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견들이 여러가지 일을 하죠.
안내견, 보청견, 치료견, 탐지견, 수색견, 기타등등
저희 니치는 접대견이었습니다.
니치는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묵묵히 접대견의 길을 걸었던 녀석입니다. ㅎㅎ
수많은 에피소드들 중에,
어느 날, 새로 바뀐 저희 담당 소셜 워커 Anne이 방문했어요.
앤이 도착했고, 니치가 앤 옆에 딱 붙어서 제가 소개해줄 때까지 말똥말똥한 눈을 빛내며 앉아 있었죠.
굿걸 니치라고, 아이들이 위탁을 왔을 때 아이들을 아주 잘 돌봐준다고 소개를 해줬어요.
니치랑 앤 악수하고.
니치는 앤 옆에서
앤이 원하는 것은 없는 지, 니치한테 심부름 시킬 것은 없는 지 살피는 웨이터 모드에 돌입.
제가 앤에게 차나 커피를 마실 건지 물었어요.
앤이 커피를 마시겠다고 해서 부엌에 있는 커피 머신에 캡슐 하나 올려놓고,
식탁에 앉아 있는 앤에게 "비스킷?" 도 원하는 지 물어봤는데, 앤이 "예스, 플리스" 대답했어요.
그러자 니치가 벌떡 일어나서,
부엌으로 쏜살같이 달려오더니
(거실 바닥이 미끄러워서 그렇게 갑자기 속력을 내면 몸이 핑~ 돌게 되는,,
그래서 매번 니치가 그럴 때마다 만화를 보는 듯.^^)
그때 저희집 부엌 한 귀퉁이가 이렇게 생겼었는데,
저기 서서 커피를 내리고 있는 저를 밀쳐내고--;;;
저 프롤릭스 봉지를 물어다 앤 무릎 위에 턱 놔주심.
(저 안에는 프롤릭스가 아니고 비스킷이 들어있어요.)
니치한테는 비스킷하면 역시 도기비스킷이었으니까요. ㅎ
난감해 하던 앤이 니치의 성화에 못 이겨서 봉지를 열고, 비스킷 하나를 꺼내서
입에 넣는 시늉을 하자 니치 꼬리를 360도로 빙빙 돌리면서 얼른 먹고 저한테도 하나 넘기라고 압박.
앤은 도기비스킷을 먹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답니다. ㅎㅎ
한번은 거실에 앉은 손님한테 제가 부엌으로 들어가면서 뭐 마실 거냐고 물었는데
손님의 '물 주세요' 소리가 떨어지자 마자
퓽~ 소리나게 부엌으로 거의 순간이동한 니치.
세수대야만한 지놈들 물그릇을 물어다 손님 발 앞에 턱 놔드린 적도 있어요.
부엌부터 거실까지 물바다로 만들어놓구요.
그 뒤로는 누구한테 뭐 마실거냐고 물을 때는 거의 귓속말로 합니다.
손님들한테 이유를 설명하면 모두 쓰러졌죠.
근데 니치의 접대 행각은 거기서 끝이 아니고요.--;
저희집에 매일 산타클로스처럼 생긴 집배원 할아버지가 오셔서 우편물을 전해주셨는데
니치가 그 할아버지를 참 좋아했어요.
할아버지도 니치를 많이 이뻐해주셨구요.
한번은 마당에서 빨래 널고 있는데
그럴 땐 주로 제 옆에서 있다가 제가 빨래를 팡팡 털면 좋아라 하면서 겅중거리는 니치가
마당에서 길 가로 나가는 옆문에 가서 꼬리 나부댕댕 난리치길래
뭔 일인가 했더니 집배원 할아버지께서 작은 택배 상자를 전해주셨어요.
택배 안 좋아하는 개도 있을까요? ㅎㅎ
평소 좋아하는 할아버지께서 택배까지 건네주시니 기쁨으로 충만해진 니치는
할아버지한테 뭔가 선물을 드리고 싶어졌나봐요.
마당에 있던 빨래 바구니에서 제 팬티를 ㅡ,.ㅡ 물고 와서 할아버지한테 받으시라고 우격다짐.
할아버지가 어쩔 줄 몰라하시며 뒤로 물러서자 니치 황급히 사라지더니 이번엔 브라를 물고와서 이건 어떠냐고.
무슨 금도끼 은도끼 산신령님처럼 말이죠.
그땐 너무 민망해서 웃지도 못했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우리 니치는 훌륭한 접대견이었어요. 그렇죠? ^^
출장을 간 남편이 보고 싶다고 했더니 집 안으로 들어가서 남편의 슬리퍼를 물어다 조용히 제 앞에 놔준 녀석.
오늘 참 많이 보고 싶습니다.
제가 먼저 장난을 걸었어요.
손 쫙 벌려서 빠쌰~ 물줄기 무찔러버리겠다는 니치
뭔일인가 싶은 나키가 슬쩍 다가와 봤다가
얼른 내뺐습니다. ^^
엄마의 도발에 정면 대응 했던 니치, 분사기가 니치 입으로 거의 들어가기 직전에
니치, 디너? 했더니
물줄기와의 결투 따위 바로 포기하고 밥그릇이 있는 부엌으로 우다다다.
부엌 바닥이 물로 흥건해진 건 순전히 제탓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