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공부하는 학생중에 앨리스라는 아이디를 쓰는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있습니다. 그 아이는 어려서부터
영어에 관심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처음 만났을 때 상당한 실력이라서 놀랐고 그 다음에 주목한 것은 주어진 과제
중심으로만 공부를 하려고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무엇을 할까요? 이런 식이더라고요. 이 정도 실력이라면 그 금을
건너보면 어떨까 고민하던 중 마침 그 아이의 아버지가 제게 한 부탁이 생각났습니다. 학교 공부도 좋지만 폭넓게
독서하는 아이로 성장하면 좋겠다고 하시던 말씀이요. 그래서 시도한 것이 다양한 책을 당장 필요하지 않아도 읽으면서
번역을 하도록 권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여러 권의 책을 번역해보았고 그 중에서도 뉴욕에서 사온 책중에
아이들을 위해서 철학하는 습관을 들이게 하는 좋은 교재를 거의 다 번역을 마무리했지요.
그러자 앨리스의 어머니께서 번역서를 기념으로 책 형식으로 묶어주시겠다고 했답니다. 그래? 그렇다면 교보문고의
전자책 출간을 한 번 문의해보자 이렇게 해서 이야기가 진전이 되고 있는 중에 앨리스는 조금 쉽고 재미있는 책도
더 번역해보고 싶다고 해서 내민 것이 바로 후앙 미로에 관한 것입니다. 알함브라 궁전에 관한 것은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해도 낯설어서 어렵다고 하길래 후앙 미로로 바꾼 것인데 이 책은 본인이 스스로 아이들에게 말하는 식으로
문체도 정하고 재미있게 번역을 시도하고 있더라고요.
그렇다면 저도 무엇인가 도움이 되는일을 해주고 싶어서 시간이 나면 후앙 미로에 관한 그림을 골라서 올려주겠노라고 했습니다.
철학책 번역을 하면서 앨리스가 알게 된 숱한 이름들,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이름들과 접하면서 당장은
큰 도움이 되지 않을지라도 다시 그 이름과 만나면 낯선 거리감이 줄어들어 훨씬 가까운 기분으로 책을 들거나
그 이름이 있는 기사를 읽어보게 되지 않을까요? 한 번은 비트겐슈타인에 관한 장을 읽고 있길래 웃으면서 말을
했지요. 비트겐슈타인이라 선생님이 읽어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철학자인데 , 이 사람의 저작은 나중에 크게
달라지게 되므로 이것 말고도 더 읽어야 할 것이 있지만 우선은 이름과 만난 것으로도 충분하다고요.
토요일 마지막 시간에 함께 역사책을 영어로 읽는 반이 있습니다 .이미 3년째에 접어든 수업으로 이제는 마지막
권에 돌입하게 되었는데 그 사이에 정이 들기도 하고 실력도 많이 늘어서 최근에는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를
번역본으로 함께 읽고 있는 중인데요. 중학교 1,2학년이 혼자서 선뜻 읽기엔 쉽지 않은 책이라서 함께 읽기를
시도한 것이기도 하고, 현대사를 알려면 지금의 우리가 살고 있는 경제구조 자본주의가 어떻게 생겨났는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느껴서 시작한 것입니다.
큰 한 장씩을 각자가 선택하여 요약하고 발표하는 형식을 취하고 모르는 말에 대한 개념 설명, 중요하나 그냥 넘어가는 곳에 대해서 보충 설명을 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하고 있는데요 어제는 발제자 달래가 어렵다 소리를 연발하면서 글을 올려놓았고 요약해놓은 글에도 질문이 많았습니다. 사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이렇게 모르는 것에 대해서
이런 뜻일까 저런 뜻일까 고민하면서 읽어보고 수업중에 그것에 대해 해답을 얻거나 이것에 대해서 조금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 그것이 수업이 줄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 모두가 이런 식으로 잘
모르는 곳에 대해서 의문을 표시하고 질문하는 방식이 좋겠다고 추천을 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이 반 아이들과의 수업으로 제가 얻은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고 싶은 형태의 수업을 시도하고
수정하고 고민하고 하면서 저도 선생으로 성장할 수 있는 힘이 생겼고 그 이후 단순히 영어를 가르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가서 영어로 역사, 인물, 철학 미술사 이런 책들을 아이들과 더불어 읽는 과정을 다져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다음 주 수업에서는 책 내용에 더불어 이제까지 읽은 인도와 일본역사중에서 쟁점이 되는 내용을 올려 놓을테니
골라서 요약해오는 과제를 낸다고 했더니 이제는 그것 정도는 가볍다는듯이 알았다고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놀랍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한 시간이었답니다.
즐거운 마음, 고마운 마음을 담아서 앞으로도 이렇게 더불어 성장할 수 있길 바란다는 메세지로 고른 후앙 미로의
그림들, 고르던 손길속에 담긴 마음이 전달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