던소리라 바로 제 생일 ...
    친정엄마가 제 음력 생일을 기억 못해서 항상 니 생일은 유엔데이다 하고 노래를 불렀거든요.
    부모님의 결혼 기념일을 축하드려요.
    두분 꼭 금혼식 하실꺼예요.
    마음이 찡~하네요.

  • 16. 초록부엉이
    '03.10.25 2:40 PM

    내년에도 꼭~,꼭 친정식구들과 같이
    부모님 결혼기념일 저녁식사 하실겁니다.

  • 17. 깜찌기펭
    '03.10.25 7:16 PM

    두분을 이렇게 하는 혜경님을 보니, 저희 부모님 생각나네요.
    내년에는 두분 금혼식 준비하느라 바쁘실꺼예요. ^^
    꼭..

  • 18. 파란비
    '03.10.25 7:57 PM

    오늘(10/25) 바로 저희 부모님 결혼 50주년이였어요... 금혼식은 따로 안하고 올 봄에 모든 식구들이 다 같이 경주 여행하는걸로 대신했어요. 식구들이 많으니까 시간내서 여행 한번 가기도 힘들더라구요... 하여간 진짜 금혼식 날이 오늘인데 저희 지방으로 이사하고 처음으로 놀러오셔서 여기저기 구경다니다 들어왔답니다. 아이고 피곤하다...

  • 19. 박정옥
    '03.10.25 11:52 PM

    레몬트리를 정기구독했습니다.. 단순히 생선구이기땜에..^^
    근데 거기에 혜경님의 얼굴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도 제가 아닌 제 남편이!!!^^
    "이분 당신이 자주 가는 사이트, 주인님이시지?" "응? 우와.. 맞네.. 어떻게 알았어?"
    흐뭇한 얼굴로 제 남편이 어깨를 들썩입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사이트를 맬 보는 건 알고 있는 남편이지만 혜경님의 얼굴까지 알고 있을 줄이야!!
    사진이 이쁘게 나오셨던데요.. 아닌가요?^^
    아참~~ 저희 시부모님 결혼기념일은 낼인데..아니 오늘인가? 암튼 26일!!
    이 시즌에 결혼하신 분들이 많은신가 보네요... ^^

  • 20. Ellen Lee
    '03.10.27 4:57 PM

    그럼요!! 당근이죠!!
    내년에는 온가족 사진 멋지게 찍으시고,금혼식이라 더 좋으실 꺼에요^^
    무거운 마음 내려놓으시고 힘내시길..

  • 21. 재클린
    '03.10.30 12:41 AM

    글을 읽다보니 마음 한켠이 다시 서늘해집니다.
    전 올 1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거든요. 50대중반에 간암으로 4년간 투병하시고 가셨어요.
    늘 듣던얘기지만 부모님생전에 잘하라는 말이 사무칩니다.
    금혼식 꼭 하실수 있을거에요.기원할께요.힘내세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날짜 조회
3347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233 2013/12/22 32,978
3346 나물밥 한그릇 19 2013/12/13 22,598
3345 급하게 차린 저녁 밥상 [홍합찜] 32 2013/12/07 24,898
3344 평범한 집밥, 그런데... 24 2013/12/06 22,270
3343 차 한잔 같이 드세요 18 2013/12/05 14,901
3342 돈까스 카레야? 카레 돈까스야? 10 2013/12/04 10,916
3341 예상하지 못했던 맛의 [콩비지찌개] 41 2013/12/03 14,987
3340 과일 샐러드 한접시 8 2013/12/02 14,098
3339 월동준비중 16 2013/11/28 17,015
3338 조금은 색다른 멸치볶음 17 2013/11/27 16,720
3337 한접시로 끝나는 카레 돈까스 18 2013/11/26 12,477
3336 특별한 양념을 넣은 돼지고추장불고기와 닭모래집 볶음 11 2013/11/24 14,808
3335 유자청과 조개젓 15 2013/11/23 11,833
3334 유자 써는 중! 19 2013/11/22 9,710
3333 그날이 그날인 우리집 밥상 4 2013/11/21 11,216
3332 속쌈 없는 김장날 저녁밥상 20 2013/11/20 13,679
3331 첫눈 온 날 저녁 반찬 11 2013/11/18 16,483
3330 TV에서 본 방법으로 끓인 뭇국 18 2013/11/17 15,742
3329 또 감자탕~ 14 2013/11/16 10,501
3328 군밤,너 때문에 내가 운다 27 2013/11/15 11,565
3327 있는 반찬으로만 차려도 훌륭한 밥상 12 2013/11/14 12,918
3326 디지털시대의 미아(迷兒) 4 2013/11/13 10,955
3325 오늘 저녁 우리집 밥상 8 2013/11/11 16,523
3324 산책 14 2013/11/10 13,361
3323 유자청 대신 모과청 넣은 연근조림 9 2013/11/09 10,822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