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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등구할매와 장닭 0편

| 조회수 : 2,115 | 추천수 : 5
작성일 : 2013-05-10 13:30:08

오늘은 마을 물세를 받으러 다녔다.

마을 공동지하수 전기요금인 셈인데 물을 쓴 만큼 비용을 분담해서 내는 것이다.

처음에는 마을 이장이 하던 일인데 우째 하다보니 어리숙한 내가 몇년 째 떠 맡게 되었다.

 

스무가구 남짓한 산골마을이라   계량기 검침하고 돈을 걷는데는 한 시간이면 족하다.

그리고 우리 마을에는 혼자사시는 할머니들이 많아 물을 거의

쓰지 않기 때문에 보나마나 기본 요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실제로 물세를 받으러 다녀보면 그게 그리 만만치가 않다.

왜 그런지 말하려고 하는데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

오늘 첫번 째 물세 받은집을 소개하는 걸로 대신할까 한다.

 


 
등구 할머니는 팔순이 다 되 가는데 아직도 논 7마지기와

수백평의 밭을 가신다.  그리고  암소도 한 마리 키우신다.

밭농사는 농기계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오직 괭이 하나로 지으시는데 새벽부터 해가 저물도록 일을 하신다.

할머니 밭이 우리 집 바로 앞에도 있고 우리 집 뒷산에도 하나 있어서

하루 일하시는걸 집안에서도 볼수가 있어 할머니가 하루에 일을 얼마나 하시는지

본인보다도 잘 안다고 할 수 있다.

한번은 캄캄한 밤에 집 앞에 있는 밭에서 탁탁하는 소리가 들려

짐승인가보다 하고 조심조심 다가가 보니 글쎄 등구할머니가

랜턴을 켜놓고 괭이질을 하고 있어 내가 더 놀랐다.

그런데 이렇게 하루종일 일만 하시는 할머니가

나에게 할말이 엄청 많으신 모양이다.

 


 밭일하는 할머니 옆을 지나가다 <할머니 힘드신데 쉬었다 하세요~~>라고 할라치면

할머니는 괭이를 놓고 오셔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시는데

내가 적당한 핑계를 대고 빠져 나오지 않으면 시간제한이 없다.

주제는 주로 이 마을에 시집와서 자녀들 키운 얘기인데

하도 여러번 들어서 할머니 자제분들 이름을 다 외울 정도다.

그리고 내가 물세를 걷으려고 노트를 들고 마을을 돌면

할머니는 하던 일을 잠시(?) 접어두고 집으로 앞장 서시는데

내가 야박하게 돈만 받고 바로 다음집으로 갈 수가 없는 것이다.

30분은 최소한의 예의고 날씨가 화창할 때면 나는 한시간 이상 인내심을 발휘하기도한다.

 


오늘 드라마 1부는 얼마 전에 낳은 송아지였다.

< 그래서 내가 아이고 아이고 예쁜 소야~~또 송아지를 낳아줘서 을매나 고마운지  모리겠다 하이까네

소가 눈을 껌뻑~껌뻑 하면서......>

 

 
거북등껍질 처럼 까칠하고 장비처럼 단단한 손을 휘저으며 한창 열중하실 때는

내가 잠깐 자리를 비워도 계속하신다.

그리고 내가 송아지 사진찍느라 옆에 없다는 걸 아시고는 다가오셔서

바로  2부로 넘어 가시는데 2부 드라마는 나도 다 외는 것이다.

< 우리 봉수가 성공해서 오겠다고 집을 나서다가 돌아서서  내 손을 꼬옥 잡으면서

 어무이~~어무이~~이 돈은 지가 못가져가겠심더 하고는 꼬깃꼬깃 접은 돈을 터억 내 놓는데...

내가 야야~봉수야~~에미는 이 돈 엄서도...>

 


 
사실 내가 오늘 물세받으러 집집마다 다 돌아야 하는 처지가 아니라면

2부 드라마에 이어 3부 드라마까지 들어 드리고 싶다.

하지만 나는 오늘은 하루만에 물세를 다 걷고싶어

< 할머니~~물세 천오백원입니더 >하고 갑자기 바쁜 일이 생긴 듯이

재촉하여 돈을 받고는 옆집으로 갔다.

등구 할머니보다 두세배는 말씀을 잘하시는 임실 할머니 댁으로...

쉐어그린 (sharegreen)

시골에서 농사짓기 시작한 지 13년입니다. 지리산 자연속에서 먹거리를 구해, 시골스런 음식을 만들어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곶감만든지 1..

1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쉐어그린
    '13.5.10 1:31 PM

    2009년도 제홈에 올렸던 일기입니다.
    지금 등구할머니 닭장은 그 때 소마구였어요.

  • 2. 프리지아
    '13.5.10 3:09 PM

    완전 흥미진진........다음 편 기대됩니다....

  • 3. 싸리꽃
    '13.5.10 4:29 PM

    그냥 글을 읽다가 위로 다시 올라가서 닉네임 확인했어요.
    다음에 글 올리시면 아무리 바빠도 무조건 열어 보는 걸로~~

    등구 할머니의 인생이 쉐어그린님의 글로 다 녹아 나오네요 ㅎ
    쉐어그린님이 시간이 많아야 할머니 시리즈 다 들어 드릴텐데...저도 계속 다음 편 기대합니다

  • 4. 자수정
    '13.5.10 6:10 PM

    따뜻하고 재미있는 전원일기 한 편이네요.
    할머니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빌어봅니다.

  • 5. 까만봄
    '13.5.10 9:08 PM

    아~~~이리 빨리 0편이...
    감사드려요.
    그리고 장닭 갑과 을...
    장수를 위해 1:15 비율은 좀 조절하는게 좋겠다고....전해주세요

  • 6. 쉐어그린
    '13.5.10 10:23 PM

    까만봄님 장닭 갑은 장수를 위해 좀 조절하겠다고 하네요. 1:14로.

    그리고 장닭 을은 조만간 할머니 자제분네 가족들 뱃속으로 들어가기로 했다합니다.ㅋ


    여러분이 재밌다고하셔서 2편 올리기 전에 -1편을 올려볼까합니다.ㅎㅎ

  • 7. 행복의길
    '13.5.10 11:14 PM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8. 쓸개코
    '13.5.10 11:57 PM

    재밌게 읽었어요. 근데 동네 등구할배는 안계신가요?^^

  • 9. 라나
    '13.5.11 2:00 AM

    추릅 ~~ 저도 그 장닭 을에게 침발랐어요..ㅎㅎ
    요즘 토종닭맛 들려서...

  • 10. 쉐어그린
    '13.5.11 9:16 AM

    라나님 장닭이 나이가 좀 있어서 쪼매 질길지도 몰라요. 승질도 좀 있는거 같은데..ㅋ

    쓸개코님 영감님은 오래전에 먼저 돌아가셨어요.

    행복의길님 재밌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11. 짱가
    '13.5.11 10:03 AM

    쉐어그린님이셨군요
    뱀잡는 강쥐소식도 한번씩 들려주셔요

  • 12. 어제도오늘도
    '13.5.11 10:03 AM

    제가 가서 말씀 들어드리고 싶네요...
    손보니 눈물납니다..

  • 13. 해라쥬
    '13.5.11 7:34 PM

    세상에 할머니 손이 ... 많이 아프시겠어요

  • 14. 쉐어그린
    '13.5.12 8:17 AM

    어제도오늘도님 래라쥬님 고맙습니다.
    짱가님 덕분에 저희집 강쥐들 잘 지내고있답니다,.ㅎㅎ

  • 15. 플럼스카페
    '13.5.12 11:14 PM

    어쩜 이리 글을 맛깔나게 잘 쓰시나요.
    저도 정기독자 신청합니다^^*

  • 16. 클라우디아
    '13.5.13 9:19 AM

    할머니손 사진에 가슴이 멍하네요

  • 17. still
    '13.5.15 1:40 PM

    임실할머니께선 또 어떤 이야기보따릴 풀러보이실지.....글 감사드려요..^^

  • 18. 옹달샘
    '13.5.19 11:23 AM

    기대됩니다. 다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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