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은 천국의 문 앞에 있는 커다란 나무 밑으로 가게 된다.
‘슬픔의 나무’ 라고 불리는 그 나무에는 사람들의 삶에서 겪은 온갖 슬픈
이야기들이 나무 가지마다 매달려 있다.
이제 막 이곳에 도착한 영혼들은 자신의 슬픈 사연을 종이에 적어 가지에 걸어
놓은 뒤, 천사의 손을 잡고 나무를 한 바퀴 돌며 그 곳에 적혀 있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다.
마지막에 이르러 천사는 그 영혼에게 그 이야기들 중 “어떤 것을 선택해 다음
생을 살고 싶은가?” 를 묻는다.
자신이 보기에 가장 덜 슬퍼 보이는 삶을 선택하면, 다음 생에 그렇게 살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영혼이든, 결국에는 자신이 살았던 삶을 다시
선택하게 된다고 《우화》는 말한다.
‘슬픔의 나무’ 에 적혀있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그래도 자신이
살았던 삶이 가장 덜 슬프고 덜 고통스러웠음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
《우화寓話》는 사전적 의미로, 인격화한 동식물이나 기타 사물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그들의 행동 속에 풍자와 교훈의 뜻을 나타내거나 풍자한 이야기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과거로부터 우화의 형식을 빌려 전승되어 온 꾸며진 이야기가 현실에서는 맞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그 일면에는, 곰곰이 생각해볼 만한 점이 있어 보이는군요.
지난여름 《자유게시판》에,
“지금껏 살면서 후회되는 단 <한 가지>를 꼽으라면 그게 뭐였나요?”
이런 제목의 글이 올라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원글에 대한 수많은 댓글들을 자세히 읽지는 않고, 강물이 흐르는 것을 잔잔히
지켜보듯이 그렇게 보았을 뿐인데요, 특히 현 <배우자>와의 만남에 있어 후회
하는 속마음을 댓글로 많이들 풀어놓는 것을 볼 수 있었고, 다른 하나는 학창시절
<공부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점>을 못내 아쉬워하는 거였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현상은 우리 전 세대와 후세대에 똑같은 ‘가슴속 풀이’로 나타났거나
앞으로도 계속해서 반복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그 많았던 댓글들
중 유독 제 관심을 끌었던 댓글은 이것이었습니다.
“그 시절로 돌아간들 님들 공부 안 해요,
더 좋은 배우자 못 만나요.”
손에 놓친 물고기가 더 커 보인다는 말처럼, 자녀를 일찍 잃은 어머니들 말씀하시는
거 들어보면 하나같이 ‘예쁘거나 똑똑한 아이’라는 것!........ 아마도 당사자인 입장
으로 그 아쉬움에 감정이 더해져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잃어버린 시간>을 마음 아파하거나 체념하기보다는, 약간 아쉬운 상태가
오히려 각자에게 맞는 ‘중간점’ 이려니 하고, 현실을 전향적으로 바라보는 게 더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까 싶네요.
만일 전부 꽉 차게 되면 운명의 시새움이 요란스럽게 집적거리는 걸 피할 수는 없는
게 사람의 명운命運일 테니 말입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거운 짐을 지고서 먼 길을 가는 나그네와 같다.” 이런
말을 남긴 사람이 있었는데요, 물살 센 강을 힘겹게 건너고 나면 얼마 안 가서 다시
험준한 산이 눈앞에 가로놓여 있는 걸 우리는 일상 속에서 늘 경험하게 됩니다.
남들이 보기에, 선택받은 듯한 <특별한 삶>도 실상 그 속안을 들여다보면 ‘피조물의
신음소리’가 가엾게 새어나오는, 겨우겨우 살아가는 <중생衆生>이라는 존재일 뿐!
그러한 까닭으로 독일의 시인 하이네도 이런 시구詩句를 남겼을까요?..........
나는 너를 꿰뚫어보았다. 나는 세상의 구조를
꿰뚫어보았고, 나는 너무나 많이 보았다,
너무나 깊이 보았지, 그래서 모든 기쁨이 사라졌어 ..........
《신들의 황혼》 중에서 ―
만월이 휘영청 떠오르고 호수 같은 평안의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밤이라도, 속마음이
무언가로 갈등 관계에 놓여있다면 그 아름다움에 몰입되지 못하고 언제나처럼
<소외자>로 남을 수밖에 없겠습니다. ‘있는 그대로’ 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마음이 늘 분열되어 있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게 될 것이니까요.
다만 <일심一心>을 회복한 단순함이나, 사랑으로 내 마음이 충만해 있었을 때만이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이렇게 깨우친 이들이 말하는 자리에 우리도 머물러, 진정한 삶을 맛볼 수가 있을 것
이라고 가을의 문턱에서 생각해 본답니다. <기쁨>과 <슬픔>이 번갈아가며 마음의
같은 한 자리에서, 물거품처럼 일어났다가 스러지곤 하는 게 우리 <세상살이>입니다.
프랑스의 고전 작가인 라 로슈푸코(La Rochefoucauld, 1613~1680)의 말,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 행복하지도 않고 불행하지도 않다.”
《잠언과 성찰》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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