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과 사람을 바로 본다는 것 (正見) 은? ...........
여기에 한 방울의 물, 혹은 그릇에 가득 담겨진 물 덩어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물’ 을 보고 물고기는 자기 <집>이라 생각하고
목이 타는 듯 마른 사람들은, 갈증을 해소하는 <생명수>로 보고 있고
천상에서는 아름다운 <보석>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지옥에서는 <피고름>으로 보고 있습니다.
“같은 물인데도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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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물 한 방울’, 물 덩어리를 보는 시각은 이렇게 저마다 천차만별로 다르게 나타
나게 됩니다. 한 사물이 보는 이에 따라 같지 않다는 것은, 각자 처해 있는 위치에서
전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사물을 인식한다는 것이겠지요.
이런 이유로 가정에서나 어떤 모임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늘 서로가 다투고 하나가 되기
어려운, 인간관계의 힘든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인데요, 불교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일수사견一水四見’이라고 한답니다.
즉 <물>은 하나이지만 인식의 차이로 네 가지의 색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다고 말이지요.
미술시간에 <남산>을 그릴 때 강북 어린이가 보아 온 남산이 있을 것이고, 강남 어린이가
생각하는 남산이 있기에 <남산>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도화지에 그려질 것입니다.
우리는 사물의 일면만을 보고 전체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데 건전한 비판이 아닌, 편견을
가지고 보기 때문에 왜곡된 시각으로 인해 피차간에 오해를 낳을 수가 있지요.
이렇게 나와 견해가 다르다는 이 [한 생각]이 미움을 불러와 ‘쟁爭’을 발생시키고, 증오의
감정을 폭발시켜 끝내는 국가 간에 전쟁도 일어나게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겠습니다.
“세상에 이상한 것이 많기는 하지만, 사람보다 더 이상한 것도 없다.” 고 그리스의
비극작가도 말하고 있으니 그 대상이 ‘사람’ 인 경우에 더 무엇을 말하겠나요?.......
어떤 사건이나 사람을 볼 때 전체적으로 보지 않고, 자신의 편중된 지식과 시각에만 의존
한다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견해의 도출은 애초에 불가능할 것입니다.
지금 <대선>을 30여일 앞두고 국내 모든 온-라인상은 아름답지 못한 언어들로 시끌벅적한
상태로 과열된 현상을 보일 것인데요, 각자 지지하는 후보에 따라서 생각의 격차가
너무나 커 보이는 만큼, 어떠한 후유증도 없었으면 합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로 ‘단일화’ 되지 않았을 때 오히려 선거를 기피하게 되는 우愚를 범
하지나 않을까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일수록 자중과 대승적大乘的인 안목이
요구되는데, 굴절된 시선과 해석으로 ‘후보’를 잘못 판단하는 오류는 결국 분열과 국가적인
<대사>를 그르칠 수도 있을 테니까요.
“나는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에서
위의 말을 구체적으로 풀어놓으면,
나는 사물을 바로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나는 객관적으로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나는 깨어 있는 눈으로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나는 사랑의 눈으로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나는 전체적으로 보는 눈을 가진 인간이 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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