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불어 모임이 있는 날, 이상하게 여러 사람이 동시에 못 온다는 연락이 와서 결국은 약속을 취소하게 되었지요.
그 중 한 명은 한 달 정도 독일을 중심으로 여행을 다녀온 진순씨도 포함되는데 전화속에서 아직도 시차가 극복되지 않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길래 그렇다면 푹 쉬고 다음 주에 보자고 통화를 마무리했습니다.
갑자기 생긴 오전을 어떻게 쓸까 하다가 마음먹고 재미있게 읽고 있는 역사 고전 강의를 불로그에 정리하기 시작했지요.
한참 정리에 몰두하고 있던 중 그녀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일산에 가려고 한다고요.
어라, 수업은 휴강인데, 그래도 여행담도 궁금하니 그냥 오라고 했습니다.
일단 집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녀가 들고 온 선물 꾸러미에서 역시 가장 반가운 것은 두 권의 책이었습니다.
고흐와 렘브란트를 다룬 책인데요 물론 독일어라서 금방 그 자리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지만 도판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그리운 그림, 혹은 낯선 그림들과 일단 인사를 마치고, 점심 먹으러 간 자리에서 듣기 시작한 여행담이 거의 다섯시까지 이어졌지요.
정말 따끈한 여행담이라서 좋았습니다.
그녀가 스마트폰에 담아온 사진들, 아들의 부주의로 다른 것은 거의 다 날라가고 스위스의 융 프라우가 주 무대였습니다.
딸이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어서 이런 저런 일로 외국 나들이를 해야 하는 그녀, 그러나 몸이 약해서 여행을 하면 꼭 탈이 나고
이번에도 독일에 있는 딸을 만나러 가면서도 혹시 또 아파서 딸에게 오히려 폐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던 그녀가 오히려
상당히 건강해 보이는 얼굴이라서 놀랐습니다. 알고 보니 바르셀로나를 가족과 떨어져 혼자 찾아다니면서 여행을 하고 파리에는
아들과 둘이서 가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없이 발품을 팔아서 돌아다니느라 다른 때보다 더 많이 걸었다고 하더라고요.
급하거나 먼 길이 아니면 이제는 가능하면 걸어다녀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과 실천하는 것 사이의 거리를 없애가고 싶다는 그녀를
보면서 웃었습니다. 우리들이 함께 읽는 심리학 책에서 나온 구절이 그녀 마음에 꽂힌 모양이구나 싶어서요.
그녀와는 우리 아이들이 어린 시절, 아들과 같은 학년의 딸이 있어서 도서관의 공부를 통해 만나게 된 사이인데 이사가고 거의
십년 연락도 못하고 살다가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만났는데요 공백이 거의 느껴지지 않게 다시 만나면서 삶의 한 부분을 나누고
있는 중이지요.
어제 함께 보낸 시간중에 스위스가 제 마음으로 스며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제까지 왜인지는 모르지만 스위스는 제 여행 목록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자연보다는 우선 박물관 미술관 위주로 생각하는 버릇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이상하게 거기까지는
하고 사양하게 되는 마음이 있어서인지도 몰라요. 그래도 구체적으로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를 듣던 중에 그 곳의 자연이 제 마음에
갑작스런 파문을 일으키는 느낌이 들어서 신기했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아마 어떤 형태로든 그 곳과 만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신기한 경험도 했지요.
지금은 멀리 살지만 언젠가 곁에서 선생님이 하고 있는 일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그녀의 마음을 따뜻하게 받은 날
앞으로 그녀와 함께 할 여러가지 일들에 대해서 상상을 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아직은 딸리는 독일어 실력으로 두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녀의 귀한 선물에 대해서도 계속 생각하게 되겠지요?