꿔다 놓은 보릿자루
어린 시절
보릿고개를 넘느라 고생하면서 자란 내가
어느 날 내가 지어놓은 텃밭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었다
나의 텃밭에서
몇몇 사람들이
나 몰래 호박씨를 까더니
처치 곤란한 짐짝 취급을 하였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떨어지는 나뭇잎을
세상사에 맡겨두고 움켜쥐려는
초라한 겨울나무처럼
비우지 못할 보릿자루
오리알은 어디까지 흘러가야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걸까
보릿자루는 꿔다 놓아야 하고
낙동강 오리알은 강물 따라 잘 흘러야 하고
저녁노을은 한 잔 술에 얼굴 붉혀야 하고
-- 양영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