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의 일입니다.
평소에는 이 시간에 오지 않을 유진씨가 잠깐 도서관에 들렀더군요. 무슨 일인가 했더니
제가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책을 유심히 보고는 두 권의 책을 선물로 들고 왔더군요.
한 권은 숨겨진 인격,다른 한 권은 아테네의 변명
사실 그 전 주 금요일, 강남의 알라딘 중고 매장에서 20권이나 되는 책을 한꺼번에 산 바람에
신문에서 본 책을 다시 구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장바구니에 담아 둔 것인데
한 권은 아그네스님이 선물로 주시겠다는 메모를 남겨서 고마운 마음으로 기다리는 중이고
다른 두 권은 깜짝 선물을 받게 되었습니다.
화요일 수업을 위해서 일본사 책을 보던 중인데 마음이 바뀌어서 책을 덮었습니다.
평소 실력으로 수업을 하고, 눈앞에 있는 새로운 책을 읽고 싶은데 두 권 다 흥미가 있는 책이라 고민하다가
일단 한 권은 집으로 들고 가고, 다른 한 권은 시간나는대로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아테네의 변명
저자가 필력이 정말 좋더군요. 늦은 시간까지 책을 덮을 수 없어서 오카리나 연습시간도 아깝게 느낄 정도로
몰두한 시간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시대의 아테네의 한 복판으로 우리가 타임 머신을 타고 간 느낌이 들 정도로 생생한 묘사로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장벽없이 바로 읽을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요.
오늘도 사모스 섬 공방전까지 읽고 아무래도 감기 몸살이 올 것 같은 조짐에 조금만 조금만 하는 마음을 버리고
들어왔습니다.
숨겨진 인격은 어제 밤 오늘 아침, 이틀에 걸쳐서 반 정도 읽었는데 인격이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란 것을
실험을 통해 증명하는 방식으로 두 사람의 심리학자가 쓴 책이었습니다. 책안에서 개미와 베짱이의 태도가
어느 하나가 옳고 다른 하나가 그른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작동하는가의 관점에서 풀어간 글이 제겐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서 이 책은 심리학 모임에 들고가서 소개하고 싶어지더라고요.
사람과의 인연이 열어주는 다양한 경험들이 해마다 진한 울림을 주지만 늘 그 해가 가장 좋았다고 느끼고 있네요.
요즘 들어서 더 그렇게 느끼는 것은 그 전의 경험을 잊어버리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요. 마음을 이 쪽에서
조금 더 열면 들어오는 공기가 다르다고 느끼게 되는 것도 있고, 제 자신의 벽도 조금씩 허물어지는 부분이
늘어나고 , 여러가지 작용이 있겠지요?
유진씨와 알아가던 시간들이 떠오르네요, 처음에는 아주 조심스럽게 돌다리 두드리듯 다가오던 그녀가
어느새 일주일에 자신을 위해서 세 번, 딸과 더불어 한 번 네 번이나 만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일본어를 통해서 제게는 글 읽는 재미와 더불어 말은 이렇게 하는 것이로구나 표현을 배우게 해주고
덕분에 일본어를 일산에서 계속 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있는 것도 고맙고, 그림에 대해서 눈을 떠가는 그녀를
보는 것도 기분좋은 경험이 되고 있습니다.
평소라면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을 렘브란트의 간음하다 걸린 여인, 아마 이 그림을 선뜻 골라서 올리게 된 것은
어제 읽은 숨겨진 인격의 여파가 아닐까 싶네요. 그러니 무엇을 선택하는가는 그 이전의 경험이 ,그 중에서도
직전 경험이 갖는 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날이었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고른 곡은 모짜르트의 호른 협주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