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6일, 부산역에서 열린 추모 공연에 참석하지 못한 게 내내 마음속에 앙금처럼 남아 있었답니다. 행동으로 옮길 생각은 없이 오로지 헛된 마우스질과 키보드질로 '온라인 투사' 노릇을 하는 인간들을 보면서 혀를 차기 일쑤였던 제가 정작 그런 인간이 된 게 아닌가 싶어서 마음이 영 불편했답니다. 물론 그날 피치 못할 일이 있어서 저로선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부산역에서 열리는 추모 대회에는 늘 초라할 정도로 적은 인원이 참석하는 게 현실이라서, 어떡하든 저라도 참석해서 머릿수 하나는 더 채웠어야 했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더군요.
그 불편한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고 9월 7일 낮에 다시 부산역을 찾았습니다. 단식 농성을 하는 분들에게 전해 드리려고 부산역 구내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서 시원한 생수부터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점주인 듯한 아주머니가 카운터를 보고 있더군요.
그 아주머니에게 시원한 생수를 있는 대로 다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무슨 일로 그러냐는 듯 개운치 않은 얼굴을 한 채 마지못한 동작으로 창고에 들어가더니, 시원한 생수는 한 박스밖에 없다고 퉁명스럽게 말하더군요. 그래서 그거라도 달라고 했더니 조금 힘겨운 동작으로 들고 나오더군요.
그 아주머니는 여전히 이 생수의 용도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는 기색이 뚜렷해서 짧게 답을 해 주었답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을 하는 분들에게 드릴 겁니다."
그랬더니 곧바로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서 머리를 크게 끄덕이더군요. 그 미소와 머리 끄덕임이 참 보기 좋았답니다.
편의점에서 구입한 생수랍니다. 위로는 영수증이 살짝 보이고, 옆에는 결제를 위해 내놓은 카드가 있네요.
이 생수를 들고 단식 농성장으로 향해 갔답니다. 9월의 한낮에 내리쬐는 햇볕이 온몸을 뜨겁게 달구는 가운데 생수를 들고 찾은 농성장에는 두 명의 사람만 앉아 있더군요. 그 가운데 한 명은 책을 보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뭔가 깊은 사색에 빠진 표정이었습니다.
그 광경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단식 농성이라는 건 어쩌면 무료함과의 싸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처음에는 비장한 각오로 시작했을지 몰라도 마땅히 전의를 불태울 만한 상대가 눈앞에 없다면 결국 지루한 시간이 길게 이어지는 무료함이 최고의 적이지 않을까 싶더군요. 그럴 때 저 같은 사람이 찾아가서 자그마한 손길이라도 건넨다면 잠시나마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석 연휴에 이렇게 고생하시는 데 마땅히 드릴 건 없고, 이거라도 드시라고 갖고 왔습니다."
그 말과 함께 생수를 내밀자 두 사람의 얼굴에는 당황스러움과 고마움이 뒤섞인 표정이 역력하더군요. 그러더니 머리를 크게 숙여 인사까지 하더군요. 정작 고마움 때문에 머리 숙여 인사해야 할 사람은 저인데, 그들로부터 그런 인사를 받고 있으려니 왠지 멋쩍어서 낯이 살짝 붉어졌답니다.
"함께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괜히 오래 있어 봐야 불편만 끼칠 듯해서 이 말을 끝으로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하고 돌아섰답니다.
그렇게 돌아서는 발길 아래에서 다음과 같은 '낙서'를 발견했답니다.
이 낙서(?)의 주인공이 단식 농성 참가자인지, 아니면 추모 대회에 참석한 사람인지 모르지만 무척 제 눈길을 사로잡더군요. 그래서 카메라에 담아보았습니다.
부산에 거주하시는 분들이라면 이번 연휴에 잠시 시간을 내셔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을 하는 이들을 찾아가서 따뜻한 말과 함께 시원한 생수로 힘을 보태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함께 단식 농성을 하지 못하더라도 자그마한 손길 하나라도 건넨다면 단식 농성을 하는 이들에게도 무척 큰 도움이 되지 싶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이 단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잊지 말고 단식 농성장에 한번쯤 찾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