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 참으로 오랫만에 하루 종일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날입니다 .그래서 잡은 게획이 네 가지
우선은 출판사의 공간을 옮긴 arhet님 축하할 겸, 이사간 곳도 보고 싶어서 찾아간 것, 그 다음에 잠깐 알라딘
중고서적에 새로 구할 만한 책이 있나 보고 나서, 화랑미술제에 들러서 다양한 그림을 본 다음, 마지막으로
요셉 어메이징 뮤지컬을 보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자주 그렇듯이 이런 계획에 변수가 생겼지요. 우선 출판사를 찾는 일에 조금 시간이 걸리기도 했고, 넷이서 모여서
이야기하고 맛있는 음식 먹고 다시 가서 커피 한 잔 두 잔 마시다보니 생각보다 출발이 늦어진 사연도 있지만
일단 서점에 들어가고 나니 나오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오랫만에 들린 길이라 꼼꼼하게 체크하고 대조하고
그렇게 해서 고른 책이 38권. 물론 저 혼자 읽으려는 것이 아니고,아이들과 더불어 읽으려는 책이기에 이렇게 무진장
많은 책 고르기가 가능하겠지요? 중고서적이라서 아주 큰 부담은 아니란 것이 다행이라고 할까요?
책값을 다 지불하고 오늘 들고 가서 읽고 싶은 책 두 권을 미리 빼두고, 가방안에 있던 책을 택배로 함께 부탁하고 나니
이미 전시장에 가기엔 늦은시간입니다 .그렇다면 아직 못 둘러 본 서가를 한 번 볼까 하다가 마주친 책이 음악평론가
이 강숙님의 산문집이었습니다. 얼마전 그의 자전적 소설 젊은 음악가의 초상을 구해서 마음 뜨겁게 읽은 적이 있어서
그 자리에 앉아서 조금만 읽어야지 하다가 뮤지컬에 갈 시간이 임박해서야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었지요.
그 중에서 우리 안에는 아직 불이 붙지 않은 심지가 있는데 무엇으로 불이 붙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지요. 그의 경우는 음악으로 특히 베토벤으로 불이 붙었다고 하는데 물론 월광을 처음 들었을 때 바로
확 불이 붙지는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음악 선생님에게 다시 가서 물었더니 바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고
듣고 또 듣다 어느 순간 음악의 흐름이 이해되는 순간이 온다고 말해주는 대목이 있더군요. 그 이후 저자는 베토벤의
월광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어렵사리 기회를 만들어서 남의 집을 찾아다니면서 듣고 또 듣던 어느 순간
드디어 진짜 월광과 만나게 되고 아직 피아노를 제대로 치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마음속으로 그리던 곡을 치고 싶어서
노력하는 장면이 선명하게 소개되고 있더군요.
다른 한 에피소드는 대학을 졸업한 제자가 찾아와서 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60살이 넘어서 아버지가
갑자기 동네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시더니 매일 동요를 비롯해서 자신이 아는 노래를 피아노로 치기 시작하는데
잘 치지 못하는 피아노이지만 정말 즐겁게 피아노 앞에 앉아 계시고 자신이 눌러서 소리가 되는 그 광경에 감탄하는
장면입니다. 그 때 저자는 이런 기쁨이야말로 음악이 주는 커다란 힘이 아닌가 음악이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가르는
장치가 아니라 인생의 통합에 기여하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갑자기 옛날 일이 떠오르더군요. 동생들의 피아노 선생님이 대학원 진학때문에 영어 공부가 필요하자 제게 도움을 청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과외비
대신 피아노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을 했고 처음으로 레슨을 받았었지요. 그 당시 정년 퇴임한 남자분이 피아노를
배우러 다닌다는 것을 알고 놀랐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그것이 제게도 큰 자극이 되었던 것은 물론이고요.
물론 책안에는 존 케이지에 관한 이야기를 비롯한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 여러 편 있었지만 피아니스트 부닌의
연주를 듣고 몰래 눈물을 흘린 대목이 제겐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겠지요? 집에 오자 마자 부닌의 음악을
듣는 사연은.
돌아오는 길, 지하철속에서 읽고 싶어서 고른 두 권의 책 중 한 권을 읽다보니 어느새 일산, 시간가는 줄 모르고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