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집에 오면 오늘은 누구의 음악을 듣게 될까 궁금한 마음이 일곤 합니다. 물론 오늘 밤 누구 음악을 들어야지
미리 마음을 정하고 오는 것은 아닌데 묘한 마음의 작용으로 하나로 몰아서 곡을 듣게 되기도 하고 이런 저런 음악을
찾다가 마음이 정해져서 듣게 되기도 하지요.
베토벤의 비창입니다. 이 곡은 제겐 음악과의 긴 인연에서 첫 곡이라고 할 수 있어서 이상하게 들을 때마다 오래 전 일들을 떠올리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하는 곡이기도 하네요. 대단한 사연은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제겐 상당히 중요한 사연일 수도 있는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가는 인연이거든요. 당시 지방 소도시,그것도 아버지의 직업상 상업학교를 다녀야 했던 제겐 대학에 가고 싶은 마음과 실제 학교에서 배우는 것 사이의 거리를 메울 길을 스스로 모색할 수 밖에 없어서 (진학반이 있었어도학교의 분위기상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지 않은 상황이라서요 ) 마음이 급한 상황이었지요. 그래서 부모님을 졸라서방학이면 서울에 올라와서 단과반을 다니곤 했습니다.그 때 놀란 것 두 가지
한 번은 이렇게 잘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있다는 것, 다른 한 번은 다음 번에 올라와서 강의를 다시 들으러 가니
농담도 똑같이 한다는 것 어린 마음에 얼마나 상처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 때 가르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던 기억이 새롭네요. 길거리를 지나다가 우연히 음반가게에서 들려오는 음악에 끌려 그 곳에 들어가서
지금 나온 곡이 무엇인가 물어서 산 최초의 음반, 그것이 바로 베토벤의 월광, 열정, 비창이 들어있는 판이었습니다.
클래식 음악이라곤 거의 들어본 적도 없었고
집에 전축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 당시 낯선 환경이 준 외로움이 음악에 반응하게 한 것이 아니었을까 지금도
신기하게 생각하곤 하지요. 그렇게 시작된 클래식과의 인연이 해가 갈수록 깊어지는 것을 보면 사람에게 우연한
기회가 열어준 문을 어떤 식으로 잡고 인연을 계속하는가는 미스테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요즘 노다메 칸타빌레를 다시 듣게 된 것은 순전히 일본어 기초반 사람들에게 먼저 일본어를 시작한 사람으로서
동기부여를 위해서 무엇을 선물하면 좋을까 하는 마음에서 검색한 것이 인연이 되었습니다. 마침 이상한 아저씨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한 남성이 에니 노다메 칸타빌레를 교재로 해서 강의안을 올린 것을 구했던 것을 계기로
에니를 거의 보지 않던 사람이 결국 끝까지 다보면서 아니 이곳에는 실제 드라마에는 없는 음악도 많네
놀랍고 신기해서 음악과 더불어 계속 본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그 안에서 만난 작곡가의 음악을
다시 찾아서 들어보는 선순환이 지속되어서 한동안 음악속에서 풍성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랍니다.
오늘 밤 마지막 수업을 함께 한 아이들에게 제가 한 이야기, 선생님이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심심하다는 탄식을
해 본 기억이 없는 사연은 꼬리에 꼬리를 이어서 읽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이 많아서가 아닐까? 그런 이야기였지요.
멀리 떠나는 친구를 보내면서 보람이의 친구들이 했다는 말 엄마가 외롭다고 느끼시지 않을까?
그 때 보람이가 한 대답이 우리 엄마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딸이 없어도 외롭다고 느낄 틈이 없을 걸 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어린 시절의 음악듣기는 오로지 베토벤이었습니다. 사실 바흐를 들으면 졸리기만 해서 왜 음악의 아버지라고 하는거야?이해가 되지 않았거든요. 다른 작곡가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고 , 말하자면 음악이 좋았다기 보다 우연한 기회에 만난 음악그렇게 구한 음반을 듣고 또 듣는 것에 의미를 두던 시절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런 시작이 있었기 때문에 평생맛을 모르고도 살았을 지도 모르는 세계와 만난 것 지금은 제게 그것이 축복이었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하지요. 그래서일까요?하루의 시작을 제가 올려놓은 음악으로 행복하게 한다는 사람들을 여럿 만나면서 얼마나 기쁜지요!!
트리플 콘체르토를 듣고 있으니 오늘은 이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